9화.
“아…….”
“…….”
우리는 어정쩡하게 눈을 맞춘 채 한참을 침묵했다.
하데스에게 사심이 있는 건 아니었 지만 워낙 잘생긴 얼굴이라 나는 본 능적으로 흠칫하고 말았다.
약간 머쓱해진 건 나뿐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데스도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한참 얼어붙어 있었다.
“크홈.”
어색해진 분위기에 괜히 헛기침을 하며 하데스의 머리에 올려진 손을 거두어가려 할 때였다.
코앞에 와 있던 하데스의 얼굴 표정 이 갑자기 이상해지는 듯하더니, 멀 어지려는 내 왼손을 덥석 잡았다.
“……이게 대체 뭐지?”
“아.”
소매로 가려 보일 일 없던 내 왼쪽 손목이 드러났다.
손목 안쪽에는 검지만 한 크기의 백 색 타원형 보석이 박혀 있었다.
얼핏 봐선 그저 귀족들의 액세서리쯤 되겠거니 하고 넘어갈지도 모르겠 지만, 이곳 크레센타 제국인이라면 이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가 없을 테다.
내 손목을 뒤집어 잡고, 한 몸인 듯피부에 꽉 얽혀있는 보석을 황당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하데스가 말했다.
“이 크레센타에서…… 이 나이가 되도록 이걸 못 숨기는 사람이 있다 고?”
***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책 속에서 환생한 이후 아벨을 덕질해온 행보만 열심히 설명하느라 미뤄뒀던 얘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
소설 〈페르소나〉의 매력은, 사실 완벽한 남주 아벨의 존재가 60퍼센트, 그리고 작가의 흥미진진한 판타 지 설정이 40퍼센트를 차지하는 수작이었다.
제국 크레센타의 황족 계보를 거슬 러 올라가 보면, 그 선조는 드래곤이 었다 한다.
으레 판타지 속 설정이 그렇듯 드래곤은 막대한 마력을 가진 존재로, 그의 후예인 크레센타 제국인들 대다수는 마법 같은 이능력을 다룰 줄 알았다.
〈페르소나〉의 세계관 내에서 마법 이란 여섯 가지 속성으로 나뉘어 설 명되는데, 불, 물, 흙, 바람, 빛, 어둠 이 그것이었고 크레센타 제국인이라면 모두가 개중 한 가지 속성을 타고 나곤 했다.
이 루버몬트 공작가를 예로 들자면, 유구한 제국의 역사 속에서 내내 막 강한 화(火)속성의 인재들을 배출해 온 가문이었다.
하데스 루버몬트는 그중에서도 도 드라지 게 특출한 수준이 었다.
물론 속성이 같다고 해서 전부 비슷 한 능력치를 지니고 있는 건 아니다.
걸출한 인재와 마법사들이 수두룩 한 만큼, 능력이 거의 없는 평범한 제 국인들도 많다.
그 아주 좋은 예가 에스클리프 남작 가였다.
내 가문은 대대로 다른 속성이 섞인 적 없이 아주 진한 빛 계열의 백(白) 속성을 이어왔는데, 이름난 치유사라 든가 성자를 배출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으레 마력이라 불리는 그 힘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수준이라던가.
아무튼 그런고로 크레센타인이라면 모두가, 속성을 상징하는 코어 쥬얼(Core Jewel)이라는 보석을 신체 일 부에 단 채로 태어나게 되었다.
죽다 살아난 내가 손목에 박혀 있던 백색 보석을 보고, 이곳이 소설〈페르소나〉의 세계라는 걸 알아챌 수 있 었던 이유다.
코어 쥬얼.
다른 말로 핵석.
작가가 설정한 명칭부터 대단히 중요한 냄새가 나는 장치다. 맞다.
심장이 뚫리고 뇌가 뽑히면 즉사하 듯이, 크레센타인들에게 이 코어 쥬 얼은 급소였다. 금만 가도 죽음이다.
그게 대놓고 몸 어딘가에 박힌 채 드러나 있다는 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하여 모든 크레센타인들은, 이미 어 렸을 때에 이 급소를 숨기는 법을 깨 우치곤 했다.
아무리 못났더라도 마법 명국 크레센타 출신이라면 미미한 마력 정도는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었기에, 몸속으 로 코어 쥬얼을 내재화하는 건 그냥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깨우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돌 지나면 걸음마 떼 듯이.
그러나 아주 놀라운 사실.
소설 속엔 등장도 하지 않았던 시골촌구석 귀족 영애 아이샤 에스클리프는, 그 쉽다는 걸음마도 못 뗀 채 열 여덟 살의 나이로 요절한 소녀였다.
“놀랍군.”
나를 제 방으로 데려온 하데스는 혼 란스러운 얼굴이 었다.
마치 스무 살 먹고 여전히 기저귀 차고 기어 다니는 여자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물론 나는 그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 었다.
전생의 몸과 비교해보자면, 심장이 나 뇌 같은 걸 몸 밖으로 덜렁덜렁내놓은 채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아, 끔찍해.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지?”
“왼쪽 손목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 하면서 버텼겠죠?”
나는 하데스가 방에 도착하자마자 검은 손수건으로 단단히 매어준 왼쪽 손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하데스가 황당해했다.
“그게 대체……! 하아…….”
그는 이마를 문지르며 푹푹 한숨지 었다. 한숨 한 번에 땅이 한 뼘 가라 앉는다 치면, 지금쯤 우리는 행성 내핵에 있을지도 모른다.
“열 살짜리 아벨도 할 수 있는 걸 못하겠다고 하면…….”
하데스는 막무가내로 손목의 보석을 안으로 집어넣으라고 윽박질렀지만, 그게 됐으면 내 힘으로 진작 해냈을 것이다.
애초에 전생과 달라진 건 이 몸뚱이 하나뿐, 몸 안에 흐르는 마력을 느낀 다든가 나아가 그걸 제어한다든가, 그런 재주는 내게 없었다.
이세계의 인간으로 환생하긴 했지만, 양산형 로판소설처럼 능력이 자동 패치 되지는 않았던 탓이다.
“하필 위치도 손목일 건 뭐지? 감추 기라도 편한 곳이었으면…….”
“그러게나 말이에요.”
“앞으로 매일 내 방으로 와. 한 시 간씩 핵석을 내재화하는 수련이라도 해야겠군.”
“그게 수련한다고 되는 일이던가 요? 가르쳐주실 수 있는 거예요?”
내 질문에 하데스는 고민했다.
돌쟁이 아이에게 걸음마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테다.
이걸 말로 설명해야 할지, 행동으로 가르쳐야 할지, 가르쳐서 이해시킬 수 있는 건지.
하데스는 생각이 많은 얼굴로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말 당 황스럽군. 내 부인될 사람이, 이 나 이 먹도록 핵석 하나 숨기지 못하고 있는 여인이었다니.”
하데스의 말에 나는 조금 멋쩍어져 서 물었다.
“청혼한 게…… 후회되세요?”
“뭐?”
민망하긴 했어도 대수롭지 않게 물 은 거였는데, 되레 하데스는 당황했다.
그는 허둥거리며 정정했다.
“그런 뜻이 아니야. 내 말은…… 그 래, 걱정이 된다는 거야. 누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그대를 해치기 가 아주 쉽겠지. 손목 한번 세게 잡으 면 끝일 게 아닌가?”
“누가 저 같은 걸 죽일 생각을 한다 고요.”
“공작가의 일원이 되려고 결정한이상, 그대는 조금 더 경계심을 가져 야 할 필요가 있어. 미안한 말이지만 내게는 적이 많지. 내 부인이 된다면 그들이 고스란히 그대를 노릴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렇군요.”
나는 약간 난처한 마음이 되어 하데스의 손수건이 묶인 손목을 내려다보 았다.
이곳에서 눈을 뜬 이후, 그저 아벨 과 같은 세계에서 숨을 쉬고 덕질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만 했을 뿐, 아이샤 에스클리프로서 이 세계에 적응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데스의 말마따나 경계심 없고 안 이하기는 했다는 말이다.
손목에 박힌 백색 보석을 처음 봤을 때 내 감상은 뭐였더라.
아마 후에 등장하는 여주가 지닌 속성과 같아 신기해했던 것, 그뿐이었다.
이걸 몸 밖으로 내놓고 다니며 18 년을 살아왔던 아이샤를 놀라워한 적 도, 앞으로 그녀로 살아가게 될 나를 걱정한 적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지금에야 하게 되자, 문득 답답해졌다.
이런 비현실적인 능력은 소설책 속 에서나 겨우 만나볼 뿐이었던 21세 기 현대인인 내가, 무슨 수로 적응해 야 할지.
‘여주 데보라는 파티를 꾸리면 1번으로 픽업해갈 능력자 힐러인 데…….’
나와 같은 백속성이지만 능력치는 하늘과 땅 차이일 여주인공의 활약들 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저어……. 전하, 미안해요.”
“또 뭐가?”
하데스는 조금 화난 눈치로 물었다.
“별로 쓸모가 없는 것 같아서요. 역 시 아무리 생각해도, 전 루버몬트에 어울리는 인재는 아니예요. 할 줄 아는 거라곤…….”
덕질뿐이고.
“이봐, 영애.”
“보석을 숨기지도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물론이고 제 가문 사람들 중 누구도 속성 마법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요. 만약 제가 조금 더 쓸모 있는 인재였다면, 전하나 아벨 공자님이 어디서 다치고 들 어왔을 때 미미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소설〈페르소나〉는 전반적으로 아벨이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는 내용이다.
치유와 정화 능력이 있는 여주 데보라가 등장하면 그나마 좀 낫겠지만, 그 전까지 아벨은 쉴 새 없이 굴러야 할 것이다.
미안해, 아벨. 능력치라곤 0에 수렴하는 못난 덕후라서…….
“아이샤.”
시무룩해하고 있는데, 어느새 내 앞에 그늘이 드리웠다.
가까이 다가온 하데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