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2/136)

외전 2. 꼬마 왕자님의 여름

<아빠보다 훨씬 잘생긴 세계 최강 꽃미남 왕자 알료샤 님의 비밀 일지록.>

곧 있으면 내 일곱 살 생일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랬다.

아까 아이반 고숙님(고모부)이 선물 뭐 받고 싶냐고 하길래 어마마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바마마가 냉큼 끼어들어서 어마마마는 자기 거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저기압이 되어버렸다.

난 저기압이었는데 어른들은 마구 웃어대서 더 짜증 났다. 일단 웃음이 헤픈 사내들은 멋있지 않다.

솔직히 진짜 유치하지 않냐고.

툭하면 아들이랑 경쟁하려 들다니, 참 어른스럽지 못하다.

내가 보기엔 아바마마가 나를 질투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어마마마가 나한테만 이마에 뽀뽀해 주고 맛있는 초콜릿을 주시니까.

그리고 나만 어마마마랑 똑같은 예쁜 금발이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어마마마가 왜 아바마마 같은 남자랑 결혼했는지 모르겠다.

어마마마가 백 배는 더 아깝다.

아바마마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것 같다.

작년에 어마마마가 고모님이랑 여행 다녀온 적 있었는데 그때 진짜 상태가 이상했다.

내 검술 선생님 앤디미온 경의 설명에 따르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지경이었단다.

불쌍한 어마마마.

기분이 안 좋아진 바람에 점심 먹는 동안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어마마마가 무슨 일 있느냐고 물으셨다.

창피해서 계속 아무 말 안 했더니 그럼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느냐고 하셨다.

충동적으로 서리숲에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곤란한 얼굴을 하시면서 거긴 왜 가고 싶냐고 하셨다.

대충 얼버무리느라 혼났다.

사실 나도 서리숲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른다.

무슨 비밀 군사기지가 있다는 것 정도밖엔.

하지만 최근에 다닐 녀석 덕분에 알게 된 건데, 아바마마랑 어마마마가 가끔 남몰래 사라지는 둘만의 비밀 데이트 장소가 바로 거기 있다고 한다!

다닐 자식, 의외로 쓸모가 있다니까.

그런데 비밀 군사기지가 있는 곳이 비밀 데이트 장소라니, 어린 내가 생각해도 좀 괴팍한 것 같다. 역시 아바마마답다.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오늘 내 생일날에조차 나랑 경쟁하려 드는 아바마마를 보고 결심이 섰다.

작전을 짜야겠다.

일단 궁에서 거기까지 이어지는 비밀 통로 지도를 손에 넣을 방법을 알아내야겠다.

그리고 두 분의 비밀 데이트 장소에 침입해서 어마마마가 질색할 만한 고약한 장난을 쳐놓을 거다.

그렇게 비밀 데이트가 망쳐지면 엄청 화나시겠지…….

거긴 두 사람밖에 모르는 장소니까 당연히 아바마마가 그랬다고 생각하실 거고, 그러면 아바마마랑 사이가 나빠질 거고, 따라서 한동안 나랑만 지내시려 할 것이다.

식사도 산책도 독서도 잠도 전부 다 나랑만 같이 하실 거다.

아바마마가 아무리 애원해도 절대 안 끼워줄 거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자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아주 조금이었지만, 그런데 비밀 통로 지도를 어떻게 손에 넣는담?

어쨌든 절대 내 음모를 들켜선 안 되었기에 남은 식사를 하는 내내 아주 순한 양처럼 굴었다.

다정하고 순수한 어마마마는 내가 초콜릿 푸딩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지 안심한 표정이 되셨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이긴 했다.

“이제 수업 받으러 가야지.”

좀 더 나랑 같이 있어주셨으면 했는데, 어마마마는 내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가버리셨다.

틀림없이 그새 못 참고 보채는 아바마마한테 가는 거겠지.

짜증이 났지만 꾹 참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마지막에 웃는 건 내가 될 테니까.

지루한 수업실로 향하는 길 내내 나는 어떻게 하면 지도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 끙끙거리며 궁리했다.

생각에 푹 빠져서 걷고 있는데 마침 같이 수업을 듣는 사촌 녀석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알료샤, 내 영원한 라이벌이여!”

유리가 나를 보자마자 외쳤다. 평소랑 똑같은 인사였으나 왠지 울컥 화가 났다.

어쩌면 녀석이 툭하면 우쭐대면서 쓸어넘기는 볼썽사나운 은발이 오늘따라 아바마마랑 똑같아 보여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짜고짜 악을 썼다.

“왕자님이라고 불러, 이 재수 없는 자식아!”

유리는 그 자리에서 걸음을 딱 멈추고는 두 눈을 왕구슬만 하게 떴다.

그러더니 그대로 덤벼들기는커녕 오히려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었다.

“야, 왜 울어? 무슨 일 있어?”

울다가 아니라 화낸다가 맞다.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간단한 단어 하나 구분 못 하는 유리는 참으로 얼간이가 틀림없었다.

얼간이 주제에 툭하면 내 라이벌을 자처하다니!

그렇게 쏘아붙여 주고 싶었으나 갑자기 맥이 빠지면서 다른 말이 나와버렸다.

“여름인데 아무 재미도 없잖아!”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맨날 공부만 하라 그러고! 이게 뭐야!”

“맞아, 맞아! 맨날 어른들만 재미있는…….”

“그래서 말인데, 우리 모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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