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136)

Chapter 12 신의 진노

와장창창, 쿠콰콰쾅, 쿠당탕탕탕!

온갖 물건이 내는 요란한 파열음과 파공음과 더불어 온 사방팔방에서 온갖 비명과 함께 삼위일체와 성모와 온갖 성인 찾는 소리가 울려 퍼져댔다.

건물이 박살이 나고 있는 건지 분노한 신에 의하여 뒤흔들리기라도 하는 건지 내부의 모든 것이 미친 듯이 굴러다니다 날아다니다 했다.

얼마나 그렇게 나뒹굴었을까, 어느 순간에 모든 것이 잠시 뚝 멎었다.

온몸이 얼얼한 와중에 혼미한 정신을 바로 차리려 애쓰며 숨을 헐떡거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기억 나지 않았다.

바닥을 미끄러져 굴러가던 중에 눈앞을 스치는 아무 기둥을 붙들고 간신히 매달린 것 같다.

사방에서 뭐라 뭐라 고함치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욕설, 기도, 다급한 지시…….

“시, 신성 장막이……!”

언제나 교황청 일대를 구 형태로 감싸고 있는 신성 장막이 사라진 원인은 현 교황이 선종한 것과 성배가 떠나 버린 것 두 가지가 합쳐진 탓이리라.

아니, 근데 아무리 교황청이라 해도 그렇지 이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신성 타령부터…… 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였다.

핑글핑글 도는 시야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산산조각 난 작은 유리창 밖으로 무언가가 스쳐 갔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충격으로 인해 잠시 맛이 간 상태에서 환각을 보는 거라든가, 혹은 다른 걸 착각한 것뿐이라든가.

그것이 아니고서야 어디서 많이 본, 분명 쪽빛으로 출렁거리는 듯한 무언가가 저 밖을 스치고 갔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아무리 그래도 그건 불가능하잖아.

여긴 북부가 아니라 로마냐라고.

정신 차려, 나 녀석아…….

“레이디 루드베키아!”

빠르게 다가온 교황청 근위병 하나가 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나는 그를 뿌리치고 유리가 깨진 창 쪽으로 달려갔다.

역시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다.

바깥 너머로는 익숙한 교황청 일대와 광장이 보일 뿐이었다.

평소의 로마냐 도시의 풍경일 뿐이다.

단 아까까지만 해도 오후의 황금빛 햇볕에 물들었던 주변 일대가 어느덧 온통 으스스하고 불길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마치 거대한 그림자에 잠겨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방금 그 현상과 관련이 있는 걸까? 대체 무슨 뜻밖의 자연재해라도…….

고개를 천천히 들어 위를 바라보려는 찰나 누군가가 뒤에서부터 내 어깨를 잡아챘다.

“이쪽으로 와.”

근위병들과 함께 다가온 체시아레가 뿌리치려는 내 팔을 단단히 붙드는 바람에 다시 전신에 소름이 쭉 끼쳤다.

“이리…….”

“만지지 마!”

“레이디 루드베키아,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놓으라고, 이 미친놈아……! 꺄아악!”

발버둥 치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꽉 붙잡아 어디론가 질질 끌고 가려는 놈의 행각에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잠시 움직임이 멎었다.

주변의 모든 움직임이 멈춘 듯했다.

나를 빤히 돌아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말 그대로 미친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들에 숨이 턱 막히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일순 천지가 나를 따라 울부짖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아, 나는 그 울부짖음을 알았다.

너무도 잘 알았다.

아무리 변했어도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경이로울 정도로 거대하게 성장한, 가히 초월적인 존재가 스스로의 존재감을 알리는 더없이 반갑고 반가운 소리가.

[크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온 바닥과 벽과 천장이 우릉우릉 지진을 일으키는 듯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서리용은 전생의 영화에서 본 혼테일을 연상케 하는 정도의 크기였다.

지금은 모르겠다. 내 상상 밖의 일이었다.

어쨌든 다들 잠시 얼이 빠지고 넋이 나가 버린 틈을 타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루비!”

“꺄아아아아아악!”

[크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쾅, 하고 다시 한번 주변의 풍경이 뒤흔들렸다.

건물의 벽이 터지고 갈라지고 부서져 내리는 굉음들이 터져 나오면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성모시여! 성부 성자시여!”

“성 안달루스여! 성 니콜라이여!”

사방팔방이 야단법석인 그 와중에도 충실히 나를 쫓는 놈들을 따돌리려 애쓰며 어서 이곳에서 나가려고 했다.

발코니, 내가 찾고 있는 것은 탁 트인 발코니였다.

“루비, 멈춰! 당장 멈춰 서란 말이야!”

“가, 가까이 오지 마!”

아무리 기를 써도 내가 체시아레를 따돌리기란 불가능했다.

점점 더 좁혀지는 거리에 진짜 미칠 지경이었다.

망할 그 많던 발코니가 왜 오늘따라 보일 생각을 안 해!

나는 급기야 복도 안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그리고 거기서 계단을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쫓아왔다.

“네가 도망갈 곳은 아무 데도 없어! 네가 갈 곳은 나 말고 아무 데도 없다고!”

“입 닥쳐! 갈 곳 없는 건 너겠지! 난 다시는 널 보고 싶지 않아! 두 번 다시 너와 마주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쿠르르릉, 쿠콰콰콰쾅!

벽이 터져 나가면서 층계들이 튀어 올랐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긴 계단들이 일제히 튀어 오르며 무너져 내렸다.

우리의 몸 또한 그대로 공중에 튕겨 오르나 싶더니 다시 카카캉 하는 굉음과 함께 세찬 바람이 일면서 한쪽으로 홱 나가떨어졌다.

“꺄아아아악!”

그대로 까마득한 아래로 추락할 줄 알았는데, 벽이 기운 건지 무너져 내리면서 어떻게 된 건지 모를 경사에 철퍼덕 부딪히듯 떨어져서는 그대로 정신없이 쭉쭉 미끄러져 내려갔다.

온갖 잔해도 함께였다.

마침내 경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사지를 뻗고 혼절하는 대신에 벌떡 튕기듯 일어섰다.

“잡아!”

“레이디 루드베키아!”

이쯤이면 내가 대단한 건지 네놈들이 대단한 건지 모르겠다.

그만 포기하라고 이 미친놈들아!

누가 꼴에 교황청 성기사들 아니랄까 봐, 지친 기색도 없이 충실히 겅중겅중 가까워지는 놈들의 모습에 숨을 돌릴 겨를도 없었다.

머리가 핑핑 도는 것이 산소결핍 탓인지 방금까지의 야단 탓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리는 후들대면서도 처절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야 해, 가야…….

어쩌면 이 모든 게 단지 벼락 같은 걸 착각한 것뿐일지라도, 나의 현실도피성 망상장애일 뿐일지라도…….

그런 상황에서 주변을 미처 제대로 살필 여유가 있을 턱이 없었다.

바닥에 뭐가 널브러져 있는지도…….

“자꾸 이러시면 곤란합……!”

“꺄아아아악!”

기어이 따라잡힌 듯 억센 손아귀가 뒤로 나부끼는 머리칼을 홱 낚아채는 느낌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발이 퍽, 하고 뭔가에 걸림과 동시에 몸이 앞으로 세차게 튕기며 고꾸라졌다.

그대로 세차게 넘어진 내 얼굴이 무언가 단단한 기둥 같은 것에 퍽 파묻혔다.

몸 전체가 파묻혔다.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뭔가가 이상했다.

그대로 머리채가 잡힌 채 뒤로 끌려갈 줄 알았건만, 내 머리를 어정쩡하게 붙들고 있는 손길의 주인은 나만큼이나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듯 이상하리만치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기둥인지 뭔지에 격하게 파묻힌 채로 슬며시 눈을 떠보았다.

그리고는 그제야 날 넘어뜨린 물체의 정체가 다름 아닌 발치 여기저기 널브러진, 교황청 성기사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의문과 혼란스러움이 일면서 고개가 저절로 위로 올라갔다.

“어…….”

“…….”

그리고 나는 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상대방, 그러니까 내가 기둥인 줄 알고 가슴팍에 파묻혀 있던 녀석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반짝이는 은빛 머릿결과 가는 붉은 눈과 차갑고 선 고운 얼굴을 전부 다…….

심장이 쿵쿵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니, 거의 미쳐 날뛰고 있었다.

“다, 당신…….”

울음이 터져 나왔다.

믿을 수 없는 모습에 터져 나온 안도와 기쁨과 반가움과 그 모든 것의 눈물이었다.

“너…….”

* * *

천천히 입술을 떼던 우리의 주인공께서 문득 번득이는 시선을 내 뒤쪽으로 옮긴 것은 그때였다.

순간 나는 이 야박한 놈이 이 상황에서 날 안 보고 뭘 쳐다보나 싶었으나, 이내 날 충실히 쫓아온 근위병들의 존재를 한발 늦게 상기하게 되었다.

말끄러미 내 뒤쪽을 응시하던 이스케가 불쑥 움직여 나를 지나쳤다.

정확히는 내 머리카락 끝을 쥐고 선 채 우리 못지않게 넋이 나가 있던 근위병의 짧은 머리끄덩이를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벽을 향해 찍어 박았다!

“공자비님!”

비로소 머리카락이 해방된 느낌이 임과 동시에 휘청거리는 내 몸을 여러 팔이 빠르게 부축했다.

위대하고 위대하신 북부의 팔라딘들이여, 제발 부디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줘요. 엉엉.

나는 반가운 경들의 팔 속에 떠넘겨진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우람한 손바닥으로 내 눈을 가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볼 수 없어졌다.

퍽 퍽 하는 끔찍한 소리와 더불어 경들이 왁왁대는 시끄러운 고함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이 사탄도 울고 갈 새끼야, 검 놔두고 뭐하냐고! 우린 팔라딘이란 말이다! 같은 기사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예우를…….”

“아 좀, 나 비위 약하다고! 열 뻗친 건 이해하겠는데 사람 안면을 그렇게…… 야! 공자비께서 보고 계신다고!”

보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워낙 해설이 생생하여 보고 있는 거나 매한가지이긴 했다.

이럴 거면 대체 눈은 왜 가린 거니?

게다가 다들 왜 또 그 암살자 차림인 거야?

마침내 고깃덩이를 으깨는 듯한 무시무시한 소리가 멈추고는 눈을 가린 손이 치워졌다.나

는 눈앞에 어떠한 끔찍한 참변이 펼쳐져 있든 간에 최대한 안 놀라기로 마음먹었다.

“이스……!”

[크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필이면 그 순간에 용 새끼의 포효가 우리의 재회를 방해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곧장 다가온 우리의 주인공께서 나를 들어 올리던 찰나 문득 그의 팔이 갑자기 멈칫했다가, 이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불쑥 다시 나를 놓고는 몸을 돌렸다.

그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주변의 난리통에 비해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모습의 체시아레가 서 있었다.

저놈이 언제부터 저기 있었는지 모르겠다.

체시아레와 이스케가 마주 노려보고 있었다.

이글이글 작열하는 짙푸른 시선과 차디차게 얼어붙은 붉은 시선이 세차게 충돌했다.

“팔라딘 주제에 사탄의 하수와 대성전을 침공하다니 아이러니하군.”

“추기경 주제에 우상숭배한 그쪽만 하겠나.”

“네놈은 성기사가 아니야. 하는 짓만 봐도 알겠는데.”

“그쪽은 기사가 아니지. 어차피 팔라딘으로서 온 것도 아니거든.”

까드득, 하고 이 가는 소리와 함께 양쪽의 검날이 시퍼렇게 번득였다.

이 무슨 상상하지도 못했던 극의 결말이란 말인가.

애초에 비교도 안 되는 상대이긴 하지만…….

눈이 절로 질끈 감김과 동시에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를 넘겨받은 이들이 몸을 완전히 돌렸다.

“공자비님, 여기 계셨을 줄이야! 괜찮…… 왜, 왜 우십니까?”

“히끅, 너, 너무 반가워서요…….”

멍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아이반 경과 루브 경이 이어 씩 하고 나란히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다들 어떻게 벌써 오신 거예요? 제가 전해 듣기론…….”

“도마뱀 녀석 타고 왔습니다.”

“네……? 타고요?”

“고생 좀 했습니다만 뭐 의외로 할 만하던데요.”

나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맙소사, 서리용을 타고 로마냐까지 날아온 북부의 팔라딘들이라니.

이건 진짜 상상도 못 한 전개인데.

“지금 여긴 저희뿐이고 저 반대편에 카뮤 놈이랑 에스겔이 가서 지금쯤 아마 거기 정리하고 있을 겁니다. 공자비께서 이 안에 계실 줄은 몰랐는데 도마뱀 자식이 계속 이쪽으로 돌진해 대는 통에, 그래서 아무래도 이상해서 각자 나눠서…… 어라, 근데 곰탱이 이 새끼 어디로 갔냐?”

“……여기다. 공자비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건지 낑낑거리며 발코니 난간을 넘어온 우리의 불곰 경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찰나였다.

그 바로 뒤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쑤우욱 다가오는 바람에, 우리 모두 순간 흠칫했다.

차르르륵, 착 하고 쪽빛 비늘이 출렁거렸다.

거대한 황금빛 눈동자가 깜박거리며 나를 응시했다.

“크릉, 크르릉…….”

“요, 용 새끼야!”

“꾸르릉…….”

‘방금 뭐라고 부르신……’이라고 누가 중얼거린 듯했으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역시 우리 용 새끼가 맞았구나, 무사히 성장했구나!

아이고, 이제 고작 사춘기일 뿐일 텐데 머리가 무슨 마차만 하구나!

장하다, 욘석아!

나는 그대로 달려들어 용 새끼의 머리를 덥석 끌어안았다.

정확히는 코를 끌어안은 셈이었지만.

“……야, 저 새끼 지금 뭔 소리 내는 거냐?”

“몰라, 인마. 뿌듯해 뒈지겠으니까 좀 닥쳐봐.”

“네, 네놈들은 대체 뭐냐?!”

불쑥 끼어든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새 다시 몰려온 한 무리의 교황청 팔라딘과 근위병이었다.

분명 말은 수상쩍은 복장의 북부인들에게 하고 있었으나 넋이 나간 시선은 하나같이 용 새끼에게 고정되어 있다.

그럴 만도 했다.

“서, 성모시여…….”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바지를 적시는 소리 또한 섞인 것 같다.

세 북부의 팔라딘께선 잠시 불타오르는 시선을 교환하나 싶더니, 이내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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