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체시아레가 보낸 병사들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모처럼 레이디 아델라와 함께 교황청 바로 앞 광장에서 성탄 축일 축제가 한창인 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주위가 온통 시끌시끌한 와중에 분수대에 걸터앉아 파란 하늘 수놓는 풍선들을 멍하게 바라보던 나를, 표표한 표범 같은 걸음걸이로 다가온 놈들이 다짜고짜 에워싸고는 동행을 요구했다.
사실상 끌려가는 거나 다름없었다.
전에 없는 불손한 행위였으나 딱히 의아하거나 따질 기분은 들지 않았다.
체시아레가 북부와의 파경을 공표하면서 나에 대해 무어라 언질했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현재 정신이 온전치 않다고 알려진 건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대로 광장을 나와 교황청 안으로 끌려 들어가 마침내 도달한 곳은 다름 아닌 교황의 개인실이었다.
안에서 나를 맞이한 이는 아니나 다를까 체시아레였다.
거칠게 나를 밀어 넣다시피 한 근위병들이 내 등 뒤로 문을 꽝 닫았다.
둘만 남게 되자마자 체시아레가 입을 열었다.
“성배 어디 있어?”
“……뭐?”
“성배 어디 있냐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팔짱을 낀 채로 서서 비스듬히 나를 응시하는 체시아레는 그러고 보니 예의 그 수단이 아니라 곤팔로니에레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엔죠가 입었던 그 화려한 은백색 판금 갑옷.
아직 내 이혼 문제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환속해 버렸나.
엔죠가 죽은 핑계로 잽싸게 눌러앉으려는 작정인가 보다.
우습게도, 혹은 모순적이게도 원래 주인보다 잘 어울렸다.
차라리 처음부터 뒤바뀌어 태어났더라면…….
“로크루아 추기경이 사라졌어. 그게 누군데 하는 뻔한 질문은 하지 말고. 다른 몇몇 놈들도 갑자기 사이좋게 종적을 감추었더군.”
나는 잠시 끌려오느라 가빠진 숨을 좀 골랐다.
그렇구나. 이미 종적을 감추었구나.
다행히 무사히 빼돌렸구나…….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데?”
“네가 재미있어할 만한 얘기가 그뿐만이 아니니까.”
“뭐?”
“네 시가에서 이번 일을 명분으로 사방 천지에 동맹을 결성한 모양이더군.”
“…….”
“이놈이나 저놈이나 제 나라 일처럼 동시에 비난 성명을 보내고 있다고. 하여튼 돌아가는 꼴 보아하니 여기서 줄행랑친 놈들이 성배를 가지고 튄 게 분명한데, 그새 아버지를 구슬려 보관 장소를 알아낼 만한 사람이 너 말고 또 누가 있겠어?”
차분하다 못해 냉정한 음성.
그와 대조적으로 짙푸른 눈은 어둡다 못해 검푸르게 보일 지경이었다.
치미는 노기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머릿속에서 낡은 경고음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래서?”
“뭐?”
“그래서 이제부터 어쩌려고?”
“너 지금 그게 어떤 물건인지…….”
“어떤 물건인지는 나도 알아. 그래서 한 거야. 그래서 이제 나도 죽이려고? 엔죠도 죽이고 아버지도 죽이고, 이젠 나야?”
던져지다시피 카우치에 주저앉은 내 목덜미를 그의 억센 손이 거칠게 움켜쥐고 내리눌렀다.
아파, 이 자식아!
까맣게 어두워진 짙푸른 눈이 위험스럽게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 눈에 비친 내 연푸른 눈이 느릿하게 깜박거렸다.
어쩔 거야, 이제? 어쩔 거야?
아버지도 돌아가셔 버렸는데 이제부터 어쩌려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거란 거 알고 있었잖아.
애초에 죽일 작정이 아니었으면서도 왜 그랬어?
아버지가 살아 있으면 안 될 일이라도 있니?
아직도 불가능한 꿈을 꾸는 거니?
뭐에 네 눈이 흐려졌을까?
뭐가 네 눈을 가렸을까?
그것도 내 탓이라고?
“그 새끼 때문에 이래……? 그 새끼가 너 구하러 오겠다 하던?”
“…….”
“함대라도 이끌고 와줄 것 같아? 고작 너 하나를 위해서? 설화를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니냐?”
아니…….
그를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거 나도 이미 알고 있다.
설령 정말 원작처럼 연합군이 맺어져 성도 침공이 이뤄진다 한들, 앞으로 한참 걸릴 것이고 그동안 교황이 죽은 성도의 정세가 어찌 바뀔지 모를 일이었다.
만일 궁지에 몰린 체시아레가 눈이 돌아서 나를 빼돌리거나 처리해 버린다면…….
“아니면 단순히 네 멍청한 발악일 뿐인가? 말해봐, 그 새끼가 그렇게 좋았어? 이렇게 전부 등질 만큼?”
“전부라니, 여기엔 내 아무것도 없는걸.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고.”
당장에라도 나를 야수처럼 찢어발길 기세이던 그의 눈빛이 불쑥 사그라든 것은 그때였다.
별안간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인 건지, 체시아레는 내 목을 쥔 손에 힘을 풀며 천천히 상체를 세우고서 그대로 잠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래, 나도 네가 변했다는 거 알고 있었어.”
“…….”
“열다섯 살 그날 이후로……. 아프고 나서부터 갑자기 혼이라도 바뀐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됐다는 거.”
실제로 바뀐 거 맞단다.
내 눈 또한 그의 눈을 멀거니 응시했다.
“뿐만 아니라 네 고유 코어까지 사라졌더군. 정말로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거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일 지경이었어.”
“…….”
“내가 알던 누이는 어디로 가고 웬…… 텅 빈 것 같은 이상한 눈빛을 한 여자애가 어쩌다 나타난 건지 알 수가 없었어. 처음에는 단지 아프고 난 뒤의 후유증 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이가 꽉 악물렸다.
상처 입은 맹수같이 바뀐 눈빛이 새삼 낯설다.
“나를 낯선 남자 보듯 바라보는 너를 두고 나는…….”
“……그래서 날 그렇게 툭하면 때렸어? 좀 잘해주는 척하다가? 그 애가 아닌 거 같아서 확인하려고?”
“…….”
“말해봐, 나한테 입 맞춘 것도 그 애가 아닌 것 같아서야? 이것저것 다 해보면서 계속 지켜볼 작정이었어?”
내 목에 두른 손이 약간 움찔하나 싶더니 다시 저릿하게 조여왔다.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으나 갑갑했다.
한참 만에 울린 느릿한 음성은 거칠고 낮았다.
“그래……. 쭉 지켜볼 작정이었어. 처음에는, 아니, 처음부터……. 널 물어뜯으려고 지켜봤지.”
수그린 그의 머리가 천천히 내려왔다.
그렇게 마주한 얼굴은 뜻밖에도 본 적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괴로움에 사무치는 것 같은 표정.
마치 내 모습이 자기를 고문하기라도 한다는 듯한 그런…….
“그러려고 지켜봤는데……. 물어뜯어 버리려고, 갈기갈기 찢어서 산산조각 내버리려고 하고 있었는데…….”
산산조각 내버리려고.
갈기갈기 찢어서 산산조각 내버리려고 했다고.
그 정도로 맹렬한 증오였다면…….
그 정도로 맹렬한 증오뿐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순수한 증오뿐이었다면 나도 널 용서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네 모든 걸 부숴 버리려고 하고 있었는데……. 하, 오히려 반대로 네 모든 게 나를 먹어치워 버렸어.”
“…….”
“형편없이 무너져 내리는 내 모습이 네 눈엔 어떻게 보였으려나……?”
목을 움켜쥔 손아귀에 힘이 바짝 실리고 있었다.
호흡이 버거워졌다.
“지금은 그냥 비참할 뿐이야……. 네가 그 눈으로 나를 볼 때마다 너무 비참해져서…….”
“…….”
“차라리 그냥 이대로 너도 나도 끝내 버린다면…… 전부 끝장을 내버린다면…….”
몸이 저절로 들썩이는 찰나 손이 떨어져 나가면서 그 아래로, 목덜미 아래로 내려갔다.
일순 전신에 소름이 쭉 끼쳤다.
“읏…….”
“차라리 이렇게, 처음부터 이렇게 그냥 내키는 대로 가져 버렸다면 훨씬 쉬웠을지도 모르지.”
고통스럽게 가라앉았던 눈이 다시 서서히 불타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보디스가 잡아 뜯겨 내려가는 감각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세차게 깜박거렸다.
내가 미처 비명을 지를 틈새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비명을 지르기는 했다.
그러나 내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불쑥 급작스럽게 내리친 신의 진노인지 마른하늘의 날벼락인지 혹은 무슨 지진 같은 자연재해인지 모를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는 바람에 그대로 묻혀 버리게 되었다.
순식간에 대관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쿠쿵, 하고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충격파와 함께 몸이 세차게 날아갔다.
아니, 몸이 아니라 그냥 풍경 전체가 세차게 날아간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