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8/136)

* * *

“로마냐까지 인간적인 방식으로 가는 길은 매우 멀고 험하다는 거 나도 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이래서야 차라리 인간적인 방식이 낫잖아! 이건 그냥 다 죽자는 거 아니야?!”

“겁이 나는 모양이네.”

“저 새끼 원래 겁 많잖아.”

“또 겁이 나는 거냐, 카뮤? 실망이군.”

머리를 실망스레 가로젓는 동료 놈들의 행각에 카뮤는 그만 이 새끼들 다 미친 거 아닌가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단장님께선 이 짓거리를 승인해 주셨단 말인가?

“이스케 네가 지금 눈 돌아간 상태라는 건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거리를 마물 도마뱀 발바닥에 붙들려서 가는 게 말이나 되냐고?! 무슨 비상식량이냐?!”

“뭔 소리를 하는 거냐, 너는? 대체 누가 그딴 미친 짓을 해?”

“뭐? 그럼 뭐 어쩌려는 건데?”

다행히 아직 이성 줄은 남아 있던 거였어.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리는 카뮤를 잠시 뭐 보듯 노려보던 이스케가 장갑을 탁탁 요란하게 털었다.

따라서 아이반이 대신 대답했다.

“올라타.”

“뭐?”

“올라탄다고.”

“……그리고 그 새끼는 순순히 우리 밑에 깔리고?”

“이 새끼 말로는 하면 된대. 친히 허물 벗겨주는 육아까지 해줬는데 뭐 염치가 있으면 순순히 등짝을 보여주겠지. 그것도 지가 그렇게 좋아하는 공자비 찾으러 가는 거 아니냐.”

참으로 뭐 같은 소릴 뭐같이 내뱉는 아이반은 이스케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건 카뮤 또한 마찬가지였다.

갈라르, 루브, 에스겔 또한 똑같은 유니폼 차림이다.

따라서 다들 복부가 좀 시렸다.

“얼마나 더 커졌을지 궁금하네. 근데 그때 아이반 너도 같이 벗겼냐?”

“아니. 근데 에스겔 너 그러고 있으니까 진짜 수상해 보인다.”

“고맙다. 근데 우리 이거 왜 입고 있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우린 지금 왕실이 아니라 신전 대표하고 있는 거 아냐?”

“신전 대표한다는 놈들이 사탄의 하수랑 룰루랄라 성스런 도시 때려 부수러 가냐? 그리고 왕실 대표 맞지, 뭐.”

잎담배에 불을 붙이며 대꾸한 아이반이 친구 놈 쪽을 흘긋거렸다.

이스케는 공자비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느낀 모양인지 잔뜩 풀죽은 그리핀을 다독이고 있었다.

그들 주변으로 우울한 포포리가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눈깔을 왜 그렇게 부라리냐.”

“……푸릉…….”

“마수 새끼가 빠져 가지고는. 후방도 중요하다고 몇 번을 말해.”

“푸릉, 푸릉…….”

저 새끼는 지금 저것들이랑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가, 눈이 돈 바람에 사람이라 착각하고 제멋대로 떠드는 것인가.

그 미스터리를 하늘로 날려 보내며 롱기누스의 소수 정예는 롬의 동굴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들을 향해 이스케가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거기 없다.”

“……뭐?”

“저 위쪽에서 뭐 먹고 있을걸. 와이번 밭이라서. 아니, 근데 이 코찔찔이 새끼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이만큼 참아줬으면 눈치 좀 키워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는 이쪽이야말로 이만큼 당했으면 기대할 걸 기대해야 할성싶었다.

아닌 게 아니라 기껏 녹초가 되어가며 허물 벗겨주는 짓까지 해준 이스케 장본인이 막 정신 차린 코찔찔이한테 그대로 찢겨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설상가상으로 한시가 급해 죽겠거늘, 누가 사탄의 하수 아니랄까 봐 며칠 내내 은인도 못 알아보고 밤낮으로 폭식의 죄나 짓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슬슬 도마뱀의 등짝 작전은 포기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질 지경이다.

이스케가 짜증스럽게 홱 살기등등한 눈초리를 돌림과 동시에 사방이 갑자기 어두워진 것은 그때였다.

펄럭펄럭하는 웅장한 날갯짓 소리에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잠시 그렇게 나란히 서서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던 소수 정예는, 이윽고 홀로 유일하게 딴 데를 보고 계시는 북부의 참된 육아 장인을 향해 일제히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 * *

체시아레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한들, 교황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보면 알 수 있었다.

의식을 차리는 횟수가 점점 더 줄어들었으며 음식도 거의 넘기지 못했다.

머리카락도 점점 더 빠지고 비쩍비쩍 까맣게 말라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만 보면 누굴 찾아대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골라 하는 건 여전했다.

“카르멘……. 카르멘…….”

나는 침대로부터 조금 떨어진 창가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병색이 완연한 모습, 이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모습으로 간신히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를 내는 교황을.

죽어가고 있었다. 정말로 죽어가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별 의학적 지식이 없는 내 눈에도 빤히 보였다.

“부디 나를 용서해라……. 나는……. 나는……. 카르멘…….”

어쩌면 숨이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조차 나를 끝내 못 알아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괜스레 입맛이 썼다.

이유야 나도 모를 일이었다.

“너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리고 그 아이도…….”

“…….”

“그 아이도 사랑했어…… 너를 똑 닮았으니…… 하지만…….”

이런, 이건 내 얘기인가?

이런 식으로 내 얘기 듣는 건 기분이 영 이상한데.

“그 아이는 내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어…….”

“…….”

“네가. 두고 간 그 아이가…… 카르멘…… 부디 용서해다오……. 난 그 아이를 사랑했어……. 그리고 미워했어……. 결국…… 그리되기까지…….”

사랑하면서 미워해……?

누가 부전자전 아니랄까 봐 부자가 똑같이 쌍으로 배배 꼬였군.

그리들 살면 안 피곤하시나.

휴, 살아 있을 때는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 같던 사람들도 죽을 때는 전부 이렇게 똑같은 모양일까?

너무 쉽고 너무 초라해. 어차피 이럴 바엔 왜 그렇게들…….

“미안하다, 카르멘…… 그 아이는…… 너와 닮았으나 달랐어……. 그래서 사랑했지만…… 미워했어……. 그럼에도 언제나…… 내 마음 한구석의 빛이었어…… ”

“…….”

“아름다움은…… 그 정도로…… 그 정도로 위대하다지. 부디, 부디…… 이 나를. 용서해다오……. 이젠 그 애를…… 다시는 볼 수 없겠지만…….”

맞아요. 다시는 볼 수 없겠지요, 아버지.

교황은 그러고 다시 잠깐 잠잠해졌다.

때마침 노크 소리가 울리더니 레이디 아델라가 들어왔다.

으레 그렇듯 그녀는 조용히 내게 눈인사를 건네고는 다가와 침대를 살피고 이불을 갈기 시작했다.

하녀들도 있는데 굳이 손수 하는 이유가 무엇이려나.

“표정이 안 좋구나, 루비.”

“……제가요?”

“성하께서 무슨 말을 하시든 신경 쓰지 말렴. 나도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겠다만은……. 망자에게 대고 떠드는 말에 신경 써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잖니.”

그건 저도 알긴 합니다만. 그것보다 저는…….

“아델라, 북부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들으셨어요?”

“응?”

아무리 칩거하다시피 살고 있다 해도 체시아레가 내 이혼을 공표한 이상 엔죠가 죽었다는 것쯤은 알았을 텐데, 그저 담담한 척하시는 건지 진짜 담담하신 건지 잘 모르겠다.

“아니요, 아니에요. 그것보다 당분간 다른 곳으로 가 계시는 거 어때요? 별장들 있는 지역이라든가.”

“……갑자기 왜 그러니?”

그러게요? 난 그냥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나를 알 수 없는 얼굴로 가만히 살피던 아델라가 불쑥 질문했다.

“루비……. 엔죠가 어떻게 된 건지 아는 거니?”

“네?”

“너 여기 온 이후로 내내 낯선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는데, 혹시 그것과 관련이 있나 싶어서.”

“관련이라니요, 저는.”

“역시 네 큰오빠 짓이니?”

역시라니.

조금 뜻밖이긴 했으나 이 온화한 인상의 부인이 체시아레와 엔죠의 어머니이자 교황과 가장 오랜 시간을 알아온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쩌면 내심 예감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드님에게 직접 물으시는 편이 나을 것 같네요.”

“조금 전에 다른 곳에 가는 거 어떠냐고 한 말은 무슨 뜻이니……? 역시 그것 때문에 한 말이니?”

“……대충 그렇다고 봐야죠. 솔직히 아버지가 왜 이렇게 누워 계시는지 모르시는 거 아니잖아요? 어머니라고 어떨진 모르니까 해본 소리예요.”

그것보단 아들내미가 몰락할 때 같이 휩쓸리게 될 거 뻔하니 한 말이지만.

아델라의 안색은 해쓱했으나 의외로 큰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조용히 고개를 떨어뜨리고 생각에 잠기는 얼굴이 정적인 화풍의 그림 같았다.

이미 체념할 대로 체념한 분인가?

뭘 표출해도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 만큼 알아서, 단지 조용히 스스로를 추스르는 것에 익숙한 분인 걸까?

아니면 단순히 내색을 안 하는 데 능숙하신 것뿐이려나.

“걱정해 줘서 고맙구나, 루비……. 하지만 내가 그 앨 놔두고 어딜 가겠니?”

“네?”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이러든 저러든 내 하나 남은 아들이잖니.”

연한 갈색 눈동자가 결연했다.

이러든 저러든이라니, 체시아레는 참 좋겠군.

“……뭐 마음대로 하세요. 제 알 바 아니니까.”

이러든 저러든 다른 갈 곳은 없다 이거지.

모두 그렇듯이.

우리 모두 갈 곳 없는 길 잃은 어린 양 떼라네…….

“그 녀석이 많이 미운가 보구나.”

“딱히 미워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데요.”

“그 말이 더 무섭게 들리는데?”

“부인이 아실 바 아니잖아요. 저 좀 내버려 두세요.”

“비난하려는 게 아니야. 예전보다 오히려 지금 네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보기 좋아서 해본 말이란다.”

“……레이디 줄리아는 좀 어때요?”

“성하께서 이러고 계시니 어쩔 줄 모르고 있지. 난 여기 있을 거지만,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니 네 말대로 줄리아는 다른 곳으로 가게 해야겠구나.”

교황이 이대로 죽어버리면 체시아레가 제 이복동생을 수태 중인 줄리아를 어찌하려나.

그것이 줄리아가 가장 걱정하는 것일 터였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녀가 다시 나가고서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멀리서부터 뎅, 뎅 하는 느린 종소리가 울려와 교황이 내쉬는 가쁜 숨소리에 섞여들었다.

내가 뭣 하러 그의 임종을 두 눈으로 지켜보려고 하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른 할 짓이 없는 탓이려나.

마찬가지로 감시를 받는 중이라 이르는 로크루아 추기경에게 성배를 전달해 주고 난 뒤, 아슬아슬하게도 그날 이후부터 난 집 안에 감금되다시피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발코니에서의 오후 이후부터.

가만히 있을 때마다 남편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지만 가능한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와중에 고통스럽기만 하기 때문이었다.

제발 부디 무사히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짓조차 하지 않았다.

기도는 아무런 쓸모 없다는 거 이미 아니까.

만일 뭔가 잘못돼서 다시는 널 볼 수 없게 된다면, 아마…….

“미안…… 미안…… 하다…….”

지치지도 않으시나 보다.

의식이 잠깐 들 때마다 하는 말이라곤 저런 것뿐이라니.

하긴 지은 죄도 많으실 텐데 세상에 미안할 일도 많으시겠군.

잠깐 멎었던 종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가, 교황이 내뱉는 가쁘고 거친 숨소리 또한 아득하게 울렸다.

나는 그만 이 짓거리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임종을 지켜보려고 기다리는 것 말이다.

굳이 볼 필요가 있나, 어차피 머지않아 언제든 일어날 일인데.

“네게 면목이…… 하지만……. 그 애가……. 걱정…….”

사과든 걱정이든 살아 있을 때 하는 것이죠.

그리고 함께 있을 때 하는 거고요.

이젠 무엇이든 무의미한걸요.

아들에 의해 죽어가는 당신의 최후부터가 이 얼마나 의미 없나요.

그러니 언제든 잘 가세요, 아버지.

명복을 빌어드리진 못하겠지만.

부디 다음 생애에선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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