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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지겹지도 않냐.”
불가피하게 매일 얼굴을 맞대야 하는 사이라면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좀 들어야 마땅한 법이다.
그러나 이스케는 이 싸가지 없는 파충류 새끼와 운우지정을 나눌 마음 따위 눈곱만큼도 없었다.
허구한 날 보는 사이가 됐든 말든 그저 지겨워 죽겠다.
“이봐.”
“…….”
“죽은 건가?”
콧잔등에 딱딱 딱밤을 튕겨봐도 반응이 없다.
진짜 죽어버린 건가?
확 그래 버렸으면 소원이 따로 없을 듯했으나 어쨌든 이스케는 나름대로 확인을 해보려고 했다.
즉, 온 비늘이 불덩이처럼 펄펄 끓는 서리용의 한쪽 귀를 잡고 쭉 잡아당겼다.
“……크으응.”
“안 죽었으면 반응 좀 하지그래? 허구한 날 끼니때마다 네놈이랑 씨름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나야 네가 굶어 뒈지든 말든 상관없다만, 내 마누라가 슬퍼할 거란 말이다.”
그렇고말고. 게다가 이 싸가지 없는 애새끼는 하필이면 멸종 위기 종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멸종 위기 종이 이대로 운명하는 일은 북부를 수호하는 팔라딘으로서 방지해야 마땅했다.
또 거기다 이 새끼 때문에 지금까지 다들 밤낮으로 고생한 것까지 고려하면 순순히 보내주기엔 심사가 뒤틀리지 아니한가.
“갖다 주는 거 처먹기 싫으면 얼른 허물인지 허세인지 벗어젖히든가. 너 하나 때문에 이게 대체 뭔 팔자에도 없는 삽질이냐고?”
“포, 포…….”
“니들은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라.”
아픈 애한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따지는 듯한 기세로 팔을 팔딱거리던 포포리가 시무룩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런 포포리를 비웃듯이 부리를 딱딱대던 그리핀이 이내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부리를 얻어맞고 잠시 기절했다.
“……젠장, 차라리 죽이는 게 쉽지, 반만 죽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저녁으로 가져온 드레이크가 슬슬 숨통이 끊길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요즘 들어 매번 이런 식이었다.
처먹으라고 가져다줘도 도통 정신을 차리질 못하니 기껏 숨통 붙은 채로 잡아 온 마물들이 꼴깍 넘어가 버린다.
오늘도 텄군, 텄어.
한숨을 곱씹으며 이스케는 이제 숨소리조차 거의 내지 않고 뻗어 있는 서리용을 노려보았다.
아니, 뻗어 있다기보다는 웅크리고 있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오늘따라 처자빠져 자는 자세도 마음에 안 든다.
지 다리와 꼬랑지까지 배로 깔아뭉개면서 끙끙 앓는 거야 알 바 아니라 치자.
왜 자꾸 대가리까지 꺾어서 파묻으려고 하는가?
거북이도 아니고, 게다가 이스케는 거북이가 참 싫었다.
“달걀 속 시절 꿈이라도 꾸냐?”
알 속에서의 기억이 남는지야 모를 일이었지만, 어쨌든 이스케는 일전에 자신을 거의 깔아뭉개 죽일 뻔했던 비대증 애새끼가 스스로 머리를 깔아뭉개 죽는 일을 방지하려고 움직였다.
“파충류 대가리 수준하고는…….”
투덜투덜하며 열이 펄펄 오른 서리용의 시건방지게 꺾어진 목덜미 부근으로 다가가는 찰나였다.
자꾸만 배 밑으로 파묻으려던 대가리가 다짜고짜 홱 쳐들리면서 거대한 주둥이 끝이 그를 밀쳤다.
그 바람에 이스케는 그만 자신이 친히 공수해 온 식사 위로 퍽 넘어져 버렸다.
꽤액 하고 최후의 비명을 내지른 드레이크가 서서히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마정석이 딸그락 하고 굴러가는 소리만이 아련하게 울렸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곧장 두 눈을 불태우며 시건방진 서리용에게 치도곤을 내리려던 이스케는, 그다음으로 벌어진 일에 그만 그답지 않게 당황해 버렸다.
“뭐 하냐, 너?”
서리용은 대꾸가 없었다.
여전히 눈도 뜨지 않고 있었다.
다만 방금 전까지 대가리를 몸 밑으로 파묻으려고 했다면, 이제는 다른 곳으로 파묻으려고 하고 있었다.
서리용의 대가리의 크기는 굳이 비교하자면 곰탱이 갈라르의 몸집만 하다.
갈라르 놈의 덩치를 연상케 하는 무언가가 축축한 코로 푹푹 찔러대며 자신의 품속으로 파고들려 한다고 상상해 보라.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끔찍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이스케는 조용히 기도문을 읊조렸다.
이 세상에서 그가 자신의 가슴팍에 파고들길 바라는 이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결코 정 줄 구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영악하고 싸가지까지 없는 비대증 파충류 마물 새끼가 아니었다.
“……미친놈아, 이런 징그러운 짓은 차라리 저 포포리 새끼한테나.”
“포, 포, 포!”
“푸릉, 푸르르릉!”
그때였다. 포포리에 이어 그리핀까지 갑자기 시끄럽게 떽떽거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이스케는 이번만큼은 그들을 내버려 두었다.
아니,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너…….”
한 100년 만에 만난 친부라도 된다는 양 열렬하게 그의 가슴팍에 코를 부비적대던 서리용이 뜨거운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출렁이는 쪽빛 비늘의 결이 기괴했다.
일제히 한 방향으로 접혔다 반대 방향으로 접혔다 제멋대로 물결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파동이 점점 더 커져갔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는지 이스케는 깨달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애하는 단장님께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일러준 현상이었으니까…….
“……이스케! 이스! 이스으으으으!”
하필이면 이런 중대한 순간에 출입구 쪽에서 동료 놈의 애탄 외침이 절절하게 울려 퍼졌다.
이스케는 서리용의 주둥이를 품에 꼬옥 안은 뭐 같은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렸다.
“조용히…….”
왕도의 핵심 알력들이 지난 수십 일간 손꼽아 기다려온 순간이다.
아주 사소한 잡음이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다 된 밥을 코앞에 두고 크나큰 낭패를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용히 입 닥치라고 속삭이려 했다.
하지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로 뛰어들어와 보석들 더미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지다시피 하며 다가온 아이반의 낯짝과 마주한 순간, 이상하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졌다.
얼어붙은 담록색 눈동자에 아른거리는, 가늠할 수 없는 공포와 분노의 불꽃을 본 순간 덮쳐온 어떠한 예지에 그대로 사고가 정지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