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136)

* * *

“과연 이스케 경의 부인이십니다!”

시누이의 무시무시하고 엄중한 시선 아래서 꼼꼼히 행색을 정돈한 뒤 공작저를 나설 무렵 앤디미온이 다짜고짜 불쑥 외친 말이었다.

맑고 해사한 호박색 눈동자에 나로서는 영원히 이해 못 할 경이가 서렸다.

누가 비범한 남편 녀석의 종자 아니랄까 봐 이 녀석도 참 알면 알수록 비범하다.

여태 조용하길래 아까 장면 때문에 겁에 질린 거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쓰잘머리 없는 걱정이었군.

“추레한 꼴을 보여드려 죄송하네요.”

“추레하다니요, 좀 무섭긴 했습니다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굉장합니다. 부인께 그러한 화끈한 면모가 있었을 줄이야…….”

그걸 대체 왜 곱씹는 거냐?

화끈하긴 내 얼굴이 화끈거려 죽겠구나.

나도 내가 그렇게 이성줄을 놓아버릴 줄 몰랐다고…….

“저어, 남편이나 다른 분들한테는…….”

“걱정 마십시오, 기꺼이 우리 둘만의 비밀로 간직하겠습니다.”

“……지금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되나요?”

* * *

꼭 두 번째로 와보는 서리숲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비슷하게 온통 새하얀 눈으로 물들어 있었다.

숲 입구에서부터 앤디미온을 비롯한 몇몇 팔라딘들의 호위를 받으며 롬의 동굴로 향하는 동안 그 흔한 노움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다들 꼭꼭 숨기라도 한 걸까?

경계 구역으로 들어서자 일대를 삼엄하게 감시하는 시커먼 갑옷 차림 팔라딘들의 풍경이 펼쳐졌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시선들이 좀 민망했으나 자연스러운 반응들이었으니 개의치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보다 롬의 동굴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커지는 기괴한 소음이 신경 쓰였다.

[카오오오오오오- 카오오오오오-]

“우, 우와아아아악!”

마침내 롬의 동굴의 입구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오르는 찰나 무언가가 웅장한 고함을 내지르며 발 앞에 털퍼덕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나 대신에 앤디미온이 앗 하는 소리를 내주었다.

“……카, 카뮤 경?”

까칠한 카뮤 경이 멀거니 눈을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까칠한 물빛 눈동자에 끔찍한 물기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고, 공자비님…….”

“네?”

“죄, 죄송합니다. 저희끼리는 더 이상…… 할 수가 없습…….”

“지랄 말고 빨리 벌떡 안 일어나냐! 부인, 어서 오십시오, 와주셔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야, 됐어, 됐어! 공자비께서 도착하셨다!”

“야 이 곰탱아, 안 들리냐! 이제 그만 포기해도 된다고!”

“공자비께서 오셨어!”

뭐지, 이 엄청나게 반기는 분위기는.

몸 둘 바를 모르겠는걸.

몸 둘 바를 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아이반 경에게 끌려가니 이윽고 낯익은 동굴 입구 주변에서 진을 치고 있는 팔라딘들과, 그런 그들의 머리 위에서 약 올리듯 핑글핑글 맴돌고 있는 어떤 반가운 녀석의 모습이 나타났다.

“피요오오오오오!”

내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그리핀 녀석이 먼저 기나긴 울음을 뽑았다.

그러자마자 어둠에 싸인 동굴 안쪽에서 무언가가 세차게 튀어나왔다!

“포, 포!”

“포포야! 애들아!”

“부인, 조심하십……!”

“포, 포 포 포 포 포!”

데굴데굴, 구르르.

열정적으로 팔을 파닥거리며 튀어나온 포포가 포동포동한 품으로 나를 힘차게 껴안고는 그대로 바닥을 좀 굴렀다.

아이고,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나도 반갑다, 반가워!

“포, 포, 포, 포!”

“푸르릉, 쿠, 쿠 쿠 쿠!”

바로 머리 위에서 그리핀이 행복하게 부리를 딱딱거렸다.

기특한 짜식들, 이렇게 반겨주다니 진짜 감동이잖아.

“……저 새끼들 마수 아닌 거 같다.”

“가만히 있어 멍청아.”

사이좋게 뒹굴며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는 우리의 꼬락서니를 강직한 팔라딘들께서 어떠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는가는 굳이 거론하지 않겠다.

마침내 두 녀석의 격한 포옹에서 풀려나 숨을 헐떡이며 앉는 찰나였다.

[카오오오오오오-]

거대한 미로 동굴 전체가 우릉우릉 진동하는 듯한 신음.

“푸르릉, 푸르릉.”

“포, 포!”

그리핀이 무어라 고갯짓을 함과 동시에 그제야 생각났다는 기세로 발딱 일어선 포포가 내 손을 잡았다.

그러면서 다른 쪽 팔을 동굴 안쪽을 향해 파닥거렸다.

“포, 포, 포 포.”

“부인.”

나는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돌렸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동료들을 뒤로한 채, 어느덧 대담하게도 곁에 다가온 친애하는 소수정예가 나를 향해 심각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지금 저 안에 이스가 들어간 거죠?”

“예, 단장님도 함께 가셨습니다. 말리려 했으나 둘 다 워낙 고집이, 문제는 길이라도 잃었는지 벌써 반나절 가까이 안 나와서 쫓아 가보려 했으나 이것들 둘이 막아대는 바람에, 그러니까 계속 봐줬더니 아주 대놓고…….”

반나절 가까이라니, 부부 합동 작전 하기로 해놓고선 이 무슨 단독행동이야, 남편 놈아!

아무리 네놈이 잘난 주인공이라 해도 걱정된단 말이다!

그나마 단장님이랑 같이 갔으니 망정이지 원!

“내가 진짜 미쳐…….”

“틀림없이 별일은 없을 겁니다, 일단 서리용이 계속 곡소리를 내고 있으니까. 아마 길을 잃었거나 다른 뭔가를 살피느라 시간이 걸리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저희는 역시 부인께서 아셔야 할 듯하여, 어이, 안 그러냐?”

“단장님께선 소싯적 성체 용 두 마리를……. 부인, 들어가신다면 저희도 따라 들어갑니다.”

두서없이 주고받는 아이반 경과 갈라르 경의 틈으로 앤디미온의 부축을 받으며 다가온 카뮤 경이 비틀비틀 끼어든 것은 그때였다.

“부인, 저 새끼입니다. 저 그리핀 새끼가 저를, 저 새끼 그리핀 아닌 거 같습니다.”

까칠한 카뮤 경은 아무래도 상태가 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기어이 그리핀을 어쩌겠다고 고집하는 카뮤 경을 저지하기 위해 갈라르 경이 나서서 그의 코를 깨버려야 했다.

기절한 카뮤 경을 질질 끌고 나간 에스겔 경께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카오오오오오-]

“포, 포, 포!”

지난번에도 그러했듯 그리핀이 앞장서서 날아가는 동안 포포가 나를 들고서 미끄러지듯 쫓아갔다.

그런 우리의 뒤를 두 남자와 한 소년이 죽어라 쫓아왔다.

어째 그림이 좀 그랬으나 포포도 그리핀도 뒤의 인간들을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우와앗!”

와다다다 하는 구불구불한 내리막길이 튀어나오자 뒤쪽에서 비명이 울렸다.

나는 나대로 포포에게 안겨 정신없이 쭉쭉 미끄러져 내려가느라 다들 제대로 오고 있는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미로처럼 여러 갈래로 뻗은 굴곡진 경사를 이리저리 홱홱 미끄러져 가고 있자니 눈이 절로 핑글핑글 돌았다.

아, 이 느낌 잊고 있었다.

“아앗!”

“포!”

마침내 펑, 하고 허공으로 튕겨 올라가는 느낌과 함께 그리핀이 포포의 귀를 잡아챘다.

저 밑에서 퍽 퍽 하고 누구들이 보석 언덕에 격하게 파묻히는 소리가 장엄하게 울렸다.

“다, 다들 괜찮아요?”

한동안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핀이 살포시 우리를 내려놓는 동안 나는 멀미가 이는 머리를 문지르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어디 보…… 가만, 그런데 이곳이 원래 이렇게 밝았었나?

“……허허허, 이스케 경, 경의 부인은 매번 극적으로 등장하는데 남다른 재능을 자랑하시는군. 우린 괜찮소이다, 공자비.”

잘그락잘그락.

내 몸이 보석 언덕을 주르륵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포포 너 이 배신자…….

“안녕, 여보?”

흘러내려 오는 나를 재주 좋게도 쏜살같이 낚아채 안아 든 이스케는 아주 가관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이 보석 창고의 주인께서 드라마틱한 신음을 흘렸다.

“카오오오오오오, 카오오오오…….”

그제야 주변이 제대로 보였다.

누가 가져온 듯한 등화가 주위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보석 더미가 쭉쭉 밀린 돌바닥 위로 거대한 쪽빛 비늘 더미가 축 늘어져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맥없이 아무렇게나 축 늘어진 날개 근처에 서 있던 중년의 팔라딘, 즉 롱기누스 팔라딘의 기사단장께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바론스 경이라고 했던가?

“성장통이오.”

“성장통이요?”

“시기가 맞아떨어지질 않아 설마 설마 했는데, 이렇게 육안으로 좀 지켜보니 역시 맞는 것 같소. 우리가 옆에서 알짱대는데도 이리 얌전할 정도의 고통이면 그것뿐이라…….”

이스케가 나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나는 더듬더듬 비늘 더미를 훑으며 신음이 흘러나오는 주둥이 부위를 찾았다.

머리가 어느 쪽이야 이거?

“용아, 괜찮니?”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길게 닫힌 눈꺼풀이 잠시 움찔거리나 싶더니, 이윽고 거대한 금빛 눈알이 드러났다.

일순 숨이 멎었다.

“카오오……. 카오, 카오오……. 카오, 카오…….”

뭐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살며시 손을 뻗어 딱딱한 콧잔등을 쓰다듬자 거대한 콧구멍이 훅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부상을 당했거나 병에 걸린 건 아니라니 다행이긴 하다만, 이러고 있으니 좀 가엾어 보인다.

너 우리 흉포한 용 새끼 맞니?

“그런데 시기가 안 맞는다는 것이…….”

“말 그대로다. 고작 성장통으로 아파 죽으려는 시기는 어릴 때 한 번뿐이라서. 청소년기로 넘어갈 때뿐인데, 즉 이 녀석이 덩치에 비해 우리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어릴 수도 있다는 거지.”

의외로 친절하게 설명해 준 남편 녀석이 내 곁에 무릎을 대고 앉으며 반쯤 벌어진 용의 주둥이 부근에 손을 가져다 댔다.

용 새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픈 와중에도 반쯤 풀린 눈을 부라리듯 번득여 보이긴 했지만.

아이고, 너 진짜 애새끼였던 거였어?

“이렇게 큰데 아직 아동이었다고요?”

“아동…… 큼, 나도 그게 의문이긴 했는데, 단장님?”

“공자비, 이 녀석 전에 에렌딜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용은 19년 전 겨울의 서리용이오. 우린 여태 그것이 이 녀석의 형제쯤일 거라 생각해왔소만,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어미였던 모양이구려. 나 참, 그럼 그때 그리 허무하게 잡혀 죽은 이유가 이걸 숨기느라 그렇게…….”

“단장님이 죽이신 것도 아니잖습니까. 아무튼 그때 이 녀석이 어떤 상태였는지는 몰라도 이후 쭉 이 안에 틀어박혀서 보석만 빨고 잠만 처잔 것 같은데, 이 정도로 자랐다는 게 참…….”

그러게. 우리 용 새끼 나름대로 있는 힘껏 살아남은 외로운 꼬마였구나…….

한데 아직 꼬마라면 여기서 얼마나 더 커지려나? 지금도 이렇게나 큰데.

“그 어미로 추정되는 녀석 크기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아마 지금 이 녀석보다 반 정도 큰 체구로 기억하네. 이 몰지각한 녀석이 조숙증이나 비대증에 걸렸다 해도 그다지 놀랍지는 않네만, 용도 비대증에 걸리나?”

“그걸 왜 저한테 물으십니까, 단장님이 더 잘 아신다고 주장하실 땐 언제고.”

“경은 북부 최고의 팔라딘이잖나.”

“루비, 네가 보기엔 어때?”

“맞소, 공자비, 공자비가 보시기엔 어떻소?”

“지금 저한테 물으시는 건가요?”

어이가 없어 반문하자 두 인간 모두 즉시 당당하게 앞다투어 대답했다.

“얘가 너 좋아하잖아.”

“이 녀석 방금 어디가 아프다며 공자비한테 칭얼댄 거 아니었소?”

뭔 대답들이 이 모양이지. 그 상관에 그 수하로군.

“이 성장통이란 건 언제쯤 끝나나요?”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소. 개체별로 다르기도 한데다 열에 일곱은 성장에 실패하고 죽어버리기 일쑤라서.”

퉁, 퉁 하는 음산한 울림이 일었다.

인간 놈의 주장이 몹시 마음에 안 든 것이 분명한 용 새끼가 꼬랑지를 탁탁 흔들어대는 바람에 사방이 우릉거리고 여기저기서 보석들이 탕탕 튕겼다.

허공에 흩날리는 반짝거리는 금화를 뭐 보듯 노려보던 기사단장께서 이내 내 표정을 보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물론 이 녀석이 죽을 거라는 뜻은 아니오. 단지 옛적에는 종종 그랬다는 말…….”

“대체 왜 쓸데없는 소리로 남의 아내를 불안하게 만드십니까?”

“그러고자 한 의도가 아니었으니 하극상은 넣어두게나 좀! 비록 경험 풍부하며 어린 동족을 보듬을 줄도 아는 따스한 정서의 성체용이란 성체용은 죄 씨가 말라버린 작금이나 이제 보니 이 녀석은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단 말이네!”

“갑자기 어째서입니까?”

“경은 눈도 안 달렸나? 나한테 부라릴 시간 아끼고 똑바로 보게, 지금 공자비가 와서 안심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잠시 때아닌 성장통에 시달리는 중인 비대증 꼬마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거대한 꼬랑지를 사납게 퍽퍽 흔들어대며 콧김을 식식 뿜어대던 꼬마용이 우리를 향해 눈을 부라려 보였다.

“그다지 안심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경은 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심부터 하는 습관 좀 버리게. 내가 소싯적 용을 한두 번 본 줄 아나?”

“뭐 그렇다 친다 해도, 그게 무사히 성장하는 거랑 대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나, 내가 용도 아니고. 단지 성장통을 앓는 개체는 그 무엇보다 정서적 안정이 중요한 법이라 했네. 먹이도 먹이지만, 간간이 기어들어 오는 잡마물들만으로는…… 아니, 한데 공자비, 저것들 대체 서로 무슨 관계요?”

그 저것들이란 바로 보석 더미 속에서 신나게 뒹굴고 있는 포포와 그리핀이었다.

우리 용 새끼가 아프니 어서 가자고 끌고 온 기색이더니만 웬걸, 나름 쌓인 게 많아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노느라 정신이 팔린 건지 용 새끼 쪽으론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퍽 못마땅해하는 눈빛으로 나의 가출 친구들을 하나하나 쏘아본 이스케가 이제 쓰라린 탄식을 내뱉었다.

“이 새끼 용 아닌 거 같다.”

“……에?”

“아무리 봐도 꾀병이 분명하잖아, 지금 일부러 이러는 게 틀림없다고. 네가 토닥토닥해 주는 동안 나는 살다 살다 비만 도마뱀 먹이를 잡아 오는 짓거리를 하라 이거지. 이런 제기랄, 왜 요즘 것들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이웃의 아내를 탐하는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거지?”

북부 최고의 팔라딘께서는 아무래도 나로선 도저히 이해 불가한 이상한 결론을 혼자 내리고는 정신적 혼란 상태에 빠져든 것 같았다.

나는 슬며시 손을 올려 그의 축 늘어진 우람한 어깨를 토닥거렸다.

“아무도 당신한테 그러라고 말 안 했는걸요.”

“말은 못 해도 온몸으로 시위하고 있잖아, 지금! 그리고 내가 아니면 누가 해, 막말로 이 새끼한테 쌓인 거 있는 놈이 어디 한둘도 아니고! 젠장할, 일용할 양식으로 장난치는 불경한 새끼들은 내 누구든 가만 안 둬, 설령 성직자 놈들이라 해도 북부의 신성 수호자로서 즉결처분을 내려주지! 아무리 회개해도 소용없다.”

이게 대체 어떻게 하면 나올 수 있는 논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러니까 왠지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대증 꼬마용의 보모 노릇이라는 끔찍한 현실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가 좋아서 나는 그만 웃어버렸다.

“우리 둘이 잘 보살펴줘서 얘가 무사히 성장하면 엄청 뿌듯할 거 같은걸요. 마치 부모 놀이 하는 거 같아요.”

“……그런가?”

소싯적 성체용 두 마리를 상대했다던 전설적인 롱기누스 기사단장께서 어떠한 눈빛으로 비범한 휘하 기사를 쳐다보기 시작했는지는 굳이 거론하지 않겠다.

바론스 경은 이내 떨떠름한 시선을 돌려버리고는 딴 쪽을 향해 근엄하게 입을 열었다.

“경들은 여기 놀러 왔나?”

아차, 저 세 분의 존재를 그만 깜박하고 있었네.

뭐 때문에 여태 잠잠들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단장님. 저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헛소리 집어치우고 거기 쑤셔 넣은 보석이나 도로 꺼내놓게. 코 묻은 어린애 간식 훔치면 신나는가? 자네들이 그러고도 성기사라 할 수 있느냔 말일세!”

북부 최고 성기사단의 우두머리께서 사탄의 하수더러 코 묻은 어린애라 칭하시다니.

대체 이 나라 양반들의 신앙의 기준이 뭔지 갈수록 혼란스럽다.

“훔치려던 것이 아니라 굴러떨어지다 보니…… 하여튼 저희끼리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단 말입니다! 오죽하면 저 새대가리랑 돼지 너구리가 가로막는데도 쫓아가려 했겠습니까? 성장통인지 뭔지 저희로선 알 길도 없는데-”

“어디 감히 공자비 면전에서 꼬박꼬박 으르렁대는가! 기사도 정신과 예절은 어디다 팔아먹은 게야! 하여간 요즘 젊은이들은 검만 휘두르면 다 기사인 줄 아는 것이 문제네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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