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136)

* * *

“겨울옷을 새로 맞추셔야겠습니다.”

“천천히 하죠, 뭐. 그런데 에렌딜은 원래 이렇게 겨울이 이르나요?”

“올해가 유독 빠른 편입니다. 그러고 보니 로마냐의 겨울은 어떻습니까?”

“눈을 보기 힘들지요, 아무래도. 전 북부라서 이렇게 눈이 이른가 싶었어요.”

“방한구들도 서둘러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서리용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정말 모를 일이다.

북부에 서식하던 용 중에서도 가장 드물고 골 때리는 종이 서리용이랬던가?

방한구로 나를 꼭꼭 여미던 로냐가 잠시 자리를 떴다.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다 말고 엘레니아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엘렌은 내가 이상하지 않아요?”

“어디가 말입니까……?”

“마수들이랑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제가 처음일 거 아니에요. 솔직히 조금 무서워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마녀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엘레니아는 잠시 고개를 수그린 채 자신의 손을 바라보더니, 걸터앉아 있던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왔다.

“글쎄요, 일단 저도 어쩔 수 없는 오메르타의 사람인지라. 아버지나 오빠가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저 또한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마녀니 하는 미신을 신봉하기에는 다들 너무 현실에 찌들었달까요.”

“…….”

“물론 당시에는 정말 놀랍긴 했습니다만, 의외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여겨지진 않더군요.”

“어째서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에선 어떠한 상식 밖의 일도 가능해서일지도 모르겠군요. 나아가…… 왠지 루비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도 가능할 것 같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쭉 그러셨으니까요.”

“제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많이 저질렀나요?”

“모르셨습니까? 오늘 아침만 봐도 아실 텐데.”

넌지시 핀잔한 시누이가 내 후드 망토의 끈을 리본 모양으로 묶어주었다.

내가 그만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이는 찰나였다.

똑똑 하고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마님, 아가씨, 계십니까?”

이 목소리는 그 집사장분 아니신가? 레틀러인지 뭔지 하시던…….

“무슨 일이냐?”

“송구합니다, 아가씨. 실은 지금 퓨리아나 영애께서 찾아와 계십니다.”

어쩐지 머뭇거리는 듯한 어조였다.

아니, 당황한 것 같다고 할까. 이유야 모를 일이지만.

잠깐 정적이 흐른 끝에 나를 한 번 쳐다본 엘레니아가 냉랭하게 외쳤다.

“바쁘다 전하고 돌려보내라. 내 분명 지난번에 일러둔 듯한데?”

“송구합니다. 하오나 아가씨를 방문하신 것이 아니라서 보고를…….”

“뭐?”

“영애께서 마님을 뵙고자 여쭈셨습니다.”

뭐가 어째요?

엘레니아가 나를 멍하게 응시하는 동안 나 또한 멍하게 그녀를 마주 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간 프레이야 생각은 아예 안 하고 있었다.

일부러 안 하는 것도 있었지만, 다른 일들로 머릿속이 꽉 차기도 했고 떠올려 봤자 기분만 나빠져서였다.

프레이야를 비롯한 신전 문제는 나 혼자 생각하고 판단할 일이 아니기도 했고.

그런데 프레이야가 오늘 이 시점에 뜬금없이 나를 방문했다고?

“아직 시기가 좋지 않다. 그냥 돌려보…….”

“아니에요!”

천천히 입을 여는 엘레니아의 말을 황급히 가로막았다.

붉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루비, 억지로 만나실 필요 없습니다. 그 애는 제가 따로…….”

“억지로 만나려는 거 아니에요. 저도 따로 할 얘기가 있고요.”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봅니다. 게다가 이따 외출하셔야 하잖습니까.”

“아직 언제가 될지 모르잖아요, 잠깐 차 들 시간은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루비…….”

“괜찮아요, 엘렌. 정말로. 어쨌든 엘렌의 오랜 친구잖아요.”

나를 위해 이러든 저러든 어릴 때부터 살펴준 유모까지 제 손으로 내보낸 엘레니아가 더는 중간에서 버겁게 할 순 없지.

게다가 프레이야가 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보자고 한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요,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잊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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