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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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살려줘어!”

“아아아악! 성부시여! 성모시여!”

“성 아그네스여, 성 스테파노! 성 바오로시여!”

즐거운 축제 거리와 광장이 아비규환으로 변모한 것은 그야말로 삽시간.

아무런 전조도 없이 덮쳐와 미친 듯이 날뛰어대는 온갖 종류의 마물들에 의해 가족, 친지들과 함께 축제를 즐기러 나왔던 이들 모두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혼비백산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한발 늦게 출동한 도시 경비대와 신전 소속 성직자들, 여타 소속 성기사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피의 축제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즉, 피에트로는 주인이 내린 임무를 충실히 이행해 성공한 것이었다.

마곡석들을 보는 것도 그걸 써본 것도 처음이었지만 어쨌든 성공했다.

우습게도 그들의 계획에 에렌딜의 상인들이 한몫 도와준 셈이었는데, 외국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으로 모조 마정석 등을 왕창 팔아댄 통에 몰래 주변 곳곳에 마곡석을 작업하는 일이 한결 쉬워졌다.

미리 흘려둔 마곡석을 누가 봤어도 단지 관광객이 떨어뜨린 가짜라고 여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가 있다면 오직 그의 주인에게 있었다.

마곡석 작업을 전부 마친 뒤 아수라장을 확인하고서, 엘모스항 부근에 숨어 대기하고 있다가 함께 로마냐로 돌아가는 배에 오르기로 했었다.

피에트로는 주인의 지시를 헷갈리거나 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당연히 그가 잘못 안 것이 아니었다.

문제의 시작은 이랬다.

피에트로가 아수라장의 시작을 확인한 뒤 엘모스항으로 향하려는 순간, 바로 그때 천공을 날아 어디론가 향하는 웬 푸른 용의 모습을 목도하고 말았다.

피에트로는 피에 굶주린 암살자이자 괴물 그 자체인 사내였으나, 생전 저토록 많은 종류의 마물이 살육전을 벌이는 모습은 물론이요, 용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간 에렌딜이 평화롭기도 했던 데다, 남부 지역에 극히 미미하게 존재하는 마물들은 죄 높으신 분들의 취미용 오락거리일 뿐이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열린 경기를 보긴 했어도 경기장 안에 갇혀 싸우는 풍경이라 비슷한 오락거리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추기경을 주인으로 두고 있음에도 신이나 악마 같은 것이 실존한다 여긴 적 또한 없었다.

살아 숨 쉬는 동안 그가 상대해 온 적들은 전부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바로 오늘, 말로만 들어본 용의 모습을 육안으로 접하게 되니 생전 느껴본 적 없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일었다.

잠깐에 불과했으나 용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나자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자신을 추스르며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의 주인도 미리 준비해 놓은 배도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계획을 들킨 건가?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뭐가 잘못된 걸까. 설마 아직 궁 안을 빠져나오시지 못한 것인가.

방금 그 용 틀림없이 궁 쪽으로 향했던 듯한데.

하지만 그렇다면 배는 어디로 갔는가?

설마 날 두고 혼자 가버리신 건가.

급기야 불길한 예감이 차츰차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더러 이 짜증 나는 도시에 좀 더 처박혀서 일 처리를 맡으라고.

그런 거라면 일단 숨죽이고 지내면서 주인의 연통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현 상황이 상황이었다.

사방팔방에서 돌아버린 악귀들 그 자체인 마수들이 날뛰고 있는데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나 모를 일이었다.

일전에 주인이 하사한 축성이 깃든 로사리오가 있다고 한들 이 상황에서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남부 토박이 첩자로선 매우, 매우 난감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그는 빌어먹게 지긋지긋한 스카풀라를 아직 벗어 던지지 않은 채였다.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마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수도사들 무리에 슬쩍 섞여 있다가 적당히 빠져나야겠다고 계획했다.

마음만 그렇게 먹었다 이 얘기다.

“주인은 어디로 갔나.”

어째서 기척을 미처 알아채지 못할 수가 있었는가. 굳이 스스로를 변호하자면 사방이 익숙지 못한 모양새로 난리통인 탓이리라.

이를 갈며 피에트로는 몸을 감추고 있던 그늘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팔라딘의 망토 자락이 흩날렸다.

검은 갑주에 감싸인 거대한 몸, 성난 불곰을 연상시키는 험악한 얼굴. 짧은 검붉은 머리카락 아래 형형한 호박색 시선이 그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간 루드베키아를 감시하면서 몇 번인가 본 놈이었다.

팔라딘보다는 처형 집행인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새끼. 한눈에 봐도 그와 맞먹는 기운의 적수였다.

모처럼 몸 제대로 풀겠군.

그런 생각을 곱씹으면서 남부의 괴물은 스카풀라 속의 독침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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