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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에 전율이 일게 만드는 용 새끼의 가공할 포효에 나를 둘러업다시피 하고 달리던 앤디미온도 옆에서 달리던 엘레니아도 일순 멈칫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덧 어둑하게 물든 하늘에서부터 싸라기눈이 내려와 흩날리고 있었다.
“자자, 애새끼들처럼 멍 때리면서 지리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롱기누스 소속은 전부 달의 탑 일대로……. 아니, 공녀. 왜 여기 나와 계시는 겁니까?!”
아베스 궁 밖으로 나와 여러 뜰과 건물들을 지나치는 길에는 곳곳에 마정석들과 죽어가는 마물들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거대한 분수대가 자리한 본궁 쪽 길목에 다다르자 사방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팔라딘들과 근위병들의 풍경이 나타났다.
우리가 서리용의 포효에 잠시 멈칫한 사이 누군가가 우리를 발견하고 눈 뒤집어진 기세로 다가왔다.
카뮤 경이었다.
“대피실로 가 계신 거 아니었습니까? 앤디미온 네놈은 도대체 뭐 하는 놈…….”
“설명할 시간 없으니 비키십시오.”
사무적인 어조로 톡 쏘아붙인 엘레니아가 다시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물론 카뮤 경은 우리가 계속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멈추십시오, 공녀! 이곳에 나와 계시면 위험합니다! 공자비까지 모시고 지금 대체 어딜…….”
“오메르타 공자비의 요구입니다. 따라서 당신들은 우릴 막을 권한이 없습니다.”
소름이 끼칠 만큼 냉정하고 단호한 어조로 못 박는 엘레니아였다.
카뮤 경의 턱이 힘없이 떨어졌고, 앤디미온은 ‘와우’ 비스무리한 소리를 내었다가 카뮤 경의 찢어 죽일 듯한 눈빛을 받게 되었다.
“……공자비.”
턱을 반쯤 닫은 카뮤 경이 앤디미온의 등에 업힌 나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늘 까칠하고 냉정하게 느껴졌던 물빛 눈동자가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시면 안…….”
“달의 탑이죠?”
“…….”
카뮤 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대로 그를 지나쳐 갔다.
“어어어?”
“공녀? 공자비?”
“여기 오시면 안…….”
우왕좌왕 들려오는 외침들이 귓가를 스치나 싶더니 머지않아 카뮤 경의 대로한 외침이 마지막으로 쩌렁쩌렁 울렸다.
“무례하게 가로막지 마라, 새끼들아! 빨리빨리 니들 정해진 곳으로 움직이기나 하라고! ……아니, X발 근데 이 곰탱이 새끼는 진짜 어디 있는 거야?!”
고마워해야 하나? 그러나 가장 고맙게 여겨야 할 이는 엘레니아일 터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가 이토록 단호하고 결연하게 나를 거들고 나서줄 줄 몰랐다.
나중에 모든 것을 해명할 일이 좀 걱정이긴 하지만…….
“캉, 캉! 캉! 캉!”
달의 탑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달리는데 건물 계단 위쪽에서 불쑥 코볼트 한 마리가 튀어나와 우리를 가로막았다.
암녹색 안광이 경기장에서 날뛰던 그것들과 비슷하게 핑글핑글 깜박이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제대로 눈이 돈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나는 문자 그대로 경악하고 감명을 받고 경이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러니까 내가 입을 벌리기도, 앤디미온이 나를 내려놓기도 전이었다.
무어라 중얼거리며 성호를 그은 엘레니아가 불쑥 나서서 팔을 앞으로 뻗는 것이었다!
그러자마자 비단 장갑 낀 손바닥에서 푸른 섬광이 터져 나오나 싶더니 펑 하고 폭발했다!
맛이 간 코볼트는 비명 한 번 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는 마정석만이 조금 전까지의 녀석의 존재를 증명할 뿐이었다.
전부 눈 한 번 깜박할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잠시 정적이 스쳤다.
나와 앤디미온이 멍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오메르타의 귀공녀께서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며 우리를 돌아보았다.
“오메르타 혈계의 신성입니다.”
“…….”
“물론 평소에는 쓰지 않습니다. 성직에 서약하지 않은 이상…….”
무표정하게 말을 잇던 그녀가 갑자기 어지러운 듯 세차게 비틀거렸다.
황급히 그녀의 팔을 붙들었다.
“괜찮아요, 엘렌?”
“잠깐 어지러운 것뿐이니 괜찮습니다. 부작용 없이 다루려면 역시 성직에 서약해야 하는데 그러기는 싫어서.”
“부작용요?”
“그냥 몸에 충격이 좀 오는 겁니다. 방금처럼.”
경이로운 혈계라고 해야 하나……?
고유 신성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성직에 서약해서 다루는 법을 습득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그건 법이나 규율이 아니라 그냥 신체적으로 제약되는 거였다.
따라서 부작용이 왔을지언정 그 설정을 뛰어넘고 방금 신성을 다룬 엘레니아가 대단한 건지 순전히 오메르타의 핏줄이 사기급으로 대단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님도 아까 신성 폭발을 선보이시긴 했지만 그는 은퇴하긴 했어도 엄연한 팔라딘 출신이니까…….
“크롸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용 새끼의 포효가 다시 한번 천지를 뒤흔들었다.
언제는 안 그랬냐만은 굉장히 성이 난 것처럼 들렸다. 우리는 다시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