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화 (87/136)

* * *

온 사방에 내 모습이 비친다.

금박을 입힌 대리석 바닥과 샹들리에로 덮인 천장을 제외하고 벽 전체가 온통 화려한 거울투성이였다.

그 정교함과 예술성에 감탄이 인다기보다는 그저 춤 연습하기 딱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이런 방이 있을 줄 몰랐는데. 궁 내부에도 스파이가 따로 있는 거야?”

체시아레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집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쪽에 놓인 카우치에 멋대로 걸터앉아 술잔을 홀짝거릴 뿐이었다.

나 또한 딱히 대꾸를 기대한 건 아니었기에 한숨 쉬는 시늉을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용건이 뭐야? 같이 춤이라도 추자고 끌고 온 건 아닐 테고.”

“……추자면 출 거냐?”

“아니. 그러기엔 너무 으스스한걸. 어떤 자아도취형 인간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

“여긴 네 유리 정원과 비슷한 곳이야.”

“뭐?”

“페아놀 왕이 이교도 무희 시절 버릇 못 버린 왕비를 위해 마련해 준 방이라더군. 좀 촌스럽긴 해도 대단한 사랑이지 않아?”

그가 카우치에서 몸을 일으키고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아직까지 손에 쥐고 있던 황금 화관을 만지작거리면서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여인과 낳은 딸의 계승권을 빼앗는다는 게 가능하다고 봐? 그렇게 되면 어떤 운명을 맞을지 뻔한데?”

“페아놀 왕은 군주보다는 범부로 태어났다면 더 행복했을 양반이야. 애초에 왕으로서 머리를 쓸 줄 아는 작자였다면 그런 왕비를 들임으로써 왕권을 바닥에 처박는 짓은 저지르지도 않았겠지. 새파랗게 어린 네 남편한테 벌벌 기는 이유가 뭐겠어?”

그야 이스케는 국왕의 가장 총애하는 조카이니까. 라고 말해봤자 그건 단지 허울뿐이라는 사실은 나도 알았다.

하지만 말이야.

“그래, 브리타냐의 군주는 흐물흐물한 범부이고, 여러모로 우리 아버지나 오빠랑은 딴판인 남자겠지. 하고 싶은 말이 고작 그거야? 나한테 할 말이 고작 그것뿐이냐고?”

시곗바늘이 딸깍딸깍 움직이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별안간 무슨 마법이라도 일어난 건지, 아니면 단지 내 마음의 문제일 뿐일까,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큰오빠의 얼굴이 새삼 더없이 낯설게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언제나 사탄도 울고 갈 야심만만한 악당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당장에라도 내 목에 독니를 박아넣을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독사로 보였는데, 그 무엇보다도 내게 두려움과 공황을 불어넣던 시선인데, 어째서 이토록 갑작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걸까.

어째서 단지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을 갈망하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풋내기로 보이는 걸까.

“……난 너를 고작 이딴 촌구석 왕비로 살게 할 순 없어. 유리 정원이든 거울의 방이든 전부 조잡한 모조품일 뿐이니까.”

느릿하고도 강한 그의 음성 밑바닥에 깔린 기묘한 떨림이, 그답게 확신에 찬 듯하면서도 어딘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어투가 내 머릿속을 뚫고 가슴을 찔러왔다.

“아버지는 평생 사시는 게 아니지. 네가 왕비가 된다면, 그건 내가 세울 왕국에서야, 루비.”

짙푸른 눈동자가 본 적 없는 표정을 담고 너울거렸다. 그리고 나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진심으로 배를 잡고 폭소할 뻔했다.

이야, 맙소사. 너 지금 진짜 진심이구나?

단순한 욕망이나 뒤틀린 집착 같은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그런 거였구나?

널 어떻게 하면 제대로 폭발시킬지 나름 고민해 봤는데, 이렇게 알아서 해결책을 내줄 줄이야.

“유리 정원이 아니라 물의 정원이야.”

“뭐?”

나는 어깨를 바로 펴고 생긋 웃으며 체시아레를 반듯이 응시했다. 나답게 다정하게 쾌활하게.

“제멋대로인 건 여전하네, 오빠. 오빠가 그러자고 하면 내가 순순히 그럴 것 같아?”

“네가 지금 혼란스러운 기분인 건 알겠는데…….”

“혼란스러운 건 오빠 쪽이겠지. 나랑 입 한 번 맞췄다고 눈빛까지 달라져? 대체 나랑 뭐 하자는 거야? 언제부터 날 그런 식으로 본 건데?”

아아, 불쌍한 루드베키아. 불쌍한 시스티나의 종달새.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 모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네가 모를 리가 없잖아, 젠장할!”

갈수록 가관이다.

나는 미소를 지우고 눈을 깜박거렸다.

이를 악물며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기던 체시아레가 다시 평정을 되찾은 낯빛으로 내 어깨를 붙들었다.

“여기서 이러고 입씨름하고 있을 시간 없어. 가면서 얘기하자.”

“가다니……? 어디로 가는데?”

“어디긴, 집이지. 여길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누가 통수 치기 전문 아니시랄까 봐. 이건 또 무슨 돼먹지 못한 헛소리란 말인가?

“지금 나를 여기서 빼돌려서 미리 준비해 놓은 선박에 오르겠다, 이 말이야?”

“정확히 그래.”

“오빠 혹시 취했어? 여긴 시스티나가 아니야, 외국 궁전이라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전부 순식간에 들통…….”

“염려 마, 우리가 여길 나설 때쯤이면 다들 다른 문제로 혼이 빠져 있을 테니까. 자, 어서. 시간이 촉박해.”

하고 내 팔을 잡아끄는 놈의 손길을 세차게 뿌리쳤다.

그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돌아보는 동안에 머릿속이 빠르게 핑핑 굴러갔다.

이 녀석은 미친놈이긴 해도 실패가 빤히 보이는 어설픈 계획을 세우는 바보가 아니었다.

즉, 정말로 나와 함께 둘이 쏙 여기서 빠져나가 엘모스항에 도착해 선박에 오르기까지 이 궁전, 아니, 더 나아가 에렌딜 전체가 정신이 팔릴 만한 어마어마한 일을 꾸며놓았다 이거다.

그게 대체 뭐지? 이 축제 날 에렌딜 전체가 혼비백산할 만한 일이 대체 뭐야, 뭐냐고!

어서 생각해, 여태 있었던 일들을 전부 이으란 말이야!

수도복을 눌러쓴 피에트로의 짐승 같은 낯짝이 퍼뜩 눈앞을 스쳐 갔다.

그간 내가 에렌딜에 머무르면서 벌어진 소동들 또한 눈앞을 스쳐 갔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두 가지가 서로 엮이면서 점차 끔찍한 상상으로 부풀어갔다.

그도 그럴 게 여기서 도시 전체가 넋이 빠질 만한 일이라곤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체시아레라면 가능했다. 최고위 추기경과 수도사로 변장 중인 충복의 조합이라면 능히 가능하고도 남았다. 축제 거리 곳곳과 궁 주변에…….

이렇게 보채는 모양새를 보니 지금쯤 이미 시작한 것 같다.

호흡이 가파르게 떨려오는 것을 애써 가다듬었다.

침착해, 이성을 잃어봤자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일이야, 계획대로 진행해야 해…….

“내가 왜 오빠랑 같이 거기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해?”

“루비, 고집부릴 시간 없어. 네가 나한테 화난 거 알아. 전부 풀어줄 테니까…….”

“그럴 필요 없어. 난 여기가 좋으니까. 떠날 마음 같은 거 조금도 없다고.”

그가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내가 아니라 내 손에 들린 승리의 상징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만 이내 하, 하고 조소를 지었다.

“그놈 때문에 그래?”

“…….”

“그놈이 좀 잘해준다고 마음이 흔들리기라도 하는 거야? 그놈이 진심으로 널 사랑하는 것 같아? 착각하지 마, 루비. 남들이 네게서 보는 건 우리 아버지의 삼중관과 권능 어린 황금뿐이라고. 그렇게 알려줬는데 왜 자꾸 잊어버리는 거야?”

“그래서 날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오빠뿐이다 이거야?”

시간이 촉박하기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냅다 던졌더니 놈의 입가에 그려져 있던 득의만면한 조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말이지, 그걸 질문이라고 해? 세상 그 누구도 나만큼 너를 사랑할 순 없다는 거 알지 않아? 외면하려 들지 마, 루비. 이 세상에서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건 서로뿐이라고.”

“오빤 날 사랑하는 게 아니야.”

“뭐…….”

“오빤 날 사랑하는 게 아니야. 툭하면 나를 때리고 멋대로 다른 놈들한테 팔아치웠잖아. 그게 무슨 사랑이야?”

거울이 쩌저적 금이 가는 환청이 들려온 것 같았다. 단지 내 가슴속에서 나는 소리일 뿐일지도 몰랐다.

“그건……. 너는 아직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해 봤자 그건 사랑이 아니야. 오빤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미치겠군, 대체 네가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멋대로 떠드는 거야?”

“적어도 오빠보단 확실히 알지. 내 남편이 제대로 알려줬거든.”

쐐기를 박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손에 들린 화관의 향기라도 맡는 것처럼 코 밑에 가져다 댔다.

“그는 단 한 번도 날 때린 적 없어. 내가 무슨 구실을 줘도 날 때리지 못하거든. 내가 아파하거나 울면 자기가 더 힘들어하고,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강요하지도 않고, 남의 말을 듣고 날 몰아붙이는 짓도 하지 않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항상 날 지켜줬어.”

“…….”

“나더러 왕비가 되고 싶냐고 물었지? 그와 함께 있으면 난 이미 왕비뿐 아니라 여신이라도 된 것 같아. 흠 하나 없는 환상적인 여신 말이야. 진짜로 사랑받는다는 게 이런 기분일 줄 누가 알았겠어?”

“……그만해, 넌 지금…….”

“아직도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누가 뭐래도 난 확실히 알아. 왜냐하면 난 행복하거든. 그와 함께 있으면 너무너무 행복해. 평생 이토록 행복해 본 적이 없고, 그가 날 보는 눈빛이나 만지는 손길도 전부 기분 좋아.”

“그만…….”

“난 더 이상 오빠가 어릴 때 돼지우리 같은 수도원에서 구해온 코찔찔이 계집아이가 아니야.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 오빠가 아무리 부정해도 오빠는 내 남편 같은 남자와 견줄 수 없어. 내가 그의 손을 놓고 오빠한테 달려갈 일은 죽어도 없을 거라고!”

와장창, 하는 요란한 박살음이 울려 퍼졌다.

처음엔 그게 그냥 환청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환청이 아니었다. 내 몸과 충돌한 거울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였다.

전신에 힘이 빠져나가면서 한발 늦게 찾아온 고통이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순식간에 날 붙들고 집어 던지다시피 한 체시아레가 표범 같은 걸음걸이로 가까이 다가왔다.

전신이 온통 욱신거리는 상황임에도 기이하게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전부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가엽기도 하지.”

“……입 닥쳐.”

“결정적인 차이가 뭔지 알아? 우리가 같이 있으면 모든 게 천박해진다는 거야, 바로 지금처럼. 난 우리가 너무 천박해 미치겠어!”

“입 닥치라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복부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덮쳐왔다.

그때까지도 손에 쥐고 있던 영광의 꽃이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저절로 아무렇게나 웅크린 몸을 거울 파편들이 날카롭게 찔러왔다.

곧장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고개를 쳐들리는 체시아레의 얼굴은 흡사 시한부 선고를 받은 청년의 그것처럼 보였다.

완전히 이성을 잃고 분노와 절망에 사로잡힌 표정. 저런, 저런.

그가 무어라 입술을 달싹인 것이 먼저였는지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세차게 떨어져 나간 것이 먼저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중요한 건 천만 다행스럽게도 타이밍이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체시아레와 단둘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프레이야가 보게끔 확실히 했으니까 말이야.

그녀가 그걸 보고 어떤 잔꾀를 부릴지 아주아주 뻔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요, 영애?

잠시 사방이 고요했다.

온 사방이 멍한 정적에 휩싸여 얼어붙은 듯했다.

왕비의 개인실 문을 박차고 들어선 이들이나 뜻밖의 방해를 받은 체시아레나 어느 쪽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이마라도 긁힌 걸까, 무언가 타고 흐르는 듯 눈꺼풀 주변이 간질거렸다.

아린 눈을 깜박거리면서 흐릿한 시선을 친애하는 북부인들 쪽으로 향했다.

꽤 여러 명이 서 있었으나 단 한 사람만 보일 따름이었다.

흐트러진 은빛 머리칼 아래, 초점을 잃은 루비색 눈동자가 커다랗게 벌어졌다가 차츰차츰 빛깔이 꺼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죄책감이 거울 파편처럼 가슴을 들쑤셨다.

미안해, 미안해요. 이런 꼴 보게 만들어서 정말 너무 미안해……. 내가 이따위라서 미안해.

그를 부르려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목이 꽉 잠겨서 속삭임에 그칠 뿐이었다.

그리고-

“이스케!”

콰쾅, 하는 엄청난 충돌음과 함께 사방이 뒤흔들렸다.

즉시 시야가 멂과 동시에 머리채를 붙들고 있던 손아귀가 어느덧 떨어져 나갔음을 깨달았다.

“이런 제기랄!”

“꺄아아악!”

“아악!”

고요의 방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모했다.

다들 왜 이렇게 비명을 지르는 거지? 눈꺼풀을 열심히 문지르고 눈을 힘주어 깜박이자 천천히 시야가 돌아왔다.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였다.

내 남편의 검이 체시아레의 쉴드와 충돌하고 있는 풍경 말이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처음 보는 보랏빛 검기와 푸른 신성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이글이글 충돌하면서 점점 더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렸다.

공간 전체가 신성의 충돌에 휩싸여 온통 얼룩덜룩 어지러운 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색색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떨어진 것 같았다.

아까 마지막 경기를 지켜보면서 나는 신성과 신성이 충돌할 때 그 자리에서 휘말린다면 일반인은 어떻게 될까 궁금해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의문이 지금 이 순간 풀리고 있었다.

“공녀……! 공녀, 영애!”

아이반 경의 외침이 흡사 메아리처럼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몸을 한껏 웅크리며 스러져 내리는 두 영애를 황급히 바깥으로 끌어내는 그 또한 어딘가 고통스러운 듯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뭐라고 앞다투어 외쳐대며 이스케에게 다가가려 애쓰는 익숙한 얼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소수 정예 팔라딘조차 고통을 느낄 정도라니, 순전히 충돌 탓인지 저 낯선 불길한 보라색의 검기 탓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직 종자에 불과한 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었는데, 특히 로렌초는 거의 혼절 일보 직전으로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손목이 화끈거리는 느낌에 멍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니, 축제 내내 차고 있던 검은 팔찌가 붉은빛으로 발광하고 있었다.

일전에 이스케가 나한테 준, 오래전에 죽은 용의 심장으로 만들었다는 그 팔찌 말이다.

“이스…… 이스……!”

비틀거리며 두 발로 서려고 했다.

온통 어지럽게 번쩍거리는 빛 때문에 그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게 보였다.

추기경의 강력한 쉴드가 기어이 쩌적쩌적 균열하고 있는 모습이.

미친 듯이 강렬한 충돌에서 마침내 틈을 열어주고 있는 모습, 살기등등한 보랏빛 광선이 쑤시고 들어가는…….

“이스, 안 돼요……!”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내 작은 비명과 더불어 예기치 못했던 또 다른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이어 또 한번 가공할 폭발음이 울리면서 시야가 다시 멀어버렸다.

애써 일어난 것이 무색하게도 다시 뒤로 떨어져 나갔음은 물론이었다.

“안 된다, 이놈아! 성하의 아들이시란 말이다!”

이 목소리는 우리의 아버님 아니신가?

어쩐지 몹시 필사적이고 절박하게마저 들린다.

사고 치는 아들을 말리는 게 아니라 사지로 뛰어드는 자식을 붙드는 듯한 그런.

오메르타 공작이 어째서 오랫동안 봉했던 자신의 신성을 쏟아부으면서까지 체시아레를 보호하려 한 건지는 이해 못 할 문제가 아니었다.

나 또한 비슷한 이유에서 저지하려 한 거니까.

다른 곳도 아닌 만국의 권력가들이 모여 있는 장소다.

아무리 브리타냐의 총아라 해도 여기서 발렌티노 추기경을 살해한다면…….

어지럽게 발광하던 빛이 사그라들면서 주위의 모든 풍경이 흐릿하게 보였다.

이스케를 찾으려고 했으나 망할 놈들이 무더기로 가리고 있다시피 해서 보이지 않았다.

“루비!”

빠르게 덮쳐온 누군가가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가물가물한 시야에 이루 형언할 수가 없는 표정을 한 엘레니아의 얼굴이 들어왔다.

떨리는 손가락이 내 이마를 쓸었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거울들이 온통 가루로 박살이 나버린 휑한 벽이 보였다.

“엘렌, 이스, 이스가…….”

“경!!”

나는 나를 껴안은 엘렌에 의지해 겨우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엘레니아가 내 눈을 가리려 했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스케!!”

“갑자기 걔한텐 왜 그러는 거야?!”

오메르타 공작과 체시아레는 어느덧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내 남편은 보였다. 자신을 둘러싼 동료들을 밀치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그가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한쪽에 주저앉아 있는 로렌초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소년의 목을 움켜쥐고 요란하게 벽에 처박았다. 벽이 쩍쩍 갈라지는 듯했다.

전신이 덜덜 떨려왔다.

내가 떠는 건지 엘레니아가 떨고 있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단순히 아까의 진동 반향 탓일지도 몰랐다.

나는 있는 힘 없는 힘 전부 쥐어짜 엘레니아를 뿌리치고 일어섰다. 있는 힘껏 달려가 등 돌린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훅, 하는 숨결의 울림 함께 그가 천천히 몸을 돌리는 것이 느껴졌다.

떨리는 손이 내 뺨에 얹히는 바로 그 순간에 다시 한번 천지가 뒤흔들렸다.

아니, 이번에는 지금까지의 난장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난장판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존재의 난입, 아찔한 전율을 일으키는 포효가 우리 모두를 덮쳐왔다.

“크롸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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