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136)

Chapter 6 오르골이 깨진 뒤에는

“이번 해도 최종 우승은 북부가 우세한 것 같군요.”

“아직 모를 일이죠, 지난번 경기의 영광은 렘브란트 쪽에서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그땐 오메르타 공자께서 빠지셨으니까. 오늘 보니 기세가 어마어마하더군요. 과연…….”

“그분도 그분이지만 도리아스 쪽 후보도 꽤 선방하지 않았나요?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솔직히 놀랐어요.”

즐겁게 도란도란 떠드는 사람들을 지나쳐 조심스럽게 화장실로 들어섰다.

검은 대리석 일색인 호화로운 화장실 안에는 마침 아무도 없었다.

바로 조금 전에 한 무리의 영애가 나온 것을 확인한 뒤였다.

“흐우…….”

힘들어 죽겠군.

몰래 토해내는 거야 일도 아니지만, 최근 나도 모르게 토하는 일이 확 줄었던 탓인지 새삼 구토의 고통이 반갑게 느껴질 지경이다.

젠장, 하필 먹은 게 치즈라서 더 느낌 이상해.

아까 마신 와인과 치즈 파테를 후딱 내보내고는 뒷정리를 하고 나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옆 선반에 놓인 해면으로부터 지독한 향수 냄새가 풍겼다.

보디스 안쪽에 넣어둔 주머니에서 민트 캔디 하나를 꺼내 입안에 넣고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찰나 누군가가 화장실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아…….”

“어…….”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해야 마땅하거늘 최근 우리의 관계 때문인지 내가 찔리는 짓을 해서인지 입이 어색하게 벙싯거렸다.

그건 엘레니아도 마찬가지였지만.

일순 나는 그녀가 도로 나가 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엘레니아는 문고리를 쥔 채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문을 닫고 내 옆으로 걸어와 거울을 보고 섰다.

그녀가 파란 실크 파우치를 열어 루즈 통을 꺼내는 동안 실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하아, 이런 분위기 정말 싫다.

서글프기 짝이 없구나. 겨우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경기는 볼만하셨습니까.”

“네? 아, 네……. 왜 그토록 유명한지 알겠어요. 엄청 조마조마하긴 했지만요.”

먼저 말을 붙일 줄 몰랐기에 화들짝 되는 대로 대답하며 내 파우치를 주섬주섬 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또다시 어색한 정적이 스쳐 갔다. 아이고.

확실히 머릿속으로 내용을 아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긴 했다.

만일 내가 이번 경기의 결말을 몰랐다면 아마 전반전 중간에 진작 관객석을 뛰쳐나가거나 그런 장면마다 흔히 묘사되는 조연처럼 혼절해 버리거나 했을 것이다.

내 전생의 흔하디흔한 게임 등지에선 잡몸 취급이었던 것들이 그리 공포스러운 생물들이었을 줄이야.

“……특히 트롤 나왔을 때요, 거기서 이스가 잘못될까 봐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요.”

서리 숲에서 마수들과 며칠을 보내고 마물 중의 최고봉 서리용까지 만난 주제에 새삼 더 놀랄 게 뭐가 있냐 할지 모르겠지만, 오늘 경기장에서 날뛰어댄 마물들은 내가 여태 조우한 것들과는 여러모로 차원을 달리했다.

흉포하긴 해도 여러 면에서 야생 동물을 연상시켰던 녀석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느낌.

어쩌면 그래서 다행인지도 모르지만.

“이해합니다만 너무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오빠가 옛날에 우승했던 해만 해도 훨씬 살벌했거든요.”

“아…….”

“갈수록 쉬워지는 것 같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렇군요. 그게 쉬워지고 있는 거로군요.

오늘 경기를 치른 후보들 절반이 살아 있을까 의심스러운 상황인데 말이지요.

슬슬 여기 인간들이 이상한 건지 내가 이상한 건지 헷갈리기 시작하는데.

어쨌든 여전히 어색한 기색이긴 하나 덤덤하게 말해주는 모양새가 고마웠다.

생긋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똑같이 따라 루즈를 덧바르는 시늉을 하는 동안 그녀가 거울을 통해 나를 힐긋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뭔가 망설이는 듯한 분위기.

역시 내가 또 토했나 의심하고 있는 걸까? 이제 와서 신경이나 쓸까 싶지만……

“다른 별일은 없으십니까?”

아니나 다를까.

“아…… 별일이라 하시면 어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불쑥 물은 것이 무색하게도, 엘레니아는 곧바로 얼버무리듯 머리를 가로젓고는 더는 아무 말 하지도, 나를 힐긋거리지도 않았다.

따라서 나 역시 그녀가 파우치를 챙겨 들고 먼저 나갈 때까지 입 다물고 조용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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