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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다 기름지고 설탕 범벅인 것들뿐이잖아. 느끼해 죽겠다.”
“추운 나라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 이거라도 좀 마실래?”
애초에 귀하게만 자란 너 같은 놈이 이런 거리 구경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만.
내가 만류하거나 말거나, 체시아레는 로마냐에서도 그랬듯 이 노점 저 노점을 아무렇지도 않게 기웃거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 음식을 맛보더니만 결국 속이 안 좋다며 투덜거렸다.
이럴 때 보면 출생 성분 콤플렉스도 없는 얘기 같다.
“고마워. 그나저나 너도 왕도 구경은 처음이라니 신기한걸. 북부라 해도 말이지, 이런 광장에서 갑자기 마수가 튀어나오진 않을 거 아니야?”
내가 북부에 와서 어떤 처지가 될지 뻔히 알면서도 보낸 주제에 참 잘도 떠든다.
어이가 없었으나 짐짓 미소를 지으며 한숨 쉬는 시늉을 했다.
“로마냐 공주의 운명이지 뭐. 나한테 이런 구경 시켜줄 만한 사람이 세상에 오빠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런가?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 나네. 그 성탄절.”
우리의 시선이 의미심장하게 얽혀들었다.
‘그’ 성탄절이 어느 때를 뜻하는지 뻔했다.
재작년쯤엔가, 체시아레가 나를 데리고 산타 마리아 광장에서 놀다가 꼭두새벽을 넘기고 돌아갔던 날, 어째서인지 그때까지 얼큰히 취해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와 마주친 그 성탄절이었다.
대개 교황의 대로의 대상은 사고뭉치 엔죠였기에 나는 문자 그대로 기겁했었다.
그런 장면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내가 보고 있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총애하는 완벽한 장남을 상대로 천한 어미의 피가 섞여서 그딴 천박한 취미를 가진 거냐느니 뭐니 하면서 온갖 듣도 보도 못한 쌍욕을 퍼부었다.
애초에 자식들의 어미를 코르티잔으로 선택한 건 아버지 본인인데 말이지.
웃긴 건 온갖 추문의 주인공인 엔죠는 처맞기는 해도 어미의 피 운운하는 소리는 안 듣는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랬다.
왜 굳이 지금 그런 불쾌할 기억을 꺼내 드는 것인가.
“난 그때 정말 무서웠다고, 아버지가 오빠를 때릴까 봐 말이야.”
피식하는 웃음이 놈의 입가에 번졌다. 거의 조소에 가까웠다.
“실은 나도 좀 쫄았었지. 아버지가 날 때릴 일은 절대 없지만.”
그야 그렇지. 아버지는 널 총애하는 한편 두려워하니까 말이야.
그러니 성직에 꼭꼭 묶어서 이래저래 견제하는 거 아니겠나.
잘나신 부자 관계는 어느 곳이든 참으로 복잡하군그래.
그런 식으로 잡담하듯 주고받으며 우리는 한참 더 돌아다녔다.
에렌딜의 축제 거리는 로마냐의 그것과 비할 바가 아니었으나 추운 나라 특유의 문화와 특색이 잘 녹아 있어 나름의 멋이 있었다.
특히 광장 분수대 근처를 장식한 얼음 조각상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예술적이었다.
내 옆에 있는 놈이 체시아레 놈만 아니었다면 마음 놓고 이 풍경들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눈에 뭐가 들어오고 뭐가 재미있어 보이는지 조금도 신경 쓸 수가 없는 상태였다.
시간이 갈수록 긴장감이 점점 더 팽팽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빛줄기가 빨간 황혼의 색깔로 변했을 때, 시종일관 내 손을 놓지 않으며 쉴 새 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체시아레가 마침내 하늘을 흘긋 올려다보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다지 재미가 없는 모양이네, 너.”
“내가? 농담하는 거지?”
“이만 신전으로 돌아갈까.”
검푸른 머리카락이 노을빛으로 얼룩덜룩하게 물들었다.
나직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푸른 눈에도 어딘가 붉은 기운이 어렸다.
올 게 왔구나.
매번 이렇게 방심하게 만들려고 질질 끌다가 훅 치고 들어오는 건 참 악취미 아니냐?
여태 한마디도 없이 묵묵히 주변을 맴돌기만 하던 안내원이 체시아레와 흘긋 시선을 교환했다.
잠시 후 우리는 왔던 길을 돌아나가 광장 근처에 세워둔 마차에 올라 신전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