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136)

* * *

그렇게 진행되었다.

나의 남편 놈이 나의 오빠 놈과 사이좋게 발코니에서 뭐라고 숙덕거린 것으로 나와 오빠 놈의 훈훈한 에렌딜 탐방이 결정지어졌다 이거다.

지들끼리 꼭 붙어서 속살대다가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두 놈의 거만한 낯짝을 보고 있자니 슬금슬금 열이 치솟았다.

“부인을 뺏어가는 것 같아 미안하군, 매제. 오늘이 아니면 좀처럼 시간이 없을 듯해서 말이야. 답례로 내 특별히 따로 축복의 기도를 올려주지.”

“그거 정말로 효과는 있는 겁니까?”

“나름 영험하네. 나름.”

좋단다, 아주. 농담 따먹기도 다 할 줄 알고, 이제 보니 아주 천생연분이구나, 너희?

응? 둘이서 좋아 죽겠지? 이참에 그냥 너희끼리 손잡고 정분이라도 나는 게 어떠하니?

나는 평화롭게 내버려 두고 말이야.

뭔가 혼자서 바보가 된 기분이라 좀 분했으나 일단은 체시아레 놈의 문제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축제 거리 구경은 단지 핑계일 뿐이니까 말이다.

경기가 시작되고 나면 저도 나도 짬이 없어지니, 그전에 나와 단둘이서 대면할 구실을 만들리란 건 짐작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러면서 놈을 탐색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체시아레 놈의 연기에 홀라당 넘어가 홀려 있는 이스케가 좀 얄밉기도 하고 왠지 미안하기도 한 복잡한 기분이다.

뭐가 미안한지는 나도 모를 일이지만.

쟤 진짜 주인공 맞아? 주인공이 저리 허술해도 되는 건가?

“재미있게 놀다 오길.”

연회복 차림으로는 눈에 너무 띄니 신전에 잠깐 들러 갈아입기로 하고, 우리 남매는 좀 기다렸다가 연회장을 슬쩍 빠져나가 이스케가 준비시켜 놓은 마차에 올랐다.

인정머리 없어 보이는 얼굴을 한 호위 기사는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눈빛이었으나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 힐끔 돌아보니, 우리의 허술한 주인공은 마냥 덤덤한 표정이었다.

“모처럼 왕도가 깨끗한 날이니. 넌 안전할 거다.”

의미심장한 말투.

축제 전 청소도 청소인 데다 신성 중 최고봉으론 교황 다음인 추기경들이 에렌딜에 대거 몰려 있는 판이니 어느 정신 나간 마수가 기어 나올 가능성은 당연히 없긴 했다.

당장 체시아레부터가 걸어 다니는 신성 방패이니, 원. 그래서 이토록 흔쾌한 걸까?

“왜 그래?”

내가 어물거리며 쳐다만 보고 있자 이스케가 머리를 갸웃했다.

그 모습이 갑자기 쓸데없이 고와 보여서 나는 쓴 눈물을 삼켜야 했다.

얜 하필 오늘 왜 이렇게 이쁘게 단장하고 온 거야.

“아니요, 다녀올게요. 고마워요.”

꾹 맞닿았다 떨어지는 손길이 어쩐지 아쉽다.

지금부터 인고를 감내해야 하는 건 나인데, 왜 내가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인지.

누가 내게 처음으로 이곳 거리를 구경시켜 준다면 그건 너일 거라고 생각했었나 봐.

나에겐 숨 쉬듯 당연한 일들이 너에게 있어 어떤 의미인지 내가 무슨 수로 알았겠어?

* * *

“정말이지 하나하나 귀엽기 짝이 없군.”

신전에 들러 단출한 수도복과 스카풀라로 변장한 뒤 축제 거리에 당도했다.

우리의 안내원은 후드를 깊게 눌러쓴 거대한 덩치의 수도사였다.

진짜 수도사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다.

저자가 체시아레의 첩보 중 하나이려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태 이상하게 아무 말이 없던 체시아레가 시끌벅적한 거리를 한 번 슥 훑고는 한다는 소리가 저거였다.

“나 말이야?”

“네 남편 말이야.”

짐짓 명랑한 체 묻는 내 손목을 체시아레의 손바닥이 슬며시 감쌌다.

아플 정도는 아니었으나 힘이 바짝 실려 있었다.

“무식한 팔라딘한테 스파이 짓을 시키다니, 의외로 허술한걸. 아니면 눈치챌 걸 알고도 한 짓인가.”

재미있다는 듯 조롱기가 한껏 깔린 중얼거림에 목덜미가 서늘해 왔다.

스파이 짓이라니, 대체 누가 우리 뒤를 밟고 있단 말인가?

두리번거려 봤자 소용없음을 알기에 나는 되레 의아하다는 투로 대꾸했다.

“설마, 그런 짓 할 사람은 못 돼. 시킨다고 그런 짓 해줄 만한 사람도 없지만, 뭐가 켕긴다고 우리 뒤를 밟으라 하겠어? 그냥 누가 우리처럼 구경 나온 거 아닐까?”

“우린 모두가 적이잖아. 잊어버렸어?”

손목을 쥔 손에 힘이 더욱 실렸다. 이번엔 조금 아팠다.

“응? 우리 말고는 말이야.”

나직한 경고음이 아린 손목의 핏줄을 타고 들어와 전신으로 뻗어가는 듯했다.

죽겠다, 죽겠어.

나는 잠깐 고민했다가 입을 내밀었다.

“당연히 잊지 않았지. 단지 오빠가 내 남편이랑 아주 재미있어 보이길래 좀 헷갈렸던 것뿐이야.”

손목을 쥔 손이 풀리고는 머리 위로 올라갔다.

이어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울렸다. 휴우.

“제법이네, 너. 그게 질투 났어?”

“그냥, 오빠가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 오랜만이라서.”

“놀리는 재미가 쏠쏠하거든. 지금만 봐도 그렇고, 너 항상 이렇게 감시당하고 있었던 모양이네.”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 한들 대체 어느 할 일 없는 팔라딘이 우리 뒤를 몰래 밟고 있는 건지 나도 알 길이 없었다.

정말로 이스케가 그러라 시킨 걸까?

아니면 순전히 우릴 싫어하는 녀석들끼리 짠 행위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우리에겐 새삼 뜻밖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랬다면 차라리 좀 좋으련만.

“뭐 나야 어디서든 항상 이런 신세이니까. 그러니 항상 집으로 돌아갈 날만 그리는 거고.”

“이번에 그러려 했는데 다름 아닌 네가 일을 어렵게 만들어놨잖아, 사랑스러운 누이.”

이번에 그러려 하기는 무슨!

체시아레가 내 손을 와락 낚아채는 바람에 재차 땀이 솟았으나 올려다본 놈의 얼굴은 무슨 생각인지 다정함 그 자체였다.

짙푸른 눈동자가 짓궂은 장난기로 반짝였다.

“일단 저것부터 따돌리자.”

우리끼리 재미있는 비밀 놀이라도 하고 있다는 듯한 투였다.

너 그거 조울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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