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136)

* * *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넨다.

방긋방긋 화답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중 저만치서 한 무리의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는 엘레니아와, 로렌초의 뺨을 만지며 뭐라고 떠들고 있는 프레이야가 눈에 띄었다.

저 자식 오랜만에 보네.

그때 그 노래 체시아레 앞에서 한번 불러주면 어떨까 싶은데 어째 얼씬도 안 하는구나.

“레이디 루드베키아…….”

“공자비, 잠시…….”

“부인…….”

갈 길이 바쁜데 자꾸만 붙들고 늘어지려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실례를 구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는데도 계속해서 모여드는 모양새가 로마냐에서의 연회가 떠오를 지경이었다.

그래그래, 내 오빠 놈도 남편 놈도 유명인사인 거 잘 안단다.

그러니 그 무시무시한 놈들한테 직접 가서 추근대는 게 어떠하니?

“루비.”

슬슬 이러다 지난번처럼 또 쥐도 새도 모르게 발을 밟히는 거 아닐까 걱정이 이는 찰나, 와글거리는 인파를 뚫고 다가온 누군가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장벽을 치듯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아아, 이 든든한 벽 같은 놈. 그제야 숨통이 약간 트였다.

“와, 당신이 홍해를 갈랐어요.”

“…….”

음, 역시 내 유머 감각은 태초부터 글러 먹었나 보다.

민망함에 고개를 떨구는 시늉을 하는데 실로 삭막한 눈길로 나를 노려보던 남편 놈이 커다란 손바닥으로 내 뺨을 감쌌다.

“한참 찾았잖아. 어디 있었어?”

“잠깐 바람 쐬다 비전하를 만났어요. 당신은 뭐 하고 계셨어요?”

“바람난 마누라 찾고 있었다.”

참으로 당당한 대답이 아닐 수가 없다. 왜 툭하면 나를 외도쟁이로 만드니?

“그러는 당신은 제 오빠랑 바람났잖아요.”

“뭐?”

이스케의 눈이 휘둥그레 벌어졌다.

나는 하마터면 내 혀를 깨물 뻔했다.

이런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에헤헤, 둘이 벌써 아주 친해진 것 같아 너무 기쁘다고요.”

“오늘따라 내 귀가 잘못됐나? 왜 비꼬는 것 같이 들리지?”

으스스하게 으르렁거린 녀석이 이내 피식 웃으며 내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아니, 이놈 보게?

“예의 바르게 구는 게 당연하잖아, 네 오빠인데. 그게 싫은가?”

그런 생각도 할 줄 아는 인간이셨소? 양파 같은 놈이 따로 없군.

나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괜스레 놈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붉은 스피넬 같은 시선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살피는 게 느껴졌다.

“아니요, 당연히 아니죠. 그냥 고마워서 그래요.”

“고마울 것도 많군. 이리 와, 뭐부터 좀 먹고 놀지그래.”

만찬 테이블 주변은 아직 한적했다.

나는 흰 사슴 가죽이 씌워진 의자에 앉아 과즙 섞인 주스와 해산물 요리를 조금 먹었다.

레몬즙을 뿌린 작은 새우와 구운 굴은 보기보다 꽤 맛있었다.

“맛있나?”

“네, 당신은 왜 안 먹어요?”

“난 입맛이 별로 없어서.”

네가?

영 신빙성 없는 소리였으나 남편 놈은 정말로 입맛이 없는 건지 무심한 듯 으스스하게 술잔을 홀짝대며 날 구경하기만 할 뿐이었다.

디저트는 뭐가 있으려나?

“너도 입맛 없으면 더 억지로 먹을 필요 없어.”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람.

그런 말은 날 점심시간마다 고문할 무렵에 했어야 지당한 거 아니니? 시험하는 건가?

“억지로 먹는 거 아닌데요. 그런데 그보다 이스.”

“왜?”

“오빠가 좀 이따 나랑 같이 축제 거리 구경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빈 해산물 접시를 밀어놓고 초콜릿 가루가 듬뿍 뿌려진 케이크를 크게 한입 떠넣으며 슬쩍 던졌다.

젠장, 표정 확인하고 싶은데 어째서인지 못 하겠다.

거짓말하는 것도 아닌데 마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이 더러운 기분은 뭐람.

“축제 거리 구경이라. 예하께서 그런 소탈한 취미를 즐기는 줄 몰랐는데.”

“오빠가 의외로 좀 소탈하긴 해요. 어릴 때부터 종종 그랬거든요.”

“전문가라는 건가. 안내는 신전 측에 맡기겠군. 그러고 싶으면 그러든지.”

어라라. 나는 그만 멈칫하며 내리깔았던 눈을 들었다.

이스케는 예의 그 무심해 보이는 표정으로 술잔을 홀짝거릴 뿐이었다.

내심 긴장했거늘 이렇게나 쉽다니.

우리 남매의 연기에 완벽하게 넘어간 건가?

그렇다면 다행인 일인데, 왜 기분이 이렇게 찝찝할까?

“만약 당신도 좋다면…….”

“엎드려 절 받으라는 건가.”

“그건 아니고…….”

“남매끼리 모처럼 단출한 시간을 가지고 싶은 듯한데 내가 훼방 놓을 순 없지.”

그것참 상식적이며 모범적인 발언이로구나. 대체 언제부터 그리 상식적인 인간이 되었니?

“꼭 훼방이라고 볼 순 없지만…… 갑자기 당신 혼자 두고 놀러 가기 좀 미안해져서 말이에요.”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는군.”

아니나 다를까, 내가 죄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야비하게 실실거리며 이죽대는 남편 놈이었다.

이런 한결같은 놈을 봤나.

“진심이거든요?”

“네 외도가 한두 번도 아니고, 뭐 이젠 익숙해. 어디 계셔?”

“네?”

“네 오빠. 지금 어디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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