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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토박이 첩자는 서럽다.
예상만큼 얼어 뒈질 정도의 기후는 아니었으나 맑나 싶더니 툭하면 소낙비가 쏟아지는 오락가락한 날씨가 짜증스럽기 짝이 없다.
음침한 미궁 같은 에렌딜의 신전에서 묵주와 스카풀라를 걸친 채 돌아다녀야 하는 일도 전부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이렇게 기척을 감추고 다닐 때조차 항시 마수들의 습격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사실도.
그가 그토록 인내심이 강한 인간이었기에 망정이었다.
칙칙한 덤불 속에 도사린 사내의 눈이 검게 번득였다.
그 무엇보다도 제일 짜증 나는 것은 임무에 실패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연회장에서 루드베키아를 건드린 일은 명백한 실수였다.
그녀가 그 꼴을 하고서 곧바로 소공작을 찾아가 버릴 줄이야…….
아니, 소공작이 그녀를 데리고 둘이 사라져 버릴 줄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 불찰이었다.
느낌이 영 좋지가 않아 참석객들 몇몇을 기절시키는 소동까지 벌였거늘, 한 번 사라진 부부는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오메르타 공작이 나타나 상황을 처리하는 바람에 그는 잽싸게 몸을 숨겨야 했다.
그리고 밤이 깊었고, 그리고 그다음 날 부부는 나란히 신전에 나타나 약언식을 치렀다.
뒤통수를 세차게 얻어맞은 듯했다. 이런 뭐 같은 기분은 그의 주인이 더할 것이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체시아레에게 충성해온 수년간 피에트로는 루드베키아와 대화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아예 대면해 본 적조차 없었다.
그가 그녀에게 접촉했을 때라곤 모두 주인의 명에 따라 그녀가 갇힌 방문 앞을 지키거나, 혼약자와 단둘이 있을 때 멀찍이서 숨어 감시하거나 한 것들뿐이었다.
따라서 피에트로는 루드베키아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향이며 무슨 꿍꿍이를 품을 수 있으며 무슨 짓을 할 수 있는 여자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미리 알아뒀더라면 그녀의 행보에 대해 보다 일찍 간파할 수 있었을 텐데, 그와 그의 주인의 불찰이었다.
이제 보니 그의 주군 또한 그토록 품에 쥐고 살아온 누이를 완전히 알지 못한 듯했다.
단지 약간 맹한 철부지 정도라 여겨왔거늘 이런 맹랑한 저항이라니.
물론 아직 완전히 확신하긴 일렀다.
저 맹한 꼬맹이가 그저 순전히 새 남편에게 홀딱 반해서 일을 쳐버린 것일지도.
혹은 그 목석같다 알려진 오메르타 공자가 이국적인 분위기의 아내에게 홀라당 빠져 버린 걸지.
남녀 사이의 일은 늘 섣불리 지레짐작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피에트로는 욱신대는 뒤통수를 문지르며 루드베키아를 감시하는 일에 열중해서 매진했다.
어차피 체시아레가 오기 전까지는 딱히 다른 할 일도 없기도 했으니.
에렌딜은 심심한 땅이었다.
하다못해 술집조차 로마냐에 비하면 수도원에 가까웠다.
버러지들에게 시비를 걸고서 목을 꺾어버리는 일도 재미가 없다.
“대체 뭐 하는 건지 원.”
어이를 상실한 중얼거림이 그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가면 갈수록 저 여자를 파악하기 어렵다.
대체 무엇 때문에 팔라딘 놈들을 대동하고 이 구역까지 왔나 싶었거늘, 설마 서리늑대 구경이라도 온 건가.
대관절 뭘 하는 건지 더 가까이 접근하여 관찰하고 싶었으나 이 이상으로 다가가면 저 망할 팔라딘들에게 기척을 들킬 것이었다.
하여 피에트로는 가시덤불과 한 몸이 된 채 인내심 있게 시야에서 사라진 목표물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다시 나타나 문제의 팔라딘 놈들과 따로 떨어져 홀로 인근의 움막 안으로 향했을 때,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움직이려 했다.
마음만 그렇게 먹었다 이 얘기다.
“경, 경! 그 기세로 다가가시면 부인께서 겁먹으실 거라고요!”
높게 끽끽 울리는, 변성기가 채 가시지 않은 소년의 악부림.
머지않아 폭풍 같은 기세로 말을 달리는 한 팔라딘과, 마찬가지로 말을 몰며 뒤를 따라잡으려 애쓰는 흑발의 종자가 진흙탕 길을 사정없이 짓밟으며 봉쇄된 구역 가까이 돌진했다.
“……제기랄.”
날선 욕지기를 중얼거리며 피에트로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운수가 안 좋았다. 폭풍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뜻밖의 방해꾼은 분명 오메르타 공자였다.
저자가 나타난 이상 더 주변에서 알짱대 봤자 좋을 거 없을 것이었다.
동족은 동족을 알아본다던가.
오메르타 성에서 연회가 열린 밤, 초대받은 수도사로 분하여 처음 소공작을 본 순간 피에트로는 즉시 위험한 놈이라는 걸 간파했다.
단순히 성격 좀 괴팍하고 까탈스러운 귀족 도련님일 거라 예상했는데, 북부 최강의 기사라 떠받들여지는 것도 으레 그렇듯 혈통과 지위를 업은 거품일 거라 짐작했는데 풍겨오는 분위기가 먼발치에서조차 예사롭지 않았다.
속수무책일 만큼 오만하며 거칠고 염세적인 광기의 집합체.
그러면서도 그런 야만적인 사내들 특유의 날 것 느낌이 없었다.
귀족이라 그런 걸까.
가장 존귀하다는 푸르고 푸른 피의 소유자라 그 모든 것 위에 냉소적인 고상함을 두를 수 있는 걸까.
그건 천민으로 태어나 밑바닥의 밑바닥에서부터 살아온 피에트로에게도, 앞에서는 황태자마냥 떠받들어지나 뒤로는 사생아라 손가락질을 받는 발렌티노 추기경에게조차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피에트로는 저 사내가 유독 거슬렸다.
주인의 연적 아닌 연적이라는 점과는 별개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박탈감을 느껴본 적 없을 자신만만한 사내가 미친 듯이 거슬렸다.
와이번이 용을 증오하는 것과 비슷한 순리의 감정이었다.
억누르고 억눌러야 마땅했다. 기적 같은 기회가 오기 전까지는.
망토 자락에 묻은 가시를 툭툭 털고서, 피에트로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