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136)

* * *

가까스로 평화를 되찾은 연회장을 뒤로하고, 나는 그대로 이스케에게 끌려가 만신창이가 된 발을 치료받았다.

하녀들이 열심히 눈치를 살피며 내 발가락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동안 우리 둘 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연이은 침묵이 싫었다. 그냥 불안한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마침내 하녀들이 전부 나가기까지 이스케는 한쪽에 서서 내 벗겨진 신발을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갑자기 공포가 밀려오는군. 그걸로 나 때리려는 건 아니지?

“저기…….”

“발이 정말 작군.”

이 새끼가. 내 키에 딱 알맞은 크기거든? 네 손이 큰 거라고.

“누가 그랬는지 못 봤다고?”

“진짜 못 봤어요. 아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거짓말이 아니라…….”

“너한테 거짓말한다고 한 적 없어.”

자르는 투로 대꾸한 녀석이 신발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내가 앉은 소파에 가까이 다가왔다.

아까의 살기등등한 모습이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한 얼굴이었으나 그래서 더 불안했다.

“발이 그 모양이 됐으니 연회는 끝이네.”

그래. 그리고 나의 초야 계획도 끝이다. 이런 망할! 또다시!

“서운한가?”

“미안해요, 당신이 모처럼 열어준 건데…….”

그런 헐벗은 암살자 차림으로 같이 춤도 춰줬는데 말이지.

내 초야! 땅을 치고 오열하고픈 충동을 삼키며 고개를 들던 나는 다시 흠칫하고 말았다.

“화, 화 많이 나셨어요?”

“……아니.”

아닌데. 분명 방금 무시무시하게 화난 표정이었는데.

뭐, 굳이 아니라 하신다면 곧이곧대로 넘어가야지.

몸이 다시 번쩍 들렸다. 이놈의 병아리 신세도 이제 슬슬 익숙해지려고 해.

“표정을 보니 역시 서운한 모양인데.”

“표정은 당신…….”

“뭐?”

“당신이랑 둘이 있을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아요.”

하마터면 말실수할 뻔했다. 나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남편 놈의 낯짝에 대고 방긋방긋 웃었다.

안녕? 내가 이래 봬도 네 팬클럽 회장이란다.

“오늘 밤 내내 이렇게 같이 있으면 진짜 행복할 거 같아요.”

“…….”

“물론 안 되겠지만요. 당신은 바쁜 분이니까요. 찾는 분들도 많을 거고.”

도도한 것이니까 말이지요. 제기랄, 이렇게 나 혼자 퇴장하고 이놈 혼자 이 단정치 못한 행색으로 연회장으로 돌아가고 나면…….

“바람이라도 좀 쐬는 게 낫겠어.”

“당신이랑요?”

“그럼 그 발로 혼자 돌아다니게 둘까.”

“그렇지만 동료분들이랑 중요한 얘기 하시던 거 아니었어요?”

“만담하던 건데.”

할 말 없군. 뭐 나야 좋다. 이왕 좀 더 같이 있게 된 거 진도 뺄 기회나 노려 볼까.

오늘 성을 쌓진 못하더라도 초석을 미리 차근차근 까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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