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136)

* * *

잠깐 멎었던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리숲의 가장 깊숙한 부근, 경계구역을 지나 들어갈수록 노움들이 파놓은 땅굴과 아라크네들이 곳곳이 쳐놓은 거미줄들이 원활한 원정을 방해했다.

사방팔방에서 울리는 서리늑대의 음산한 울음소리는 덤이었다.

“경.”

이스케는 걸음을 멈추고 뒤따라 오는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그 자신과 아이반, 갈라르를 포함해 전부 여섯 명의 최정예뿐이었다.

최고 위험지대인 경계구역 안쪽에서 능히 버틸 수 있으며 신뢰할 수도 있는 녀석들.

물론 앤디미온은 예외였다.

이스케는 자신의 겁 많은 종자 놈이 어째서 부득불 따라붙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뭔 일이 생기면 갈라르가 알아서 하리라. 명색이 형제이니.

“진심이십니까? 그 미친 여자 말만으로는…….”

단서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모든 것이 논리에 맞지 않았다.

밀렵꾼 혼자 경계구역을 멀쩡히 빠져나왔다는 것부터가 신뢰할 수 없었다.

반쯤 정신이 나간 밀렵꾼은 너구리 괴물이 친구들을 다 잡아먹었으며 그리핀이 자신을 발견된 장소에 던지고 갔다고 주장했다.

거기까지였으면 이스케 역시 헛소리라고 단정 짓고 즉시 관례대로 처분했을 것이었다.

그 여자가 롬의 동굴에서 금발의 마녀를 보았다는 소리를 지껄이지만 않았다면.

서리숲의 마물 중엔 미남미녀의 환각을 일으켜 인간을 꾀는 녀석도 있었다.

훈련받은 팔라딘으로서 늘 유념해야 할 사항이었고, 이스케는 단 한 번도 그런 수법에 넘어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금발이라는 단어 하나에 눈이 홱 돌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런 같잖은 가능성조차 절박한 스스로가 우스웠으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네 종자 새끼 말이 맞다. 이스,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 봐. 설령 그 밀렵꾼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게 네 부인일 가능성은 도저히…….”

“자꾸 쫑알거릴 거면 지금이라도 너희끼리 돌아가든지.”

“X발, 이 싸가지가 진짜…….”

아이반은 웬만큼 험한 소리에 익숙한 동료들조차 눈살을 찌푸릴 때까지 욕설을 한바탕 퍼부었으나 돌아가지는 않았다.

“……후, X발 거. 근데 왜 우리만 같이 오자고 한 거냐?”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데.”

“이 ㅆ…….”

“현재 이 구역 바깥에 있는 녀석들은 영 믿을 수가 없다.”

믿음직한 최정예 팔라딘들은 하나같이 감격한 얼굴이 되어 시선을 교환했다.

원래 항상 자기 자신만 철석같이 믿는 성격파탄자 새끼가 대체 뭔 소릴 지껄이는 것인가.

역시 저 새끼라 해도 수면 부족은 감당하기 버거운 모양이다.

이스케는 다시 저만치 보이는 롬의 동굴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신이 무슨 맹목적인 희망에 매달려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루드베키아가 이 안쪽까지 들어왔다면 지금쯤 살아 있을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봐야 하는데도…….

‘혹시 마물들이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도 있나요?’

초야 의식을 망친 이튿날 아침, 그녀가 스튜 그릇을 깨작이며 던진 질문이 하필이면 이 순간에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었다.

거기서 무슨 뜻을 유추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홀린 것처럼 멍한 상태였다.

그날 아침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신전을 방문하자고 했을 때 왜 그렇게 놀란 표정이 되었을까.

앙상한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꽃다발을 만들면서, 그에게 주려고 만들었다던 꽃을 모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받아줄 걸 그랬어…….”

“뭐? 갑자기 또 뭔 개소리냐?”

그때 받아줄 걸 그랬다. 말갛게 웃으며 내미는 꽃을 받아줄 걸 그랬다. 손이 엉망이 됐다고 타박하는 대신 그냥 받아줄걸…….

“야야, 이스, 잠깐 멈춰 봐. 나 지금 진짜 느낌이 안 좋다니까?”

그랬는데도 그녀는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하듯,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랬듯…….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물드는 듯싶었다.

어쩌면 그건 예지였을까?

“아이반, 그만…….”

“너넨 가만히 있어 봐. 이스, 너 롬의 동굴이 요즘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잖냐. 하, X발, 만약 저 동굴 속에 정말로 네 아내가 있다면, 그러면 지금쯤…….”

아이반은 기어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려는 작정인 듯했다.

그녀의 시체를 보고 감당할 수 있겠냐고, 마물들에게 뜯어먹혀 남은 조각들만 마주하고 멀쩡할 수 있겠느냐고…….

“……꺄아아아악!”

급작스럽게 울린 메아리.

이 장소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선명한 메아리였다.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말을 잇던 아이반도 이를 악물고 돌아보던 이스케도 나머지 녀석들도 일제히 한마음 한뜻으로 넋이 나가는, 뜻깊은 순간이었다.

누가 먼저 입을 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갈라르였을 것이다.

그가 모처럼 다시 먼저 말을 꺼내려던 순간은 다시 한번 급작스럽게 울린, 천지가 뒤흔들릴 정도로 압도적인 포효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크롸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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