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136)

* * *

아랫배를 콕콕 쑤시는 듯한 통증이 일면서 허리가 끊어질 듯 욱신거렸다.

안 좋은 일은 꼭 한번에 겹친다더니.

원체 불규칙해서 아슬아슬하긴 했는데 왜 하필이면 오늘 오시는 것인가.

대자연조차 내 편이 아니라니 서글프다.

나는 고통을 참는 데 꽤 능숙한 편이었으나 이번은 유독 심했다.

배를 잡고 구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가까스로 움직여 침대 옆의 줄을 당긴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 불편하십니까, 마님?”

차라리 루실이 오면 좋았을 텐데 왜 하필 하녀장이 온 거람.

끙끙거리며 입을 열려는 찰나 그녀가 먼저 말했다.

“많이 안 좋으신 듯한데 일단 진통제를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저어, 그리고…….”

응? 나는 맥없이 고개를 젖히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시야가 다 아득했지만 저 심술궂은 하녀장이 어울리지 않게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뭐지, 뭐 때문에 주저하는 척하는 거야?

“송구합니다만, 공자님께서 오늘 마님더러 처소에만 계시라 전하라 하셨습니다. 연회에 참석하실 필요 없으시다고요.”

뭐?

“마침 몸도 안 좋으신 듯하니 그리 따르시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공자님께 전해드릴 것이 있다면 제가 대신 전해드리겠습니다.”

당연히 나는 내가 애써 준비한 선물을 저 여자에게 맡길 마음이 없었다.

게다가 뭐가 어쩌고 어째?

내게 약을 팔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아무리 화가 난 상태라 해도 그렇지 남편의 생일 연회에 방에만 칩거하고 있으라니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믿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진짜이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일었다.

그 안하무인이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까.

당분간 날 아예 안 볼 심산인 것 같은데 만약 정말로 내게서 정을 완전히 떼려고 이러는 거라면…….

하녀장이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실이 들어와 내게 진통제를 주었다.

내 꼴이 영 말이 아니었던지 새삼 불쌍하다는 듯 훑어보는 눈빛이 생소했다.

나는 그녀에게 엘레니아를 불러달라고 했지만, 엘레니아는 외출 중이라 연회 시간이 다 되어야 돌아올 거라는 대답만 들릴 뿐이었다.

이 야박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언제나처럼, 진통제를 먹어도 별 효과는 없었다.

끙끙 앓다가 잠깐 잠들었다 깨어나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연회 시작 시각은 저녁 6시라고 알고 있는데, 벌써 5시가 넘었다.

누가 내게 연회에 참석할 준비를 하라고 알리러 왔다면 진작 왔을 것이었다.

만약 하녀장이 내게 거짓말을 한 거라면, 엘레니아에게 내가 아파서 도저히 연회에 참석할 만한 상태가 아닌 것 같다고 둘러댔을 수도 있었다.

내가 몸이 안 좋은 건 사실이었으니 주인에게 거짓을 고한 건 아니게 된다.

혹은 그저 내게 사실을 말한 걸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확인은 해봐야 했다. 다행히 좀 자고 났더니 아까보다는 견딜 만했다.

“부르셨습니까, 마님?”

일단 혹시나 싶어 줄을 당겨 보았는데 웬일인지 루실이 곧바로 나타났다.

하도 빨리 나타나서 얘가 날 감시 중이던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나 좀 도와줄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 얼른 옷을 갈아입어야 하거든.”

“하지만 마님, 제가 듣기로는…….”

애매하게 말끝을 흐린 루실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이스케가 정말로 나를 방에 가둬둘 작정을 한 것인지, 철두철미한 하녀장이 밑의 하녀들에게까지 그리 일러둔 것인지 혹은 사용인들이 다 같이 작당하고 있는 것인지 확실치가 않았다.

확실한 건 하녀장이 내게 약을 판 것이라 해도 내 편을 되어줄 이는 별로 없을 거라는 거였다.

그래서 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난 어떻게든 남편 놈을 구슬려야 했다. 그가 내게 일말의 감정을 내비친 이상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

일단 확인만 하자. 확인만 하는 거야…….

“알아. 그냥 옷 입는 거 도와주기만 해줘.”

“하오나 마님, 저는…….”

“그냥 기분만 좀 내고 싶어서 그래. 며칠 계속 방에만 있었더니 갑갑하기도 하고. 부탁할게, 응?”

루실은 영 마뜩잖다는 표정이었으나 내가 다이아몬드 머리핀을 내밀자마자 새로 맞춘 예복으로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고 정원까지 몰래 데려다주는 데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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