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36)

* * *

이곳 사교계에서의 승마 모임이라 하면 진짜 격렬하게 말을 타는 것이 목적이 아닌, 어디까지나 승마를 핑계로 젊은 귀족들이 모여 친목을 쌓고 정보를 수집하고 연애 상대를 물색하는 등의 야외 파티나 다름없었다.

일종의 사교 클럽이라고 할까.

오메르타 공작가의 여식과 퓨리아나 후작가의 여식이 주도하는 클럽인 만큼 북부의 핵심 가문 인사들만 모인다고 볼 수 있겠다.

지난번 궁중연회로 꽤 하찮은 첫인상을 남겼으니 쭉쭉 밀고 가 줘야겠지.

내가 가진 시간은 고작 반년 남짓, 오는 기회마다 최대한 써먹어야 했다.

재단사에게 주문한 옷들이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기에 가져온 승마용 드레스 중 가장 수수해 보이는 옷으로 골라 입었다.

러플 소매가 팔꿈치에서 잘린 하늘색 드레스. 머리는 길게 땋아 내린 뒤 푸른 리본을 맸다.

“정말 이대로만 해드려요, 마님?”

내 머리를 만지던 딱딱한 인상의 하녀가 열어둔 화장대 서랍을 힐끔거렸다.

일부러 열어둔 것이었다. 로마냐에서 가져온 머리 장신구들은 내가 보기에도 눈이 빠질 정도로 화려했다.

태반이 체시아레가 준 거라 화려하든 말든 상관없었지만.

“글쎄, 왜? 뭘 다는 게 나을 것 같니?”

“……제가 의견을 드릴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럼 네가 하나 골라주는 게 어때? 하는 김에 네 것도 하나 고르고.”

리본을 매던 손길이 멈칫했다.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하녀의 얼굴에 서서히 의심이 번져갔다.

그래, 그게 자연스럽지.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거울을 향해 방긋방긋 웃었다.

지금까지 내내 그랬듯이 바보처럼 사람 좋게.

“제 것을 말씀이십니까?”

“응.”

“어째서입니까?”

“그냥. 지난 며칠간 내가 아픈 동안 잘 돌봐줬잖니. 어차피 난 가지고 있어봤자 쓸 일도 별로 없고, 하나쯤 선물해 주고 싶어서. 아무거나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 보렴.”

하녀는 여전히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내 얼굴을 살피고 있었으나, 동시에 화려한 장신구들을 힐끔거리는 눈빛에 탐욕이 뚝뚝 떨어졌다.

가장 작은 머리핀 하나가 그녀의 열 달 치 봉급은 넘을 것이었다.

그러니 어서 집으라고, 이것아.

“참, 다른 애들이 알면 곤란해지니까 우리끼리 비밀로 하자.”

그것으로 망설임은 끝났다.

잠깐 머뭇거리는 시늉을 하던 하녀는 이내 제일 큼직하고 화려한 장신구를 골라 들었다.

에메랄드 나비 장식 빗이었다. 그게 제일 값나가 보였나 보다.

마치 내가 도로 뺏어가기라도 할 듯, 황급히 품속에 장식 빗을 감추는 하녀의 성마른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익숙한 표정. 호구 잡았다 할 때 바로 그 표정이었다.

“……감사합니다, 마님.”

“응, 앞으로 잘 부탁해. 여기서 얼마나 오래 일했댔지?”

“3년입니다, 마님.”

“그럼 하녀장도 잘 알겠구나. 하녀장은 여기서 얼마나 일한 거야?”

전혀 관련 없는 질문을 슬쩍 던지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하녀장께선 공자님과 아가씨께서 아주 어릴 때부터 이곳에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아가씨의 유모셨다고 들었습니다.”

정중한 톤으로 덧붙인 하녀가 두 눈을 좌우로 빠르게 굴렸다.

흠, 하녀장이 그다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네.

아무튼 그냥 충성스러운 하녀장 캐릭터 정도로만 기억했는데, 엘레니아의 유모였을 정도면 남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겠구나.

그래서 더더욱 내가 마음에 안 들 테고…….

만일 첫날 내 방 성화를 끈 주범이 하녀장이라면 그것도 웃긴데. 원작 루드베키아한테는 안 그랬잖아.

상대가 만만해야 건드리는 타입이신가?

“고마워. 그럼 이만 가봐.”

* * *

“오오, 부인. 쾌차하셔서 다행이에요. 아프셨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병문안 드리고 싶었는데 혹 불편하실까 싶어 못 드렸어요.”

“아하하, 불편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래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준비를 다 마치고 마구간에 도착하니 예정대로 엘레니아가 프레이야와 함께 앞서 기다리고 있었다.

엘레니아와 맞춘 듯한 활달한 승마용 드레스 차림으로 새하얀 종마를 쓰다듬고 있는 프레이야는 이곳의 말들과도 무척 친근해 보였다.

말들이 저런 비 맞은 똥강아지 같은 눈빛이 될 수 있다니, 이게 바로 주인공 소꿉친구의 위엄인가?

다들 내 자리에 프레이야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프레이야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살려만 주신다면야 이 자리는 언제든 누구한테든 양도해 드릴 수 있다.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나와 프레이야를 번갈아 보던 엘레니아가 곧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마구간 가까이 이끌었다.

“전부 잘 훈련된 종마들이니 마음에 드는 녀석으로 고르시면 됩니다. 오른쪽 구간의 아이들은 제외하고요.”

“아, 저기 있는 애들은…….”

“오빠만 타는 것들이라 좀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기수와 말 중 어느 쪽이 좀 그렇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프레이야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맞아. 그런데 다른 것들도 부인께서 타시기엔 좀 거칠지 않을까? 이제 막 나으셨는데.”

“오래 탈 것도 아니니 큰 무리는 없을 듯하지만,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가장 유순한 녀석으로 골라드리겠습니다. 세드릭?”

가장 유순한 녀석이라. 하나같이 이 집 도련님처럼 인상 더럽게 생긴 녀석들뿐인데요.

저 눈깔 부라리는 것들 좀 보게.

휴, 말들한테까지 차별받는 내 신세라니. 나도 너희 싫단다. 아니, 마구간 자체가 싫어.

“좋은 아침, 이스. 들어오는 길이니 나가는 길이니?”

“넌 아침부터 여기서 뭐 하냐.”

“네 사랑스러운 부인께서 오늘 우리랑 같이 놀러 가실 예정이거든. 외로우면 너도 끼워줄까?”

“뭐?”

지난번처럼 숨어서 엿보고 있던 것도 아닌데 괜히 찔리는 이 괴상한 기분은 무엇일까.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자 번쩍거리는 검은 제복 차림으로 터벅터벅 가까이 다가오는 남편 녀석이 보였다.

갑옷 말고 다른 차림인 모습은 처음이라 그런지 왠지 생소하게 느껴졌다.

잠시 묘한 침묵이 내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쾌활하게 웃고 있는 프레이야와 대조적으로 엘레니아는 제 오빠를 가만히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스케 녀석은 마구간 울타리를 꼭 잡고 서 있는 내 쪽을 보고는 곧장 인상을 찡그렸다.

이 한결같은 것아. 네가 계속 그런 식으로 나와봤자 나 또한 한결같긴 매한가지란다.

“와, 오늘 진짜 멋있으세요. 어디 가시는 길인가요?”

“아니. 난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뭐야, 이 대답은. 빈정대는 건가?

“넌 여기서 뭐 하는데.”

“여기 두 분이랑 같이 승마 모임에 참석하려고 말을 고르는 중이었어요. 같이 가실래요?”

“난 바빠.”

조금 전에는 안식일이라 아무 일도 안 한다며, 이 모순적인 놈.

거절할 거야 당연히 알고 있었기에 나는 굴하지 않고 방긋거렸다.

“저어, 제가 아무 말이나 골라 타도 괜찮을까요?”

“말 볼 줄은 알기나 하고?”

“제가 워낙 보는 눈이 좀 없긴 해요.”

그러니 너한테 반한 거란다.

반한 척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호호.

말에 뼈를 담아 생글거리자 놈은 잠시 두 눈을 느리게 깜박이더니 자신과 가장 가까운 두 여인 쪽을 돌아보았다.

프레이야는 눈을 크게 떴고, 엘레니아는 표정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입을 열었다.

“세르게이가 괜찮댔어. 오빠가 궁금한 게 그거라면 말이야.”

“…….”

“정 못 미더우면 오빠가 직접 확인하고 데려다주는 게 어때? 난 프리랑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응? 자, 잠깐만요, 엘렌, 이렇게 갑자기 나를 버리고 가버리시면 어쩌란 건가요!

설마 농담이겠거니 했는데, 엘레니아는 정말로 나를 이 괴물 같은 남편 녀석과 단둘이 버려두고 갈 작정인 듯 빠른 동작으로 자신의 종마에 올라탔다.

이에 나뿐만 아니라 프레이야까지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가자.”

“하지만 엘렌…….”

설상가상으로 이스케 놈은 제게도 달갑지 않을 이 상황을 멈추려는 대신 묵묵히 나를 쏘아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팔짱을 끼고 위풍당당하게 노려보는 모양새가 사탄의 화신이 따로 없다. 훌쩍.

“미, 미안해요. 엘렌이 저 때문에…….”

“…….”

“저, 그냥 얌전히 집에서 반성하고 있을게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원.”

혀를 차듯 짜증스레 내뱉은 녀석이 울타리 문을 지나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더니 근처에서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고 있는 마구간지기를 향해 손짓을 했다.

“세드릭.”

“예, 공자님.”

“나가라.”

“……예?”

“나가라고.”

세드릭 씨는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금세 살았다는 기세로 득달같이 자리를 떴다.

아니, 저분은 또 왜 내보내는 거야?

말들이 콧김을 푸릉거리는 소리가 음산하게 울린다. 당혹감이 밀려왔다.

나는 마구간이 싫었다.

특히 무자비한 상대와 단둘이 있는 마구간이라면.

전 삶에서도 이번 삶에서도 소름 끼치게 비슷한 일을 겪은 지금은 더더욱.

말들이 우는 소리.

말채찍이 공기를 찢는 소리.

큰오빠의 소름 끼치는 속삭임과 내 역겨운 울음소리가 뒤섞여서 귓가에 메아리를 치는 듯했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

호흡이 떨려왔다.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트라우마 따위에 휩쓸려 일을 망치면 안 된다.

나는 그런 단계는 이미 한참 지났다. 그러니…….

그러니…….

“이봐.”

떨리는 숨을 고르려 애쓰며 눈을 들었다.

이스케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멀뚱히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게슴츠레 뜬 붉은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났다.

“표정이 독특하군.”

‘질질 짜지 말라고 했을 텐데.’

“뭐 됐고…… 일단 이리 와.”

‘이리 와, 주제도 모르는 계집년아.’

나는 멍하게 그의 뒤를 따라갔다.

넓고 어둑한 마구간의 오른편 구간에 선 종마들이 주인을 향해 낮은 울음소리를 흘리며 눈을 빛냈다.

비웃는 눈빛들. 내가 우는 동안 비웃는 동물들.

“그것 좀 하나 집어주겠어?”

‘이리 가져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옆을 돌아보았다.

그것은 당근과 사과 등이 쌓인 궤짝 위의 기둥에 걸려 있었다.

“멍청한 속물이라 다루는 방법이 그것뿐이야.”

‘은혜도 분수도 모르는 멍청한 계집에게 줄 수 있는 벌은 하나밖에 없지.’

나는 잠시 멈칫하고서 바로 앞 울타리 속에 있는 종마와 시선을 마주했다.

말이 한쪽 발을 구르며 못마땅하게 콧김을 푸릉거렸다.

왜 이렇게 느려 터졌냐고 닦달하는 것 같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좋다고 말한 건 나잖아. 나중에 살려주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야.

“제일 성질이 더러워 보이긴 하는데 의외로 단순…….”

말들의 콧잔등을 쓰다듬으며 이쪽을 돌아보던 이스케가 다음 순간 멈칫했다.

“……뭐 해?”

닦달하는 패턴은 왜 어딜 가나 똑같을까? 목숨만 살려줘, 이놈아.

나는 반성의 표시로 눈물을 찔끔거리며 쪼르르 다가갔다.

“죄송해요. 제가 죽을죄를 지었어요.”

“뭐……?”

“제가 다 잘못했어요. 은혜도 모르고 주제넘게 굴었어요. 전 정말 구제 불능이에요.”

놈이 나를 빤히 응시했다. 짙은 루비색 눈동자가 어쩐지 조금 멍해 보였다.

“너…….”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정확히는 앞으로 내민 내 손을 바라보았다.

게슴츠레 풀린 눈매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굳어갔다.

“로마냐에서는 말들이 채찍을 간식으로 드시는 모양이군.”

“네……?”

히끅, 하고 딸꾹질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녀석이 내 손에서 채찍을 낚아채 저쪽으로 홱 던졌다.

탁!

주인을 반기고 있다가 괜히 한 대 맞을 뻔한 종마가 불만스럽게 푸릉거렸다.

히끅, 히끅.

딸꾹질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왔다.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려는데 이스케가 내 손을 잡고 아래로 내리게 했다. 차갑게 굳은 얼굴이 심히 살벌했다.

“너, 저거 왜 가져왔어.”

“히끅, 그것밖에 없어서, 다른 게 어디 있는지 말씀해 주시면 다시 가져올…….”

“다시 가져와서 그걸로 나더러 어쩌라고.”

“죄송, 히끅, 해요. 미적거리려던 게 아니었어요. 히끅, 제가 잘못한 거 알아요.”

“뭐를 잘못하셨는데.”

“저, 전부요. 그러니까 애초에 제가…….”

“아니, 됐어. 됐다고. 그만 말해. 제기랄!”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스케는 내 손을 놓고는 뒤로 물러서서 종잡을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한참이나 말없이 쳐다보았다.

노려본다기보다는 그냥 말 그대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게 더 불안했다.

“숨은 좀 쉬지 그래?”

“따, 딸꾹질 멈추려고…….”

참던 숨을 푸하, 하고 내뱉었다. 다행히 딸꾹질이 멎은 것 같았다.

대신에 다리의 힘이 풀리면서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남편 놈은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미치겠다. 너 때문에.”

성큼 다가온 녀석이 나를 짐짝처럼 가볍게 들쳐 안았다.

아, 또 병아리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허공에 들려 있는 건 불안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짜증이 치솟았다.

그게 뭐 별일이라고 새삼 겁을 먹어. 그게 뭐 별일이라고. 저곳에서든 이곳에서든 똑같은 쳇바퀴나 돌리는 운명 주제에 뭐가 겁나서 다리가 다 풀리나.

자, 어서 정신 차리고 배역으로 돌아가라고.

“잠깐 어지러워서 그랬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네가 일부러 그랬다고 말한 적 없어. 젠장, 이 꼴로 승마 모임은 무슨…….”

“미안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전 그냥, 이곳 분들을 좀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여기 인간들 알아서 뭐 하게.”

무뚝뚝하게 대꾸한 녀석이 걸음을 몇 발자국 옮겼다.

그러더니 몸을 굽혀 궤짝 안의 사과를 하나 집어 들고 내게 건넸다.

“받아.”

“아…….”

“말 고른다면서. 내 말들은 몸값만큼 속물이라고.”

그렇군. 말들이 속물이군.

그러니까 가져오라는 게 대왕 사과였다는 거군, 씨이, 제대로 말해주면 좋았잖아!

안도감이 이는 동시에 머쓱해졌다. 그래도 짜증이 난 건 아닌 것 같으니 다행이다.

휴, 앞으로 좀 더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안 그래도 우는 거 싫어하는 놈인데 그런 꼴 또 보이면 안 되지.

“제가 당신 말을 타도 돼요?”

“안 될 건 또 뭐야.”

내가 몰래 타고 갔으면 노발대발할 양반이 뭐라는 거니.

어이가 없었으나 당연히 내색하지 않았다.

“진짜요?”

“……그래. 진짜.”

“혹시 말이 불쾌해하지 않을까요?”

“저것들은 사과만 주면 주인도 못 알아본다.”

나는 남편 녀석한테 안긴 채로 여기 있는 말 중 유난히 자부심이 넘쳐 보이는 근육질의 흑색 종마와 마주했다.

누가 그 주인에 그 말 아니랄까 봐 눈매가 대단히 오만하다.

푸릉푸릉.

살며시 왕 사과를 내밀자 냉큼 눈을 유순하게 빛내는 모습이 매우 속물스러웠다.

“안녕. 이거 줄 테니까 상냥하게 대해주렴.”

“푸릉…….”

나를 빤히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한결같은 남편 놈의 시선이었다.

왜 저렇게 보는 걸까.

무슨 생각해?

지금 무슨 생각해?

일단 지금까지는 내가 신기하든가 하는 짓이 흥미롭든가 뭐 그런 것 같은데…….

“되게 귀한 종 같아요.”

“마음에 드나 보네.”

“네, 정말 멋져요.”

“그럼 가지.”

“네?”

“세드릭!”

아까 냉큼 줄행랑을 쳤던 마구간지기가 냉큼 다시 달려왔다.

그는 좀 당황한 표정이긴 했으나 이스케가 턱짓을 하자 냉큼 다가와 말에 안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마님께서는…….”

“됐어. 나와 같이 탄다.”

세드릭 씨는 두 눈을 말편자만큼이나 커다랗게 벌리긴 했으나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나로 말하자면 세드릭 씨랑 똑같이 두 눈을 커다랗게 벌리고 질문했다.

“진짜 그러셔도 괜찮아요?”

“…….”

“진짜 저 데려다주시는 거예요?”

“그놈의 진짜는…… 난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상관없어. 덕분에 종자 놈만 신났지만.”

“하지만 아까 바쁘시다고…….”

“정신적으로 바쁘다는 거였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휴, 그럼에도 퍽 놀라운 태도라는 건 인정해야겠다.

원래는 나랑 마주치기도 싫어하던 도도한 금욕주의자께서 이만하면 굉장한 발전이지.

계속해서 절대 흥미가 떨어지지 않게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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