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36)

* * *

“……흐흐흑.”

기괴한 소음이 귀를 간지럽혔다. 살포시 눈을 뜨자 낯익은 캐노피의 장식이 보였다.

몸을 부스스 일으켰다.

어김없이 혼자 오메르타 성의 내 침소 안에 누워 있었다. 녹색 불꽃을 담은 벽난로가 따뜻하게 탁탁 타올랐다.

어떻게 된 거지?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일어나고서 혼자 엘모스항구까지 가서 벌어졌던 그 모든 일이 단지 꿈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보는데 지금이 새벽인지 해 질 녘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연례행사 증세는 어느덧 사라졌으나 머리가 무겁고 목이 말랐다.

꿈틀꿈틀 침대에서 내려와 물병이 놓인 탁자로 다가가는 찰나였다.

“……흐흐흐흑.”

흐느끼는 소리. 어떤 여인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에 숨이 절로 멈췄다.

어디서 들려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근처인 것 같았다.방문 바로 밖에서 나는 듯해서 걸어가 문을 슬쩍 열어 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으흐흑…….”

간헐적으로 숨을 몰아쉬는 듯한 끊김이 있는, 꽤 구슬프게 들리는 울음소리였다.

대체 누가 울고 있는 걸까? 혹시 엘레니아인가? 아니면 하녀 중 누구?

나는 뭐에 홀린 것처럼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따라 살며시 발걸음을 옮겼다.

짙푸른 어둠이 깔린 긴 복도 끝에서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사용인이 저기 숨어서 울 리가 없는데, 역시 엘레니아일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걸까?

“여하튼 그러니 당분간……. 마님?”

나는 손으로 벽간을 짚은 채 눈을 멀거니 깜박였다.

계단으로 이어지는 환한 홀에서는 누구도 울고 있지 않았다. 거기 있는 거라곤 웬 낯선 남성 한 명과 한밤의 사신 같은 모습의 남편 녀석뿐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어질거리는 머릿속을 뒤적이며 적절한 변명을 고르는 동안 두 작자는 나의 등장이 어지간히도 난처하다는 듯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한결같은 남편 놈이야 한결같다 쳐도 저 낯선 양반은 왜 저렇게 노려보는 거야.

“……마님, 좀 괜찮으십니까?”

물어봐 줘서 고맙군요. 왠지 떨떠름하게 들리긴 하지만.

생긋 웃으며 머리를 끄덕거리려는 찰나 지그시 이쪽을 쳐다보던 이스케가 성큼 가까이 다가왔다.

그 기세가 몹시 거침없어 나도 모르게 어깨를 바짝 움츠렸다.

“죄송해요, 하지만 누가 자꾸 울어서…….”

“뭐?”

“누가 우는 소리가 들리길래, 엘렌인 줄 알고 걱정돼서 나온 거예요.”

이스케는 잠시 낯선 아저씨와 시선을 교환하는가 싶더니 다시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내가 약을 팔고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아무도 안 울었다.”

아닌데, 분명히 조금 전까지…… 왜 더 이상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지? 하필이면 이럴 때 딱 끊기다니.

“제, 제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분명 조금 전에…….”

“너한테 거짓말한다고 한 적 없어.”

칼날 같은 강퍅한 어조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말이야, 너의 주장이 앞의 주장과 모순적인 충돌을 빚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는 것이니?

“젠장…… 세르게이, 이만 가보게.”

“예. 그럼 전 오후에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마님.”

세르 뭐시기 하는 독특한 성함의 아저씨는 보아하니 의사 양반이신 것 같았다.

나 또한 상냥하게 인사를 하려는데 남편 놈이 나를 방해했다.

발이 바닥으로부터 홱 떨어지면서 현기증과 함께 왠지 모를 기시감이 일었다.

“당신은 너무 커요…….”

“…….”

“혹시 제가 방금 코피 흘렸나요?”

“……방금이 아니라 사흘 전.”

“그럴 리가 없는데…… 참, 무거울 테니 내려주세요.”

“열이 높긴 높은 모양이군.”

열이 높아? 팔을 꾸물꾸물 움직여 두꺼운 목을 감싸 안자 놈이 뭐에 데인 것처럼 움찔했다. 도도한 것.

“자꾸 성가시게 해서 미안해요.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

“전 엘렌이 우는 줄 알고…….”

“엘렌은 울지 않아.”

“맞아요, 저랑은 다르죠. 저 그래도 잘해요.”

“대체 뭐를…… 후, 됐다.”

그거야 연기를. 나는 짧게 혀를 차며 침대에 나를 내려놓는 놈의 무뚝뚝한 면상에 대고 헤실 웃었다.

붉은 스피넬 같은 눈동자가 기묘한 빛으로 너울거렸다.

“너 말이야…….”

“네?”

“……아니. 나중에 얘기하지.”

과연 한결같이 싱겁기도 하다. 한결같은 남편 녀석은 그렇게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그런데 발걸음 소리가 안 들리는 것 같다.

비몽사몽한 와중에도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자니 잠시 후 쿵, 하고 뭔가 가볍게 부딪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한숨 비슷한 소리가 울렸다.

뭐지? 벽에 머리라도 박고 있는 건 아닐 텐데.

무슨 생각해?

지금 거기 서서 무슨 생각해?

왜 어서 가버리지 않는 거야?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긴 하지만, 싹수라곤 쥐뿔도 없는 여기 고용인들한테 고맙다고 해야겠군.

* * *

나는 그 후로 이틀가량을 더 앓았다.

연례행사 증세가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펄펄 끓는 열병이었다.

세르게이인지 하는 의사 양반은 매우 친절했으나 내가 묻는 말에 자세히 대답해 주거나 이렇다 저렇다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뭔가를 감추고 있는 건지 원래 환자한테 늘어놓는 성격이 아닌 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단 내가 너무 말랐다며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은 빼먹지 않고 강조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나의 연례행사와 열병이 한 번에 겹쳐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 전날 연못에 빠지기도 했으니까 열병이 찾아오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니 갑자기 코피가 터진 것도 이스케가 내 열기를 느낀 것도 설명이 된다.

그럼에도 원인 모를 꺼림칙함이 감도는 이유는 뭘까.

게다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눈에 띄게 깍듯하게 구는 사용인들의 태도 역시 심히 적응되지 않았다.

“새로 끓인 포리지입니다, 마님. 입맛이 도시도록 감자를 갈아 넣었습니다.”

네네. 영광이 따로 없군요.

마지못해 깍듯한 티가 풀풀 나는 것이 매우 적응하기 어렵다만 그래도 생글생글 웃어줘야지.

아픈 것의 또 다른 단점은 침대에 갇혀서 꾸역꾸역 식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식사 때마다 엘레니아가 찾아오는 바람에 몰래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이젠 열도 다 떨어졌는데 다들 원래대로 돌아가시지, 좀.

“그날 일은 오해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네……?”

“조금 오래된 문제로 오빠와 긴히 논의할 것이 있어 점심 무렵 잠깐 보려고 했던 것뿐입니다.”

나는 포리지 그릇을 긁던 스푼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엘레니아는 안락의자에 허리를 동상처럼 꼿꼿이 세우고 앉은 채 시선을 내 손에 고정하고 있었다.

“오해하는 거 없어요, 엘렌.”

“아랫것들이 멋대로 떠들었다 들었습니다. 해서…….”

말끝을 흐린 북부 최고의 미인께서 특유의 붉은 시선을 내 얼굴에 고정했다.

하긴 분란이 일어난다면 엘레니아가 가장 곤란하겠지.

걱정 마요, 난 그런 거에 낭비할 관심도 시간도 없으니까.

“퓨리아나 영애께서 오랜 친구라는 거 저도 아는걸요. 저야말로 오히려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루비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해서 다들 많이 놀랐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해요. 제가 그리될 줄도 모르고 미련하게…….”

“저희 불찰입니다.”

칼처럼 딱 자르는 강퍅한 어조가 이스케 녀석이랑 꼭 비슷하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나는 머쓱하게 웃고는 다시 스푼을 집어 들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빠가 그렇게 당황하는 건 처음 봤습니다.”

“저는…….”

“노발대발해 봤자 본인 불찰이지만요. 아무튼 예상보다 회복이 빠르셔서 다행입니다. 몸이 괜찮으시면 이번 주말 오후 저희와 함께 승마 모임에 참석하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만.”

엘레니아랑 프레이야가 오래전부터 여름철마다 가졌다던 그 모임 말인가.

당연히 가야 할 일이었다. 이곳 사교계에 꾸준한 이미지를 쌓을 좋은 기회니까.

“물어봐 줘서 고마워요. 당연히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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