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그의 많은 새로운 면을 발견해가는 중에도 카이런 공작은 꼭 내게 목욕시중을 들게 했다.
나는 놀라운 속도로 회복된 그의 상처를 보며 얼굴을 굳히고 말았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는 흉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는 이 상처가 나으면 하르펠 성으로 떠나겠다고 했는데.
그는 그런 나를 보고 몸을 문질러주던 손목을 가볍게 붙잡았다.
“왜, 겁나나?”
“…….”
“내일 떠날 거야. 있다가 얘기하려 했더니.”
그는 물이 흐르는 손으로 내 뺨을 감싸 응시했다. 그는 내가 웃기를 바란 것 같았지만 무리한 요구였다.
“공작님, 카이런.”
“됐어.”
그는 욕조에서 혼자 나가버렸다.
나는 그가 화가 났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에 나타난 그는 내게 차를 갖다주었다.
“카이런…….”
“힐데에게 시나몬을 얻었어. 그런데 네가 탄 것만큼 맛있지 않아.”
나는 그가 내민 찻잔을 들어 향을 맡았다. 그는 일부러 그렇게 말해준 것 같았다. 그가 타준 차는 짙고 향기로웠다.
“공작님이 타주시는 차는 처음 마셔요.”
“처음 탔으니까.”
그는 내 눈빛이 떨리는 걸 보고 만족하는 듯 입꼬리를 슬쩍 들어 올렸다.
“해주고 싶었어. 한 번쯤은.”
나는 그를 응시한 채 찻잔을 내려놓았다.
“고마워요.”
진한 향유 냄새를 풍기며 그는 나를 포옹했고, 나도 그를 힘껏 안았다.
우리는 밤을 새웠다.
❄❅❄
다음 날 아침, 성 마당에는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나는 그가 옷을 입는 걸 도와주었고 그는 마치 출정하는 사람처럼 말이 없었다.
준비를 마치고서, 우리는 나란히 손을 잡고 홀로 내려갔다. 현관 앞에서 그는 내 두 손을 붙잡고 말했다.
“추우니 나올 필요 없어. 빨리 돌아올게. 돌아와서 너를 데려갈게.”
“조심히 가세요. 길 조심하시고, 추위 조심하시고……. 다치지 마시고요. 체이어스 경 너무 닦달하지 마시고요.”
그는 심술 맞게 웃었다. 내가 울 듯한 얼굴로 걱정하는 게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음…….”
그는 나를 와락 당겨 키스했다. 어느 때보다 깊고 집요한 키스였다.
입술을 뗀 그는 우리의 이마를 맞대고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출발하기도 전에 돌아오고 싶어지면 곤란한데. 나오지 마.”
그의 마지막 말이 퍽 단호해서,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카이런 공작이 열고 나간 문으로 개 짖는 소리와 찬 공기가 들이닥쳤다.
그리고 개 썰매 소리가 차츰 멀어졌다.
“흐흐흑!”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오랜만의 통곡이었다.
지난 며칠간 그에게서 받아들여 내 몸속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북부의 특별한 온기가 눈물에 씻겨나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한참 만에 내 뒤에 힐데가 서 있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내 울음이 그치기를 내내 서서 기다린 것 같았다.
나는 끅끅거리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힐데? 왜? 흑.”
그녀는 무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
“공작님께서 선물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응접실에는 거대한 곰이 한 마리 누워 있었다. 사지를 편 모양으로 잘 무두질해 다듬은 가죽은 나 하나쯤 다 감싸고도 남을 크기였다.
“공작님께서 사냥하신 회색곰 가죽입니다. 이거 하나만 걸치시면 발가벗고 나가셔도 될 겁니다. 정말 귀한 거예요.”
힐데의 목소리로 보아 몹시 드문 물건인 모양이었다. 너무 끔찍한데 또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나는 곰가죽을 앞에 두고 또 한참을 울었다.
울다 지쳐 깼을 때는 밤이었다. 나는 내가 사냥이라도 한 것처럼 곰가죽을 끌고 침실로 돌아갔다.
이제 그가 없는 침실에 이 곰이라도 들여놓으면 조금 덜 외로울 것 같았다.
그가 나를 망쳐놓은 게 맞았다. 혼자 있는 것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설핏 웃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선택했으면서.
이제부터 영원히 외롭기로.
“……!”
나는 문득 이상한 기분에 일어나 창가로 갔다가 이를 악물고 말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북부의 검푸른 하늘에는 거대한 녹색의 오로라가 물결치고 있었다.
원작이 또다시 개입하고 있었다.
“흐흐흑……!”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