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100/128)

90화

그러자 사방에서 카이런 공작을 저주하는 소리와 욕설이 들렸다. 나는 귀를 꽉 막고 웅크렸다.

이대로 죽었으면 싶었다.

옥지기가 오갈 때는 쥐 죽은 듯 조용했던 감옥은, 그가 사라지기만 하면 지옥처럼 변했다.

복도를 먹먹하게 울리는, 죄수들의 피를 토하는 듯한 기침 소리, 우는 건지 욕을 하는 건지 모호하게 들리는 신음은 백색 소음에 가까웠다.

할리사는 새 삶의 목표를 찾은 듯, 나를 향해 주기적으로 고함쳤다.

“아리엘사, 나와 같이 기도하자. 카이런 공작이 비참하게 죽도록 빌자!”

그러면 다른 죄수들도 자기를 고발한 자의 이름을 외치며 저주를 퍼붓거나 자기를 감옥으로 보낸 카이런 공작을 저주했다.

감옥 안을 쩌렁쩌렁 채우는 소음을 견디다, 나는 몇 번이나 구역질을 했다.

한참을 악쓰던 할리사는 내가 동조하지 않자 나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계집! 공작 밑에서 꿀 빨다가 멍청하게 땅속으로 기어들어 온 계집! 여기 오기 전에 놈의 차에 독이라도 탔어야지!”

그러자 다른 죄수들도 거기 동조하기 시작했다. 차마, 도저히 주워 삼킬 수 없는 욕설이 난무했다.

모든 것이 조용해지는 시간은 잠깐뿐이었다. 음식을 배급할 때였다.

나는 옥지기가 감옥 바닥으로 밀어 넣는 식판 앞으로 뛰어나갔다.

“아저씨! 오늘 며칠이에요?”

종일 모포 속에서 웅크리고 귀를 막고 있다가 쓰러져 자곤 하니 날짜 감각을 잊어버리는 건 금방이었다.

어쩌면 감옥의 추위와 악취, 소음보다 그것이 가장 끔찍한 일이었다.

옥지기는 혀를 차며 말했다.

“아리엘사. 감옥에서는 절대 날짜를 말해주지 않는다. 이곳은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흑……. 제발!”

나는 모포를 머리 위로 뒤집어쓰고 울먹였다.

“공작님…….”

❄❅❄

유일한 보호막처럼 뒤집어쓴 모포 속에서는 온갖 후회가 밀려왔다.

<눈 내리는 사막>을 읽은 것, 그러느라 늦잠을 잔 것, 지각할 걸 알고도 학원에 서둘러 가다 사고를 당한 것 모두.

그리고 카이런 공작에게 사과파이가 아니라 시나몬 차를 내어준 것, 장부 정리를 도와준 것.

그냥 내가 숨 쉬는 것, 살아 있는 것 모두.

나는 미쳐가는 것 같았다.

너무 춥고, 내가 곧 산산조각 날 같았다.

모포 속에서 덜덜 떨면서, 나는 끊임없이 되뇌었다.

‘추워. 추워.’

‘며칠이 지난 거지?’

‘북부는 그새 다 타버린 걸까?’

‘언제 오는 거야, 카이런 하르펠…….’

‘추워!’

사람의 시간 감각은 생각보다 금방 망가졌다. 나는 눈을 떠서 감는 순간까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은, 지옥 같은 매일매일을 보냈다.

❄❅❄

할리사가 또 한바탕 나를 향한 저주를 퍼부은 후에, 지쳐서 쉬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불안한 기분이 엄습해 나는 몸을 조금 더 웅크렸다. 이상하게, 모든 것이 죽은 듯 조용했기 때문이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그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내 창살 앞에 멈추었다.

그때 할리사가 창살을 때리며 고함쳤다.

“카이런 공작님, 그 시녀를 직접 죽이러 오셨소!”

나는 벌떡 일어나 머리에서 모포를 걷었다.

“공작님…….”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나는 그를 보자마자 마치 잃어버린 부모를 찾은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나를 쏘아보기만 했다. 마치 내가 엄청난 잘못을 한 것처럼 분노한 시선이었다.

“흑…….”

나는 울음을 삼키며 벽에 등을 대고 웅크렸다. 그러자 옥지기가 안으로 들어와 내 모포를 벗겨내려 했다.

나는 울먹이며 모포를 지키려고 버텼고, 당혹한 옥지기는 카이런 공작의 눈치를 보며 힘을 주어 잡아 빼냈다.

“싫어. 주세요! 흐흑!”

옥지기는 재빨리 내 수갑을 풀었지만 나는 담요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내 앞에 성큼 다가온 카이런 공작의 다리를 보았다. 그는 나를 양팔로 안아 올렸다.

“공…….”

“가만히 있어. 너 지금 악취가 지독하니까.”

그가 감방 밖으로 나가기에 나는 그가 나를 밖으로 데려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안으로 들어가 할리사의 감방 앞으로 데려갔다.

“……?”

나는 겁을 먹어서 그의 가슴에 머리를 꼭 묻었다. 그 마귀 같은 할리사와 얼굴을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카이런 공작은 나는 안중에 없이 할리사를 쏘아보고 있었다.

흘끔 본 할리사는 예전의 자애로운 할아버지 같은 풍채는 흔적도 없었다. 그는 이제 목청만 남은 불쌍하도록 깡마른 노인일 뿐이었다.

그는 카이런 공작을 보고 겁에 질려 감방 안쪽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발발 떨고 있었다.

그는 품 안의 나를 흘깃 내려다보더니 몹시 음침한 음성으로 말했다.

“인사하겠나? 이제 다시는 못 만날 테니까. 죽을 때까지 말이야.”

그것은 할리사가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나올 수 없다는 뜻이었다. 또한 내가 여기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지독한 안도감과 함께 머리를 마구 저어댔다. 그는 간수에게 ‘일주일간 저자의 식사를 줄여.’ 하고는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입구를 향해 걸었다.

“으아악! 카이런 공작!”

할리사의 비명은 금세 먹먹하게 점점 멀어졌다.

“흐읍…….”

지하 감옥의 입구를 나가 햇빛으로 들어가자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눈이 너무 부셨고, 안도감에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찬 공기가 이렇게 감사한 것인 줄은 처음 알았다.

“설 수 있겠나?”

카이런 공작은 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더니 뒤에서 가만히 감쌌다. 나는 훌쩍거리면서도 ‘내 냄새가 지독할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참고 싶었는데, 나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흐흑. 왜, 이제 와요! 왜 이제 오세요! 내가 공작님을 몇 주를 기다렸는데, 흐으엉.”

그러자 그가 내 어깨를 거칠게 붙잡았다.

“아리엘사.”

“끄억. 흡.”

“너 저기 이틀 있었다.”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세요! 못해도 몇 주는 있었다고요!”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나를 안쓰러워하는 듯도 하고 내가 너무 울어서 짜증스러워하는 듯도 한 태도였다.

통곡하는 나를 앞에 두고 설핏 웃기까지 한 카이런 공작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눈물을 닦고 돌아보았다.

나는 그제야 감옥 마당에 하인이 데리고 있는 말 두 마리를 보았다.

“끄흡, 포슬린에서 도착하자마자 오신 거예요?”

“너한테 냄새가 배기 전에 꺼내야지.”

다시 왈칵 눈물이 났다.

“흐흑, 흐흑, 크흡.”

“이런, 이런.”

내가 울음을 잘 참지 못하자 카이런 공작은 나를 돌려세워 등을 건성으로 두어 번 두들겼다. 그러더니 자신의 망토를 벗어 내 머리부터 덮어주었다.

그사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우리에게 다가왔다.

“공작님!”

루엘라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울음이 뚝 그치며 얼어붙었다.

내가 몸을 겨우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카이런 공작의 존재에 의지해서였다.

하녀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루엘라는, 흰 털가죽으로 테를 두른 드레스와 망토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마치 여왕님처럼 보였다. 레오르트 후작을 장착한 루엘라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 빛나는 모습과 인간의 추잡함의 한계를 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내 꼴은 극과 극의 대비였다.

그런 그녀 앞에서 나는 오랜만에 인간적인 감정을 느꼈다. 비참함 말이다.

상쾌하던 공기가 갑자기 오싹한 한기로 변했다. 루엘라의 등장으로 카이런 공작의 심기가 틀어진 탓이었다.

루엘라는 카이런 공작을 향해 우아하게 인사한 다음 나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한 점 흔들림 없는 태도가 이전과 다른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공작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카이런 공작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입가에 걸린 삐뚠 미소가 무서워서, 나는 또 눈물이 나려 했다.

“공작님께서 마침 이리로 오셨으니, 공무에 피로하시겠지만 지금 말씀드리죠. 중요한 일이니까요.”

카이런 공작은 빈정대듯 따라 했다.

“중요한 일?”

“공작님의 시녀 아리엘사 로크만에 대한 재판을 요구합니다. 하르펠 성의 주인에게 마법을 행사한 죄입니다.”

그 순간에 내가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지는 사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은 억울함이나 두려움 이상의 감정이었다.

내가 그동안 가졌던 미안함과 부당함에 대한 분노가 뒤섞이며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감정으로 변했다. 카이런 공작도 내게 누명을 씌웠지만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이유였고 나를 다치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나는 온몸의 뼛속에 새겨진 것 같은 한기 때문에 카이런 공작이 입혀준 망토를 여미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아직 정신은 온전치 않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말해야만 했다.

그러나 내가 입을 열려는 순간 카이런 공작의 손이 내 머리 위에 손을 지그시 올려 더 움직이지 못 하게 했다.

카이런 공작의 손의 온기는 두꺼운 후드를 뚫고도 내게 잘 전해졌다. 어쩌면 내가 말을 잃은 것은 그 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루엘라. 여기까지 왔으니 지하 감옥에 한번 들어가 보겠소? 진짜 죄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구경도 할 겸 말이오.”

카이런 공작이 ‘진짜’에 힘을 주어 말하자 루엘라의 눈썹에 경련이 일었다. 그러나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을 뿐 태연했다.

카이런 공작의 태도도 변함없이 부드러웠다.

“어쨌든 내 시녀를 먼저 좀 씻겨야겠어. 안 그렇소?”

그러자 그곳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망토를 입고 있을 뿐, 산발이 되어 엉겨 붙은 더러운 머리카락과 썩은 듯한 악취는 숨겨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내 어깨를 감싸더니 내 몸을 들어 말에 태웠다.

그러자 루엘라가 재빨리 말했다.

“공작님, 어디로 가시려는 거죠?”

말에 오르던 카이런 공작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루엘라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심지어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잠시 안주인 노릇을 해보니 좋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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