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유부남이 그러시면 안 되죠.
<눈 내리는 사막>의 무대는 북부 하르펠령과 남부 프라일령을 아울렀다.
나는 그 두 영지를 피해 중부로 진출해볼까 계획했지만, 헤리어트가 내 이사 계획을 다 불어버리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니, 나는 이제 세상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고 나도 떠났으니, 이제 <눈 내리는 사막>은 끝을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결말부는 좀 남아 있었지만, 카이런 공작이 레오르트 후작에 대한 혐오감을 참고 루엘라를 자주 친정에 보내기만 하면 문제될 것 없었다.
게다가 내가 없으면 두 사람의 사이도 곧 좋아질 게 분명했다.
남녀 사이란 그런 거니까.
그들은 운명의 상대니까.
말에 오른 나는 절벽 아래로 펼쳐진 사막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말았다.
이 중부는 대단히 특이한 지형이었다. 중부 외곽에서는 마치 칼로 자른 듯 기후가 변하며 사막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 사막은 프라일령의 서쪽까지 이어졌다.
여기서 더 가면 하냐크족의 터전이었지만 그들도 사막의 끝까지는 지배하지 못했다. 사막은 오직 죽임이 지배하는 땅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를 설명하라면 논리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북부 끝의 설산과 이 사막은 각각 <눈 내리는 사막>의 ‘눈’과 ‘사막’을 상징했고, 또한 북부 하르펠가와 남부 프라일가를 상징했다.
사막에 눈이 내린다는 것은 서로 다른 그들의 완전한 결합을 상징했다. 다시 생각해도 참 아름다웠다.
내가 개입하는 바람에 이제 카이런 공작은 설산에도 사막에도 갈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등장할 수 없는 무대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나는 꼭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 이야기의 그림자에 머무르는 존재인 나처럼, 그림자 속에 묻힌 배경 말이다.
그리고 이 세계의 이방인인 나야말로 이 모든 장소에 담긴 의미를 관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직접 와서 본 사막은 관조나 추억과는 상관없는 곳이었다.
노랗고 불균일한 선을 가진 모래의 지평선은 태양을 받아 이글거렸다. 저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아무도 살아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는 선명했다.
딱딱한 껍데기를 입고 땅속을 기는 동물 아니면 산 것도 거의 없는 땅에 꽃이라니.
카이런 하르펠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저 사막으로 걸어들어 갔던 걸까. 더구나 자신이 자라온 곳과는 정반대의 기후가 아닌가.
나는 원작의 카이런 공작이 느꼈을 막막한 절망과 옅은 분노가 깃든 좌절감을 절벽을 타고 올라오는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서 조금이나마 짐작해야 했다.
그때 체이어스는 말했다. 그냥 북부로 돌아가자고. 정히 그녀를 원하시면 군대를 정비하여 돌아와 빼앗자고.
그러나 그때 카이런 공작은 말했다.
[“체이어스, 나는 승리하고 싶은 게 아니야. 그녀가 나를 기꺼이 믿게 되기를 바라는 거야. 어리석은 건 알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이 사막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말고는.”]
그는 사막에서 전설 속의 꽃을 따오라는 그녀의 무리한 요구가 무엇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루엘라 프라일이 그를 완전히 사랑하고 믿었다면 그녀에게는 꽃 같은 것은, 징표나 선물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사로잡은 카이런 공작이라는 북부 남자에 대한 두려움과 부족함 없는 남부의 그녀의 세계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한다는 불안을 이기게 할 무엇이 필요했다.
그것은 헤리어트가 레오르트의 명령으로 귓가에 불어넣은 욕망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녀가 품고 있던 균열이었다. 자신은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아직 카이런 하르펠은 그녀의 마음을 꿰뚫지 못했고, 그는 그 사실에 목말라 했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서 어디까지 헌신할 수 있는지, 자신을 바쳐 보여주고자 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나는 사막을 내려다보며 다시 카이런 공작과 만나고 있었다.
하르펠가의 수사슴이 새겨진 들소뿔 브로치만 없으면 그를 떼어놓고 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