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그는 자기 팔을 붙잡은 나를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공작님! 그 종이, 편지로 그녀를 유혹한 것도 제가 한 짓이잖아요. 그녀도 따지고 보면 피해자라고요. 공작님이 그분을 차갑게 대하실 때마다 제가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아세요?”
“내가 언제.”
“물론 겉으론 안 그러시죠. 하지만 다 보여요.”
“…….”
“저를 소중히 여겨주세요. 소중히 여겨주시고요, 대신 프라일 양도 말에 태우지 마세요. 집무실에도 오게 놓아두시고요. 네?”
그의 단단한 팔에 매미처럼 매달린 나는, 그가 나를 떼어내려 팔을 휘두르면 벽으로 처박히겠다고 각오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너는.”
그의 조금 거친 목소리에 나는 실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너는 나를 소중히 여기나, 아리엘사?”
내가 결코 들으리라고 생각한 적 없는 질문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별로 망설일 것 없는 말이었다.
나는 크게 끄덕이며 답했다. 진실과 반대되는 말을 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지만, 진실을 조금만 드러내기 위해서는 훨씬 적은 힘으로 충분했다.
“이 세계에서 제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공작님이라는 걸 아직도 모르셨다면 섭섭해요.”
“…….”
나는 그의 손바닥이 내 뒷머리를 감싸듯 쓰다듬는 손길에 놀라 그의 팔을 놓는 것도 잊고 말았다.
‘앞으로는 이런 것 하지 마세요. 그랬다가 내가……. 어쩌시려고요.’
나는 속으로 말하면서도 마치 딴 데 정신이 팔린 사람처럼 그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직이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좀 더 즐거워져야 해. 내가 하르펠의 영지민들이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것처럼, 너 또한 그래야 한다.”
“……그럴게요. 공작님. 그럴게요. 공작님 걱정하시지 않게요.”
나는 조그맣게 대답했다. 내 대답이 나에게는 진실이고 그에게는 거짓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몸을 돌려 서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놓았다. 그러자 그는 나를 가볍게 당겨 안았다.
위로가 아닌, 단순하고 담백한 포옹이었다.
자신이 나를 소중히 여긴다는 걸 알아달라는 낯선 몸짓에, 나는 가슴이 아파 눈을 꼭 감았다.
내 심장이 미친 듯 나대기 전에, 그는 조용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