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9/128)

71화

그것은 프라일가에 약혼 선물로 보내려고 구입한 뿔 브로치였다.

“야, 약혼 예물을 보내지 않으셨어요?”

“보냈어. 창고에 있는 집안 보물 중 적당한 것 골라서.”

그럴 거면 뭐 하러 샀는지.

나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음이 왜 바뀌셨어요?”

“약혼을 영지 간의 수교를 맺듯이 하면 안 되는 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했지?”

카이런 공작에게는 내 속을 꿰뚫어보는 초능력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작가가 써놓지 않은 것뿐이다!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안 된다기보다, 프라일 양은 공작님의 애정을 더 기뻐하실 듯해서요.”

“그래서 마음을 바꿨다. 그러니 그건 너나 가져.”

“……예?”

이것은 귀찮다고 버릴 물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고급스러운 상자에 담아서 버리는 게 어디 있느냔 말이다.

이 브로치는 같은 크기의 보석만큼의 값어치를 갖고 있었다. 화상 연고로 바꾸면 내가 삼 년간 매일 허리 한번 못 펴고 들개풀을 베어야 할 정도였다. 내가 받아도 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당혹하여 말했지만 카이런 공작은 간결하게 내 말을 잘랐다.

“물건에는 주인이 있는 법이다. 주인은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어야만 하고. 루엘라는, 그녀는 단지 이 브로치가 자기 피부를 창백하게 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나는 또 놀라고 말았다. 그는 내 상상 이상으로 루엘라의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왜 거금을 주고 이걸 샀는지.

아마 들소에 대한 추억 때문에 잠시 마음이 흔들린 모양이었다.

내가 거절하려 하자 그는 딱 자르듯 말하고 펜에 잉크를 찍었다.

“거절할 생각은 마.”

이렇게 귀한 건 팔아서 돈으로 바꿀 수도 없는데…….

하지만 진심으로 불평하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이것 또한 그의 마음이었으니까.

우리 관계를 마무리하기 전에 이런 뜻이 담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나는 솔직히 행복했다.

나는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공작님. 소중하게 여길게요.”

내가 문으로 돌아서자 카이런 공작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어딜 가?”

“방에 숨겨두고 오게요. 곁에 두고는 떨려서 일 못 해요!”

나는 얼른 달려가 브로치를 내 방 서랍에 넣고 단단히 잠가두었다.

오는 길에는 정원에 들러서 잠시 아름다운 온실을 지켜보았다.

온실은 그사이 뜻밖의 모습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헤리어트의 입김인지 루엘라의 부탁인지, 남부에서 색무늬가 들어간 판유리 몇 장을 보냈다. 새 온실은 그것을 장식해 지었다.

사면의 중간에 장식된 색 판유리 몇 장에 온실은 완전히 사치스러운 시설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안에 들어가기 전에 밖에서 전체 모습을 감상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허브만 한번 확인하고 돌아가려 온실로 들어갔다가, 달려 나오고 말았다.

나는 정원 구석의 창고 앞에서 정원 담당 하인을 찾아냈다.

“아저씨! 허브, 제 허브는…….”

그러나 계속 물을 필요는 없었다.

내 허브는 몽땅 뽑혀서 창고 앞에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다행히 뿌리만 흙으로 대충 덮여 있는 상태였다.

나를 본 하인은 몹시 곤란한 얼굴을 했다.

“프라일 양께서 온실에는 꽃 외에는 다 뽑아버리라고 하시는 바람에……. 버리지는 않았다. 아리엘사.”

저도 모르게 숨이 차올랐지만,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잘하셨어요. 살릴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아저씨.”

그는 내가 안쓰러운지 기다란 화분을 하나 가져와 허브를 심어 주었다. 나는 자식을 버리는 심정으로 화분에 옮겨 심을 허브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가 화분을 내 방에 가져다주어서, 내 방 창가는 작은 식물원이 되었다.

내 눈물로 키우는 허브 식물원이.

그날 저녁에 체이어스가 찾아왔다. 그는 심기가 불편해 보였고, 나는 그래서 그와 대화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내 허브 화분을 쏘아보기에, 나는 정원 담당 하인이 그에게 다 일러바친 걸 깨달았다.

“이건 심하군.”

체이어스는 그 한마디를 하고 획 돌아섰다.

나는 얼른 달려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가 누구에게 따지든 시끄러워질 것이 뻔했다.

“체이어스 경!”

“놔.”

“제발요!”

내가 소리치자 그는 몸에 힘을 풀고 돌아섰다.

“체이어스 경이 화를 내실 일이 아니잖아요. 뭐라고 화내실 건데요?”

“내가 왜 화를 못 내?”

“공작님의 약혼녀를 일러바쳐서 분란을 만든다고요?”

체이어스는 혀를 차며 인상을 썼다.

“그러면 차는 어떻게 끓이려고?”

“헤헤.”

내가 체이어스를 바라보며 웃자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했다.

“고급 차 취급하는 상인 하나나 둘쯤은 아시죠? 체이어스 경이시라면요. 차 구매하는 예산도 슬쩍 어떻게 좀…….”

그는 울컥하듯 말했다.

“너는 대체 왜……!”

그는 그동안 내가 루엘라를 대하는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가 끼어들 일이 아니라서 지켜보다가 오늘 터지려는 것 같았다.

루엘라는 카이런 공작에게 주의를 받은 이후 내게 일절 일을 시키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은연중에, 상당히 명확히 내게 싫은 티를 내고 있었다.

루엘라가 유독 내게만 그 아름다운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스친다든가, 내가 타 주는 차를 꼭 지적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온실에서 내 허브를 다 뽑아내버린다든가…….

사실은 나도 요즘에는 조금씩 지치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카이런 공작과 그녀 사이에서 거리 조절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카이런 공작이 아니었다면 루엘라가 나를 싫어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나 아리엘사 로크만은 없어도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옅은 존재감의 엑스트라다. 감히 주인공 커플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켜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카이런 공작이 결혼하면, 내가 그다음에 해야 하는 건 내 역할을 정리하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카이런 공작에게, 내 남주에게 가졌던 내 애착과 좋은 감정들 전부도 말이다. 새 공작 부인과 번번이 갈등을 일으킨다면 그런 좋은 것들은 곧 사라져버릴 테니 말이다.

카이런 공작이 자기 결혼생활에 불화를 일으키는 나를 짜증스럽게 여기게 된다면, 나는 그 기분만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부탁이에요. 체이어스 경.”

좀 슬프기는 했지만 나는 억지로 웃었다.

“너……. 괜찮니?”

“그럼요.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요. 체이어스 경도 저도, 우리는……. 공작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체이어스는 벽을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돌아갔다.

“네 멋대로 해버려.”

❄❅❄

남부와 전령이 몇 번 교환된 다음, 카이런 공작의 결혼식은 이번 가을 추수 직후로 정해졌다.

몇 달 후였음에도 나는 결혼 준비로 점점 바빠져 갔다. 결혼식 준비는 카이런 공작의 도움 없이 내가 알아서 하고 있었다.

그도 결혼해본 적은 없어서 이번에는 나를 위해 할 일을 한 번에 정리해주지 못했고, 나도 그간의 경험으로 그럭저럭 알아서 해나가는 요령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도 바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시간을 쪼개어 움직여야 했다. 쉴 틈 없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바쁜 것도 나름의 이점이 있었다.

예를 들면 루엘라에 대해 곱씹을 여유가 없었다.

그녀가 나를 얼마나 싫어하는가, 혹은 차 마니아 남편과 결혼하는 그녀가 정말로 그 큰 온실에 허브를 키울 자리를 조금 내어줄 수 없는가 하는 의문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빙의 직후에 내가 저지른 일들의 뒷감당이 고작 이 정도라면 불평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내 책임을 다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카이런 공작도 루엘라의 약혼자 역할을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매일 시간을 내어 그녀를 만났다.

그는 루엘라가 이야기할 때면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으며, 말을 마치면 웃어주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다 들어주었다. 가고 싶다든가, 먹고 싶다든가, 보고 싶다든가 하는 것들 다를 말이다.

그의 태도는 완벽했다. 단점이라면, 너무 완벽해서 어떨 때는 AI 남자친구처럼 보일 정도라는 것이었지만.

하지만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저렇게 평생 예의와 노력을 다하면서 산다면 정략결혼도 할 만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정은 시간이 지나면 자랄 테니까 말이다.

그날 오후도 루엘라가 집무실로 찾아와서 나는 정중하게 물었다.

“프라일 양. 차를 드릴까요?”

그녀는 어김없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넌 언제까지 그럴 거야?’라고 묻는 얼굴로.

그녀는 나를 포함한 가신들이 자기를 프라일 양이라고 부르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하지만 카이런 공작이 그녀가 보는 앞에서 가신들에게 결혼식이 끝나는 날부터 그녀를 공작 부인으로 부르라고 명확하게 명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다음부터는 그녀도 드러내서 불평하지는 못했는데, 유독 내게는 티를 냈다.

“릴리스 차를 주겠어? 음? 그러고 보니 허브가 없는데 차를 어떻게 만드는 거야?”

“……!”

그녀가 원래 하려는 말은 ‘허브도 없는데 차를 계속 내다니, 어디서 잡초라도 뜯어 오는 것 아니니?’였던 것 같지만, 기겁할 일이었다.

당신은 왜 자꾸 자폭하냐고요!

나는 뜨악한 채로 루엘라를 보았고, 그녀는 죄지은 적 없는 사람 같은 청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이것이 카이런 공작 앞에서 나를 곤란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상황은 여러모로 곤란했다.

하르펠 공작 부부의 지능은 보통 사람의 평균 수치를 되찾을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카이런 공작은 순간 자제하지 못하고 눈이 매섭게 변했다. 하지만 루엘라를 노려보지는 않으려고 탁자를 쏘아보는 것 같았다.

그는 느릿하게 물었다.

“허브가 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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