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차가운 반달이 떠 있을 뿐, 북부 하르펠 성의 컴컴한 정원은 살풍경했다.
한기를 내뿜는 그의 검날이 내 목덜미에 내려앉았을 때,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보았다.
창백한 달은 카이런 공작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그는 어두운 정원에서 그렇게 시린 빛을 흘리고 있었다. 살기가 담긴 은은한 아우라를.
“내가 그리 호락호락할 줄 알았나?”
나는 턱이 덜덜 떨리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말했다.
“전 마물이 아니에요! 카이런 공작님.”
“그러나 아리엘사 로크만도 아니지.”
그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내 손에 죽는 걸 자비로 알아라.”
카이런 공작은 싸늘하게 말하며 검을 쳐들었다.
나는 다급히 소리쳤다.
“아리엘사는 없어요! 제가 아리엘사라고요!”
카이런 공작은 나를 잠시 눈을 가늘게 떠 노려보았다.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아리엘사는 사다리에서 떨어졌을 때……, 그때 떠났어요.”
그의 표정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아리엘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는 음침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뭐지?”
“저는 다른 세상에서, 저쪽 세상에서 왔어요.”
“미친 소리.”
카이런 공작은 나를 얼어붙은 땅보다 더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공작님을 몇 번이나 구해드렸는지 기억해주세요.”
짧고도 긴 침묵이 흘렀다.
그는 마침내 검을 집어넣었다.
“너는, 아리엘사의 몸을 입은 다른 여자라는 것인가?”
“네.”
“내 미래를 알고 있고?”
“그렇습니다.”
“나를 도울 것이고?”
나는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대답했다.
“네. 그럴 거예요.”
“그거 편리하겠군.”
그는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턱을 쳐든 내 입김이 그의 얼굴 앞에서 흩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너는 이제부터 내 소유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게 좋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