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9화
옆에 있던 아이들이 얼른 앞으로 나와 어른들을 거들어 다급히 큰누이를 말렸다.
고영량은 머쓱해져서 고영진과 눈을 한 번 마주쳤다. 허허, 지금 이 상황은 그들 형제가 아버지를 극구 설득한 결과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 그는 지금 고모가 이렇게까지 슬퍼하시는 것을 보자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안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고청운과 간미는 이들에게 각각 손수건을 건네며 마저 위로했다.
“지금 우리 건강 상태를 둘러보니, 아직 몇십 년은 더 잘 살아 있을 것 같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언제나 다시 돌아올 기회를 보고 있었어. 이곳 임계촌은 우리의 뿌리가 있는 곳이잖아.”
이 말에 몇 사람의 울음은 잠시 멈추었지만, 고연은 예전의 일이 다시 생각났고 세 남매와 다시 머리를 감싸 안고 울 뻔했다.
고청운은 마음먹은 일을 다시 번복하지 않았다. 결국 세 사람은 각자가 자신의 가정이 있었다. 그는 누이들이 많이 속상해하겠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을 평탄하게 어루만져 줄 것이라 믿었다. 비록 헤어짐이야 아쉬우나 그가 경성에 있으니 분명 도와줄 일도 있을 것이었다. 누이들이 아이들과 떨어지는 것만 아쉬워하지 않는다면 아이 한 명쯤은 경성으로 보낼 테니 말이다.
게다가 누이들과 그 자손들이 주변에 남아 자신들의 부모님을 지키고 있으니, 일이 생길 때마다 그는 다시 부지런히 서신을 보낼 것이고, 그들의 상심 역시 가라앉을 것이었다.
* * *
부두에서 이별할 때, 고청운은 자신이 두 누이를 보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황제의 복귀 명령을 받아 황립 서원에서 원장직과 함께 교편을 잡게 되었는데, 그 외의 일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연달아 일어나서 쉴 틈이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그의 몸 상태를 걱정해 간미와 단둘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지를 않았다.
결국 그가 다시 한가해졌을 때는 이미 나이를 더 많이 먹은 뒤였다. 그리고 이때는 누이들이 구순(*九旬: 90세)을 넘겼을 때로, 그 사이 두 누이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고청운의 천추의 한이 아닐 수 없었다.
* * *
고승요는 형제와 조카딸을 손님으로 모시고 홀 안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직 저녁 시간이 되지 않은 것을 보고 먼저 방으로 돌아가서 샤워를 했다. 그는 줄곧 청결함을 추구했기에, 오늘 행사에 참가하느라 땀을 좀 흘린 걸 참기 어려웠다. 방금 조카인 고영열이 그를 붙잡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벌써 방으로 돌아가 씻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는 옷을 벗고 샤워기에 물을 튼 뒤, 온수의 적당한 따듯함을 느끼면서 일종의 아름답기까지 한 편안함을 느꼈다. 그 후, 그는 마저 머리를 감고 나서 근육이 뚜렷한 몸에 뜨거운 물을 휘휘 뿌렸다.
그러다 그는 생각에 잠겨서 방금 조카딸이 자신이 드라마 <고청운>에서 고청운 배역을 맡은 것을 열렬히 축하해 주던 일을 떠올렸다. 소식이 전해진 후 다른 형제자매들 역시 전화, 문자, SNS로 그를 축하해 주었다.
그는 18살에 연예계에 데뷔하여 9년이 걸려서 영화계의 일인자가 되었는데, 세계적으로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그간 많은 배역을 연기해 왔지만, 오늘처럼 가족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적이 없었다.
고승요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는데, 어쨌든 ‘고청운’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것이 아닌가. 그는 고씨 가문에 큰 휘장을 걸어준 인물이었다. 그러니 문중이나 가족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실 그가 가족들을 설득해 어렵게 연예계에 입문하고 데뷔한 데에는 고청운이라는 배역을 연기해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그는 회귀자였다. 병으로 죽은 후에 환생하여 원래 자신이 살던 시공간과 유사한 이 세상으로 타임슬립 하여 건너오게 되었는데, 15살이 되던 해에 우연히 갑자기 전생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는 전생의 일들을 기억해 냈을 때 놀랍게도 이 세계의 화하국(华夏国)의 운명이 자신이 살던 세계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세계에서 그의 조국은 원나라, 명청시대, 아편전쟁을 거치지 않았고, 또 근대에 외욕의 역사를 겪은 적도 없었다…….
그가 현재 속해 있는 화하국은 매우 강대한 국가였다. 만약 주변의 최강 대국이 지리적으로 더 좋은 위치를 점하거나 자원이 풍부하지만 않았더라도, 분명 자신의 조국이 이 세계에서 제일 강대한 국가가 되어 있었을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나쁘진 않았다.
고승요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세계에서 제일 강한 G2국가 중 하나에서 지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 화하국 사람들은 자신감이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또, 영어가 필수 과목이 아니었으며, 다른 나라 언어는 전부 선택 과목이라 학생들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골라서 배울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었다.
지금 이곳은 2005년이었지만 잘 보아하니 기술 수준은 그가 넘어온 평행세계 너머의 2016년보다 조금 더 앞서 있었다. 전생에서 그는 연기를 배우는 준비생에 불과했는데, 인지도를 갖기 힘든 외모 때문에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연예계에서 차근차근 고생하며 스스로를 먹여 살리기 위해 분주했었다.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났을 때 광분했던 고승요는 처음에야 으스대며 만족했지만, 이제는 이 세상에 익숙해졌다.
그는 제일 먼저 역사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두 세계가 역사적으로 일치하지 않은, 변화점이 찾아온 지점에는 화(华) 왕조의 회귀자 황제와 고청운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회귀자라는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회귀자 황제의 삶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건국 전 그는 가는 곳마다 적을 일망타진하고는 했던 것이다. 물론 이후 그는 황제의 갑작스런 죽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황제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의견이 분분해 어느 것 하나 믿을 만한 답변이 되지 못했다.
고승요는 고청운이 쓴 화본을 보고 이 선조도 회귀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어쩌면 그는 자신과 같은 시공간에서 왔는지도 몰랐다.
애초에 화하국이 지금의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된 데에는 고청운의 공헌이 있었음을 인정할 만했다. 그는 자연과학 계열을 발전시켜 하 왕조의 항해기술과 군사기술이 세계의 발전 수준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도록 했고,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심어두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공간에 존재하는 하 왕조의 입장에서는 큰 행운이었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시기에 역사의 흐름이 끊길만한 천재지변도 마주하지 않았고, 또 국민들은 똑똑하고 부지런한 덕에 하 왕조가 발전할 수 있을 만한 저력을 축적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여 하 왕조는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200년 넘게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해외의 영토는 토착민들에게 반환되었지만, 그들에게는 화하국의 문화가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그들의 문화에 조성된 영향이 여전히 오래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곳 사람들은 여전히 중국어를 사용하면서 광범위한 중국어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현재 화하국 주석은 일부 국가를 방문 중이었는데, “우리나라와 모 국가의 국민들은 아주 두터운 우의를 가지고 있으며…….” 라는 말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었다.
고승요는 무엇보다 자국 영화가 전 세계에서 개봉했을 때 아시아 전역을 포함한 다른 일부 지역에서 상영을 하기에는 상영 지역이 너무 넓고, 또 흥행 성적 역시 자국과 비슷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고청운이 회귀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고승요는 그의 생애와 업적에 관해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고씨 가문에서는 고청운에 대해 보유하고 있던 자료가 많았는데, 고승요는 다행히 직계 후손이어서 고청운의 많은 자료를 접해 볼 수 있었다.
고청운의 일기 기록을 다 보고 난 후, 고승요는 이 선조에게 진심으로 탄복하며 존경해 마지않게 되었다. 그는 설령 고청운이 회귀하기 전에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고청운이 실천한 억제력으로 세상을 살면 성공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청운이 하 왕조로 건너간 것과 그의 후대에 대한 안목이 결합된 덕분에, 두말할 필요도 없이 고씨 가문은 현재의 성취를 이루게 되었다. 이렇게 수순은 누구나 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당시 상황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고청운이 겪었을 어려움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는데, 그들이 속했던 시대와 왕조에서 당초 과학기술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게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고승요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무의식중에 다시 몸단장을 마무리하고 품이 넓은 헐렁한 셔츠를 입은 뒤 나른하게 계단을 내려왔다. 이때 소파에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고영열이 무심코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가 순간 멍해졌다.
“무슨 화보 보는 줄 알았네! 셋째 숙부, 정말 잘생기셨어요. 하하, 어쩐지 숙부가 몇 년째 전 세계 여성 이상형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네요!”
자기 집안의 셋째 숙부는 어깨가 넓고 허리는 얇으며 다리가 길었다. 얼굴은 또 어찌나 잘생겼는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풍기는 기질이 탁월하여 사람이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다. 어쩐지 집안의 지원을 받지 않고도 국내외에서 수많은 상을 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배우가 될 수 있다 했다.
고영열은 다시 한번 저마다 인품이 좋고 기품이 특출 난 자기 집 남자들이 다른 여자들에게 공략당하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한다는 사실이 애석하기만 했다.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긴 다리를 이용해 큰 보폭으로 걸음을 내딛던 고승요는 그녀 곁에 앉아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또 헛소리야.” 라며 웃었다.
고승요는 전생에 대한 기억을 깨우친 후 스스로 학자 쪽으로 발전하는 건 어렵겠다고 깨닫고, 고민 끝에 자신의 장점을 살려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고씨 가문에서는 이를 이해해 주지 못했는데, 필경 이 집안의 대다수가 과학자, 교사, 변호사, 회계사, 작가가 되거나 정치를 하고 있었고, 연예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뜻을 이루기 위해 한바탕 싸워야 했다.
다행히 그는 농후한 경력의 선생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자신에게도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여기에 각고의 노력을 더하자, 결국 그는 연예계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는 고씨 가문이 진보적이고 깨어 있는 가문이라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그전에는 고씨 가문 출신이라는 신분을 숨기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일부 사용할 수 있는 가문의 지원은 있었기에 최소한 적어도 하기 싫은 일을 강요받아 억지로 하지는 않아도 되어 걱정거리를 덜 수 있었다.
고영열은 이제 겨우 15살이었는데, 인터넷 메신저를 얼마나 신경 쓰는지, 무엇보다도 고승요가 시도 때도 없이 뉴스를 장식하면 자신도 모르게 들어가서 기사를 접하고 읽어보게 되었다.
“셋째 숙부, 방자명 역은 누가 연기해요? 선조님의 일기에 따르면 방자명이 참 잘생겼다고 묘사하셨는데.”
“방자명 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더구나.”
방가(方家)와 고가(顾家)는 300년 넘게 함께 거취하면서 서로 사돈이 되기도 하고, 지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방가는 아들이 넉넉하지 않아 그들 가족보다 족속의 수가 훨씬 적었다. 지금 두 집안의 지위를 비교해 보면, 그들 고가의 운이 좀 더 좋아 방가보다는 좀 더 높은 지위로 발전할 수 있었다.
고승요는 고청운이 제자로 받은 방침(方琛)을 떠올렸다. 이 사람은 고청운의 사후에도 미완의 사업을 이어받아 계승시켜 화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고, 역사적으로도 매우 높은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럼 사장정은요?”
고영열이 역사 속에 기록된 사장정의 용모를 떠올리며 한 손에 턱을 괴고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반드시 예쁘고 또 잘생겨야 해요. 미모가 안 된다면 절대 캐스팅을 보류하셔야 해요. 너무 여자 같기만 한 사내도 안 되고요.”
“안심해라. 네 사 사숙이 감독을 맡게 되었으니, 분명 적합한 인물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고승요는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래도 자신의 죽마고우가 사장정의 후예가 아닌가. 사씨 집안의 경우, 황실과 깊게 연계되어 있었던 탓에 몇 차례 황자들 간의 싸움에 휘말려 제자리를 잡지 못했고, 그 사이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 서서히 몰락했다. 현대에 와서 그들은 정치판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이룩하지는 못했으나, 문화계에서는 손꼽히는 성과를 이룩해냈는데 그중에서도 연예계 쪽으로 실력이 가장 뛰어났다. 현재 그가 속한 스튜디오 역시 사씨 가문의 명의로 된 스튜디오였다.
사씨 가문에서는 송죽서재의 명맥을 오늘날까지 유지해 오고 있었기에, 송죽서재는 화하국에서 가장 유명한 출판사 중 하나로 남을 수 있었다.
고승요는 고청운과 친분이 깊던 가문 몇몇 곳을 헤아려 보았다. 그중에 몇 집은 현대에서 소식이 끊겼고, 몇 집은 몇백 년 전만큼 눈부신 영광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먹고 사는 것은 보장되어 있었다. 육씨 가문처럼 계속 군에서 발전을 거듭한 집안도 있었는데, 같은 임계촌의 하씨 가문 역시 계속해서 상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 중 몇몇 가문들의 어르신들은 아직까지도 우정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명절에 서로를 방문하기도 했다.
고승요는 가끔 이전저런 생각들을 해 보면서, 자신의 회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세상일이란 정말 기묘한 것 같았다. 그는 가끔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이 역사상 어떤 인물이 회귀자인지 토론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답은 알고 있지만, 내가 그 일을 밝히는 일은 없을 거야.’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어서 고영열이 또 재잘대며 많은 것들을 물어보았다.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파출부가 음식을 다 차려 놓은 것을 보고, 집안 어르신들이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상에 둘러앉았다. 그제야 비로소 그녀도 질문을 그만두었다.
* * *
밥을 먹고 나자, 고승요는 고영열에게 숙제를 하러 가라며 내보냈고, 자신은 사촌 형제들과 한담을 나누었다.
“셋째 형, 올해 월드컵이 또 시작됐어. 듣자 하니 이번에 관련된 활동이 있다고 하던데?”
고승조가 기대에 차서 물었다. 그는 열혈 축구 마니아였는데, 만약 천부적인 재능만 받쳐주었다면 전문적으로 축구를 배웠을 것이었다.
“응, 감독님의 팀원이 찾아왔는데, 월드컵에서 노래 한 곡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영상을 하나 찍게 됐어.”
고승요는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배우인 그가 이런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의문을 갖지 않는 건 그가 전문 교육을 받아서 노래를 부르는 것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화하국에서 지내는 데 있어 그가 또 한 가지 좋아하는 조건은, 자신의 조국이 축구 강국으로서 월드컵 트로피를 거머쥐는 횟수가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슈퍼 리그 개최 횟수로는 세계 랭킹 1위였고,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조국에서 축구 경기를 뛰고 있었다. 자신의 전생에서의 조국이 갖추었던 막막했던 축구 실력과 비교하면 이 세계에서의 축구 경기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잘됐네! 셋째 형, 내가 대표팀 전체 사인을 좀 받고 싶은데, 어떻게 좀 도와줄 수 없어?”
고승조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흥분했다. 아직 대학에 재학 중인 젊은 그는 사촌 형에게 자연스럽게 아양을 떠는데 전혀 부담이 없어 보였다.
* * *
드라마 <고청운> 작업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이 희소식이 확정되자마자 인터넷과 지면 매체는 크게 들끓었다! 제작진 전체가 드라마 제작부터 완료까지 뜨거운 관심을 받았는데, 특히 제작발표회에서 고청운 역할을 안요(*고승요의 활동명)가 맡게 되었음이 알려지자 쓰나미 같은 관심이 집중됐다.
안요는 데뷔 후 9년간 단 한 번 출연한 드라마가 해당 연도의 시청률 1위 드라마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영화를 찍어왔다. 영화나 광고 말고는 평소 그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는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해각>(*블로그)에 게시되었던 글이 다시 뜨겁게 관심을 받게 되었다. 덩달아 안요가 고씨 가문의 후예라는 것에 대한 추측이 이제는 거의 믿음으로 번지고 있었고, 이 소문은 삽시간에 도처에 퍼져나갔다.
일찍이 이런 상황을 예견한 바 있던 고승요는 자신이 직접 이 일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추측을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정말 사실로 밝혀진다고 해도 그가 이 배역을 남의 손에서 훔쳐 오거나 정당치 못하게 뺏어 온 것도 아니니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 * *
모두의 관심 속에서 드라마 <고청운>은 예상한 대로,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올해의 최고 드라마로 등극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되었다.
고승요는 자신 선조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매끄럽고 담담하게 연기했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연기는 작품을 거작(巨作)으로 승화시켰는데 여기에는 그의 소꿉친구의 실력도 한몫했다.
자율, 관대, 선량, 성실, 일편단심……. 이 모든 단어들은 고청운을 수식하는 꼬리표와 같은 것들이었다. 고승요는 이런 선조를 두게 된 것에 대해 두말할 나위 없이 매우 영광으로 여겼다.
『농가자적 고대생활』 완결
지금까지 <농가자적 고대생활>을 애독해 주신 독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