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501)화 (501/504)

외전 16화

육훤은 일생을 통틀어 세 번이나 사절단을 이끌고 해외로 나갔는데, 그 첫 번째 여정은 스승님과 함께였고, 남은 두 번은 다른 사람과 함께 출항하게 되었다. 갈 때마다 이윤이 커지고 그가 세운 공로 역시 커지자, 황제는 더는 그를 사절단으로 파견 보내지 않게 되었다. 

이 정도면 되었다, 자신이 고기를 이렇게 많이 먹었으니 다른 사람은 국물이라도 맛봐야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는 안정적으로 해당 보직에서 내려왔고, 그간 십수 년 동안 바다 밖으로만 돌았던 것이 생각나 아내와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좀 일이 편한 한직을 구해서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고자 했다.

그는 한평생 외부에서 닥친 상황에 맞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다른 사람과의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이 살았기에, 그는 그녀를 가장 존중하게 되었다. 그는 스승님네 부부처럼 아내에게 일편단심이거나 정답게 지내지는 못했는데, 서로가 제일 가까운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서로를 공경하여 서로 손님을 대하듯이 존경하며 지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스승님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퇴직으로 한가해진 후에 자신의 출항 경험을 글로 써 보고자 했다. 지금의 하 왕조는 예전보다 더 많은 지역과 땅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중 일부는 그가 군대를 이끌고 만들어낸 성과였다. 

하지만 이런 서사에 대해 별다른 좋은 이야깃거리라 생각하고 있지 않던 차에, 그는 스승님과 이에 관련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스승님은 자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글 쓰는데 도움이 될 적임자를 찾아주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그는 3년 동안 공을 들여 서적으로 펴낼 수 있게 되었다.

하하, 자신에게도 책을 펴낼 날이 있을 줄이야!

지금 돌이켜보면 그의 일생은 비록 어린 시절에는 일부 불우했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스승님이 일찍부터 말해 주었듯이 그가 실력이 있고 강직하면, 다른 사람들의 권모술수니 하는 것들은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었다. 이는 사실로 증명된 것으로, 그는 이쪽 방면으로 아주 잘해 온 셈이었다. 그는 한평생 자신의 동생을 실력으로 밑에 두어 남들이 다른 말을 붙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 * *

“소보야, 네가 보기에는 이 그림이 적당할 듯싶으냐?”

이때 고청운의 목소리가 육훤의 생각을 다시 현실로 불러들였다.

“스승님, 이제 더 이상 저를 소보라고 부르지 마세요.”

비록 이 이름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정말 민망하게도 그는 이미 75살 노인이었다. 스승님이 이렇게 자신을 부를 때마다 소석과 소어는 웃음을 참고는 했다. 

‘흥, 그들의 이름이야 기껏해야 나보다 아주 조금 더 듣기 좋을 뿐이지, 다들 아명으로 불리고 있지 않은가.’

“그럼 ‘후작 나리’ 아님 ‘훤아’라고 불러야겠느냐?”

고청운이 정색을 하고 육훤에게 묻는데, 그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스승님께서 하고 싶은 대로 불러주십시오.”

육훤은 어쩔 수 없이 투항하는 수밖에 없었다. 누가 스승님더러 나이가 들수록 장난이 심하고 교활해진다고 했는가. 그는 스승님을 거역할 수 없었다.

고청운은 허허 웃으며 육훤의 의견을 물었다.

“자, 보거라. 어떻느냐?”

육훤은 그림을 펼치고는 아주 열심히 한 번 들여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데요? 멋집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멋져요.”

그는 속으로 탄복할 수밖에 없었는데, 스승님이 사람은 늙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 증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집 할아버지들은 이 나이 때가 되면 입에 엿이나 물고 손주들이랑 놀아주면서 편안하게 노후를 즐길 뿐, 만사에 뭘 더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승님은 그러지 않고 그림 그리기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고, 자기 나이의 반밖에 안 되는 사람들에게도 허리를 굽혀 겸허하게 가르침을 청하고는 했다.

육훤이 그간 그림이나 바둑 같은 것들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고청운은 빙그레 웃었다. 육훤의 그림에 대한 평가는 정말 수십 년 동안 한결같았다.

“녀석, 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칠현금이나 바둑, 서화 같은 문인들의 도락은 역시 성가신 것이로구나. 그래서 네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병사와 관련된 이야기밖에는 할 수가 없었지.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아는 것이 많다고 하는데, 병사와 관련된 것들은 다 네 아버지 덕에 알게 된 것이란다.”

고청운은 엊그제 세상을 떠난 육택을 떠올리며 말했다. 

육훤은 잠시 멍해졌는데, 갑자기 스승님에 대한 아버지의 평가가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 당시의 아버지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있었고, 스승님은 스스로 관직을 그만두고 가족들을 이끌고 귀향했었다. 주변 사람들은 고청운이 스스로 이룩한 명성과 바다에 나가 공을 세운 공로로 황궁을 드나들 수 있게 된 지위를 가졌으니 관직 생활에 있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었다.

“사람이 내려놓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고신지(*顾慎之: 고청운의 자(字))란 사람은 세상에 대한 깨달음이 있는 자다. 그는 확실하게 자신의 주관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 일생을 저런 사람처럼 살 수 있는 자도 흔치 않다.”

스승님의 조기 퇴직에 관해 아버지는 오히려 이렇게 평했는데, 말투를 보아하니 스승님을 꽤나 높이 평가하고 있는 듯했다. 

“애초에 이 아버지가 마음을 고쳐먹고 그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 네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청했던 일이 잘한 일이 맞구나. 고신지라는 사람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실행에 옮기는 자다. 겉보기에는 이런 실행이 쉬울 것 같지만 보통 사람은 수십 년 동안 단 하루도 이를 행하기 어려워하지. 

지금이야 이 아비가 가지고 있는 권세가 그보다 훨씬 더 대단해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뜻밖의 사고만 중간에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그에게 더 많이 주어질 게다.”

그는 말이 없었다. 비록 미적분이라는 것이 앞으로 세상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해 줄지는 모르겠으나, 문인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것을 보면 스승님이 만들어낸 이 이론은 분명 대단한 것일 터였다.

그 역시 아버지와 스승님이 서로 어떻게 알게 됐는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들이 서로를 알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은 곧 작위를 이어받을 후부의 예비 나리였고, 또 한 사람은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거인의 신분이었으니 접점이라고는 생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아버지는 스승님에 대한 말투가 여느 문인들에게 하는 것과는 달랐는데, 자신과 스승님 사이에 형성된 친밀도에도 관여하는 바가 없었다. 

이를 미루어 보면 아버지의 스승님에 대한 태도는 각별한 것이었다. 그 태도 역시 해마다 달라졌는데, 처음에는 칭찬이었던 것이 마지막에는 탄복으로 바뀌었다. 

“스승님, 저희 아버지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건가요?”

육훤이 다시 한번 물었다.

고청운은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팔을 가볍게 부축해 주고 있던 육훤에게 웃으며 말했다.

“네 아버지께서 함구하셨는데, 내가 말할 수는 없지.”

어언 70여 년 전의 일이었다. 그는 비록 그 일이 있고 난 후 한 번, 또 한 번 관련된 악몽을 꿔왔는데, 시간이 이리 오래 지나게 되면서 시간이 가진 힘이 막강한 덕분에 그 당시에 느꼈던 공포감을 거의 다 잊을 수 있었다. 

“정말 안 알려주실 겁니까!”

육훤은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스승님도, 아버지도 너무하세요. 그렇게나 비밀스럽게 구시다니. 됐어요, 저도 안 여쭈어보겠습니다. 짐작건대, 아마도 두 분은 경성 어딘가에서 뜻하지 않게 접점이 생기신 것이겠지요.”

“맞다, 네 말이 맞아.”

고청운은 육훤에게 대강 말을 얼버무리며 손짓하고는 한마디 더 당부했다. 

“만약 무안후 세자가 이 그림을 싫어한다면, 다시 와서 다른 그림을 가져가거라. 내가 여기 있는 한 내어주마.”

“음, 네. 알겠습니다…….”

육훤은 머리가 아픈 듯 눈썹 중앙을 문질렀다.

“정말이지 저희 집 동가아가 큰 빚을 졌습니다. 이렇게 남의 집 여인을 시끄럽게 쫓아다니다니, 저도 정말 놀랐지 뭡니까.”

그는 문득 고씨 가문의 자제가 동가아가 좋아하는 여식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무안후가 스승님에게 가지고 있는 그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으로 볼 때, 자신이 건넨 혼담을 곧바로 동의하든지 때려죽어도 승낙을 안 하든지 하기도 전에 다르게 접근해 볼 어떠한 길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고청운이 이미 67세가 되던 해에 그의 둘째 누이인 고하는 그보다 두 살 위인 칠순에 가까운 노인이 되어 있었다.

아직 이슬이 나뭇잎 위에서 구르고 있을 만큼 이른 새벽 아침, 고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침상에서 일찍이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곁에 남편이 없는 것을 보고 남편 임요조(林耀祖)가 이미 과수원으로 나무를 살펴보러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평생 과수원을 가꾸며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일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과수원으로 가서 돌아다니고는 했다. 

이때 며느리가 찾아왔다.

며느리와 여종의 시중을 받으며 한차례 세안을 마친 그녀는 탁자에 반듯하게 앉아 잘 차려진 향긋한 반찬 몇 접시와 잘 퍼지게 끓여 낸 좁쌀죽 한 그릇을 한 번 둘러보았다.

“앉거라, 너도 아직 아침 식사 전이지? 어서 앉아 같이 들자꾸나.”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며느리 엽(叶) 씨를 힐끗 쳐다보며 느릿느릿 한마디 했다.

그러자 엽 씨는 예예, 하면서 바로 대답을 하고는 입술을 다시 꼭 오므리고 고하의 왼쪽 아랫자리에 앉았다.

옆에 있던 여종이 서둘러 그녀에게 수저와 식기를 하나 더 올려 주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고하가 좁쌀죽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작은 그릇에 담긴 계란찜을 들고 와 숟가락으로 한 술 떠먹어 보더니 말했다. 

“오늘 계란찜이 아주 잘되었구나. 아주 부드럽고 비린내도 나지 않아.”

엽 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른 그릇과 수저를 내려놓으며 자못 미안한 듯 답했다.

“다 제가 실수를 한 탓입니다. 어제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뜨거운 물을 좀 부족하게 넣었지 뭡니까.”

그들 집은 겉보기에는 아주 잘 지내고 있는 듯 보였다. 다만 집에는 일을 도와주는 하인이 몇 없어서 며느리인 그녀가 매일 아침마다 직접 주방에 가서 요리를 도왔는데, 특히 고하가 즐겨 먹는 계란찜은 그녀의 담당이었다. 집안에 특별한 상황이 있지 않은 이상은 그녀가 직접 시어머니의 식사를 준비했다.

“그렇게 긴장하지 말거라. 내가 널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니고.”

고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아송(阿松)이가 어젯밤에 또 집에 안 들어 온 게야?”

아송, 임계송(林继松)은 그녀의 외아들 이름이었다.

고하는 예전에 며느리를 고를 때 혼수를 두둑이 가져올 수 있고 착실하며,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자신의 기센 성향에 맞출 수 있는 온화한 성미의 며느리를 찾아 집안에 들였는데, 이 며느리는 너무 온화한 탓에 자신의 아들을 완전히 제어하지를 못했다. 다행히 요 몇 년 사이에 큰손자가 출세하여 엽 씨의 기가 예전보다는 좀 강해지긴 했다.

“예, 상공은 어제저녁에 사람을 보내, 학문을 닦느라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현에 있는 동창 집에 하루 묵는다고 말을 전하셨습니다. 제가 보니 어머님께서 이미 잠자리에 드셨기에 바로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엽 씨는 고하의 안색이 나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좀 놓였다.

“학문을 닦아?”

고하가 냉소했다.

“그의 외숙부가 지금 임계촌에 거주하고 있거늘, 임산현에 대체 누가 있어 감히 그와 견줄 수 있단 말이냐? 진심으로 학문을 탐구하고 싶었다면 왜 외숙부 댁으로 가지를 않고? 아니면 네 아버지를 찾아뵈어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뵈러 가는 길이 먼 것도 아니고, 내 보기에는 이놈이 또 술을 먹고 주사나 부리고 있을 것 같구나!”

엽 씨는 이웃 현에 거주하는 한 거인의 딸로, 본가의 아버지는 거인 시험에 3위로 합격하면서 해당 현에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당초 시집을 올 때 가져온 혼수도 아주 넉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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