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99)화 (499/504)

외전 14화

영요는 부군과의 평소 대화를 나누는 것과 관련해서 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 이 문제에 대해 그다지 큰 주의를 기울여본 적은 없었는데, 처음부터 성혼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군과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아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눈 대화가 뭐 그렇게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다. 대부분 아주 사소한 일들로, 예를 들면 아까와 같은 ‘산채어’에 대한 이야기들로 대화가 시작되고는 했다. 

만약 바깥의 외부인이 위풍당당한 전(前) 호부상서 나리가 집안에서는 이런 일상적인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히 매우 크게 놀랄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연세가 많아지셨으니, 당신과 며느리가 평소 더 주의해 주시오. 기름기가 많고 짠 음식들은 되도록 상에 올리지 않아야 하오.”

고영량이 당부했다. 평소에야 부모님이 따로 식사를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들과 같이 먹을 때도 있으니 이럴 때에는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아버님께서 어디 당신 같으신가요? 아버님께서 그간 줄곧 얼마나 건강에 주의를 기울여오셨는데요. 허어, 아까 어머님과 만났을 때 어머님께서는 되레 저더러 식습관에 더 주의를 기울이라고 하시던걸요. 어머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 같은 지금의 나이에는 젊었을 때처럼 계속 매운 것을 많이 먹으면 아니 된다고 하셨어요.”

영요는 여기까지 이야기하니 다시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방금 부군의 기분이 좋아진 것을 발견하고 좋아하다가 이제 다시 먹고 마시는 문제를 이야기하자니, 머리가 다시 아파 오는 것 같았다.

아, 이 집안의 사내들은 모두 시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아 자랐는데도 고전각만 생활 습관 면에서 시아버지와 매우 비슷할 뿐, 부군은 이 둘과는 달리 공무를 위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았고 자극적인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좋아했다.

고영량은 지금 이 말을 들으니 오늘 아버지와 사장정과 함께 강변을 거닐다가 온 일이 떠올랐는데, 자신의 체력이 그 두 분만도 못한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이제부터라도 아버지를 따라 자신의 건강 관리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적어도 다음에 같이 산책할 때는 그들보다 더 뒤떨어지지 않을 거야.’ 

* * *

이렇게 한가한 날은 며칠 더 이어지지 못했는데, 육훤이 고택을 방문한 것이었다. 

고청운은 육훤을 보자마자 흥이 동하여 손에 들고 있던 붓을 내려놓고는 곧바로 말했다.

“소보야, 마침 잘 왔구나. 네가 좀 와서 봐다오. 네가 창안한 그 검법 말이다, 이렇게 휘두르는 것이 맞느냐?”

고청운은 말을 하면서 자신이 입고 있던 평상복을 내려다보았는데, 아무래도 자세를 보이기가 여간 불편하여 방으로 돌아가 운동을 할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스승님께서는 이미 검법을 익혀서 할 줄 아시게 되셨군요.”

비록 육훤은 일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지만, 고청운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기쁘지 그지없기에 대답했다.

“좋습니다, 제가 바로 보여드리지요.”

그가 아직 방문 목적에 대해 말하지 못했던 것은, 이번에 스승님에게 검술을 가르쳐 드리게 된 것이 자신에게도 매우 기분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육훤으로 하여금 한껏 들뜨게 하고 은밀한 기쁨을 느끼게 해 주었는데, 이런 자신의 감정을 남들에게 밝히기는 좀 그랬다. 

“아니다, 내 옷을 갈아입은 후에 다시 보여다오.”

고청운은 ‘얼른 옷을 갈아입어야지.’ 하고 생각하며 옷소매를 흔들어 걸어가다 말고, 몇 걸음 걷다 다시 멈추어 서서 육훤을 바라보며 물었다.

“참, 그런데 너는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것이냐?”

육훤이 그 말을 듣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청운에게 다가가 수줍게 웃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스승님, 일이 딱 하나 있사온데, 그 일로 스승님을 귀찮게 해 드릴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냐면, 저희 집 증손자 동가아(*桐哥儿: 본명은 육동(陆桐)으로 추정, 육훤의 증손자)가 다 컸으니 이제 장가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가 한 아가씨를 마음에 들어 했는데, 이 아가씨에게는 네 명의 적친 형제가 있고, 같은 항렬에 열세 명의 사촌들이 있더군요. 온 집안을 통틀어 여식이라고는 그녀 단 하나뿐입니다. 

집안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안에서 그녀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아이를 동가아의 처로 얻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또 동가아가 수소문해보니 그 아이의 아버지 되는 자 역시 비위를 맞추기가 쉽지 않더랍니다. 그러니 제가 스승님이 떠오르지 않게 생겼습니까!”

육훤은 여기까지 말하면서 무기력한 동가아에게 대해 분노를 느꼈다. 

“이 녀석이 하필이면 스승님께 직접 와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저녁부터 다음날 오전 내내 저만 괴롭히더군요. 저도 이놈을 견딜 수가 없어 스승님을 찾아뵐 수밖에 없었습니다.”

육훤은 자신 집안의 동가아를 정말 못마땅하게 여겼다. 동가아는 비록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았기에 손바닥을 몇 번 맞아 본 적은 있었지만, 이 큰 어르신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다른 걸 어찌 무서워하며 컸겠는가? 정말이지 화가 나는 일은 이 꼬마는 말을 잘해서 그냥저냥 그런대로 괜찮게 컸다고 할 수 있지, 실은 자신을 따라 스승님을 찾아뵙지도 못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흠, 소보가 정색을 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과하게 엄하게 구는 것 같구나.’

그가 기억하기로 육훤은 젊었을 적에 웃는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무슨 계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엄숙한 모습으로 바뀌어갔고, 이제는 잘 웃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그의 속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니, 고청운은 그런 육훤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어느 집 여식이더냐?”

고청운은 육훤의 집안이 지닌 지위를 떠올렸다. 육택과 육훤 모두 황제의 심복으로 조정에 공헌한 공 역시 적지 않았으며 그의 집안은 변함없이 작위를 세습하고 있었다. 육훤은 이제 막 벼슬에서 내려온 지 몇 년 되지 않아서 여전히 건재하여 육씨 가문의 영향력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고 대단한 기세를 펼치고 있었다. 그런 집안의 동가아가 찾아가 혼담을 청해야 하는 정도의 집안이라……. 그 집안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사실 집안 사정을 설명했을 때, 고청운은 이미 어느 집안인지 짐작이 갔다.

“바로 무안후(武安侯)네 여식입니다.”

고청운 앞에서는 숨길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육훤이 웃으며 말했다.

“무안후 집안의 세자가 스승님을 추앙하는 자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습니다. 늘 스승님의 서화를 구하고자 노력했으나 아쉽게도 스승님께서 밖에 내주신 서화가 많지 않잖습니까.”

‘무안후?’ 

고청운은 대대로 아들들이 득시글한 그 집안의 내력이 생각났다. 그 집안은 며느리가 아들을 낳는 것에 대해 신기하지 않게 여겼지만, 반대로 만약 딸을 낳게 되면 굉장히 의기양양해하며 반드시 성대한 잔치를 벌여 드디어 집안에 딸을 보게 되었다고 세상에 널리 알리고는 했다. 지금 동가아가 장가들고자 하는 여식이 바로 그 집안의 여식이었으니, 이번 성혼의 난이도는 가히…….

고청운이 여기까지 생각을 하자마자 속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다, 모처럼 내 그림 수준이 낮다고 싫어하지 않는 이가 나타났으니, 지금 나와 함께 적당한 그림 하나를 고르러 가보자꾸나.”

그는 마음이 매우 흐뭇했다. 

‘내가 그림을 그렇게 잘 그렸나?’

“스승님, 제 서화 감상 수준이 그다지 높지는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 그림이 좋은지 아닌지 알아볼 만한 눈은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제 눈에는 스승님의 그림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준이 높으세요. 특히 아이를 그린 그림이 유독 뛰어나신데, 그 그림이 어찌나 표현이 생생하고 생동감이 넘치는지 마치 그림에서 실제 아이가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육훤은 고청운에게 좋은 말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었는데, 이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사실로, 결코 스승님을 웃게 하고자 마구 둘러대는 말이 아니었다.

“하하, 나를 말로 달래려는 게냐? 내가 나이가 들고 나니 너와 소석이 모두 나를 말로 달래려고 하는구나. 내 어디 그리 약한 심정을 가진 사람이더냐? 솔직히 말해도 나는 충격을 받지 않으니 사실을 말함에 있어 겁내지 말거라. 나는 중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그림을 배운 것이라 그 수준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단다.”

고청운은 이런 말을 하면서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이들의 아첨은 늘 그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30여 년 전에 그는 일가족을 거느리고 임산현으로 잠시 돌아가 거주할 때, 새로이 붓을 들어 다른 사람을 따라 그림을 배워보았다. 요 몇 년 동안 그는 확실히 발전이 있었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좋아졌는지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잘 몰랐는데, 아이들은 아무래도 색안경을 쓰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 자신을 계속해서 너무 미화하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알고 지내는 몇몇 화가들이 있었고, 가족들보다 그들의 의견이 더 잘 들어맞곤 했다.

하지만 고청운은 서예에 관해서는 그래도 자신감을 좀 가지고 있었다. 필경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배워오기도 했고, 그간 계속 쉬지 않고 글씨를 연습했기에 자신의 수준이 꽤 높은 정점을 찍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엔 제가 아무리 솔직히 말해도 아무도 제 말을 믿어주지를 않네요.”

육훤이 못마땅한 듯 투덜댔다. 

‘난 스승님께서 정말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육훤은 늘 스승님에게 탄복하고 있었다. 스승님은 자신과 똑같이 퇴직한 몸인데도 건강한 반면, 아쉽게도 자신의 경우 젊은 시절에 건강함을 과신하여 너무 몸을 혹사시킨 탓에 지금은 나이가 들어 몸 이곳저곳에 작은 결함이 특히 많아져 버렸던 것이었다. 또한, 자신의 얼굴에 난 검버섯이 스승님의 얼굴에 핀 검버섯보다 훨씬 더 많아서 언뜻 보면 마치 둘이 또래인 줄 알 정도였다. 결코 자신이 스승님보다 열다섯이나 어리다고 볼 수 없을 것이었다.

한 번 따져 보니, 그가 스승님과 알고 지낸 지 벌써 70년이 지나 있었다. 육훤은 때때로 지난 일을 돌이켜보았는데, 자신이 5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스승님을 모셔와 자신에게 공부를 가르친 걸 생각하면 아버지가 매우 훌륭한 안목을 가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테지만, 육훤은 아직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해 본 적이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