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98)화 (498/504)

외전 13화

하는 수 없이 사장정은 외숙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가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그중 하나는 고청운이고, 남은 하나가 바로 그의 외숙부였다.

외숙부는 그에게 자신의 뜻대로 하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공주의 신분이 아니더냐? 네가 압박감만 견뎌낼 수만 있다면, 또 진심으로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 망설일 것이 무엇이 있느냐? 세상에 단 한 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이 기회를 소중하게 여기거라.”

외숙부는 아마도 자신의 경험이 생각난 것인지, 아주 결연한 말투로 말했다.

“남들 눈에 비치는 것이 뭐가 중요하느냐? 잘 생각해 보면 그건 그저 부러워서 질투심에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단다. 안락공주의 사람됨과 신분으로 미루어 보면 공주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건 네 복이 될 수 있다. 또 공주 역시 치열하게 고민해 보고 네게 손을 내민 것일 게야.”

사장정은 그 말을 듣고 보니, 이제야 꿈에서 막 깨어난 것 같았다.

* * *

그는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공주의 호의를 피하지 않았다. 

이제 그는 공주의 호의가 내심 기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며 자신이 정말 나쁜 놈이라고도 생각되었는데, 이전에 자신이 보인 도피가 분명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장정은 그렇게 고민이 생기면 고청운을 찾아가 만났고, 기쁜 일이 생겨도 당연히 그를 찾아갔다. 

“잘된 일일세! 난 자네가 공주 전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네. 잘 보게, 자네는 비록 익살스러우나, 자신을 항상 순결하게 관리하고 잘 지켜내고 살았지. 사람은 자고로 늘 발전할 수만은 없는 법인데, 자네는 그런 아무 성취도 못 이루고 산 사람도 아니잖은가. 최소한 물려받은 가게를 잘 관리해 왔고 또 사람됨이 대범해서 어디에 가도 친구를 잘 사귈 수 있는 재능도 있지.”

고청운은 한마디 더 그를 칭찬해 주었다.

“게다가 자네는 또 이렇게 잘생기기까지 하지 않았나.”

사장정은 고청운의 그 말 한마디에 매우 기분이 좋아졌고, 갑자기 자신이 그렇게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이렇게 그는 황제가 주는 시련을 딛고 결국 공주와 성혼하게 되었다. 

그는 이 사건이 그의 일생을 통틀어 마주한 가장 운이 좋은 일이라고 느꼈다.

성혼 후 그들은 가끔 언쟁을 벌였지만, 두 사람 모두 성가시게 구는 성정들이 아니어서 한 발짝씩 서로 물러서 주기도 하면서 감정이 나날이 깊어졌다.

사실 그도 공주가 간직한 포부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 꿈을 펼치는데 자신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그 계획에 고청운을 연루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를 감동하게 만든 것은, 공주가 고청운을 끝까지 끌어들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만약 공주가 끝까지 고집했다고 해도 고청운이 공주의 바람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테니, 나중에 그 둘 사이에 낀 자신은 얼마나 더 난처하게 되었겠는가. 다행히 그는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자신을 잘 챙겨주는 것에 대해서 은근히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고, 그녀를 더욱 존중하게 되었다.

그는 되도록 양보할 수 있으면 하고, 대부분의 일을 눈감아 주면서 공주의 강경한 성정에 맞서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하여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더 좋은 경지에 들어섰고, 감정은 더욱더 깊어졌다. 

일생을 돌아본 사장정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 * *

큰 수확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온 고청운은 매우 즐거웠는데, 낚시에 수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큰아들이 원래 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고영진은 고청운 등이 귀가했다는 말을 듣고는 옆집에 있다가 다급하게 찾아와, 그들을 보자마자 고청운의 팔짱을 끼더니 원망 섞인 말투로 애처롭게 말했다.

“아버지, 저만 혼자 남겨두고 큰형이랑 놀러 나가시다니 너무 속상합니다. 저도 이제 퇴직하고 아버지랑 놀러 다니고 싶은데 말입니다.”

그간에 잘못 들여놓은 습관 문제인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그는 고청운 앞에서 자신의 나이를 망각한 듯 행동을 하고는 하였다. 

옆에 있던 고영량은 얼굴을 한쪽으로 돌리고 입을 실쭉거리고 있었는데, 저 말투를 듣고 있자니 온몸에 오한이 도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동생 녀석은 저 나이가 되어서까지 저런 애교 섞인 말투로 말을 해서 정말 눈과 귀가 상해 버릴 것만 같았다. 

‘됐다, 춘추 말 초나라의 노래자(老萊子)는 나이 70에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색동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응석을 부렸다니 그런 셈 치자.’

고청운은 오히려 매우 기분이 좋은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며칠 후 네 휴무일에는 내가 너를 데리고 가 주마.”

작은아들은 얼굴에 이미 주름살이 생겼다고 해도 자신 앞에서는 스스로를 어린아이처럼 어리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럼 약조하신 겁니다, 아, 아직도 4년이나 남았다니…….”

고영진의 말투가 평소처럼 돌아왔다. 그는 올해로 딱 66세가 되었는데, 남은 몇 년 동안에 지금의 종3품 공부시랑의 직위에서 공부상서의 직위까지 승진하게 될 일은 없을 것이기에 퇴직에 대해서 크게 마음 쓰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의 본업에 정력을 쏟아 퇴직 전까지 실수가 없도록 남은 일을 잘 정비하고, 그간 오랫동안 쌓아온 명성이 실추되지 않도록 더 신경 쓰고 있었다.

고영량이 이미 퇴직했기 때문에 고영진까지 덩달아 벼슬을 관둘 수는 없었다. 또, 집안에서 현재 가장 전도유망한 고전각이 아직까지는 지방관으로 지방에 재직 중이라, 누군가는 경성에 남아 앞으로의 추이를 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이렇게 하면 고전각이 나중에 귀경하게 되었을 때 큰 이점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고영량은 저편에서 또다시 동생이 아버지와 오글거리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을 보다가, 오늘 자신이 아버지 덕분에 정신을 차렸으니 어머니에게 가서 말을 좀 나누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어머니께서도 분명 나를 걱정하고 계셨으리라!’

“아버지, 저는 이만 어머니께 인사드리러 가보겠습니다. 동생아, 간다.”

고영량은 고청운과 고영진이 이미 낚시의 요령 같은 이야기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곁에서 몇 마디 말을 붙여 보았는데, 그 두 사람이 무성의하게 대강 한 번 쳐다볼 뿐이라 잠시 기분이 언짢아졌다.

고영량은 답답했지만 동생이 확실히 이쪽으로 자신보다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늘 아버지의 기분이 좋아지게 잘 달래고는 하였다. 

‘아버지를 싱글벙글하게 만들 수 있는 그 능력에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고영량은 갑자기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 보니 이런 동생이 있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네.’ 

* * *

고영량이 간미에게 문안을 올리고, 두 모자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자, 마침 영요도 며느리 및 손주 며느리들을 데리고 문안을 드리러 왔다. 

방 안에는 안채 식구들밖에 없었는데, 고영량은 자신이 오늘 종일 땀을 흘리고 있었다는 생각에 먼저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 씻기로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요가 고영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여종이 들고 있던 수건을 받아들고는 고영량의 머리를 계속해서 말려 주었다. 

본디 윗사람이 옳고 바른 일을 행한다면 아랫사람이 본받고 따른다 했다. 고청운과 간미가 그간 계속해서 몸 관리에 신경을 써오고 있었기에, 영요 등의 안채 식구들도 그들의 영향을 받아 여기에 동참하기 시작해서 이제는 하나하나가 다 자신들의 실제 나이보다 몇 살씩은 젊어 보였고 정신적으로도 더 건강해 보였다. 

고영량은 머리를 말려 주는 사람이 그녀인 것을 보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소? 아 참, 아까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잡아 온 물고기를 두 가지 방법으로 조리를 해달라고 사람들에게 얘기한다는 것을 깜빡했소. 한 마리는 산채어탕(*酸菜鱼: 쏸차이위/중국 사천식 조리법으로, 신선한 생선살을 발라 사천식 고추 등에 볶아 사천식 발효야채(*중국에서 파오차이라 부르는 것)와 끓여내어 매콤하게 먹는 사천지역 가정식)으로 조리하고 남은 한 마리는 생선찜으로 조리해야 한다오. 아버지께서는 연세가 많으시니 저녁을 담백하게 드셔야 하니 말이오.”

영요는 그의 머리를 말려 주면서 또 한편으로는 거울에 비친 고영량의 표정을 살펴보았는데, 그가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바로 그의 말에 답해 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둘째 며느리가 알아서 잘할 겁니다.”

고씨 가문의 살림을 꾸리는 것은 표면상으로는 그녀가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그녀는 이미 나이가 많아 세부적인 일은 작은아들네 며느리가 도맡아 하고 있었다. 고전각의 며느리의 경우, 당연히 고전각과 함께 외지에 나가 있었다. 그들 고씨 가문에서는 부부를 떨어져 지내게 하는 전통이 있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럼 다행이오. 아버지께서 요즘 며칠간 심경이 매우 좋아 보인다오. 게다가 산채어탕을 드시는 것에도 푹 빠져 계시지. 그래도 아버지께서 워낙 절제를 잘하시는 분이셔서 저녁 식사만큼은 금기를 잘 유지하시고 점심 식사 때 드시니 다행이라오.”

고영량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입꼬리가 위로 치솟았는데, 부모님이 심경도 좋아 보이고 또 건강도 좋았기에 아들 된 자신 역시 편하게 잘 지낼 수 있었다. 

“그간 아버님께서는 황립 서원의 원장직도 그만두고 싶어 하신 지 꽤 오래 되셨지 않습니까. 이제는 그 소원을 성취하셨으니 이렇게 더 티가 나는 것 같습니다.”

영요의 눈가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녀는 예전에 자신의 큰언니가 자신과 부군이 요즘 어찌 지내는지 물어보았던 일이 생각났다. 큰언니의 경우 형부와 별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자식들의 혼처 문제나 아니면 어느 집에 선물을 보내야 하는 등 필요한 말이 다 끝나면 바로 분위기가 어색해져서 매번 대화 주제를 찾아내느라 머리를 싸맨다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각자 나이가 들기도 했고, 또 아이들도 이미 다 가정을 이루어 마침내 더 이상 형부에게 맞출 필요가 없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고 했다.

영요는 언니의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보내온 몇십 년간의 성혼 후의 생활을 떠올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일종의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언니는 집안의 적장녀로서 성혼할 당시 좋은 혼처를 구해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형부의 부모님이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골라서 자신의 언니를 간택했다고 했다. 자신의 경우 집안의 장녀가 아닌 차녀였기에 본가의 신분보다는 조금 더 낮은 집안을 골라서 시집을 오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더 지나고 나니, 얼마나 많은 어린 여동생들이나 다른 언니들이 자신을 부러워했던가? 특히 고전각이 열몇 살이 되었을 무렵에는 자신의 집안과 연을 맺지 못해 다들 안달이었고, 심지어 형부까지 찾아와 사돈을 맺자며 의욕을 보였었다.

영요는 원래 그쪽과의 혼담을 매우 원했었는데, 그쪽 집안의 조카딸의 경우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봐 왔던 아이였고, 여러모로 신경쓸 것이 많은 집안의 적장녀였지만 교양도 잘 갖추고 있는 등 조건이 매우 맘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요가 부군에게 혼담이 들어왔다고 알리자마자 아쉽게도 부군은 혈연관계가 너무 가깝다며 아버지도 이를 허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영요는 고청운과 무엇이든 연루되면 그 일이 성사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시아버지가 집안에서 제일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었고, 부군과 도련님 두 형제가 매우 효성스러워 아버지가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인 것은 시아버지가 줄곧 자신의 집안일에 대해 뭐라고 먼저 손을 댄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부군의 말도 일리가 있었는데, 고전각이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길을 걷기로 한 이상, 기왕이면 같은 문인 집안의 여식과 성혼을 하게 하는 것이 나았다. 그녀의 본가는 대대로 귀족 집안인 데다 문인 집안과는 거리가 먼 무인 집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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