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95)화 (495/504)

외전 10화

“흥, 아니면 잘된 거구나. 누가 너를 요 며칠 동안 우울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냐?”

고청운은 “흥.” 하고 입을 실쭉거리며 사장정을 향해 말했다.

“녀석이 요 며칠간 넋이 나간 것 같았네. 엊그제에도 글쎄 한밤중에 일어나 조정의 아침조례에 올라야 한다며 나서질 뭔가. 며느리들이 빨리 달래서 방으로 돌아오게 했지.”

이 말을 들은 사장정은 고영량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고영량은 줄곧 기분이 가라앉아있다가 그제야 밝은 기색을 드러냈다.

“소석이는 진정한 일 중독자네. 늘 다른 사람보다 늦게까지 남아 일을 처리하고, 자발적으로 연장근무를 하는 것은 정말이지 나와 조금도 닮지 않았어.”

고청운이 중얼댔다.

“내가 밤마다 불러내 산책이라도 하게 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지금보다 몸이 더 엉망이었을 게야.”

고청운은 그렇게 강한 진취성까지는 없었는데,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와서야 자신의 마음이 이미 관가를 떠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명실상부한 태부 자리에 돌아가고 나서는 그 자리가 자신에게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다른 일을 찾아서 해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바로 지금 원장직에서 막 물러난 그는 자신의 나이를 가늠하여 남은 시간을 가족, 특히 간미를 위해 쓰기로 결심했다. 이 밖에도 취미 활동들은 많았는데, 틈틈이 글쓰기, 그림 그리기, 퉁소 불기, 낚시하기…… 등 할 일은 많았다.

자화자찬하는 것이 아니라, 고청운은 이미 자신의 서예와 그림 실력이 점입가경에 들어섰다고 느끼고 있었다.

성남 연구원의 경우, 현재 고영진을 필두로 공부(工部)와 협력하여 증기기관 사업을 주로 진행하고 있었는데, 고청운은 그저 잘 지켜보고 있다가 이들에게 돈이 부족해지면 나서서 돈을 건네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는 아이들이 자신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들 스스로 이제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고청운은 일부러 성량을 낮췄지만, 고영량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말을 듣고 자신이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지금 그의 뒷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친아버지와 어릴 때부터 자신을 보고 자란 사장정이었다. 두 사람은 아직도 자신의 아명을 입에 달고 살면서 매일 자신에게 소리쳐 대고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밖에서는 아직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영량은 고청운의 말을 들으며 나이든 아버지가 지금 자신의 정신 건강 상태를 걱정해 주고 있다는 걸 마음속으로 알아채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틀 동안 매일 자신을 챙겨서 낚시하는 장소에 끌고 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마침내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었고, 진작에 이끼가 사라진 낚싯바늘을 끌어 올려 다시 미끼를 걸어 놓고는 열심히 낚시를 하고자 했다.

한편 고청운은 물고기를 보고 흥분한 사장정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사장정은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어떻게 자신을 관리할지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음이 순진하기도 했거니와, 그의 자손들도 그에게 효성스러웠기에 큰 근심거리도 별로 없어 겉으로는 고청운보다 젊어보였고, 심지어 머리도 반 정도는 아직 검었다.

지금 두 사람은 서로 관리법에 대한 지식을 공유한 뒤, 그간 경성에 새로 생긴 음식점의 맛에 대해 품평을 하기도 하며 이러쿵저러쿵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요 몇 년 동안 경성의 소보는 더욱 더 성업을 하고 있었는데, 각종 기괴한 일들이 수시로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가면서 독자들을 많이 보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도 소보 덕분에 많이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강가에서 멋진 오후를 보냈고, 오후 들어 무더위가 사그라들기 시작하자 비로소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에 올랐다. 

* * *

사장정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공주부로 돌아와 관사에 들어서자마자 집사에게 말했다.

“저녁 식사로 주방에서 물고기 요리를 준비하도록 하게. 이것은 내가 직접 잡은 고기네.”

물론 직접 낚아 올린 것이기는 한데, 고청운의 물통에서 잡아 올린 것이라는 사실은 무시했다.

예순에 가까운 사천보는 멀리서 그의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오자 서둘러 호숫가의 정자에서 나와 그를 맞이하며 말했다.

“아버지, 보아하니 오늘 고 아저씨와 함께 수확이 많으셨나 봅니다.”

“당연하지. 천보야, 너도 내 능력을 알지 않으냐. 물론 책이나 화본 같은 걸 쓰는 능력이라면 내가 많이 떨어지지만, 먹고 노는 것에 있어서는 내 손가락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단다. 오늘 고기는 내가 직접 낚은 것인데 그 녀석이 두 마리만 달라고 하더구나, 너무 안쓰러워 보이기에 내가 더 가져오려다 한 마리 들려 보냈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는데,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그럴듯하게 맞물리기에 의기양양했다.

‘내가 얼마나 실력이 출중한데! 오늘 그렇게 고기가 안 잡힌 건 실수다, 다음에는 틀림없이 대박이 날 거야.’

사천보는 자꾸 위로 들리는 입가를 얼른 손으로 누르고 웃음을 참으며 답했다.

“네, 아들이 잘 알지요. 오늘 생선이 아주 좋아 보이는데, 저녁 반찬으로 먹어요.”

사실 이 사람들 같은 부귀한 집에서 이런 생선이 어떻게 귀할 수 있겠냐만은, 이건 아버지가 직접 낚은 것이니 반드시 이 진귀한 생선을 나눠 먹으면서 체면을 세워드려야 했다.

사장정은 두 손을 뒤로 한 채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야지! 지금은 날씨가 더워서 산채어(*酸菜鱼: 생선탕 요리의 일종)를 만들어 먹으면 밥이 잘 넘어가겠구나!”

그때, 정자에서 안락공주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일매일 생선이라니, 내 몸에서 비린내가 날 지경입니다. 오늘 본궁은 먹지 않겠어요.”

“네 엄마가 와 있었구나?”

사장정은 순간 기뻐했는데, 오늘 연회가 있어서 아내가 늦게 돌아올 줄만 알았던 것이다.

사천보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자주 귀찮게 만들고 더 앳되게 굴었지만, 사천보는 그런 아버지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는 그저 그렇게 부모님들이 기분 좋게 오래오래 살기를 바랄 뿐이었다.

사장정은 얼른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성큼성큼 정자에 들어섰다. 들어가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불어와 눈을 돌려보니 역시나 정자 안에는 얼음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등나무 의자에는 평상복 차림의 노부인이 반쯤 누워 있었는데, 이미 얼굴에는 주름 자국이 보이고 있었다. 특히 팔자 주름이 깊게 나 있어서 그녀를 매우 엄숙하게 보이게 했다.

그녀는 안락공주에서 대장공주(大长公主)로 승격해 있었다.

사장정은 그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부인, 내가 괜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얼음을 많이 쓰면 몸에 안 좋으니 차라리 나무 그늘 밑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는 건 어떻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장원으로 내려가 피서를 하는 것은 어떠세요. 시간은 많고 어차피 경성에서도 할 일도 없지 않습니까.”

사장정이 여기까지 이야기하니 그녀의 안색이 좀 언짢아 보였다.

안락공주는 손을 흔들어 주위의 시중을 드는 하인을 물러나게 한 뒤에야 사장정의 손을 잡고 자신의 옆에 앉히고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좋아. 다음번에 꼭 당신 말을 듣겠어요.”

젊었을 때라면 두 사람이 더 싸웠을 텐데, 지금 공주는 자신의 성미가 많이 누그러졌다고 느꼈다.

‘됐어, 양보 좀 해주자.’

“오늘 낚시는 재미있었나요?”

안락공주는 사장정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다가 답을 알고도 입을 열었다.

“재미있었지요. 운하 변은 참 시원하더군요. 가고 싶으시다면 다음에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사장정은 흥분한 기색을 보이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석이가 혼나더니 정신이 맑아진 것 같습니다.”

안락공주는 대충 듣기만 해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일은 자주 나타나고는 했던 것이다. 예전 왕조의 관리들은 나이가 들고 정력이 부족해졌음에도 권력에 연연하고는 했다.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번 왕조에 들어서는 이 점이 많이 개선이 되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그들의 퇴직 시기를 연장해 주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니, 번거로움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량가아는 똑똑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이제 마음먹었으니, 감정도 쉽게 조절할 수 있을 거예요.”

안락공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앉자마자 포도를 집어 들어 사장정의 입을 막으려 들었으나 사장정은 계속 떠들었다. 

그녀는 그 얘기를 잠자코 듣다가 문득 말했다.

“나는 여전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 됩니다. 당신들 두 사람은 전혀 딴판인 성미인데 어찌 그리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겁니까? 친한 친구로 지내면서 갈등 한 번 겪지 않고.”

그녀도 한때는 비교적 잘 어울리던 여자 친구들이 많았지만, 중도에 여러 가지 이유로 반목하게 되거나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그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모두와 반목하여 살아가게 되어 곁에 단 한 명의 친구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그녀는 고청운과 사장정의 사이가 정말 궁금했다.

물론 신분 지위로 인해 그녀는 원래 일반인과도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부마가 어떤 성질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평생 동안 입 밖에 낼 자랑할 만한 성취가 아무것도 없었기에 악랄한 사람은 그를 비웃으며 아무 기술도 배운 것도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와 달리 고청운은 학식과 해박함, 그리고 지금의 명성을 가지고 있으니, 둘을 비교하면 위상 차이가 정말이지 너무나도 컸다. 

그녀는 줄곧 두 사람의 관계가 계속 친하게 이어져 온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는데, 질투가 나기도 하고 정말이지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말 못 할 비밀이라도 있나 싶었다.

“아이고, 공주, 저를 너무 무시하면 안 됩니다. 제가 이렇게나 성정이 좋고 마음씨가 고우니, 신지와 잘 맞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또 우리한테는 생사를 같이 넘던 친분이 있다고요.”

고청운과 사장정이 알게 된 경위에 대해 남들은 몰라도 안락공주는 알고 있었는데, 사장정이 그녀에게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도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다.

안락공주는 사장정의 뻔뻔함에 또 한 번 무릎을 꿇었다. 몇십 년 전 같았으면, 그녀는 부마를 연무장으로 불러 연마를 가장한 육탄전이라도 벌였을 텐데, 지금은 힘이 안 되어 저 자화자찬을 마지못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사장정은 공주의 이 배앓이를 모르고 있었다. 

사장정은 자신이 그저 정말 한평생을 즐겁게 살았고,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며, 고청운과도 벗으로 지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오고 있었다. 평생 사랑하는 아내, 믿고 대화할 수 있는 벗, 효성 지극한 자손이 있으니……. 그의 인생은 처음부터 좋은 패를 받고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운명의 배려로 그가 받은 패는 갈수록 더 좋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영평백부(永平伯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친은 영평백이었으나 어머니는 본처가 아니었다. 본처는 맏형을 낳은 뒤 세상을 떠났기에 큰형은 할머니의 총애를 많이 받았다. 

본처가 죽은 후, 아버지는 사장정의 친모를 다시 처로 삼았다. 어머니의 본가인 구(欧)씨 학자 가문이 가세가 기울며 개국공신과 혼인을 하고자 요청을 했던 것이다. 외할아버지도 이에 동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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