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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491)화 (491/504)

외전 6화

이 해에 그들은 모두 향년 15세의 나이였고, 그녀는 그렇게 처음으로 그를 만나게 되었다. 

* * *

후원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노발대발했다.

“어머니, 아버지도 그렇고 안목이 왜들 그러십니까? 미아에게 고청운 같은 사람을 찾아주시다니요? 발바닥에 잔뜩 묻은 진흙을 다 씻어 내지도 못하고 온 모양새가 한눈에 봐도 얼마나 가난한 집인 줄 알겠더군요. 저는 우리 미아를 그런 사람에게 시집보내기 아까워요. 우리 미아는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랐는데, 저는 이 아이를 고생시키러 보낼 수 없어요. 

그리고 시골 촌부인 시어머니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십니까? 무슨 더러운 소리든 다 하고 말을 잘 안 들으면 울고 소란 피우며 창피를 줄 텐데, 어찌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제가 보기에 그 시골뜨기는 아버지의 환심을 사서 제자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 같은데, 아마도 자기 신분을 좀 높여보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속이 너무 시커먼 사람 아닙니까.”

간미는 옆에서 그 말을 들으면서 일부는 수긍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그녀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바로 외할아버지 내외였는데, 그 두 분이 자신에게 해가 가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이 외할아버지의 눈에 든 건 분명히 그에게 어떤 장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특히 그는 외종숙과 동기이자 벗이기도 했는데, 그녀는 외종숙의 사람됨을 미루어 보아 그가 좋지 않은 사람을 진심으로 벗으로 여길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다시 소년의 밝고 생기 넘치던 두 눈을 떠올렸다.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이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가난하기만 하고 부를 탐하는 계략을 숨겨놓는 사람은 아닐 거야.’

과연 외할머니는 삽시간에 어머니를 한바탕 꾸짖으며, 바람 소리를 듣고 비가 온다고 생각하는, 신중히 생각하지 않고 성급하게 판단하는 면모를 질책하고는 어머니가 개념이 없고 겉모습밖에 못 본다고 나무랐다.

“청운이가 다리에 흙을 묻히고 다니는 것이 왜? 그럼 네 아버지는 뭐냐? 너는 네 아버지가 흙 묻히는 걸 본 적이 없느냐?”

외할머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아이는 12살에 수재에 급제했다. 아원이(*간지원, 간미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네 아버지가 가르쳐왔는데, 녀석이 12살 때 어떤 모습이었더냐. 생각을 좀 해 봐라. 그간 누구한테 배운 행동거지인지……, 쯧쯧.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다니.”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그래요, 제가 보니 다들 지내오면서 정이 든 모양인데요, 내가 나쁜 사람이지요. 흥, 내가 더 알아볼 거예요.”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보고 화가 나서 더 이상 말로 다투지 못했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화가 사그라지지 않았는지 다시 한참이나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 * *

다음 날, 고청운은 다시 방가촌을 찾았다. 이번에 어머니는 예상과 달리 그에 대해 무슨 안 좋은 말이나 단점을 들추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아주 맘에 든다는 듯 외할머니를 붙잡고 말했다.

“그 아이가 단정하게 하고 있으니, 이렇게 보기 좋을 줄은 몰랐네요. 나쁘지 않아요, 나이가 들면 더 나을 것 같아요.”

하지만, 간미는 어머니의 고질병이 또다시 드러난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줄곧 잘생기고 기품 있는 소년들에게만 화기애애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수재임을 나타내는 복장을 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나타난 고청운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특히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이런 고청운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곧 사람을 시켜서 몰래 고씨 집안을 살피게 했다.

* * *

일의 판도는 금방 달라졌는데, 그 후로 며칠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회임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고, 어머니는 더욱 기뻐하며 배 속 아이를 조심히 잘 살폈다. 그러고는 혹여 태아에게 안 좋을까 봐 즉시 경성 부근에 남아 있는 아버지에게 서신을 보냈다.

간미도 매우 기뻤다. 어쨌든 어머니의 회임으로 그녀가 마음속으로 가지고 있던 죄책감을 덜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어머니가 이번에 소원을 성취하여 아들을 낳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만일 어느 날 아버지와 정말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더라도 적어도 남동생이 있으면 어머니가 기댈 곳이 있을 테니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지나치게 신경을 쏟고 살았는데, 아버지도 어머니에게 정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두 분이 생각하는 애정의 크기는 서로 비교될 수 없었다. 

그녀와 고청운의 혼사는 어머니의 회임과 향시라는 두 가지 일로 인해 단번에 시들해졌다.

* * *

이듬해 고청운은 향시에서 낙방했다. 외할아버지는 뜻밖에 그의 낙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정식으로 제자로 삼았다.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회임한 탓인지 아니면 무슨 생각인 건지, 간미가 차후 보게 되는 아이를 후계자로 삼지 않겠다며 그녀에게 어울리는 혼처를 찾아주려 했다.

간미는 매우 감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막연했는데, 16년 동안 의지했던 사람들이 사라져서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지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이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새로운 혼처를 고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간미는 그때 햇빛에 비친 소년의 웃음을 떠올리며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자신은 고청운이라는 자가 혼처로 괜찮으니 다른 사람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이는 그녀가 심사숙고한 결과였다. 지금은 외할아버지가 부모상을 당하여 3년간 복상 기간을 가지고 있는 참이었다. 이 작은 임산현에서 적당한 사람을 찾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그녀의 나이는 이미 16살이었다. 

외할머니는 아연실색했고, 어머니는 고민 끝에 반대하지 않았다.

“우리보다 좀 낮은 집안으로 시집가는 것이 좋지. 내가 알아보았는데, 그 아이는 작년에 향시의 보결 합격자로 선정되어 은자 300냥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그래도 그들 집안의 행실이 여전히 조용한 행보를 보였다고 하니, 그렇게 방자한 사람은 아니지 싶다. 그 아이의 어머니도 상냥해 보이고 말이다. 네 외할아버지가 그의 스승이니, 그는 계속 과거 시험을 준비하려면 감히 너에게 나쁘게 대하지 못할 게다. 오히려 받들어 모실 게야.”

어머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나지막이 말했다.

“나 같은 경우는 좀 부족했지만, 그런 장점 덕에 네 아버지와 성혼할 수 있었지. 다른 자매들과 비교해서는 혼처로 최고였단다.”

간미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줄곧 어머니가 아버지를 대함에 있어 어리석게 아예 잘 순종하고 따르시던지, 혹은 너무 티격태격하며, 닭과 개가 난리를 치듯 세월을 보내고 계시다고 생각했건만, 어머니는 뜻밖에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니…….

외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외할아버지도 그 결정을 듣고 무척 기뻐했다.

최종적으로 간미가 고청운과 정혼하기 전에 아버지는 결국 서출 남동생을 데리고 돌아왔다. 어머니의 회임을 반기면서 하루 종일 어머니와 부대끼며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아버지를 보자, 간미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시는 걸까?’

간미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같이 곤경에 처하면 미력한 힘으로나마 서로 도와주는 극진한 사이를 보면서 자신과 고청운에게도 이런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매우 이루기 어려운 희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는데, 상대방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물론 그녀 자신만 하더라도 과연 남편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희생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부모님 사이의 갈등 또한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이 세상에서 약자라, 그저 자신을 올곧게 유지하는 것만이 좀 더 잘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사내에게 온 마음을 다 걸지 않고 그저 손님처럼 그를 대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가장 좋은 국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결정을 너무 과대평가했는데, 자주 보내오는 작은 선물과 그간 주고받게 된 서신들 등을 통해 정혼자가 자신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정혼자가 보내오는 것들을 기다리게 되었는데, 만약 한동안 아무것도 받지 못한 일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넘겨짚어 보고는 속으로 걱정했다. 

이런 가운데 그녀는 정혼자가 해원으로 과거 시험에 합격한 소식에 덩달아 기뻐하기도 했지만, 이와 동시에 더 궁금해했던 것은 과거 시험이 끝난 후 열리는 연회석상에서의 그의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고청운이 함부로 행동거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녀는 팔짝팔짝 뛰며 시집갔고, 시집을 가게 돼서 아쉽지 않았다. 이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결혼생활, 착한 시부모님과 시집간 지 오래인 두 시누이와 더불어 부군은 자신에게 따뜻하고 자상했으며, 바깥일에 대해서도 늘 자신과 의논을 하면서 자신의 조언을 구했다. 가끔 자신이 의견을 제시하면 부군은 매우 기뻐하기도 했다.

“미아, 당신은 정말 대단하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하하, 우리 둘은 정말 서로 생각하는 것이 비슷한 것 같소.”

“미아, 당신은 어떻게 이리도 시를 잘 짓는 것이오? 사고력이 이렇게 뛰어나다니, 만약 당신이 사내로 태어났더라면 진작 진사에 합격하고도 남았을 것이오.”

부군이 하는 칭찬을 듣고 있노라면, 그녀의 마음은 마치 꿀을 발라 놓은 것만 같았다. 부군의 영향으로, 그녀는 자극을 받고 계속해서 책을 읽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좋아하는 여행기나 시집만 골라 탐독하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각종 정사나 야사, 과학 서적도 대충이라도 훑어 보면서 더 잘 읽기 위해 계속해서 책들을 집어 들었고, 또 부군과 여러 방면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지혜를 키워나갔다.

그들의 신혼 생활은 매우 달콤하게 지나갔다. 이 와중에 유일하게 그녀를 유감스럽게 하는 것은 성혼한 지 몇 개월 되었는데도 아무런 태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부군은 재촉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위로했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며, 그들은 아직 젊으니 아이를 못 가질 걱정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대외적으로 부군이 아이를 갖지 않고 있다며 책임을 떠맡는 것을 보고, 시부모님들도 이와 관련하여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른 집안에선 이런 일로 올케나 다른 자매들이 남몰래 불평하는 것을 들어오던 그녀는 2세 문제로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 부군이 시부모의 유일한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앞으로 시어머니와 부군을 어찌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녀가 괜히 고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나 자책하던 차에, 그녀가 나서기도 전에 부군이 중간에 일을 적당히 잘 처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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