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화
간미와 고청운은 아이들과 아침을 따로 먹었다. 나이가 많아지다 보니 주의해서 먹어야 하는 음식들이 생겨났고,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비해 더 부드러운 식감으로 조리한 음식을 먹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이 먹는 식사는 그 맛도 그들의 취향에 맞게 잘 준비되어 있었다.
또 만약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자신들에게 신경을 썼기에, 자기들끼리 따로 먹는 것만 못하기도 했다.
* * *
두 사람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꽃밭을 거닐며 소일하면서 어제 있었던 간미의 생일 이야기로 대화했다.
“어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온 건 아닙니까? 나무가 크면 바람도 센 법인데, 명성이 높을수록 다른 사람의 시기와 공격을 많이 받게 되는 건 아닐지…….”
간미는 약간 불안했다. 그들 고씨 가문의 가족들은 언제나 조용히 살아왔기에 작년에도 생일잔치를 크게 치르지 않았고, 올해 3월 21일 부군의 90세 생일 때조차 일부 사람들만 조금 초청하여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제는 좀 달랐는데, 만약 집만 비좁지 않았더라면 경성의 모든 관리들이 다 올 기세였던 것이다. 일부 관직이 낮은 사람들은 사람을 보내 선물이라도 전하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옆집의 고영진과 방침의 집안에까지 모두 사람들이 꽉꽉 차서 북적였었다.
“걱정할 것 없소. 내가 이미 폐하께 보고를 드렸다오.”
고청운은 차분하고 또 느긋하게 보였다.
“이번이 당신의 90살 생일이잖소. 우리는 아직 건강하고 또 무슨 복인지 오래 장수하고 있으니, 한 번 제대로 축하해 보자는 건데 뭐 안 될 것이 있겠소. 나는 100살까지 기다렸다가 크게 잔치를 벌여도 늦지 않다오.”
어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방문한 데에는 고영량이 호부상서(戶部尙書)직에 앉아 있기 때문도 있을 것이었다.
고영진은 두 번이나 출항을 하고 나서 지금은 홍려사경 자리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이미 몇 년째 조기퇴직을 할 것이라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럼 알겠어요, 당신 말이 맞겠지요.”
고청운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간미는 당연히 아무런 이견을 더 가지지 않았다. 또한, 고청운이 100세까지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 그녀는 넘치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어서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어는 더 상대하지 마시오. 그가 퇴직을 하겠다면 하는 것이지, 내가 보기에 그 녀석은 벼슬자리에 내려와서도 할 일이 있는 것 같다오. 소석이의 경우, 녀석은 이전에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몸이 좀 좋지 않은 것 같소. 원래 호부의 일이 좀 편치 않은데, 거기에 더해 녀석이 호부의 위아래를 한 번 정비하는 작업을 진행하느라 너무 심혈을 기울였으니……. 만약 녀석의 타고난 기초가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원기 왕성하게 지내지도 못했을 거요. 맏며느리가 녀석을 위해 보약을 달여 주고 있었다오.
우리같이 흰머리 성성한 노인이 아직 머리가 검은 자식들을 먼저 앞세워서는 아니 되는데……. 이는 좋지 않은 일이지 않소.”
고청운과 간미 사이에는 이미 못할 말이 없었다. 물론 이미 70세라는 고령인 고영량이 ‘검은 머리’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아이 같이 느껴졌다.
고경은 성혼 후 줄곧 외국 저서 번역에 심취해 있어서 그간 번역한 책이 적지 않았고, 고청운과 방정심을 따라 많은 곳을 다녀보았다. 고청운의 사위는 각지를 옮겨 다니며 근무했기에, 딸은 그를 따라 여행기와 시집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그 덕에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며 명실상부한 재녀(才女)로 거듭나게 되었는데, 지금은 퇴직하고 고향인 상성으로 돌아간 방정심을 따라 함께 노후를 보내고 있었고 그 곁에는 막내아들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고청운은 고경이 성혼 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취미 생활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가는 서신에 간간이 드러나는 소녀 같은 마음을 보아하니 그녀는 방정심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니, 고청운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방정심에게 시집보내기로 한 결정이 잘한 일인 것 같아 괜히 우쭐해졌다.
두 사람은 평생 화목한 부부로 지냈고, 방정심 역시 다른 여인에게 딴마음을 품지 않겠다는 성혼 전 약속을 지켰다. 물론 그가 장인어른의 눈치를 보느라 건실한 척한다며 자신을 삿대질하며 비난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고청운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자신이 가족을 더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무엇이 나쁘다는 것이겠는가? 그는 그저 기쁠 뿐이었다.
간미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맞아요. 소석이는 늘 정신없이 바쁜 것 같아요. 아직 자기가 젊은 줄 아나 봐요. 큰며느리가 예전에 저한테 슬그머니 말한 적이 있는데, 소석이의 퇴직 시기가 늦춰지지 않았으면 하더라고요.”
하지만 고영량의 업무 능력이 워낙 뛰어났기에, 황제는 그의 퇴직 시점을 좀 늦추려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여기까지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하인이 와서 아이들이 문안하러 도착했다고 알려 주었다.
* * *
고청운과 간미가 안채로 들어갔을 때, 실내는 이미 크고 작은 사람들로 가득 차서 새까맣게 보였는데, 기본적으로 모두 여인들과 어린애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이가 좀 많은 사내들은 이미 출근길에 나섰거나 서당에 가 있었기에 아침에 문안 올 수 없었고,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사를 하러 오고는 했다.
물론 매일같이 이렇게 북적거리는 것은 아니었다. 초하룻날과 대보름날을 빼면 평소에는 한 가족씩 차례를 돌아가며 인사를 하러 오고는 했는데, 그렇지 않는다면 모인 사람이 많아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문안이 끝나자 고청운은 사내아이들을 데리고 정자로 나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고청운은 아이들에게 어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묻고 아이들의 학습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간단한 질문과 대답을 들은 뒤, 어린아이들과 함께 신문을 읽으며 어린아이들의 옹알거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애썼는데, 이런 시간은 그에게 있어서 매우 즐거웠다.
이날 고청운은 신문을 보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당장 사람을 시켜 먹물을 갈게 하여 책론 문제 하나를 써 내려갔고, 그중 6살쯤 된 어린아이를 향해 말했다.
“단단(蛋蛋)아, 네 아버지와 숙부들이 돌아오거든, 네가 이 문제를 그들에게 전해주고, 이틀 안에 답안을 작성하여 내게 보이라고 하거라.”
이 아이는 고전각의 장남으로, 위로 딸만 여럿을 보고 낳은 아들이라 다른 사촌들보다 나이가 어린 편이었다.
관행적으로 고영량과 고영진 일가의 장남은 고청운의 곁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했는데, 이런 관행이 생긴 이유는 첫째로는 간미와 고청운이 적적해할 것 같아서였고 두 번째는 그들 모두 고청운의 교육 능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당연히 매우 기분이 좋았다.
단단이는 이 말을 듣자마자 작은 얼굴을 엄숙하게 굳히더니 얼른 정중히 문제가 적힌 종이를 받아 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증조할아버지, 안심하세요. 제가 아버지께 전해드릴게요.”
그는 아버지와 숙부님들이 문제를 받아들 때마다 침묵하던 것이 생각나 입을 가리고 웃고 싶어졌다.
‘헤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숙부님들이 진사 시험에 합격하면 더는 시험 문제를 내지 않으실 거라 생각하셨겠지?’
남몰래 입을 가린 채 슬쩍 웃고 있던 단단이는 자신 또한 이후 이 어르신들의 뒤를 밟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 * *
바깥에 설치된 정자에서는 고청운이 현손(*玄孫: 증손자의 아들 또는 손자의 손자)들과 놀고 있느라 이따금씩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채에서는 간미가 며느리, 손자며느리, 증손자며느리 등과 어울리고 있었다.
그녀 같은 나이에는 이미 호강이나 누리며 살 때였다. 무엇보다 고씨 가문의 상황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으니, 크게 걱정할 것이 없었다. 마치 집안의 수호신과도 같았던 그들 두 노인은 자손들의 일에 크게 간섭하지 않았는데, 혼처를 구할 때나 과거 시험, 승진 같은 중대한 일이 있을 때나 비로소 나서고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설령 앞에 나선다고는 하더라도 대부분 아이들의 의견을 경청할 뿐, 주로 아이들의 부모나 아이들 스스로가 결정하게 했다. 고씨 가문에 근본적인 문제를 끼치지 않는 한, 고청운은 그 결정에 별로 반박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 두 노인의 처사는 매우 공정하고 일 처리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기에 아이들도 매우 좋아했는데, 어떤 때는 부모에게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오히려 고청운이나 간미에게는 털어놓기도 하면서 그들의 생활은 매우 떠들썩하게 이어졌다.
“담씨네 집은 지금 분가 문제로 시끄럽다는데, 친형제 간에 소송으로까지 일이 번질 뻔했대요. 일이야 이제 겨우 해결을 보았다지만 남들에게 우스갯소리를 듣게 되었지 뭐예요! 이번 사건이 경성의 몇몇 소보에도 기사로 실리는 바람에 악명만 드높이게 되었어요.”
남은 여인들은 여자아이들을 족학으로 공부하러 보내고 나서 경성에 도는 풍문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씨 가문의 사내들이 아내를 한 명만 둘 뿐 첩실을 두지 않아서인지, 고택의 여인들은 한가할 때 종종 모여 항간의 낭설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여러 주제를 찾아 이야기꽃을 피우고는 했다.
만약 풍문의 중심에 선 가문이 자신들의 집안과 갈등이 있었다면 더욱 이야기하기가 좋았다.
“아휴, 당초 담 노인께서는 우리 집 어르신과 같은 해에 진사 시험에 합격했는데, 그때 두 분의 석차가 비슷했었다지요. 뜻밖에도 담 노인께서 하직하시고 자손들이 20년 동안 두 번이나 분가 문제로 일을 낼 줄은 몰랐어요. 이번에 분가 문제로 형제간의 정도 다 무너졌대요. 듣자 하니 형제들 집안 중에 한쪽은 고향인 소주로 아예 이사를 가버린다는 이야기도 들리더군요.”
고전각의 며느리가 말했다.
영요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간미를 바라보았고,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는 그녀를 보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랫동안 시어머니를 곁에서 모셨던 그녀는 고영량을 통해 담자례와 시아버지의 젊은 시절에 있던 불유쾌한 일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10여 년 전 담자례가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의 고씨 가문과는 접촉이 줄어들게 되면서 잠시 그 사건에 대해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