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86)화 (486/504)

외전 1화

2005년 6월 1일 저녁 7시, 장기적으로 많은 방문자를 유지하고 있는 인기 블로그 <해각(海角)>의 오늘자 새 게시글의 제목이 <널리 알려라! TV 드라마 ‘고청운’의 남자 주인공, 드디어 캐스팅에 성공했다는데! 과연 사실인가?> 라고 밝혀지자, 이번 타이틀 발표는 또다시 큰 파장을 일으키며 네티즌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게시물이 올라간 지 채 30분도 안 되어 곧바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게시물 작성자의 글: 이 글의 작성자인 저는 오늘 드라마 <고청운>의 촬영 크랭크 인을 시작하게 되었단 소식을 접했는데요. 남자 주인공까지 찾은 마당에 내부 소식을 알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좀 알려 주세요. 도대체 누가 고청운 역할로 캐스팅된 건가요?]

이 글을 작성한 여자는 글을 게재하고 나서 곧바로 포도를 씻으러 잠시 자리를 떠났는데, 잠시 후 씻은 포도를 들고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마우스로 새로고침 버튼을 가볍게 눌러보고는 깜짝 놀랐다.

글을 올린 지 몇 분도 채 안 된 게시물에 이미 몇십 명이 댓글을 남긴 것이었다. 

‘고청운이라는 인물에 대한 국민적 인지도가 아무리 높다고는 하지만, 이건 반응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댓글1: 진짜야? 매년 <고청운>을 찍겠다고 말은 나왔었지만, 매번 사람들의 추측이었을 뿐이었잖아. 항상 소문만 무성할 뿐, 어디 내가 다시 속나 봐라.]

[댓글2: 윗분 너무 절대적이라는 말투신데요. 이번엔 진짜일지도 모르죠. (간사하게 웃는 얼굴 이모티콘)]

[댓글3: 그래서 진짜라는 거야, 아님 가짜라는 거야? 두 번째 댓글 다신 분, 보아하니 내부자이신 것 같은데 정보 좀 풀어 봐요. 안 잡아먹을 테니!]

[댓글4: 안 잡아먹을게요+1]

[댓글5: 안 잡아먹을게요+2]

…….

[댓글12: 못 참겠다, 두 번째 댓글 다신 분이 말씀을 안 하시니 저라도 해야겠네요. 확실히 이번에는 드라마 <고청운>이 정말로 시작할 것 같아요. 음, 이번 드라마에서 보여드리고자 하는 내용은 고청운의 일생에 대한 것으로, 사(谢) 감독을 초빙해서 촬영한다는데, 실제 고씨 후손을 실증 고문으로 요청해서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충실히 재현하겠다고 하네요. 드라마는 이미 편성 예정이 되어 있다고 하고요.

제가 하는 말은 진짭니다. 이게 거짓말이라면 저는 고자가 될 거예요. 올해 대학교 학기말 시험 고등 수학 과목에 불합격할 거라고요!!!]

[댓글14: 12번째 댓글 다신 분, 진짜 독하시네요. 당신이 여자만 아니라면, 믿어줄게요! 그래서 말인데, 그럼 누가 고청운 역을 맡을까요?]

[댓글15: 저는 상관없는데, 다만 고느님은 제 워너비라고요. 만약 남자 주인공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캐스팅 되었다면, 저는 단호하게 배척할 겁니다! 절대로 보지 않겠어요!]

[댓글17: 그러니까요! 그간 봐온 연예인 중에서 우리 고 문정 같은 분을 연기할 사람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던데. 진짜 아무나 불러다 드라마를 찍었다가는 우스운 꼴 나기 십상일 거예요.]

[댓글18: 그게 바로 <고청운>의 촬영이 그렇게나 오랫동안 시작되지 못한 이유죠. 고청운이 어떤 모습인지 다들 정확하게 잘 알고 있으니, 인물이 안 되거나, 인품이 안 되거나, 연기력이 성에 차지 않거나, 나이가 맞지 않거나, 학식이나 성적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라면 근본적으로 저 배역을 소화할 수가 없을 겁니다.] 

[댓글20: 사실 제 생각으로는 고청운이라는 인물에 대한 전기가 그간 영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이유가 고씨 가문 후손들이 계속 생존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 싶은데요? 현존하는 가문의 조상을 영상화하는 것이니, 후손들의 동의는 거치고 찍는 거겠죠?]

[댓글21: 위에 댓글이 정답인 듯!]

[댓글22: 정답이라는데 한 표 추가요. 이게 주된 이유겠죠. 고청운의 인생은 그야말로 우리에게 더운 피를 끓게 만드는 입지전이잖아요. 관전 포인트도 많고, 가히 인생 역전자의 일대기라고 불릴 만하죠. 역사적으로 워낙 유명한 분이라서 그 사람을 모델로 극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았을 텐데, 아쉽게도 고씨 가문의 후손이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서 이쪽으로 시나리오가 만들어질 때마다 다 허락하지 않고 있었대요.]

처음 글을 게시한 여인은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서 암암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고청운 일가의 후손들은 신중국(新中国)의 건국 후에도 여전히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분명 자신들의 ‘고청운’이라는 선조와 관련된 일에는 매우 신중히 행동할 것이었다. 

몇 년 전에 발표된 역사 인물의 전기의 경우, 실제 역사와 심각하게 동떨어져 있었다. 줄거리 역시 주요 줄거리와는 상관없이 배우가 익살스런 짓을 하거나 무술 실력이나 뽐내어 보이는 등 지나친 연기를 해대는 통에 사람들이 볼수록 엄청나게 비난을 했었다. 

특히 <육훤(陆煊), 서양으로 가다>라는 작품의 경우, 주인공인 육훤이 머리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무대뽀로 그려졌고, 어느 나라에 도착하던지 러브라인을 그려대는 통에 결국 육씨 가문의 후손들로 하여금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녀는 포도 한 알을 집어 먹고 다시 한번 새로고침 버튼을 클릭하여, 달리고 있는 댓글들을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댓글24: 저는 중학생인데요. 형님, 누님들, 혹시 고씨 가문 후손들이 많이 세요?]

[댓글28: 그런 건 아니야, 내 동기 친구 중에 고청운의 직계후손이 하나 있는데, 정말 교양 있고 얼마나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대하는지 행동도 아주 조신해. 그 사람들 의식주 역시 일반 사람들과 비슷하더라고. 내가 무심코 그 친구의 신분을 알지 못했더라면, 걔가 고씨 가문의 후손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거야. 그 녀석 할아버지는 재무장관이기도 하지. 다른 장관의 금수저 자식들에 비하면 정말이지 청렴한 선비들 같다니까.]

[댓글29: 뜻밖에 명문대생이 나타났다! 위에 댓글 다신 분, 분명 경성대학교(京城大学) 학생이죠? 내가 듣기로는 고 부장의 손자 하나가 경성대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하던데. 그나저나 황립 서원이 경성대학교의 전신(前身)이라면서요? 고청운도 황립 서원의 원장을 역임했었잖아요. 고씨 가문 문중의 사람들 중에서 황립 서원 졸업생 출신이 많은 게, 입학시험에 합격할 수만 있다면 다 황립 서원을 다닐 수 있어서 그렇대요. 그럼 누가 계산 좀 해봐요, 그 집안에 도대체 몇 명이나 경성대학교를 나온 거죠? 고씨 집안사람들은 대대손손 모두 동문이겠네요, 하하.]

[댓글30: 그건 너무 계산하기 어려운데요? 고씨 집안사람들은 대부분 조용히 지내니, 고씨 문중의 자선기금 활동이나 뉴스, 아님 문화 모임 등에서나 겨우 볼 수 있잖아요. 그마저도 없었다면 관련 소식을 접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댓글33: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저는 정말이지 고청운이란 사람에게 애증이 있어요. 아! 곧 기말고사가 다가오는데, 제 수학 점수는 이제 어쩌죠? 수학 과목에서 나오는 미적분은 진짜 제 IQ를 의심하게 만든다고요! 에휴,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이제 고청운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수학 교재를 열자마자 고청운이 정리한 이론과 고청운의 공식들이 바로 눈에 들어오지 뭐예요. 우우……. 학창 시절 동안 고청운의 지배하에 있던 그 두려움이 다시…….]

33번째 댓글에 적힌 말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는지, 그 아래에는 사람들이 분분히 관련 의견을 내세우느라 겹겹이 댓글들이 달렸다. 

[그가 저명한 수학자였으니 기하, 대수 쪽으로 그의 흔적이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가는데, 왜 국어 교과서에까지 그 사람의 이름이 출현하는 걸까요. 진짜 이해 안 돼.]

[학창 시절에 <해권론> 문장을 그렇게 오랫동안 외우고 다녔는데, 수능 볼 때 또 그 지문을 마주쳤어요. 독해 문제를 푸느라 혼났다고요.]

[언어 과목 지문에서는 그나마 나은 편이죠. 역사 지문으로 그 이름을 마주했을 때가 진정한 공포라고요, 안 그래요? 하 왕조에서 고청운이라는 이름은 피해 갈래야 피해갈 수가 없죠. 예를 들면 고청운이 제1차 전쟁을 끝낸 후 체결한 조약이 무엇이고 이 조약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 사건은 어떤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 또 고청운은 어떤 책을 번역했고 이 책들이 후일 어떤 공헌을 했는지, 그가 출항했을 적에 어떤 나라들을 거쳐 갔는지, 이들은 어떤 역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

하늘만이 제가 자꾸 그 내용을 혼동하는 이유를 아실 겁니다. 저는 역사를 전공하는 일인으로서, 고청운이 문하생들을 이끌고 어느 해에 증기기관을 고안해 냈는지, 어느 해에 시멘트를 고안해 냈는지, 어느 해에 그린 그림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지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요…….]

[이제 그만 말해요, 위에 댓글이 제 아픈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고요. 미술전공자로서 말해 주겠는데, 저는 그림 공부를 하다가도 그 사람의 존함을 마주한다고요! 다행히도 제가 대학에 붙어 보니 우리 전공생들은 수학은 안 배워도 돼요. 저 좀 웃어도 되죠? 하하.]

[위에 댓글 다신 분,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면 안 되죠. 당신이 공부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해야 한다고요. 저는 미적분을 공부할 때마다 제가 어떻게 대학에 들어갔나 싶어요. 이것들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 고청운은 어떻게 이런 과정을 유도해내고 이론을 세웠을까요? 보름 앞으로 다가온 기말고사를 생각하면 인생 참 재미없고 절망만 가득하네요…….]

[절망하는 사람, 여기 한 명 추가요. 에이, 저는 고느님을 생각할 때마다 제 인생의 워너비로 삼았었는데, 학과 과목에서 자꾸 출현하는 그분의 존함을 보면 망설여집니다……. 저 진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하하, 위에 댓글 쓴 분께 제가 한마디 할게요. 저도 고청운이 제 평생의 워너비예요. 저는 역사 전공자인데, 예전에는 고청운에게 별 호감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어느 분야든지 다 그의 이름이 언급되더라고요. 결국 전 근대사를 배울 때 그가 쓴 일기를 다 읽고 나서 정말이지 그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고청운은 정말 대단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에요. 또 그는 매우 명석하고 예지가 있는 인물인데, 목표도 매우 확고해 이를 실행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죠. 예를 들면, 고청운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매일 자기 전에 책을 읽고, 매일 운동을 하는 습관을 고수했다고 해요. 생활이 매우 규칙적이었는데, 그는 자제력이 강해서 어느 시간대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까지 모두 다 계획 된 대로 행동했다고 합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무슨 로봇이라도 되냐며 뭐라 했다고 하지만, 저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생활, 여가, 학습, 업무를 모두 잘 배치하고, 심지어 계속 이런 생활을 유지해 나갔잖아요. 성공은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되는 법, 이런 그가 근대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된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아, 역사 전공자들은 알고 보니 고청운의 일기에 대해서도 배우는군요?]

어떤 사람들은 또 이 일에 크게 놀라기도 했다. 

[물론이죠, 하 왕조가 322년간 건재했는데, 고청운은 122세까지 살았으니 하 왕조의 3분의 1을 함께 해 온 셈이잖아요. 그의 일기에는 하 왕조 건국 초기 때의 풍속이나 관습, 물가 등과 관련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일기의 후기 부분에 이르러서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흔적도 많이 담고 있어요.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조차 그의 일기 속에 기록이 잘 되어있습니다. 그중에는 지인들과의 대화 내용도 포함이 되어있는데, 그가 대화 중에 전 왕조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을 하고 있기에 우리 후손들이 역사를 연구할 때 매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어쨌든 고청운의 일기는 역사적 가치가 높아요. 

우리에게 정말 다행인 건 고씨 가문의 후손들이 그의 작품을 거의 완벽하게 잘 간직해 오고 있었다는 점이죠. 또 하나 더 다행인 건 전란 중에도 고택에 아무도 침입을 하지 않았다는 건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소중한 역사 자료가 다 없어졌을지도 몰라요.]

[윗분 말이 맞아요, 그 일기는 저도 읽었어요, 일기를 다 보고 나서야 고청운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수 있었지요. 저는 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완벽한 사람도 아니고, 계속 성공만 거듭해 온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가 노년에 학생들을 이끌고 화학 분야를 연구하고, 시멘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때, 계속해서 실수를 반복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었지요. 하하, 저는 그가 단지 역사에만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진짜 피와 살로 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생애를 자세히 알게 된 후, 저는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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