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84)화 (484/504)

484화. 오랜 벗

3년 후, 고청운의 복상 기간이 끝이 났다. 이때는 둘째 손자와 셋째 손자가 이미 수재에 합격한 후였다. 그와 간미는 서둘러 상경하여 살자는 아들들과 딸의 서신을 연달아 받았는데, 고영진은 그들이 경성으로 올라오지 않겠다면 자신이 벼슬을 버리고 내려가겠다고까지 했다.

작은아들이 가까스로 정5품 공부낭중으로 승진하고, 큰아들은 계속 정4품 지부직에 지방관으로 있는 것을 생각하면, 고청운과 간미는 결국 이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집안일을 잘 정비한 고청운은 고향에 하겸죽도 있으니 구지서원의 일에 대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방자명은 고청운과 함께 상경하기로 했는데, 그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 그의 유일한 아들인 방서가 작년에 어렵사리 진사에 합격했던 것이다. 설령 경성에 왕비인 방서의 누이가 있더라도 방자명은 늘 직접 아들 곁을 따라가 그를 봐주고 싶어 했다. 

요즘 들어 사람이 늙어서 그런가, 그는 아이들과 함께 하고자 할 때가 많았는데, 아무래도 교통이 불편해 몇 년에 겨우 한 번 밖에 보질 못하니 마음이 몹시 울적한 듯했다.

* * *

두 가족은 이렇게 함께 상경하게 되었다. 고청운은 경성의 익숙한 성문이 눈에 들어오자, 자신이 경성을 떠난 지 12년이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청운의 귀경 소식은 작은 파장을 일으켰고, 경성에 도착한 지 며칠 안 돼 찾아오는 지인들이 또다시 줄을 이었다. 특히 사장정은 그를 만나자마자 그를 향해 한바탕 울음을 쏟아냈다.

“나는 자네가 진짜 월성에 처박혀서 다시는 안 나오는 줄만 알았네! 평생 다시는 자네를 못 보는 줄만 알았어!”

사장정은 얼굴에 선명한 주름이 생겼는데도 여전히 준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형상을 알아보기가 좀 어려웠다.

“떠날 때는 곧 다시 귀경한다고 하더니, 12년이나 떨어져 있게 될 줄이야. 내가 지금껏 건강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우리는 다시는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네.”

고청운도 감동에 겨워 다급히 말했다. 

“이런 지긋한 나이가 되어서도 아직 눈물을 흘리는가? 진정하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불길한 말은 하지 말게.”

사장정은 눈물을 훔치며 고청운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그는 여전히 안색이 붉고 윤이 나며 흰머리도 귀밑머리만 희끗희끗할 뿐 심지어 얼굴의 주름살은 극히 적은 데다 검버섯도 몇 개 안 보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 무슨 보약이라도 먹고 돌아왔나? 이제 막 50대 초반의 나이로 보이는군. 전혀 70을 바라보는 나이로 보이지가 않아.”

경성에서 지내는 사람들 중에서는 몸 관리를 잘하여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포함해 꽤 많이 있었지만, 유독 고청운의 모습은 여전히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자마자 답했다.

“나는 보약 같은 것은 거의 먹지 않았고, 주로 운동과 생활 습관을 규칙적으로 유지했을 뿐이라네. 그리고 마음을 넓게 가지려 애쓰고. 젊은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마음이 젊어진 모양일세.”

고청운의 생각에도 자신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집안 어르신들이 돌아가신 후, 그는 확실히 한동안 의기소침하게 지냈지만, 곧 가족들의 위로를 받으며 다시 평소의 생활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했었다. 또한 집안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에게 당부해 줬던 말들을 생각하면, 다시 마음을 가다듬게 되었다. 원래 마음이 여린 사람도 아니었던 그는 이후 그림과 산술 연구에 몰두하게 되면서 점점 마음이 넓어져 갔다.

“자, 가세, 서재로 가세. 내가 그동안 그림을 많이 그렸으니 한 번 보여주겠네. 보고 의견 좀 내주게.”

고청운은 사장정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을 말해 달라고 조르자 얼른 화제를 돌려 그의 소매를 잡아끌고 서재로 자리를 옮겨갔다.

“내가 자네에게 무슨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겐가? 나는 그림도 못 그리는데.”

사장정은 투덜대면서도 그를 쫒아갔다.

* * *

고청운은 상경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황제가 그를 기억하고 있었는지 그를 황궁으로 불러들였다.

황제와의 담화 후 67세라는 고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황제는 그를 조정으로 복귀시켜 정3품의 예부좌시랑(禮部左侍郞)으로 승진을 시켰고, 정1품 태부(太夫)의 직책을 수여하여 계속해서 입궁하여 황자를 가르치게 했다. 

* * *

성지가 내려왔을 때, 친지와 벗들이 분분히 고택을 찾아와 축하를 해주었지만, 방자명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따로 고청운의 집으로 달려와 물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설마 폐하께서 자네의 퇴직 시점을 더 미루려고 하시는 겐가?”

이런 선례는 있었던 적이 없었다. 만약 어떤 관원이 퇴직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황제가 보기에 해당 관원에게 아직 더 직무를 행할 수 있는 정력이 있다고 생각했거나, 혹은 잠시 대체 후임을 정하지 못했을 경우, 특별히 특지를 내려서 해당 관원의 퇴직을 미룰 수는 있었지만 말이다. 

물론 이런 대우를 받는 관원은 틀림없이 품계가 높고 황제에게 잘 각인된 인물이어야 가능했다. 

“아마도 그건 아닐 겁니다. 폐하께서는 그저 임시방편으로 이런 조치를 내리신 듯하네요. 마침 예부좌시랑 자리도 공석이니, 이는 그저 우연의 일치인 셈이라고 봐야겠지요.”

고청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전에 황제가 그를 궁으로 불러들였을 때는 그저 상경하는 여정에서 마주한 지방의 풍토나 인심 혹은 현지의 지방 특색 같은 것들에 대해서나 이야기하다 왔을 뿐이었는데, 아마도 자신의 어떤 점이 황제를 자극해서 황제가 다시 자신에게 관직을 내린 것 같았다. 

고청운의 생각에 영평제는 괜찮은 황제였다. 적어도 그는 민생의 고통에 대해 이해가 있는 황제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는 여러 경로를 통해 민간의 사정을 살펴서 이해하고자 했는데, 이는 자신 같은 갓 귀경한 전 관리까지 궁으로 불러들여 하문을 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었다.

“퇴직 시점이 지연되지는 않아야 할 텐데.”

이것은 고청운의 너무나도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는 조금도 아침 조례에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비록 나이가 들어서 잠이 적어졌다고는 하나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조례에 나갈 생각을 하니 좀 괴로웠던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남의 명령으로 인해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일도 아닌데 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이번 알현 자리에서 황제가 뜻밖에도 자신에게 각 황자에 대한 평가를 하문하기에, 그는 순간 경각심이 생겼다. 물론 그 당시에는 황자들 하나하나를 다 칭찬했을 뿐, 다른 군말을 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는 아직 이 정도의 정치적 감수성은 잃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함부로 황제의 집안일에 끼어들어 배불리 먹고살건 더욱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자네는 폐하의 마음에 들어있는 인물이라는 거지.”

방자명은 조금 질투가 나는 듯 고청운을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읊조렸다.

“아니면 자네 외관 때문에 더 눈에 들었던 것인가?”

사람은 그가 처한 위치에 따라 기상이 달라지고, 먹고 입는 것에 의해 몸이 달라진다고 했다. 지금 보이는 고청운의 겉모습은 그의 젊은 시절과 큰 외향적 변화가 없어 보였는데,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적당한 몸매에, 허리가 여전히 꼿꼿했으며, 눈에는 총명함이 서려 있었다……. 

방자명은 늘 자신의 오랜 벗이 비록 나이는 많아졌지만, 보통 다른 비슷한 연배의 늙은이들보다 훨씬 원기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집 안사람조차 일전에 자신의 배를 만지며, 오랜 벗 좀 본받으라며 너무 먹어서 배가 나오면 보기 좋지 않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는 좀 답답해졌다. 그들이 젊었을 적에 함께 길을 나서면 아가씨들이 눈이 빠져라 쳐다보던 건 분명 자신이었는데, 지금 함께 거리를 나서면 자신들과 나이가 비슷한 노부인들이 쳐다보는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오랜 벗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익을수록 달다는 것인가? 아니면 풍수가 뒤바뀌어 운이 이동해 버린 것일까?

고청운은 당연히 방자명이 지금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기에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제가 말수가 적고 조용한 편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요.”

지금은 황자들의 나이가 많이 차 있었다, 6년 전 태상황이 붕어했을 때, 황제는 바로 적자를 태자로 세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파만파 새로운 황위 다툼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황제의 자리라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었기에,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방자명은 입을 실룩거리기만 하면서 고택의 화원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내가 요즘 잡기(*杂记: 문체의 한 종류)를 쓰고 있는데, 다 쓰고 나면 자네가 한 번 봐주게.”

큰딸과 육황자가 혼인을 하고 새 황제가 즉위하고 나자, 그는 자신이 앞으로는 더 크게 올라갈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아들 방서도 한림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방자명은 평소에 손자를 가르치는 일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 고민을 거듭하다가 지방 각지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집필해 보고자 했다. 각인을 거쳐 정식으로 판매하게 되지 않더라도 자손들에게 남겨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던 것이다. 

사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오랜 벗이 저서를 남기고 작품을 만들어 내고있는 걸 매우 부러워했다는 점이었다. 입덕, 입언, 유공(*立德,立言, 立功: 한 사람이 덕을 쌓고, 공을 세우고, 유훈을 남김)이란 모름지기 문인이 가장 추구하고자 하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그의 벗이 지금까지 쌓은 업적을 보건대, 그의 업적은 이미 하 왕조의 역사에 큰 획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았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모든 문인들에게 있어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건 당연하지요.” 

고청운은 한마디로 승낙했다. 그는 며칠 전 사장정을 이끌어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었던 날의 일이 떠올리며, 그날의 사장정처럼 ‘응, 응, 그래그래.’ 하는 맞장구나 치면서 얼렁뚱땅 듣는 척만 하며 넘어가지는 말자고 마음먹었다.

두 사람은 이어서 최근의 화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 좌승상이 장수를 누리고 향년 78세의 나이에 편안하게 집안에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받게 되었는데, 이는 지극히 명예로운 일로, 고청운 등 다른 문관들이 부러워해 마지않는 일이었다. 

“자네가 죽고 나면 어떤 시호를 얻게 될까? 품계가 좀 더 위로 올라야 할 텐데.”

여기까지 얘기를 마친 방자명은 고청운의 걱정을 대신 해주기 시작했다.

대신들에 대한 시호는 예로부터 있었던 것으로, 송대 이래 문인들은 관직 생활하면서 시호를 받기를 꿈꿔왔는데, 그중에 제일 받고 싶어 하는 시호는 ‘문정(文正)’이었다. 이는 문인으로서 최고 영예를 의미하는 것으로,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황제와 관계가 비교적 가까운 편이었다. 또한, 당대에 그 영향력이 매우 큰 문인들이라야만 이런 시호를 받는 것이 가능했다. 

누구나 조정으로부터 자신이 이 시호를 받을 수 있도록 서열이 높기를 바랐는데, 이는 역사서에 기록되어 조상을 빛내는 업적이 되는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 왕조에서부터 시호를 내려주는 것이 점차 규범화되기 시작하더니, 본 왕조에 이르러서는 품계가 1품 대신이 세상을 하직했을 때 황제가 해당 관리의 시호 수여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지침이 생겼다. 품계가 1품 이하인 관리의 경우에는 특지가 내려와 시호의 수여를 명하지 않은 이상, 시호를 부여받을 수 없었다. 

시호를 받는 경우에도, 생전에 한림원에 몸을 담거나 혹은 대학사라는 칭호를 수여 받은 사람들만이 ‘문(文)’자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文)’자의 시호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문정(文正)’이라는 시호는 가장 얻기 힘들었다. 이 역시 황제가 특별히 명령을 내리는 특지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을 뿐, 군신들이 아무리 의견을 낸다고 하여 수여될 수 있는 시호가 아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