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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483)화 (483/504)

483화. 작고(作故)

시간은 물 흐르듯 일 년 또 일 년이 흘러, 어느덧 고청운은 64세의 나이가 되었다. 그해 여름과 가을에 고대하와 소진씨를 잇달아 떠나보내게 되자, 그의 좋았던 건강으로도 이런 현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고대하와 소진씨는 평온하게 지내왔는데, 86살이 되자 이미 고령이라 약간씩 병치레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세상을 떠날 때는 고통에 잠겨서가 아닌 자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모습을 보며 매우 만족해하며 눈을 감았다.

소진씨는 여름에 떠났는데, 그녀의 장례를 마치고 고대하가 병으로 쓰러지자 이번에는 고영량과 고영진, 고경이 모두 돌아와 그의 곁을 지켰다. 아이들은 조정에 친지 방문 휴가를 내고 돌아와 있었고, 고영진만이 소진씨의 장례를 놓쳤었는데, 그래도 고대하의 마지막 길은 지켜드릴 수 있었다. 

“전자야, 이 아버지는 한평생 고생도 해 보고, 호강도 누려 보았구나. 너라는 아들이 있어 준 덕에 이 아비는 한평생이 헛되지 않았어. 헛되지 않았다. 정말 살만한 세상이었단다!”

임종 전 어떤 예감이 들었는지 고대하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계속 고청운을 끌어당겼다. 그는 온 방 안을 가득 메운 자손들을 바라보고 마른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전자야, 슬퍼하지 말거라.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네 어머니 곁을 지켜주러 가는 거란다. 네가 잘살아야 해.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 우리 집안을 빛내려면, 네가 더 오래 살아야 한다. 아버지가 지하세계에서 너를 지켜줄 것이야.”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고청운은 무너져 오열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버지, 부탁드려요, 제발 이렇게 부탁드려요. 떠나가지 마세요. 아버지마저 가시면 저만 남습니다!”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더라도 막상 이 순간이 닥치자, 고청운은 자신이 생사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스스로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생로병사란 인지상정이지 않으냐, 우리는 벌써 이만큼 나이를 먹었고, 이는 당연한 수순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고대하는 떨리는 손을 들어 아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평소에는 손자와 증손자들을 그렇게 아끼고 사랑을 쏟아주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 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역시 나는 우리 아들을 제일 사랑하는 구나.’ 

이 아들은 그의 인생에 희망을 주고 수많은 영광을 안겨 주었다.

“울지 말거라, 이런 모습을 아이들한테 보이면 웃음 살라.”

고대하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네 자신을 잘 돌봐야 한다. 너무 슬퍼 말아라. 며느리하고, 아이들과 잘 지내야 한다. 몸조심하고.”

고청운은 여전히 울고 있었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외쳤다.

“아버지…….”

고청운의 뒤에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흐느꼈다. 

결국 사람의 힘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은 자꾸만 흘렀고, 고대하는 집안 가득 찬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 * *

고대하의 장례를 마친 후 고청운은 완전히 살이 빠져 반쪽이 되었다. 그는 한동안 정신이 혼란하여 집안을 돌아다닐 때면 늘 고대하와 소진씨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만 같았고, 시도 때도 없이 부모님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얼굴이 자꾸만 초췌해져 갔다.

다행히 그의 곁에는 아직 아내와 아이들이 곁에 있어, 고청운은 그들의 만류로 다행히 빠르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지난번에는 당신이 저를 위로해 주었는데, 지금은 위로받을 차례가 되었네요. 아이들이 하루 종일 당신을 걱정하고 있어요.”

간미가 그를 위로했다.

앞서 2년 동안 간지원과 방 씨 역시 연이어 세상을 떠났는데, 한 사람은 병을 앓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마음이 울적해져서 큰 병을 앓게 되어 세상을 떠났다. 계산해 보니, 이 6, 7년 동안 양가의 노인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니, 고청운에게는 정말 너무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또 이번 연이은 장례로 인해, 방침이 사람을 해치는 팔자라 이렇게 된 것이라는 말이 나돌며 꼬맹이의 신변에 또다시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었다. 이전에는 그나마 가끔 아이를 보러 오던 방씨 가문의 여섯째 할머님마저 지금은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고청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를 후계자로 데려왔지만 그렇다고 혈육인 친할머니나 친형과 완전히 분리시킬 생각까지는 없었었다. 서로 친척으로라도 남아 가까이하게 해주면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참 아쉽게도…….

고청운은 자신의 생각처럼 일을 행할 수만은 없으니 격변한 상황을 보고도 더 이상 그들 가족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했고, 단지 집안 하인을 입단속 시키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한 번 경고한 뒤, 다시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단속했다. 그러자 이제 그 누구도 이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는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방침은 성실한 아이로 독서를 매우 좋아하는 아이였다. 다른 사람도 감히 이 아이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으니, 아이에게는 어떠한 영향도 가지 않을 것이었다. 

“다 내 잘못이오. 그냥 삶이 너무 많이 변하여 순간 너무 허전했을 뿐이라오.”

고청운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그녀의 젊었을 적 새까맣게 윤이 나던 검은 머리카락이 이제는 뿌리마저 하얗게 변해 있다는 사실에 자못 슬퍼졌다. 

‘나와 아내도 젊지 않은데 어른들께서 떠나시는 일로 우리가 이렇게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아이들도 우리가 언제 어떻게 자신들 곁을 떠날지 몰라 많이 슬퍼했겠지.’

그동안 아이들의 눈에 나타나 있던 불안감이 생각나 고청운은 입에 힘을 주어 입술을 앙다물었고, 그간 너무 제멋대로 굴면서 가족들을 배려하지 못한 것이 이제 속상했다.

“저는 안 그랬나요?”

간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시부모님은 지금까지 그녀와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고, 줄곧 사이좋게 지내오다가 지금 이렇게 갑자기 가버렸다. 매번 함께하던 식사 시간에 몇 자리가 텅 비어 있으니, 누가 봐도 이 광경이 슬프지 않겠는가?

“어르신들 모두 편안하게 가셨으니 호상이기도 합니다.”

간미는 죽기 전까지도 병고에 시달렸던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정말 시부모님이 병치레 없이 떠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신 말이 맞소.”

고청운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우리도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건강 관리를 잘합시다. 정말이지, 나는 건강 관리하는 것에 가장 좋은 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오. 웃어른들이 장수하시고, 우리가 그 뒤를 이어 생활해 나가면, 분명 일맥상통하며 그들처럼 장수할 수 있을 것이오.”

그는 정말 집안에 장수하는 유전형질이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집안 어르신들에게 물어봤을 때 집안 어른들이 병 때문에 아프지 않으신 경우는 보통 50~60세까지 살았다고 했던 것이다. 고대에는 이것도 많이 장수하는 편이었다. 

특히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는 숙부인 고이하를 포함해 다들 장수했는데, 숙부도 70대까지 살아 있었다. 

간미는 어리둥절해하다가 바로 반응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좋네요. 밤이 깊었으니 어서 쉬세요. 당신, 이미 며칠 동안 눈을 제대로 붙이지 못하셨잖아요.”

그녀는 우선 그에게 맞장구를 쳤다. 부군은 예전에 자기 전이면 반드시 매일같이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책을 안 읽고 있기에 그녀에게는 이런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다.

고청운이 자신의 나이를 계산해 보니 아직 겨우 64살밖에 안 되었다. 그래, 그는 아직 십수 년 정도는 더 좋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자신이 아직도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 * *

다음 날, 정신적으로 많이 회복되어 보이는 고청운을 발견한 그의 아이들은 드디어 마음을 짓누르던 바위 하나를 땅에 다시 내려놓은 것만 같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 고청운은 3년간 다시 복상 기간을 지켜야 했다. 이때 고영량이 다시 상경하면서 경성에서 같이 살자는 의견을 묻자, 고청운은 잠시 생각해 보고는 그 의견을 거절했는데, 지금 이곳을 떠나기가 아쉬웠던 것이다. 

“구지서원 때문에 그러십니까?”

고영량이 그를 추궁하며 물었다.

“아니다, 아버지는 나고 자란 동네에서 좀 더 지내고 싶을 뿐이다. 나는 소년 시절에 집을 떠나 몇십 년 동안 바쁘게 외지에서 지냈지 않더냐. 이제 3년 더 이곳에서 지내보고, 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복상 기간이 끝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꾸나.”

고청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구지서원은 이미 본궤도에 올라있었는데, 임산현, 심지어 임양부에서까지 아이들을 보내오고 있었다. 게다가 구지서원을 위해 마련한 점포와 밭이 있어 세 가문에서 더 이상 돈을 보태지 않아도 수지타산이 맞게 운영되고 있었다. 동시에 이곳은 월성에서 산술 학문의 교류의 장으로 발돋움했는데, 외지에서까지 학자들이 몰려와 몇 개월 혹은 1년 반 이상씩 머물며 서로 교류하고 뭔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이곳을 떠나고는 했다. 

이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자, 도산사와 서원 부근에 작은 장터가 형성되고 상인들이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이곳이 번화하게 된 것에는 서원이 그 몫을 톡톡히 했다.

인근 부지는 모두 고청운이 사들였는데, 간단하게 상가들을 지어 임대가 가능하게 구성했기 때문에 앞으로 이곳이 진정한 시장이나 저잣거리처럼 발달하게 될지는 앞으로 그들의 구지서원이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동생과 제가 더 무리해서 아버지께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아이들 몇 명은 여기에 남겨두고 가려 합니다.”

고영진과 고영량이 눈을 마주치더니 대뜸 말했다.

이 두 사람은 요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자식들을 보았지만 병으로 인해 요절하는 아이도 생겨서, 지금 고영량에게는 아들 둘, 즉 고전각과 고전박만이 남아 있었다. 

고영진은 1남 1녀를 두었는데, 딸의 이름은 고전열(顾传悦)로 이미 시집을 갔는데 남편은 고영진의 상관인 공부(工部)시랑의 손자였다. 손녀사위는 진보적이었고 소년 거인 출신이었다. 남동생은 고전석(顾传硕)으로, 고전박과 마찬가지로 지금 나이가 16살이었다. 두 사람의 생일은 몇 달 차이 나지 않았다. 

고경에게는 2남 1녀가 있었는데, 큰아들은 지금 며느릿감을 물색 중이었다. 

고청운은 아들들이 자신처럼 일부일처만 고집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 역시 첩실을 두지 않아 당연히 아이는 적지만 손자와 손녀들을 모두 잘 가르쳤다.

그에게는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이 아이가 많고 적은 것보다 중요한 일이었기에, 아들딸이 아이들을 여럿 낳는 것보다 잘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아 그 점이 기뻤다. 

“안 된다. 전각이가 이미 거인이지 않느냐? 진사 시험을 한참 준비해야 하거늘. 그동안 내 곁을 충분히 지켰고 서원에도 자주 와주었으니, 이제 문인의 의지를 북돋아 뜻을 펴게 해야지. 여기를 떠나 이제 네 곁에서 일을 보게 하고, 세상 물정을 좀 더 잘 알 수 있게 경험을 쌓아주는 것이 낫겠구나. 안 그러면 나중에 손해 볼 일이 생기고야 말 테니. 이제는 세상 경험을 많이 쌓게 해주어야지.”

고청운은 이를 승낙하지 않았다.

큰손자 고전각은 올해 23살로 향시를 세 번이나 치러 작년에 드디어 합격하여 거인이 되었다. 그는 18살 되던 해에 혼처를 정했는데, 손자며느리는 민성의 학자 가문 출신으로, 두 사람의 나이는 4살 터울이었다. 그들은 작년 말에야 혼례를 치러서 아직 아이가 없었다.

“이 녀석이 아버지 옆에 있었는데, 제게 배울 게 뭐가 더 있겠습니까?”

고영량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에게 세상사에 대해 설명해 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덕에 그는 진사에 합격해서 관직에 입문하기 시작했을 때 적응하기 수월했다. 

“나는 오랫동안 관직 생활에서 멀리 떠나 있었고, 정치 경험도 없으니 전각이는 너를 따르는 것이 더 좋겠구나.”

게다가 부자는 헤어져 산 지 너무 오래였고, 함께 살 기회도 없었다. 고청운은 세 번째 손자인 고전박보다 아무래도 큰손자와 부모와의 사이가 서먹서먹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청운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고영량은 당연히 더 의견을 낼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들 형제는 결국 고전석과 고전박을 고향에 남겨두겠다고 고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모님 곁을 지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그 옆을 지키고 있지 못한 것이 원망스러웠다.

고청운은 두 손자의 나이를 생각하니 과거 시험 준비도 시작해야 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그럼 3년 후에는 귀경하시기로 한 겁니다.”

고영진이 다시 한번 강조했다.

고청운은 말없이 작은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젊었을 때 아들을 하나 더 낳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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