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화. 생각에 잠기다
연 씨가 떠난 후, 고청운 일가는 임계촌으로 돌아가 거주했다. 이전에 방인소와 연 씨를 위해서 임산현에서 머물렀지만 지금은 두 분 다 안 계시지 않은가. 고청운은 이곳에 남아 이웃한 방택을 볼 때마다 마음이 늘 아프고, 불편했다.
게다가 임계촌에는 필경 그들의 고향집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고청운은 궁리를 거듭한 끝에 고대하의 의견을 물어보고는 곧 모두 다 같이 이사를 왔다.
마을 안의 집은 줄곧 하인들이 잘 돌보고 있던 덕에 언제든지 살고 싶으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상태였다.
고청운은 정원에 어릴 때 심어 키운 큰 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했는데, 이는 고대하와 소진씨에게도 더욱 두말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이곳은 바로 그들의 주요 보금자리였기에, 그들은 매일 식사 후 방침을 안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다른 노인들과 수다를 떨면서 현성에서 있었던 일련의 아픔을 씻어내려 노력했다.
모두 고청운의 신분을 알고 있으니, 이 작은 임계촌에서는 누구도 두 노인의 기분을 감히 상하게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그들을 떠받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밖에 없었는데, 심지어 두 살배기 방침조차 많은 어린아이들이 찾아와 놀아주었다.
“침침아, 너는 어째서 형, 동생들과 함께 놀지 않는 게냐?”
이날, 고청운은 뒷산에서 산책하고 돌아와 안채에 들어서자, 방침이 홀로 융단 위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스승님.”
동글동글하게 두꺼운 옷을 껴입은 방침은 높이 쌓인 장난감에서 고개를 들고 익숙한 고청운의 얼굴을 보더니 오동통한 얼굴에 기뻐하는 웃음을 띠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청운 곁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뽀얀 얼굴을 내밀었다.
“그들과 놀다가 돌아온 거예요.”
그 아이는 양손으로 고청운의 종아리를 꼭 껴안았다.
어린아이 특유의 옹알거림이 들리자, 고청운의 마음이 녹아들었다.
방침의 뒤를 잇는 것은 방인소와 연 씨의 손자 신분으로 행하는 일이니, 따져보면 방침은 간미와 같은 항렬이라 간미와는 사촌지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간미를 사촌누이라고 부르고 고청운을 사촌 매형으로 불러야 했다. 하지만, 고청운은 이 꼬맹이를 키울 때 방인소가 그리워서 방침에게 자신을 스승님이라고 부르게 하여 제자로 삼고, 더 나중에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 줄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고청운은 아이를 안아 들어 작은 손과 얼굴을 매만지고, 또 등을 한 번 쓰다듬어 보았는데, 아이의 체온은 별다른 이상이 없이 아직 따끈따끈했다.
뒤이어 고청운이 말했다.
“잘 입혔구나, 지금은 3월 말이 넘겨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으나 아직 아이의 보온을 유지해 줘야지 옷차림이 가벼워서는 아니 된다. 아이가 아직 어리고 몸이 약하니 너희도 각별히 신경 쓰거라. 참, 오늘 침침이는 얼마나 오래 밖에 나가 있었느냐?”
고청운은 방침에게 유난했는데, 이 아니는 예전에 지내던 집에서 좋은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 어린아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천운이었다. 아이는 만 석 달이 지나서야 이쪽에 넘어와 후계자가 되어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귀퉁이에 있던 유모와 계집종이 황급히 대답했는데, 그중 방침의 유모가 마저 고청운의 질문에 대답했다.
“나리에게 아룁니다. 침 도련님이 아침에 할아버님과 함께 마을을 한참이나 걷고 돌아오셨습니다. 할아버님께서 낚시를 하러 가시자, 침 도련님께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아우성을 치시기에 돌아오셨지요. 할머님께서는 방금 부엌으로 막 넘어가신 참입니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 씨가 세상을 떠난 후 남긴 유산 문제에도 별다른 파장이 야기되지는 않았는데, 그들의 재산은 이미 방인소와 연 씨가 생전에 다 계획해 두었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방인소에게 받은 은혜가 많은 고청운은 해외에 다녀온 뒤 재산도 많이 늘었기에, 진작부터 염치없이 두 노인의 재산은 받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의논을 거친 끝에 경성의 고택 옆에 위치한 이중정원 형식의 사합원 건물은 간유에게 물려주었고, 방인소가 막 임산현으로 돌아와 모아둔 은전으로 매입한 100묘 정도의 밭은 문중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활용하는 제전(祭田)으로 삼으며, 남은 임산현의 밭 등의 재산은 대부분 방 씨에게 넘기기로 했다.
비록 고청운과 간미가 사전에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노인은 그들 앞으로 경성에 점포 하나와 전장(*田莊: 개인이 소유하는 논밭)을 마련해 두었다. 두 노인이 돌아가신 뒤에야, 그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청운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염치가 없고 부끄러워서 간미에게 몇 년동안 잘 간직하고 있다가, 이 점포와 전장은 방침이 출세하고 나면 경성 저택매입에 사용하여 아이에게 넘겨주자고 했다. 다시 말해 이 장소 또한 방인소에게 향을 올릴 곳이 될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겨우 두 살 된 방침의 재산은 고향의 삼중정원 형식의 가옥 한 채와 100묘 정도의 논밭, 임산현의 이중정원 가옥 한 채로, 여유 있는 사람들과 비교를 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여유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이때 꼬맹이가 순순히 자기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고는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왜 사모님(*스승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과 함께 임산현에 놀러가지 않았느냐?”
간미는 오늘 고전각을 데리고 친정에 다녀왔다.
방침은 고청운의 목을 꼭 껴안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고 싶지 않았어요.”
고청운은 아이에게 대답이나 행동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환경 탓인지 꼬맹이는 성정이 좀 내성적이어도 혼자서도 재미있게 잘 놀고는 했으니 말이다. 특히 성향이 얌전하고 영리해서 어른들의 사랑을 받았고, 또 어른들에게 잘 붙어 있었다.
아니, 그만의 의견이 아니라 그간 보아온 또래 아이들 중에 제일 데리고 다니기 좋고 말썽도 정말 적었다. 아이가 이렇게 영리하고 말을 너무 잘 들으니, 고씨 식구들은 이 아이를 비할 바 없이 아꼈는데, 행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까 봐 잘 돌보아 주었다.
“자자, 스승님이 네게 이 나무조각으로 탑을 쌓아줄 테니, 탑을 다 쌓고 나거든 우리 점심을 같이 들고 낮잠을 자자꾸나, 어떠냐?”
고청운이 아이에게 입을 맞추자, 방침은 수줍고 기쁜 웃음을 자아냈다.
방침은 아직 고청운의 뜻을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정도였기에, 당연히 반대 의견도 낼 리 없었다.
* * *
고청운과 방침이 낮잠을 자고 깨어나니, 방자명으로부터 서신이 도착해 있었다. 내용인즉슨, 내일 임산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와서 좀 만나자는 것이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복상 기간에 무슨 큰 상의할 일이 생겼나?’
잠시 생각에 잠긴 고청운은 이내 이 요청에 응하기로 했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고청운은 마차를 타고 방씨네로 향했다.
“서원 운영?”
조금 놀란 고청운은 속으로 생각이 많아졌다.
“제가 방 형과 같이 뭘 한다고요? 우리 둘만으로는 인원이 너무 적은 거 아닙니까? 학생들이 제법 많이 몰릴 텐데요? 아마 너무 바빠서 다 돌볼 수도 없을 겁니다.”
그는 지금도 충분히 바빴다. 자신이 임계촌으로 이사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견해를 물어오는 서신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 내가 얼마 전에 하 형과 서신을 주고받았는데 그도 곧 귀향할 예정이라고 하네. 그가 있으니 몇 명 더 같이 힘을 합하면, 그래도 해낼 수 있을 것일세. 어차피 우리가 무슨 대 서원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요즘 사는 것이 좀 무료할 뿐이네. 할 만 한 일을 찾아 시간을 보내고자 할 뿐이야. 거기에 우리가 고향을 위해 뭔가 일을 할 수 있다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임산현에서는 수재조차 몇 명 나지 않으니.”
방자명은 그동안 복상 기간을 갖느라 살이 많이 빠져서 이제는 배가 다 평평해 보였다.
고청운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방자명은 자신과 달리 해야 할 일이 많아 사는 게 무료한 적이 없었다. 이런 방자명이 사는 게 재미없다고 하니, 고청운은 믿기지 않았다.
“내가 환갑인데 복상 기간이 지나면 다시 벼슬자리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 다시 복귀한다고 해도 내가 앞으로 몇 년이나 벼슬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우리 하 왕조는 송 왕조와는 비교가 안 되니 말이야. 품계가 3품 이상이면 그들은 70세까지 벼슬을 할 수 있다는데, 우리는 65세면 은퇴를 해야 하지 않나.”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하 사형은 어찌 갑자기 돌아온다는 겁니까? 아직 관직에서 내려올 나이는 아닌데.”
하겸죽이 그보다 5살 위이기는 하나, 아직은 올해 63살로, 퇴직 연령까지는 2년이나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부모님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으니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 집 부인의 건강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데, 그 와중에 우리가 돌아와 있는 것을 보더니 미리 조기퇴직을 하겠다고 하더군.”
방자명이 말했다.
“우리 셋이 고향으로 한꺼번에 돌아오다니. 하하, 내가 요즘 살맛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 형이 돌아오면 틈만 나면 꽃구경을 하거나 낚시를 하고 바둑을 두자고 할 걸세. 분명 내 실력이 최고겠지? 생각만 해도 앞으로의 나날이 더욱 알차게 바뀔 것 같네.”
고청운이 그를 힐끗 노려보았다.
아무튼 이 일은 이렇게 결정되었다. 두 사람은 하겸죽이 돌아오면 바로 계획을 시작하려고 했기에, 먼저 좋은 입지를 찾아 건물을 지어야 하니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었다.
* * *
영평 15년 8월, 임산현에 배움을 추구하는 구지서원(求知书院)이 세워졌다. 이 서원은 도산사 부근의 산꼭대기에 세워졌는데, 주변 풍광은 산수가 수려하고 꽃과 나무가 무성해 그윽했다. 이 서원은 도화진과 임산현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훈장은 고청운이 맡고, 부훈장은 방자명과 하겸죽이 공동을 맡아 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로 했는데, 저렴한 사례비용으로 일부 개인 교습을 하는 수재들을 모으기도 했다.
서원의 주요 관리자는 하겸죽의 아들인 하허연으로, 그는 거인에 급제한 후 줄곧 진사 시험에 합격하고 있지 못했는데, 거기다가 몸도 좋지 않아 이번에 하겸죽을 따라 귀향해 온 참이었다. 그는 서원을 세운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하며 스스로 용기를 내어 서원을 찾아와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들은 현학, 부학과의 학생들을 확보하는 것까지는 뜻을 세우지 않았지만, 고청운 등이 워낙에 유명인사라서 이곳에 와서 가르침을 청하는 수재나 거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점차 학술 모임을 형성되었고, 함께 토론하고 교류했다. 그들의 주요 연구대상은 주로 산술과 격물이었는데, 서양의 일부 저서 번역을 통해 물리와 화학도 연구해 나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주 미약한 불티가 온 들판을 불태우는 큰불로 발전하기도 한다. 고청운은 자신이 쏘아 올리기 시작한 자연과학과 관련된 학문에 대한 개입이, 하 왕조의 젊은이들이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이쪽으로 더 많은 인재를 유입시킬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들이 자연과학에 심취해 서양을 따라잡고, 더 나아가 서양을 뛰어넘을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수재와 거인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이 서원의 선생님이 모자랄까 걱정도 되었다.
고청운과 방자명, 하겸죽은 자금을 더 조달해 임산현, 임양부 등지에 상가나 논밭을 사들여 발생된 이윤을 모두 구지서원의 운영에 썼는데, 이때 고청운이 바다에 나가 벌어온 돈이 큰 도움이 되었다.
구지서원이 들어서자, 서원으로 가면 고청운을 만날 수 있다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전해져서 고청운의 집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주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이와 함께 고청운은 다수의 인원이 모여 함께 문제를 의논하고 풀 수 있는 장소가 생긴 덕에 가족들의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게 된 것도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