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81)화 (481/504)

481화. 떠나다

다음 날, 연 씨는 결심한 듯 먼저 방자명에게 서신을 보내 그쪽에서 먼저 의견을 살펴보라고 했다.

방자명과 방자뢰(方子磊)는 방인소와 혈육 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조카 사이로, 방자명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방자뢰는 서자였다. 연 씨는 다른 문중의 아이를 데려올지언정, 그 집안의 아이를 데려와 자신의 가문을 잇는 후계자로 삼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약 방자명에게 의견을 물어 방서를 기꺼이 이들의 후계자로 호적에 올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연 씨의 뜻을 사실대로 적었지만, 속으로는 방자명이 여기에 동의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어른들 사이의 원한만 없었더라도 방자뢰 역시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혹여 자신이 예전에 고영진이 태어났을 때 마음을 더 독하게 먹고 결정을 내렸었더라면, 지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 * *

4월이 되어 그들은 방자명으로부터 답장을 받았으나, 역시 방자명은 아무런 의견도 밝히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방인소에게 후계자 선정의 문제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아직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사이 방인소의 몸에 갑자기 변화가 생기고 말았다. 때때로 그가 사람들과 말을 하다 말고 쉽게 잠들어 버리고는 했던 것이다. 

고청운이 급히 의원을 불러와 봤지만, 의원은 몸의 이상을 찾아내지 못했고, 그저 그가 휴식을 잘 취하지 못한다고 할 뿐이었다. 

방인소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노부가 밤에 잠을 잘 못 자서 그렇다. 뭔 큰일이라고 이 호들갑이야.”

“맞습니다, 제 탓이에요. 작은 일로 크게 놀라게 해 드렸습니다.”

고청운이 자신의 이마를 두드리며 답했다. 

따로 자리한 사석에서 의원이 그에게 말했다.

“어르신께서 많이 노쇠하셨으니, 이제는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하시면 꼭 드실 수 있게 하고 잘 효도해드려야 할 때입니다.”

이 말을 귀담아듣고 보니, 그가 어찌 이 이치를 모르겠는가? 스승님은 이제 노쇠한 것이었다. 

계수나무 아래에서 고청운은 손으로 나무 기둥을 짚은 채 눈물을 비 오듯 흘렸고, 이 일 이후로는 감히 이번 일을 내색하지 못했다. 

* * *

2월 현시 시험 성적이 발표되었고, 고전각은 현안수(*현시의 1등)로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4월 부시 시험 성적도 발표되었을 때, 그가 또 한 번 부안수(*부시의 1등)로 합격하여 모두를 기쁘게 했다. 다만 8월에 원시가 예정되어 있기에, 크게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고, 고이하네와 간미네만 초대해 한 끼 식사를 같이 하며 저녁에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었다. 

간지원과 방 씨는 서로 잘 지내고 있었는데, 고청운은 방인소의 얼굴에서 만족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 *

어느 날, 날씨가 매우 좋아서 점심 식사 후 모두들 평소대로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시 원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때 고청운은 다시 방인소가 의자에 기대어 잠이 든 모습을 보았는데, 처음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줄 알고, ‘흠’ 하는 소리를 내며 방인소를 가리켰다.

모두들 이를 듣고 무의식적으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연 씨만이 필사적으로 방인소를 한참 쳐다보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그를 껴안고 “당신!” 이라고 크게 소리쳤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 처량했다.

온 자리의 사람들이 모두 다 멍해졌다.

“왜 그러세요?” 

간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청운은 그제야 방인소의 수염이 조금의 미동도 없이 가지런히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속이 철렁했고,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예감하고는 걸상을 걷어차며 방인소의 앞으로 내달려가 떨리는 손으로 검지를 그의 코밑에 가져다 대었다. 

간미 등 다른 사람들도 눈을 부릅뜨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버지, 한 번 봐주세요.”

고청운이 고대하를 바라보는 데 이미 눈물이 절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대하가 걸어와 살펴보고는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인소는 이렇게 병 없이 세상을 떠났다.

고청운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음에도 머리가 핑 돌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신데 이어 또 다른 어른, 그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어른을 잃을 것이었다.

연 씨는 방인소의 머리를 끌어안은 채 무너질 듯 울고 있었다.

식구들이 방인소를 둘러싸고 크게 통곡하자, 집사 방충이 달려와 보고 어찌 된 일인지 얼른 상황을 파악하고는 사람을 시켜 간지원과 방 씨를 집으로 모셔오게 했다.

영평 12년 4월 20일, 방인소는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는 매우 성대하게 치러졌다. 4월의 날씨는 추운 편이 아니었기에, 고청운은 방자명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고영량 형제 역시 고향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많은 얼음이 있어도 그렇게 오래 스승님을 둘 수는 없었으니, 결국 하루빨리 흙에 묻히는 것이 방인소의 평안을 기원하는 일이었다. 

연 씨는 그날 펑펑 울고 난 뒤부터 줄곧 잠잠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전에 봐두었던 아이를 손자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아이를 안아 입관의식을 하게 했다. 

방씨 일족은 대부분 일반 백성들로, 줄곧 방인소 일가가 문중의 주축이 되어 왔기에 이 의견에 머리만 갸우뚱거릴 뿐 당연히 아무런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른 문중의 가족들은 그 방침(方琛)이라고 이름 지어진 아이를 시기할지언정 풍랑을 일으키지는 못했고, 이 일은 이렇게 순조롭게 지나갔다.

* * *

방인소의 장례식이 끝난 후 고청운 등 가족들은 상심할 겨를도 없이 고계산과 노진씨의 일이 떠올라 서둘러 모든 정신을 남은 연 씨에게 집중했는데, 혹시라도 그녀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너희들은 이 늙은이에게 그렇게 조심할 것 없다. 인생은 자고로 누구나 죽는 법. 너희 외할아버지는 병 없이 돌아가시어 고통 없이 눈을 감으셨으니, 그 어느 집 영감이 이 사람처럼 병고에 시달리지 않고 떠날 수 있겠느냐? 그는 생전에 이 세상을 후회 없이 살다 간다고 말했었다. 너희들처럼 효성스러운 딸과 손녀 그리고 우리 청운이라는 제자를 두었으니, 죽더라도 한이 없다고 했었어.”

연 씨는 이제 막 태어난 지 석 달 된 방침을 안은 채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 씨는 눈물이 그렁그렁 한 눈으로 연 씨의 다리 밑에 엎드려 울면서 말했다.

“어머니, 모처럼 고향에 돌아오셨는데 아버지께서는 이제 안 계시더라도 어머니라도 더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저는 오래오래 어머니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어머니마저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는 왕년에 방인소와 연 씨가 경성에 있을 때 때때로 경성에 한 번씩 들리고는 했는데, 특히 간지원과의 사이가 틀어질 때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 횟수가 많지는 않았던 걸 보면, 아무래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간지원도 따라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 여린 녀석들이, 이 어미는 반드시 잘 살아 있을 게야. 나에게는 아직 너희들이 있지 않느냐.”

연 씨가 방 씨의 손등을 두드리며 중얼중얼 답했다. 

“네 아버지가 내가 따라나서지 못하게 하실 게다. 그 사람이 얼마나 모진 사람인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는데, 그는 언제나 나보다 한발 앞서야 했고, 언제나 내 앞에서 앞장서서 내게 길 안내해 주겠다고 했지. 이제는 지하세계에 내려갈 때가 되어서까지 먼저 가서 길을 살피는구나. 지하에 내려가서도 호강시켜 줄 모양이다. 

나는 참 평생 복이 많아 호강했지. 고생이라고는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가 내게 그간 얼마나 잘 대해 주었는데, 내가 그에게 향이라도 올릴 후계는 만들어 주어야지.”

방 씨와 간미는 이 말을 들으며 더 울었고 고청운도 눈이 시큰거려왔다. 

한참 후 고청운은 장인 장모가 연로하신데 무슨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시게 하고 부축해 세워드렸고, 고전각도 옆에서 연거푸 위로하기 바빴다.

그동안 상심해 있는 고청운 등 가족들을 고전각이 옆에서 참 많이도 도와주었다. 

방인소가 하늘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영량 일가 세 식구가 먼저 다급히 돌아왔다. 그가 부임하고 있는 곳은 월성으로부터 그리 먼 곳이 아니라 서신 배달과 휴가 신청에 있어 유리하여 일찍 돌아올 수 있었다.

방인소에게 향을 올리고 난 고영량은 어른들을 위로하기 바빴다.

연 씨가 어릴 적부터 키운 손주를 보자 정신이 다시 맑아진 듯하여, 고청운 등 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가를 길게 받지 못한 고영량은 집에서 사흘을 더 머물다가 영요와 둘째 아들 고전박(顾传博)만 남겨두고 복주로 돌아갔다.

고영량이 먼저 떠나자마자 방자명도 바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심지어 관을 맨 채 돌아왔다. 그 누구도 방인소와 방인례 형제가 뜻밖에도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하직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방인례의 상을 마친 방자명은 복상 기간을 가져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히 그 역시 조기퇴직을 하게 되었다. 고청운은 왕 씨가 늘 연 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고 동서지간의 사이가 경성에서 지낼 때보다 더 가까워져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이제 남은 것은 대문을 걸어 잠그고 복상 기간을 지내는 것이었다. 간미는 5개월, 고청운은 3개월이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외손녀의 사위이기 전에 방인소의 제자였기 때문에 복상 기간을 3년 지키기로 했다. 방자명이 아무리 그럴 필요까지 없다며 그를 설득하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 * *

영평 12년, 고씨 집안은 이 시간을 다사다난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유일한 위안은 8월에 고전각이 복상을 마치고 제때 시험을 보러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3위라는 석차로 시험에 합격하여 16살의 수재이자 동시에 원시 시험을 상위 성적으로 합격한 품생으로 나라의 녹을 받는 신분이 되었다. 

고청운은 영요와 고전박이 너무 고향집에 오래 머물게 하지 않고자 했는데, 고영량 혼자서만 복주에 가 있는 것이 못내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고청운은 시험 성적이 나오자마자 그들 모자들을 복주로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고전각은 가지 않고 기어코 남아 있겠다고 우겼다.

아이가 이제 다 자라 자신만의 생각이 생겨난 것이니, 고청운은 그의 의견대로 따라주었다. 

* * *

영평 13년 말, 또다시 새해가 찾아올 시기였다. 모두들 새해에도 평탄하고 온 가족이 평안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제 막 춘절을 보낸 지 며칠 되지 않은 정월 초엿샛날, 연 씨는 이날 밤 자러 들어가 잠자리에 누운 뒤 그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웃음 띤 얼굴로 이 세상을 떠났다.

고청운은 휙휙 지나가는 찬바람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시렸다. 허나 떠나간 사람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해 황제는 고청운에게 다시 조정으로 복귀하라는 조서를 보내왔다.

하지만 고청운은 ‘부모님이 여든이 넘었으니 아들이 그 옆에서 부모를 직접 모셔야 한다’는 규율을 들어 거절했다. 그는 원래 조금 더 일찍 경성으로 돌아갈 의사가 있었지만, 올 한 해를 보내며 임계촌에서 고대하와 소진씨를 더 잘 모시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먼길을 따라 상경해 올라가기보다 고향에서 노년을 보내는 게 낫다고 믿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