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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480)화 (480/504)

480화. 취지

고청운은 다시 그들과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그에게는 이 두 명의 친누이 말고 다른 형제는 없었기에, 왕년에 그가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을 때 누이들이 임계촌을 자주 찾아와 그 곁을 자주 함께 해주었었다……. 

이쯤 되자, 고청운이 직설적으로 입을 열었다.

“큰누이, 둘째 누이, 무슨 일 있으면 솔직하게 얘기해 봐. 우리가 남도 아니고.”

고대하와 소진씨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연은 상황을 보고 입을 열었다.

“청운아, 그럼 이 큰누이가 곧이곧대로 말하마. 네가 보기에 우리 애들 중 몇 명 정도가 네 조언이나 가르침을 받을 만한 복이 있을 것 같니?”

 그녀는 아들 셋과 그들이 본 손자까지 합치면 모두 일곱 명의 자손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번창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들 중에서는 오직 큰아들만이 수재에 합격했으나, 거인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 자손이 다시 일곱이나 생겼기에, 그녀는 혹시나 이쪽으로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는지, 누구 하나 길러낼 만한 인재는 없는지 알고 싶었다.

‘조언?’ 

고청운이 다시 고하를 쳐다보았다. 

고하도 같은 마음이었지만, 그녀의 경우 고청운에게 외아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네 조카는 그렇게 여러 해 동안 공부했는데 매번 원시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제 서른이 다 된 애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책 읽기밖에 없으니, 네 매형과 내가 앞으로 어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니?”

고하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누르며 말을 이었다.

“청운아, 네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어. 네 조카에게 여러 가지 공부를 더 시켜보지 않고 오로지 과거 시험에만 전념하게 하다니……. 과거 시험 합격이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더냐?”

고하는 정말 후회하고 있었다. 집안에서 두말할 것 없이 가장 큰 결점은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다. 그녀는 어렵게 얻은 아들을 과보호하고 아끼며, 그가 혹여 그 어떤 억울함을 느낄까 봐 걱정했다. 그녀는 고청운의 과거 시험 합격 이래 집안이 겪은 변화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의 아들도 출세시켜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일이 이십여 년 동안 끝나지 않을 줄은 몰랐다. 손자들마저 모두 글을 깨치고 나서도 그녀의 아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수재 합격조차 기약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 물정도 어두워 보였다. 

다행히 시집 온 며느리의 혼수가 괜찮았는데, 사람 또한 어질었지만 며느리가 아무리 좋아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 사이가 잘 지내지 못하는데 말이다. 요즘 들어 이 둘은 자꾸 삐걱거려서, 그녀는 이 나이에 또 걱정이 하나 더 늘어버렸다. 

‘애초에 마음을 독하게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고영량과 고영진이 임계촌으로 돌아왔을 때를 생각하면, 그 아이들은 고청운에게 쫓겨 밭일을 하는 고생을 겪어내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은 살면서 들어본 가장 무거운 물건이라고는 책뿐일 것이었다. 그녀는 암암리에 자신의 손자들은 잘 가르쳐야겠다며 이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누이들의 부탁은 고청운이 예상했던 것이었다. 그는 이 말들을 듣고 잠시 읊조리다 흔쾌히 승낙했다.

“정말이니?”

고연과 고하는 크게 기뻐했다. 사실 그녀들은 이전까지는 고청운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청운의 집으로 몰려가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 하는 것을 보아왔고, 이를 부탁하는 친지의 의견과 청탁들을 접해왔으며, 또 동생의 태자태부의 명성을 보고는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하씨 집안과 고씨 집안 모두 수재 정도는 배출하는 집안이 아니던가? 다른 사람은 못 도와주더라도 자기 집 식구들은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들은 모두 적녀들이 낳은 아이들이 아닌가.

“음, 내가 아직 바쁜 볼일을 다 마치지 못해서 바로 수업을 시작해 직접 가르쳐줄 수는 없고, 우선은 학업에 있어 의문이 생기면 그때 찾아오라고 전해 줘. 미리 이야기해두는데, 내가 가르친다고 해서 인재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어. 반드시 그 아이들이 스스로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해.”

고청운은 오는 길에 이미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는데, 자신이 직접 5~6세부터 10대에 이르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아직도 미적분 연구에 심취해 있었으며 직접 해결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에, 일일이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칠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고연은 고청운이 이 일을 귀찮게 여기지만 않으면 되었기에, 너무나도 기뻐했다. 

반면, 고하는 약간 실망했다. 그녀는 정식으로 스승을 모시는 그런 것을 원했던 것이다.

“정말로 괜찮은 아이가 있다면 내 제자로 받을 거야.”

고청운은 그녀들의 실망을 알아차린 듯 누이들을 한 번 보고는, 계속 웃는 얼굴로 앉아있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

이 말에 고연과 고하는 더욱 기뻐했다.

* * *

그녀들을 떠나보낸 뒤에도 고청운의 바쁜 나날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그를 실망하게 한 일도 있었는데, 누이들의 아이가 오면 자신과 고전각이 몇 번이고 그들의 학업상의 의문을 해결해 주었건만, 점점 그들의 발길이 뜸해졌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더 두꺼워야 공부를 제대로 하는 법인데 말입니다.”

고청운은 방인소와 대화하며 개탄했다. 고청운과 고전각은 그들이 묻는 질문이 쉬웠지만,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고 착실하게 답을 해주고 도움을 주었다. 이 정도 난이도라면 고전각도 어느 정도의 소양을 갖추고 있어 충분히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방인소가 빙긋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러하지, 스승과 제자가 되는 일이 어디 얼굴이 좀 두꺼워야 가능한 일이더냐? 적어도 네 눈앞에 많이 나타나 보여야 하는데 말이다.”

그는 말 속에 의도한 바가 있어 고청운을 슬쩍 쳐다보았다. 

고청운은 껄껄 웃으면서 무던히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스승을 모시고 싶다면, 먼저 스승의 마음에 들 정도로 천부적 자질이 뛰어나야 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가 되고 싶다면 그만한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청운은 아직도 스스로를 자화자찬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어찌 그동안 이 점을 공략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좋다, 마침 외부에라도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임양부의 장진지 같은 사람이 그러했다. 그는 수시로 임산현에 찾아와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심지어 산술 학문 쪽으로 고청운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이런 행동에 대해 고청운은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상대의 인품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고, 그가 묻는 말에는 깊이가 있어 정말로 그가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던 것이다. 그는 단순히 고청운의 비위를 맞추고자 질문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고청운은 좀 더 두고 보자며 그를 은근히 지켜보고 있었다. 

고청운과 간미는 지금 또 다른 일로 바쁘기도 했다.

이듬해 2월 고전각이 현시에 응시할 때까지 고청운과 간미의 바쁜 일은 계속될 예정이었다. 그랬다, 임산현으로 돌아온 후, 연 씨가 늘 간직하고 있던 그 생각을 또다시 꺼내 보인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따로 알아보면 공정치 못하다며 고청운과 간미에게 수소문을 부탁했고, 결국 두 사람은 방가촌을 반년 동안이나 탐문한 끝에 드디어 조건에 맞는 아이를 찾아냈다.

그들이 이제 직면한 난제는 이 일을 어떻게 방인소의 동의를 끌어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 * *

방인소는 언제나 말을 딱 부러지게 하고는 했다. 그는 일찍이 후계자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누누이 말해왔는데, 고청운은 지금 갑자기 그와 이 일을 의논해야 하니 정말 그가 크게 역정이라도 낼까 두렵기까지 했다. 특히나 이제 고청운은 나이가 많아져서 그와 논쟁을 하기도 어려웠다.

연 씨는 수십 년 동안 방인소와 부부로 지내왔는데, 어려서부터 죽마고우로 자랐기에 자신의 남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세 사람은 지금에서야 겨우 적당한 어린아이를 찾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우리 더 이상 지체하지 말자꾸나.”

결국 연 씨가 먼저 생각을 굳혔고, 적당한 기회를 찾아 방인소에게 말하겠다고 생각을 밝혔다. 

고청운과 간미는 여기에 다른 의견이 없었다. 

그들이 보고 온 아이는 아직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방가촌 출신이었고, 그 아버지는 문인이며 같은 방씨 문중 사람이었다. 문중에서 어렵사리 시험에 합격한 수재는 아이가 태어나던 날 밤, 산파를 구하러 가다가 뜻밖에도 수로에 떨어져 머리를 부딪쳐 버렸는데,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과다 출혈로 숨이 붙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아이의 어머니는 그 상황을 알게 되고 나서도 애를 써서 겨우 아이를 낳았지만, 결국 산후 출혈이 심해져서 구할 방도가 없었다고 했다. 이 하룻밤 사이에 부모를 잃고 막 태어난 어린아이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원죄를 뒤집어쓰고 있는, 부모를 해친 불길한 기운을 타고난 아이로 인식이 되어 아무도 이 아이를 좋아해 주지 않았고, 심지어 아이의 할머니마저도 원하지 않아 했다.

고청운이 사정을 살펴보러 갔을 때 이 집안의 사내들은 몇 남아 있지 않았는데, 성인 남자라고는 없었고, 세 살짜리 손주 아이와 40살 정도 된 이 아이의 할머니만이 남아 있었다. 집안의 가산으로는 100묘 정도 되는 논밭이 있었다. 갓 태어난 아이는 할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마을 사람들 역시 같은 입장이었는데, 사건이 너무 멀리까지 속속들이 전해진 탓이었다.

고청운 일가의 사람들은 견식이 넓기에, 오히려 사람을 해친다느니 하는 사주 문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냥 갓 태어난 신생아일 뿐이었다. 그리고 조사를 통해 알아본 바로는 이 할머니가 아무리 아이를 홀대했을지언정, 먹일 것은 제때 먹이며 돌봐온 것 같았다.

“부군, 그 아이의 할머니 되는 분께서 우리 외할아버지께 아이를 후계자로 보내줄 용의가 있다고 보시나요?”

밤에 잠들기 전에 간미가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냈다.

“안 된다고 하면 다시 다른 아이를 알아보면 되오.”

고청운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동네 아낙들이 엄마 잃은 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으려 하여 아이의 할머니가 젖유모를 구했다고 하지 않았소? 그녀는 아이를 품어 안아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피로 연결된 혈육의 정은 있는 것 같소. 그러니 그녀가 어찌 결정할지를 두고 봐야 할 것이오. 하지만 내 생각에는 할머니가 응할 가능성이 매우 큰 듯하오.”

“여섯째 할머니께서는 늘 선량하셨으니까요.”

간미가 한마디 했다.

“어차피 우리 집으로 오게 되면 잘 키울 것이오. 이건 우리가 스승님께 빚진 것이니 말이오.”

고청운이 몸을 뒤척이며 간미를 토닥거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잡시다. 사람이 궁하면 통하게 되는 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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