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화. 가르침 (2)
장진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워낙 많이 있었기에 고청운의 귀향 후 생활은 여전히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청운은 지방의 최고 책임자들을 만난 뒤 잠시 짬을 내 임양부의 부학으로 내려가 강의를 했는데, 이곳은 그가 지난날 공부했던 곳으로 안 가 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는 지부를 비롯한 지역 간부들을 대동하고 부학 전체를 둘러보며 자신에게 친숙했던 곳을 찾아내 보았다.
그가 12세에 수재에 합격한 이래,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40여 년이 지나 있었기에, 부학의 모든 장소들이 다 재건 과정을 거쳐서 그에게 익숙했던 장소들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 작디작았던 나무들은 불쑥 커서 녹음을 이루고 있었다.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나가는구나!’
고청운은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 * *
만나야 할 사람을 다 만나러 다닌 후, 고청운은 집으로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누군가 문제를 들고 자신을 찾아와도 아주 쉽게 그것을 풀어주곤 했는데, 만약 아주 풀기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온다고 해도 아주 기뻐하며 맞이했다.
이 방면으로는 집사 방충이 충분한 경험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누가 방문해도 그가 직접 접대하면 그만이었는데, 다른 것은 일절 할 필요도 없이 그저 그들을 문 앞에 앉아있게만 하면 되었던 것이었다.
그가 관리하여 보는 것에는 서신들도 있었는데, 고전각이 먼저 뜯어보고 풀 수 있는 것은 답을 써 주고, 풀 수 없는 것은 남겨두었다.
‘이래서는 경성에서 지낼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닌가?’
고청운 생각에는 자신이 생각하던 은퇴 후의 생활이 지금과 전혀 다르다고 느끼는 게 사실이었는데, 정말이지 너무나도 바빴던 것이었다. 다행히 조용히 요양을 해야겠다는 소문을 흘려보내자 그의 삶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신들은 여전히 유난히도 많이 들어왔고, 그중에는 경성의 성남 사합원 사람들이 그에게 보내오는 것들도 있었다.
그는 귀향했지만 그래도 미적분에 대한 연구는 계속하고 있었다. 마치 전생에 들었던 말처럼, 어떠한 신흥 사상이나 전도유망한 과학적 성취들은 그 앞날이 무궁무진하게 발전 가능하여 과학자들을 매료시키고 있었다. 지금 상황도 이러했는데, 미적분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을 때라 이미 퇴직한 양불언 대사도 그에게 시도 때도 없이 서신을 보내 관련된 것을 묻고는 했다.
* * *
“할아버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어찌 서원이라도 차리지 않으시고요? 제가 보니 몇몇 관리들은 벼슬자리에서 내려오면 서원을 차리던데 말입니다. 그리하면 좋은 명성도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임양부에는 관학 말고는 개인이 운영하는 서원이 없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고전각이 끝내 참지 못하고 호기심에 물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15살의 고전각은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수려했는데, 황립 서원을 수료하면서 책을 읽는 학자의 풍모가 엿보이고 더욱 우아해졌다. 게다가 지금은 고청운을 따라나선 유일한 후대의 가족 구성원으로서 고청운의 손에 이끌려 자주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기에,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천천히 이전보다 더 좋아지고 있었다.
“아직은 시간이 부족해 조력자를 구하지 못했단다.”
고청운이 해명했다.
“서원 하나 차리는 건 우리 집 입장에서는 어려운 일도 아니다만, 이 서원 운영을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구나. 생각해 보거라, 퇴직하고 서원을 차린 이들이 오래 서원을 운영하는 것을 보았느냐?”
하물며 그가 나중에 세울 것이 꼭 서원의 형태일 필요는 없었다.
“대부분의 서원은 설립자 본인이 세상을 떠난 뒤 얼마 더 버티지 못하고는 하지.”
고전각도 알고 있는 바가 있었다.
현재 하 왕조에서 유명한 서원은 단 몇 군데 밖에 없었는데, 그중 하나는 이웃 성의 악록서원(岳麓书院)이었고, 또 한 곳은 강소성에 있는 청원서원(淸遠書院)이었다. 경성에도 꽤 이름 있는 서원 두 곳이 있기는 하지만, 지리적 후광을 입어 유명한 것이지 좋은 결과를 내는 서원은 아니었다.
물론 황립 서원 역시 하 왕조를 통틀어 유명한 곳이었지만, 이곳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고청운이 말을 이었다.
“서원을 운영한다 해도 선생을 나 혼자 다 할 수도 없지 않으냐. 내가 쓸 수 있는 정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런 상황에 운영을 한다고 한들 내 눈높이를 맞출 수는 없을 게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무슨 계획이 있으십니까? 같이 운영할 사람을 찾고 계시는 건가요?”
고전각은 여기까지 말하고 머리를 굴렸고, 고청운이 자주 연락을 취하는 특정 몇몇 젊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서원 운영에 어울리는 사람을 고르고 계신 것이 아니십니까?”
고청운이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연이 있는 자가 있나 보는 중이다만, 급한 일은 아니란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한창 한담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리, 나리의 큰누이와 둘째 누이께서 오셨는데, 마님께서 언제 하시는 일이 마무리되시는지 여쭙고 오라 하셨습니다.”
‘큰누이와 둘째 누이가 왔다고?’
고청운은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분명히 며칠 전에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왜 또 이렇게 빨리 찾아왔는지, 혹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고청운은 고연과 고하가 온 이유를 한 번 궁리해 본 후에 곧 생각하기를 관뒀는데, 어쨌든 조금 있으면 알게 될 일이었던 것이다.
그와 고전각은 따로 할 일이 있던 것은 아니기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화원 쪽으로 걸어갔다.
* * *
줄곧 걸어오는 동안 녹음이 우거져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두 그루의 계화나무에 만개한 계화 꽃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고청운은 이런 정경을 좋아했다.
이 정원은 그가 간미와 막 성혼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받은 것이었다. 그들은 상경한 후 줄곧 세를 놓고 있다가 고청운이 바다로 나가 돌아오던 해를 기다려서, 시험에서 낙방한 고영동이 고청운과 함께 귀향할 때 이 저택의 회수를 도와달라고 부탁했었다. 그간 줄곧 보수를 하며 사람이 살아왔던 탓인지 정원은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방인소와 연 씨는 옆집에 살고 있었다.
“할머니께 오늘 저녁 간식으로 계화떡이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고전각은 고청운의 곁에서 걷다가 그를 보고는 계화나무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그는 속으로 할아버지가 왜 그토록 계화떡을 좋아했는지 생각해보았다. 혹시 단것이라면 다 좋아하시는 것일까?
어릴 때 고전각은 할아버지한테 속아 사탕을 자주 뺏기고는 했다……. 사실 자신은 할아버지를 굉장히 좋아했으니 어렸을 적 그냥 사탕을 달라고 했어도 그냥 주었을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속일 필요까지는 전혀 없었다.
“그래, 계화꽃이 잘 펴서 먹을 만할 게다. 네 할머니가 만든 계화떡이 일품이거든.”
고청운의 얼굴에 빙글빙글 웃음기가 돌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오니, 부모님이 더 보고 싶지?”
고전각은 7살 때부터 부모와 헤어져 따로 지내고 있었는데, 고청운은 그가 비록 집안 어른들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부모와 같을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고전각과 같이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은 편이라, 대부분 이를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영량이 고향에 올 수 없었어도 영요만은 매년 반드시 귀경하고는 했기에, 모자간에는 또 만날 수 있었다.
민성 지역을 들렀을 때 서운한 마음을 표하는 고전각의 모습을 떠올리면, 고청운은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
“조금요.”
고전각이 빙그레 웃으며 머쓱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하하, 이 녀석, 혈육을 그리워하는 건 본성이다. 뭐가 쑥스러운 게야? 만약 네가 내년에 수재에 합격한다면 할아버지가 너를 민성으로 데려다주마.”
고청운은 내후년에 향시가 있으니. 고전각을 이 시험에 참여시킬지를 더 봐야 했다.
큰손자는 타고난 자질이 중등 수준이라 하더라도 기초가 튼튼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왔기에, 이변이 없는 한 수재에 합격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수순일 것이었다. 하지만, 향시만은 확실하지 않았다. 향시 정도가 되면 자기의 실력만으로는 합격이 어렵고, 반드시 운도 따라주어야 하니 말이다.
고청운은 요 몇 년 사이에 주임 시험관으로서 향시를 한 차례 주관한 적이 있었는데, 이전에 부시험관이었던 경력까지 있으니 이쪽에 대한 일을 비할 데 없이 잘 알고 있었다.
“정말이에요?”
고전각은 눈을 반짝였지만 이내 고민스러워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는 것도 섭섭해요.”
“네 녀석은 수재에 합격할 자신이 있는 게로구나.”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고전각은 고청운의 팔짱을 낀 채,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
자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고청운은 그의 손을 두드리며 육견(*陆坚: 육훤의 둘째 아들)을 떠올렸는데, 어릴 적부터 둘은 같이 놀면서 공부도 하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등 참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양쪽으로 초목이 무성히 자란 오솔길에 다다랐다. 고청운은 마음이 꽤나 즐거웠는데, 어쨌든 자신이 임산현으로 돌아온 건 노후를 위해서라도 잘 온 것이기도 했고, 스승님과 할머님, 또 부모님에게로 수시로 친척이 찾아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으며, 찾아온 이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너무 과한 것만 아니면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고향으로 돌아온 고청운은 고씨 문중의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번 조사를 진행하게 했는데, 이틀 전에 받아본 결과로는 아주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세력을 좀 잃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합리적인 범위에서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은 없었고, 해봤자 한두 명의 아이들을 너무 오냐오냐 키운 탓에 남들과 다투면서 “우리 문중에 어떤 어른이 계신 줄이나 알아?” 하는 발언 등으로 큰소리를 쳐댄 것이 다였다.
이렇게 소리 질렀던 아이는 부모에게 끌려가서 다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교육을 받았다고 했는데, 고청명은 임산현에서 관리로 일하고 있기에 이런 종류의 소식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잠시 뒤, 하인의 안내를 따라 두 사람은 화원 한가운데 있는 정자로 가서 고연과 고하, 그리고 그들의 손자들을 마주했다.
고대하와 소진씨는 중간에 앉아있었는데,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기분이 좋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큰누이, 둘째 누이…….”
고청운이 인사를 건넸다.
“청운아.”
고연은 이미 60대 노인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세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3년 전 일찍이 병으로 인해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아들과 며느리들의 효성이 지극했다. 그녀는 생활이 순탄했고, 잘 관리를 받고 있어 겉보기에는 실제 나이보다 몇 살이나 젊어 보였다. 그녀는 상냥한 얼굴을 잘 간직하고 있었는데, 고청운의 기억 속에 있는 부드럽고 상냥한 큰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고청운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57살의 고하는 고연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주로 그녀의 외아들이 패기는 없어 큰 잘못은 저지르고 다니지 않으나 끊임없이 작은 실수들을 연발하며 속을 썩인 탓일 것이었다. 그녀의 외아들은 나이가 고영량보다 두 살 아래였지만 아직 동생(童生)의 신분으로, 수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고청운을 바라보는 시선은 고연과 궤를 같이 하고 있었다.
모두 한 집안사람이라 그렇게 예의를 차리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은 고청운을 대할 때 어색해했다.
그들이 고청운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고전각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놀러 나가며 자리를 피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