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78)화 (478/504)

478화. 가르침 (1)

양주에서의 나날은 매우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그간 고청운네는 방인례와 왕 씨를 병문안 가기도 했다. 방인례는 여전히 사람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고, 왕 씨 역시 건강하지 않지만, 자신들을 찾아온 이들이 매우 원기 왕성한 모습을 보며 정신상태가 좋아졌는지, 심지어 점심 식사에서 탕국을 평소보다 한 그릇 더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어 방자명의 가족들을 매우 기쁘게 했다.

방자명이 아주 열정적으로 그들을 붙잡고 있는 통에, 당초 사흘 정도 묵을 예정이었던 일정이 6일을 머무는 일정으로 늘어나 버렸다. 그래서 고청운을 비롯한 가족들은 일정의 대부분을 현지의 사람들 덕분에 양주성 전체를 유람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고청운과 간미는 그들이 소싯적에 노닐던 곳들을 지나치며 흥이 동했다. 

허나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방자명의 배웅을 받으며 고청운은 미리 준비해 둔 이별시를 읽어 내렸는데, 자신의 시 짓기 실력이 는 모습을 방자명에게 보이고 싶었던 것이었으나 방자명이 눈시울까지 붉힐 줄은 몰랐다. 

이별을 아쉬워하며 고청운 일가는 계속해서 귀향길에 올랐다. 

* * *

그들은 가는 길에 유명한 몇 지역을 더 유람하면서 지인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방희림과 고영량 가족도 포함돼 있었다.

고전각은 부모님과 남동생을 만나게 되어 매우 기뻐했다.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귀향하는 것만 아니었더라면, 고청운은 진심으로 고전각을 그의 부모 곁에 잠시 더 두었을 것이었다. 

고청운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또 기쁘게도 했던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길을 가던 중 이들이 해당 지역을 지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관리 혹은 친분이 있는 지인들이 그들을 열정적으로 뭍으로 올라오게 하여 그들을 초대하거나, 서원이나 부학에 초청하고자 하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고청운은 이러한 열정적인 학생들을 보면서, 이들이 가식적으로 이런 연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진지하게 학문적 교류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고청운은 이러한 연유로 인해 거치는 곳마다 현지 관리들의 초대를 받게 되면, 방인소와 고대하와 상의를 거쳐 이들의 몸 상태에 따라 수락했다. 

고청운은 그들이 자신의 신분 때문이었든, 아니면 자신의 학식을 원하는 것이었든, 배우려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가르침을 주러 초대에 응했다. 이때 거친 학생들 중 한 명만이라도 앞으로 산술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연구해 나가기만 한다면 그는 큰 수확을 거두는 셈이었다. 그들이 물리, 화학, 역학 등의 방면까지 연구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다만 이렇게 시간이 오래 지체되기 시작하며, 뜻밖에도 일부 학생들이 그의 곁에 남아 공부를 하고자 했고, 그를 따라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이것은 마치 스승으로 모시는 절차를 밟는 것과 같았다.

고청운이 처음에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도 자신을 따라가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 겨우 설득을 했는데, 지금 또 그런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비록 마음속으로는 내심 즐거운 일이었지만, 그는 결국 이런 요청들을 거절했다.

이번에 고향집으로 내려가는 데 있어 그의 가장 큰 목적은 어른들을 잘 모시는 것이었기에, 그는 당분간 제자를 받고 싶지 않았다.

* * *

이렇게 8월 초가 되었고, 4개월이 걸려서야 그들은 마침내 임산현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임계촌으로 돌아와 고백산과 고계산의 묘소를 찾아 벌초를 한 후, 고청운은 다시 임산현으로 돌아와 거주하기 시작했는데, 경성에서 지낼 때와 마찬가지로 방인소 부부가 지내는 건물을 그의 집과 마주한 곳에 마련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는 바로 간지원과 방 씨가 머물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간지원이 벼슬자리에서 내려오자 임산현으로 돌아왔고, 지금 이렇듯 일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지낼 수 있게 되니 자연히 신이 났다.

딸과 외손자가 곁에 있어서 그런지 방인소와 연 씨가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어, 고청운과 간미는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고청운의 여유 있는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그가 막 집에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소식을 듣고 온 사람들이 그에게 가르침을 구하거나 학문적 교류를 하고자 그의 집 문턱을 거의 허물 기세로 방문해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장진지(张振之)는 임양부 사람으로, 그의 집에는 천 묘가 넘는 땅과 몇 칸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평상시에 부성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공부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그는 6살이 되자마자 기대에 찬 그의 부모에 의해 서당을 다니며 학문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서당에 다니면서도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여기에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고 각고의 노력까지 더하여 16세에 수재에 합격하고 23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거인의 신분이 되었다. 합격 석차도 상위권에 올랐다. 올해로 만 26세가 된 그는 전체 임양부를 통틀어 젊고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손꼽히고 있었다. 

내년은 또 회시가 열리는 해였다. 장진지는 최근 상경하여 시험을 치러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3년 전만 해도 그는 막 급제하여 의기양양하던 차에 경성으로 넘어가 시험을 치렀으나, 결국 그 해에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 

장진지가 막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찻집에 도착해 2층 계단을 오르며 주위를 둘러보니, 안쪽에는 거의 모두 소매가 넓은 옷을 입은 문인들이 앉아있었다. 이 장면은 그에게 결코 낯선 것들이 아니었는데, 다만 그에게 호기심을 가지게 한 것은, 이때 그의 귓속에 들려오는 소리가 평소보다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줄곧 비교적 조용한 장소였는데 말이다. 

그는 늘 애용하던 자리로 걸어갔다. 그 자리는 창가에 위치한 자리로, 창가 앞에 놓인 네모난 탁자에는 이미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유 형(刘兄), 이 형(李兄)…….”

장진지가 인사말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다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소? 다들 신이 나 있는 모양새인데, 요즘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졌소?”

이 두 사람은 그와 마찬가지로 거인 신분이었는데, 과거 시험에 대해 진취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장진지와 그들은 이야기가 통하는 사이였고, 또 서로 학문을 연구하고는 했기에, 시간이 나면 함께 자주 약속을 잡고는 했다. 

“장 형, 시골에서 세 달을 살더니, 아니나 다를까 소식에 무뎌지셨소. 허허, 아까 우리는 고 대인의 귀향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오.”

유 거인은 통통한 얼굴에 웃음을 띠더니 땀을 닦으며 이 거인을 힐끗 쳐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어제 막 이 소식을 접했소. 방금까지 임산현으로 고 대인을 뵈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의논하던 차인데, 아직 결정을 못 했소. 장 형은 어찌 생각하시오? 우리가 가야겠소?”

“고 대인께서 정말 고향으로 돌아오셨다는 말이오? 말도 안 되는 뜬소문인 줄 알았거늘.”

장진지는 크게 놀랐다. 그는 여름 날씨가 가장 무더운 때 즈음 도시에서 지내기가 불편해지자, 시골 별원으로 더위를 피하러 옮겨가 있었는데, 그곳은 조용하고 시원해서 책을 읽는 데에도 크게 효과를 볼 수 있는 환경 조건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문을 걸어 닫고 지낸 지 석 달 만에 나오자마자 이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전체 임양부를 통틀어 고씨 성을 가진 사람은 많지도 적지도 않았는데, 다만 ‘고 대인’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단연 고청운을 지칭하는 말임은 다들 묵인하는 바였다.

이 거인은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고 그에게 군성(郡城)에 있는 소보와 관보를 한 부씩 던졌다. 현지에서는 어느 정도 신분이 있는 사람들이나 때를 맞추어 소보를 살 수 있었는데, 이 소식들이 2, 3일 더 늦게 현지에 도착한다고 해도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수단이라 할 수 있었다.

고청운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각 군성에 분포하고 있는 이런 소보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었다.

장진지는 소보와 관보를 받아 들고 재빨리 훑어보았고, 마침내 이 일에 대해 똑똑히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고 대인 같은 전도유망한 인물이 이런 시기에 조기퇴직을 하시다니……. 놀라운 일이오.”

고청운이 바다에 나가 공을 세우고 돌아와 이미 황제의 마음에 들어앉았다는 것은 다들 아는 이야기인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황자를 가르치라며 그를 황궁에 불러들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그만큼 황제의 신임이 두터웠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또한, 그가 50대 초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관원으로서는 아직 나이가 많은 편도 아니었다. 아직 장년기의 나이니 오히려 여기서 한 걸음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데, 이 나이엔 뒤늦게 빛을 보는 관리들이 입각하는 사례도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생각지도 못한 것은 고청운이 관직을 그만두겠다고 했다고 또 진짜 그만둘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고 대인은 정말이지 효자이시네.”

유 거인은 그의 스승인 방인소의 안목이 정말 정확하다며 감탄했다.

장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소보에는 고청운의 행보에 대해 낱낱이 기사가 실려 있었다. 고청운은 월양군에서 공개 강연까지 했는데 아쉽게도 임양부에 도착해서는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간절해져서 더 이상의 초청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않았더라도 그도 진작 소식을 접했을 것이었다.

“나는 임산현에 한번 다녀올 준비를 해야겠소.”

장진지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고 대인께서 고향으로 오시는 것은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잖소. 그 댁을 방문하여 한번 인사드리고자 하오.”

“정말 방문하겠다고?”

잠자코 있던 이 거인이 그를 의아하게 쳐다봤는데, 목소리가 좀 높아서 다른 사람들의 이목까지 끌었다.

“음, 내가 저번에 상경해서 고 대인의 집에 방문을 했었는데, 그때 고 대인의 아드님께서 나를 맞이해 주셨고, 온 가족이 다 친절하게 대해 주셨소. 그들은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 데다가 심지어 도움까지 주어서 난 당시 성가신 일을 하나 해결할 수가 있었지. 고 대인이 공무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던 것만 아니라면 고 대인도 만나 뵐 수 있었을 텐데 말이오.”

장진지가 당당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임산현으로 달려가 바로 고씨 집안에서 주셨던 도움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해야겠소.”

여기까지 얘기를 마친 그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하게 되었는데, 모처럼 만에 이런 기회가 생겼으니 바로 달려가 그 집을 방문하고 싶었던 것이다. 설령 고 대인의 가르침까지는 받지 못하더라도 한 번만 만나 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 이 현장에는 거인과 수재를 합쳐 12~3명 정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장진지의 뻔뻔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거인일 경우 상경해 시험을 치르게 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기와 같은 성(省) 출신의 관료 집안을 방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고씨 가문의 경우, 그들과 같은 부(府) 출신이었기에 반드시 가야만 했었다. 

모두들 고청운을 생각해보면, 그가 조용한 것을 좋아하며, 다른 사람이 방해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정이라는 걸 떠올릴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막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이제 주변 친척과 지인들이 그를 방문하는 시점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다들 방문을 머뭇거리고 있던 것인데, 장진지가 그렇게 빨리 가보겠다고 서두를 줄이야? 

그렇게 두어서는 아니 되었다! 그에게 자리를 빼앗길 수는 없었다. 고 대인은  월성 전체의 자랑거리가 아닌가. 문인이 많지 않은 이 월성이라는 지역에서 이토록 대단한 인물이 나오다니, 이 어찌 쉬운 일이었겠는가? 비록 고청운이 잘하는 것이 산술 방면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대단한 것이었다!

혹시라도…… 대인이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시고 제자로 받아 주려 한다면? 고청운이 아직 제자를 두지 않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뭇사람들의 눈이 무섭게 밝아졌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도 좀 변해버렸다. 

고 대인의 눈에 들려면, 지금 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자신의 경쟁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몇몇 사람들이 눈에 띄었는데, 장진지 역시 이쪽으로는 ‘강력한 상대’로, 그는 산술에 있어 특히 뛰어난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만약 고 대인이 그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또 상인의 아들인 그가 그럴 만한 인품과 능력까지 겸비했다면?

이에 장진지가 자리를 떠난 후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되지 않아, 손님들로 가득했던 찻집은 순식간에 문전성시한 모습에서 냉랭한 형국으로 변모했고, 주인은 정말이지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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