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76)화 (476/504)

476화. 퇴직

“아버지, 이후엔 또 무엇을 하실 예정이십니까?”

고영진은 고청운이 종이 위에 계속 획을 그어대며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급히 캐물었다.

“난 요즘 새로운 생각을 구상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산술이라는 학문을 한 발짝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단다.”

고청운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얼마 전 네 외재종조부께서 양주에서 산술 관련 고서적 한 권을 보내오지 않으셨더냐. 이건 전 왕조의 주 대사(朱大师)께서 쓰신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진작에 유실되어 버린 줄만 알고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듯 네 외재종조부를 통해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구나. 이 책을 다 보고 깨친 바가 심히 적지 않았단다.”

방자명은 지난해 낙양에서 양주(揚州)로 전근했는데, 직위는 역시 지부(知府) 직책이었다. 양주는 뛰어난 인재가 많은 곳으로, 관리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비옥한 곳이었다.

고영진은 그 말을 듣자마자 흥이 동했는데, 자신도 그간 아버지의 모든 저서를 이미 다 읽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는 예전에는 은연중에 과거 시험만을 위해 이쪽 학문을 공부했지만, 진사에 합격한 후부터 한가한 시간이 생겨나자 산술이라는 학문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천천히 그는 자신이 날이 갈수록 산술이라는 학문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매번 어려운 문제를 마주치고 풀어낼 때마다 매우 즐거워했다. 

“주 대사의 ‘유한차분법(*垛积术 有限差分法: 미분방정식에 의하여 지배되는 공간을 작은 격자망으로 구성하여 수치적으로 그 해를 구하는 방법)’을 활용하면 이 문제는 이렇게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잠시 후 부자의 머리가 서서히 한 점으로 모여들었다.

* * *

어느덧 영평 7년의 축국 대회가 지나갔다. 올해 축국 대회의 경우, 고청운은 아직 더 몸을 쉬게 하기 위해 경기에 참여하지 않고 둘째 손자인 이보(二宝)를 안고 경기를 관람했다.

이번 축국 경기에는 화려하고 또 아슬아슬한 장면이 많이 연출되었으나, 그는 몸은 축국 경기장 현장에 있으면서도 신경을 거의 쓰지 못했고, 정신의 대부분이 반쯤 연산을 완료한 서재에 놓인 원고지에 가 있었다. 

‘곡면 둘레의 부피, 함수의 최대치와 최소치…….’

고청운은 자신의 연구가 한계에 봉착했다고 느꼈다. 전생의 기억이 있었던 그는 산술 방면의 문제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유리했지만, 이런 내용들을 배워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 수학 문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가, 방향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미적분이나 수학 공식을 고안해 내고 연구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였다. 

가끔 그는 자신의 심리상태가 궁금했다. 전생의 그는 비록 수학 성적은 좋았지만, 근본적으로 수학을 깊이 연구할 만한 흥미를 지니고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시험을 위해서 배운 것일 뿐이었다. 그는 이번 생애에서 수학을 좋아하게 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설령 어려운 문제에 가로막혀 있다가 낙담도 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기운을 차리고 기죽지 않고 문제를 풀면 연전연패할 수 있었다.

세상일이란 이처럼 참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가 멍하니 있는 새 축국 대회가 끝났는데, 고영진과 방정심이 몸담은 한림원이 홍려사를 물리쳤다.

품속의 이보가 고청운의 무릎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와 작은 손으로 주먹을 꼭 쥐고 껑충껑충 뛰며 환호했다. 

“와, 정말 잘되었어요! 할아버지 빨리 보세요, 아버지께서 이기셨어요! 이겼다! 아버지, 대단해요!”

새까맣고 반질반질한 큰 눈이 반짝이는 것이, 아버지를 명백히 존경하는 얼굴이었다.

고청운은 이를 보고 실소를 터뜨렸다.

* * *

영평 10년, 고청운은 54세가 되었고, 그제야 부딪혀있던 한계에서 벗어나 미적분을 연구해 냈다. 아직 만족할 만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미적분이 세상에 발표되자마자 산술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전국 각지의 산학 관련 학자나 동호인들이 고청운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고청운의 주변에서 이 독창적인 이론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다.

미적분학의 등장은 산술이라는 학문을 크게 발전시켜 한계에 도태되어 있던 산술학계에 또 다른 해결 방식을 제공해 주었으며, 이전의 산술 지식만으로는 풀 수 없었던 많은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게 하는 등 비범한 위력을 보여 주었다.

고청운은 오는 사람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이 배운 것에 대해 남김없이 알려 주었고, 여기에 더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이 이론들과 미적분 기호 표기에 대해 보완하자며 연구를 계속했다.

이 시기에 고청운은 가족들의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먹고 자는 것을 잊고 계속 연구에만 몰두했을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조기에 퇴직을 할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허나 영평제는 고청운이 정성을 다해 몸을 잘 관리한 결과, 아직 머리카락이 검고 안색 역시 붉게 윤기가 도는 것을 보고는 이에 동의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고청운을 달래기 위해, 관 소경이 퇴직한 이후 홍려사에 총명하고 유능한 우 소경(右少敬)을 보내서 원래 있던 봉 소경과 함께 홍려사의 구체적인 일을 맡아 보도록 배려해 주었다. 물론 본래의 태자태부의 직책은 평소대로 계속 겸임하게 했다.

산술학계 사람들은 기뻐했고, 미적분에 대한 연구가 점차 진행되어 감에 따라 문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암암리에 느끼고 있었다. 이 발견에 가장 먼저 호응한 것은 천문학계였다. 그들은 미적분학을 배워보니 예전에 해결이 불가능했다고 말해오던 문제들을 해결하게 되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곧이어 이 새로운 이론은 공학, 역학 등에 응용돼 큰 효과를 거두었고,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연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가끔 그들이 여기서 발견한 미적분이 전생의 것과 같은 것인지 하는 생각을 해 보고는 했다. 그는 이론의 동일성 여부는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러한 미적분에 사용되는 기호들이 전생의 것들과는 많이 다를 걸 알았는데, 필경 이를 발견하고 발전시킨 국가가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미적분의 등장으로 고청운은 학술계에서의 신망이 다시 한층 더 두터워졌고, 이제 전국적으로 인정받는 산술학계의 거장으로서의 권위를 거머쥐게 되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의 눈에는 이것들이 딱히 일상생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그들의 세월은 여전히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으며, 늙어가야 하는 것들은 늙어가고 있었다.

* * *

영평 11년, 방인소와 연 씨가 갑자기 임산현으로 돌아가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고청운은 스승님의 자꾸 노쇠해지는 얼굴을 마주하면서, 요 몇 년 사이에 점점 심해지고 있는 그의 병치레들이 생각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방인소는 깜짝 놀라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한 눈으로 그를 한 번 쳐다보았는데, 원래 그가 이렇게 단번에 동의하는 상황이 발생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연유는 묻지 않는 게야?” 

“스승님, 사람이 한 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지는 것이 정상인데, 하물며 더 말할 나위 없이 임산현은 우리의 고향이 아닙니까.”

그 말에 방인소는 가슴속에 가득 준비해 온 말들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더 생각지도 못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청운이 뜻밖에도 다시 한번 조기퇴직을 신청하며 관직에서 내려오겠다고 밝힌 것이었다! 진짜 관건은 심지어 황제가 이 사안에 동의를 해주었다는 점이었다!

“너…… 너 정말이지 이 노부를 화에 치여 죽일 셈인 게냐! 관직 생활에 있어 조기퇴직 같은 것이 타당한 것이더냐! 노부가 고향에 돌아간다고 하면 데려다줄 사람이 널렸으니 네 녀석이 같이 가줄 필요는 없단 말이다!”

방인소는 그를 손가락질 하면서 말을 잇고 있었는데, 그 손가락이 덜덜 떨리고, 은백색의 수염은 노여움에 들썩거리고 있었다. 

고청운이 빙그레 웃더니 그를 부축하며 마저 답했다. 

“스승님, 제가 스승님을 배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저도 귀향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 나이도 이제는 많아졌고 두 아들도 이미 인재로서 성장했지 않습니까. 저는 소년 시절부터 고향집을 떠나와 있었으니 이제는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이 아주 기뻐하시며 이 의견에 동의해 주셨습니다.”

고청운은 마음속에 여전히 미안함이 가득했는데, 만약 자신이 요 몇 년 동안 온통 미적분에 신경 쓰지 않았다면 방인소가 벌써 귀향하고 싶어 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네 녀석…….” 

방인소는 입술을 몇 번 꿈틀거리기만 할 뿐, 막상 말을 잇지 못했고, 탁해진 두 눈에 물기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팔을 부축하고 나무 그늘 아래 서 있는 고청운은 분위기가 매우 침착했다. 그의 주변에는 봄바람에 꽃향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 * *

55세의 나이가 된 해에, 고청운은 결국 관직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관직 생활을 오래 해 왔으니, 그 역시 이제는 좀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싶어졌던 것이다. 무엇보다 방인소와 연 씨는 이미 90세의 나이가 되었다. 비록 그들의 건강 상태가 겉으로는 그런대로 좋아 보인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정말이지 먹을 만큼 먹은 나이였다. 그들은 역시 고향으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었다. 

게다가 고대하와 소진씨의 나이 역시 70이 넘었는데, 아무리 그가 곁을 지켜드리고 있었다고는 하나 부모님도 임계촌을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과연 고청운이 귀향을 선언했을 때 두 어른은 그의 퇴직 등에 약간은 아쉬워했지만, 고청운이 미리 정해진 수순이라며 말씀드리자 덩달아 기뻐했다. 다만 고영진 부부와 아이들만 울적해져 버렸다.

고전각 역시 올해 15살이 넘어 황립 서원을 수료하고 고향으로 데려가 과거 시험에 응시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그의 뒤를 이어 7살이 된 둘째 손자 고전석(顾传硕)이 황립 서원에 들어가 공부하기로 했다.

* * *

그해 4월 5일, 햇볕이 따사롭고 만물이 만개하는 계절인 봄, 고청운은 가족들을 이끌고 기다리던 귀성길에 올랐다.

고청운 가족은 이번에 귀향할 때 쾌적함을 위해 내륙의 강이나 운하 호수 등을 통해 이동하기로 했는데, 배를 따로 하나 예약하여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지는 대로 이동하기로 했다. 어쨌든 그들은 지금 시간에 쫓길 일도 없었던 것이다. 하여 잠시 머무르고 싶은 곳을 만나면 배를 멈추고 며칠 묵으며, 그 지역의 문화나 분위기, 혹은 현지 특유의 풍습을 직접 경험해 보기로 했다. 

말을 하자면, 물질적 조건만 잘 뒷받침할 수만 있다면, 고대에서의 여행은 그럭저럭할만한 정도였다.

이날, 그들은 양주(扬州)에 도착해서 잠시 머무르기로 했다. 

“며칠 전에 소보에서 자네가 퇴직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 난 정말로 놀랐네. 나는 그저 소보에서 또 헛소리를 하는 줄만 알았지 뭐야. 그들은 늘 확인되지 않은 성급한 기사들을 써 대니 말일세. 허나 하루 지나자마자 자네 소식이 관보에 실린 건 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지. 그제야 자네 퇴직 소식이 진짜임을 알았다네. 말해 보시게, 왜 그렇게 갑자기 그런 결정을 한 게야? 내가 모르는 일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부의 관아에서 멀지 않은 객잔에 자리를 잡은 후, 고청운은 곧바로 하인을 보내 방자명에게 서신을 전달했는데, 뜻밖에도 방자명은 온 가족을 데리고 서신을 보낸 사람을 따라와 고청운을 만났다.

방자명은 관아 뒤채에 살고 있었는데, 면적이 크지는 않지만 그들 가족이 살기에 딱 알맞았다. 고청운은 자신들이 대가족인 데다가 또 한 무더기의 짐과 하인들을 대동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객잔 하나를 통째로 빌려 잠시 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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