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75)화 (475/504)

475화. 여행기

“부군, 어느 황자 전하께서 앞으로 더 잘 되리라고 보고 계십니까? 오황자 전하신가요? 그는 적자이니, 적통성을 대표하기도 하지요. 태상황 폐하와 지금의 황제 폐하께서도 같은 적자 출신이시지 않습니까.”

두 사람이 산책하고 있을 때,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 이르자, 간미는 평소 이에 관해 별 관심이 적었지만 이번 선물 때문에 부쩍 호기심이 일었는지 기민하게 궁금증을 감추지 못했다.

고청운은 간미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건 나도 아주 말하기 어려운 문제이구려. 하지만 누가 되었건 당신의 말을 정탐하는 자가 있을 것이니, 너무 명확한 방향성을 가진 발언을 하지 마시오.”

고청운은 암암리에 오황자를 좋게 보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어리고 머리 또한 뛰어나게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지능적으로는 그렇다고 떨어지는 편도 아니고 정상적인 범위에 속해 있었다. 게다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관대한 성향이 드러나 보였는데, 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매우 진지하게 임하고 또 열심히 노력하면서 교만해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적자라는 점이 천혜(*天惠: 하늘이 베푼 은혜)를 아우르는 우세로 인해 그의 아래에는 한 무리의 신하들이 알아서 모여 있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비록 표면적으로는 황제가 특정 황자를 특별 대우를 하고 선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고청운은 그의 마음속에서는 적자와 서자가 분명 다르게 와 닿을 것이라고 믿었다. 오직 오황자만이 이런 기류를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었다.

사실 몇몇 황자들 중에는 대황자와 삼황자가 학업성취에 있어 더 강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들은 남들보다 매우 똑똑한 편이었지만 고청운은 오황자의 성품이야말로 황제가 되기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영안제와 지금의 황제는 모두 진취적으로 개척을 일구고 있는 황제들로서 그들의 고군분투는 사해(*四海: 사방의 바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바다가 사방으로 중국을 둘러싸고 있다고 여겨서 방방곡곡, 온 국토 등의 뜻으로 쓰임)를 아우르는 태평 성세를 이뤘고, 이제 남은 것은 이를 잘 간수하고 지켜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게다가 마침 우리의 황제는 성정이 너그럽고 세심하지 않은가? 남들이 어찌 보든 어찌 되었건 고청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더 성장할 수 있는 상태였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 고청운은 자신이 못 본 다른 것들이 더 가능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간미도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는지 화제를 돌렸다.

“새해가 지나면 소아를 집에 가서 지내라고 하실 거죠?”

모두들 3년 동안이나 서로 만나지 못했는데, 고경은 고청운이 상경하자 부군을 이끌고 아이들까지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한 달 넘게 지내고 있었다.

간미는 내심 기뻐하면서도 자신의 집안과 딸의 명성에 영향을 미칠까 봐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고청운이 춘절을 다 쇤 후에 그녀를 바로 집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고, 또 마음에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어느 딸자식에게 친정에 자주 들리도록 하는 풍조가 있다는 말인가? 이는 평판에 좋지 않았다.

“물론이오, 며칠 묵는 것이 뭐가 대수겠소?”

고청운은 당당했다. 어차피 사위는 자신이 글 쓰는 작업을 하는데 있어 자료도 챙겨주고 글도 교정해 줘야 하니, 그들이 이곳에 와서 지내는 것이 편했다.

두 달 전부터 고청운은 출해 여행기의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3년 동안 그가 쓴 일기는 무려 세 상자의 분량에 달했는데, 그 안에는 별의별 매우 잡다한 내용들이 다 들어 있었다. 

그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판본의 내용을 집필할 예정이었다. 하나는 대외적으로 발행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의 내용은 황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었는데, 여기에는 다른 나라의 자원이나 군사력 등 은밀한 정보에 대해 수록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내용들은 모두 많은 사람들이 수집한 성과물이었다. 

고청운은 상세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으니, 고영진과 방정심을 불러들여 자신의 집필을 돕도록 했다. 지금 여행기의 집필 속도가 비교적 빨라 벌써 태반의 내용을 다 완성했는데, 특히 이번 집필에 있어 방정심의 존재가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뭐든 한 번 보면 잊지 않는 능력이 있으니, 자료 찾기에 있어 너무나도 편리했던 것이다.

“내가 이미 희림이에게 아들 좀 빌려달라고 말을 해 두었소.”

고청운은 간미가 마땅찮은 반응을 보이자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좋소, 내 여행기를 다 쓰고 나면 꼭 돌려보내도록 하겠소.”

간미는 미소를 지을 뿐 별말은 하지 않았다.

* * *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흘러갔고, 어느덧 춘절의 하루 전날이 도래하여 고씨 일가의 대가족들은 화기애애하게 춘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한눈을 판 새 벌써 3월이 되어있었다. 경성의 교외 지역 혹은 조금 너른 장소에서는 얇은 봄옷을 걸친 젊은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축국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들은 벗들을 불러 모아 웃고 놀며 공을 차면서 경성의 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이 무렵, 고청운은 이미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판본으로 집필한 여행기의 간행을 시작했고, 이 중 일반본은 이미 시중에 판매되고 있었다. 첫 간행본 5천 권이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닷새도 안 돼 모두 매진되어서 고청운은 매우 기뻤다.

사장정 역시 이 같은 판매량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일전에 이미 이런 추이에 대해 예상을 하긴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열렬한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모두가 금은을 꺼내 들고 와서 책을 사 갔다. 

이와 동시에 고청운은 황제와 내각에 일반본이 아닌 완전판 여행기를 전해 올렸다. 이 책은 일반 시중에 발매할 수 없고, 황실의 장서루에 수록 및 관리를 맡겨 특정인에게만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황실의 장서루에 함께 보관된 여행기에는 고청운이 기록한 여행 기록뿐만 아니라 이들이 항로에서 수집한 다른 기록 자료들도 포함하고 있었는데, 이 자료들은 매우 귀중한 것들이라, 황제는 한림원 사람들에게 맡겨 전문적으로 정리하도록 했다. 

두 종류의 여행기 일부 자료는 비슷했는데, 내용상의 차이점을 제외하고서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한다면 고청운이 쓴 여행기는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이 여행기에는 그의 인간사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기에, 무미건조한 기록 자료들과는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여행기에 사용된 문체는 매우 소박했고, 어휘 선택이 정확하고 유머러스함이 있었다. 비록 고청운을 눈에 거슬려 하는 사람이 이 여행기를 본다면, 그의 문체가 너무 얄팍하고 너무 직설적인 데다가, 독서 특유의 우아한 멋을 느끼게 하는 맛이 없다며 구시렁거릴 테지만, 고청운은 이런 것들을 개의치 않았다. 그는 마음속으로는 전생에서의 자신의 문학 수준에 비하면 지금은 매우 높아진 수준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이미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점에 대해 개의치 않았는지, 오히려 이러한 장점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의 구매를 이끌어내었다. 이 책을 구매하는 대중들은 무슨 대문학가나 학자가 아니고 그저 글자를 대충이나마 알고 있을 뿐인 부류였던 것이다. 고청운이 쓴 여행기의 수준은 그들도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들은 이 책을 보고 나면 마치 고청운을 직접 따라나서 소개된 몇십 개 국가를 함께 다녀온 것만 같았는데, 외국의 이국적인 정취를 음미하며 매우 강렬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사장정이 웃자고 한 말이 있었다.

“지금 경성에서는 조건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아이들에게 견문을 넓히라며 이 책을 사주고 있다네. 다행히 나중에 추가 발행을 명해뒀지. 이번에 자네가 받은 윤필료는 이전에 집필했던 그 어느 책보다 많을 게야.”

‘이 책으로 견문을 넓힌다고?’ 

고청운은 이 점이 그나마 이해가 갔다. 고대는 교통이 불편한 시절이지 않은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생 사방으로 수십 리 떨어진 곳 정도밖에 벗어나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었다. 경성에서 월성까지 한 번 왕복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견문을 넓힐 수 있었는데, 더욱이 다른 나라를 한 번 다녀온다는 것은 얼마나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일인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윤필료에 관해서는, 지금의 고청운은 얼마의 은자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바다로 한 번 나가게 되면서 나라의 곳간에도 적잖은 소득을 채워 넣을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큰돈을 벌었던 것이었다. 그는 현재 3만 냥이란 은자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활하는 데 있어 이미 걱정이 없었다.

고청운은 이 은자들에 대해 일찌감치 계획을 세워두었다. 

* * *

한편, 여행기를 펴내면서 고영진과 방정심은 낮에는 한림원에서 일하다가 밤에는 고택으로 돌아와 고청운의 자료 정리를 돕는 등 바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들은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되면서 바다 밖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 당장 출항에 동행하지 못했던 것을 한스러워했다.

“아버지, 조정에서 두 번째 출항단을 조직할 거라는 말씀이세요?”

이날은 휴무일이었는데, 고영진은 밖에서 축국을 하고 돌아와 목욕을 마치자마자 고청운의 서재로 뛰어 들어가서 손에 든 선박 제조에 대한 기록물을 뒤적거리다 기대 섞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 선박 기록물에 적힌 내용에 대해 일찌감치 줄줄 외울 정도였고, 이를 바탕으로 직접 규격을 설정하여 몇 척의 선박을 제작해 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이 배들로 교외의 장원 근처 강가에 띄어 보았는데, 꽤 쓸 만해서 자신의 선박 제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지며 선박 제조에 대해 더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관련 서적을 부단히 찾으러 다녔고, 어떨 때는 선박 제조와 관련된 전문 장인을 찾아 가르침을 청하기도 했다. 

고청운은 공부(工部)에 재직할 당시, 유능한 장인 여러 명을 알고 지내며 친분을 쌓았는데, 지금까지도 수시로 그들의 생활 형편을 살피며 어려운 점이 있으면 도와주고 있었다. 그 덕분에 고영진은 덕을 많이 봤다. 집까지 찾아와 가르침을 주는 일에 있어서 그들이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작은아들의 말에 고청운은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는데,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채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 번째 출항단은 분명 있을 게다. 왜, 너도 바다로 나가고 싶으냐?”

그는 손에 붓을 들고 시도 때도 없이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나저나 참으로 단순하고 거친 제목을 붙인 <고청운유기(顾青云游记)>의 집필이 끝나자, 고청운은 갑자기 한가해졌고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게 되었다.

할 일 없던 며칠이 지나고, 고청운은 네 어른을 모시고 경성 교외를 돌아다녔는데, 이렇게 한가한 나날을 보내 본 지 보름도 되지 않아 좀 견디기 힘들다고 느껴져 이제는 미적분에 정력을 쏟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는 이 계획을 지금까지 줄곧 품어오고 있었지 않은가. 그는 자신이 아직 정력이 왕성한 틈을 타서 최종적으로 이를 연구해 낼 수 있을지 다시 한번 도전해봐야겠다고 여겼다. 

그 말에 고영진은 다급히 보던 책을 세워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빼꼼히 내놓고는 아버지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런 생각이 든 건 맞지만 지금 당장 가고 싶다는 건 아닙니다. 좀 기다렸다가 다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이번에 바다에 나가게 된 일로 온 가족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던가. 그런 상황에서 그가 다시 바다에 관련된 의견을 들고 나왔다가는, 할머니와 외증조할머니가 실신하는 모습을 봐야 할 것이었다. 

‘됐다, 역시 아무 일 없게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몇 년 후에 다시 이야기해야겠지.’

과연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젊은이들이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들이 지금은 단지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니, 며칠이 지나면 또 그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고청운은 다시금 고영진의 나이를 상기해보고, 그가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경계시켰다. 고영진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러니 자신은 그를 어린애 취급하며 그의 의견을 쉽게 넘기지 말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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