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71)화 (471/504)

471화. 홍려사

모두들 안채 응접실에 앉기를 기다려 고청운은 양탄자 위에서 정식으로 고대하와 소진씨에게 절을 올렸고, 아들 며느리와 손자 세대로부터 절을 받았다. 이 과정을 모두 밟고 나서야 모두들 마침내 반절 정도는 평소의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절을 하면서 고청운은 톡톡 튀는 성정의 손녀와 오동통한 모습으로 방긋방긋 웃는 둘째 손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뒤이어 그는 집안에서 아이들 다음으로 제일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는데, 가족들은 그가 더우면 더울세라 추우면 추울세라 살뜰하게 돌봐 주었던 것이다. 

가까스로 모두의 감정이 좀 누그러졌을 때 즈음 방인소와 연 씨가 방자명의 집으로부터 급하게 돌아와 또 한 번 통곡을 했다.

보아하니 앞으로 아무리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들 다시는 바다로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고청운은 은연중에 이제 겨우 한 번 다녀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집안 어른들에게 못 할 짓을 한 것 같아 정말 한 번 더 출항하는 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청운 일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천륜의 즐거움을 누릴 때, 온 경성의 크고 작은 길 곳곳에서도 마치 큰 경사가 벌어지는 것 같았다. 경성 곳곳에서 이들의 귀환과 동시에, 황명을 받아 서양을 다녀온 선단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한번 뜨겁게 경성을 달구며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것이다. 

뒤따라 온 나라가 몇 개나 되는지, 조정에서는 또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 그리고 이번에 가져온 물자들에 대해 호부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바다에 나간 관원들에게는 또 어떤 사례가 주어질지, 해외의 국가 실상은 어떤 모습인지, 황금의 흔적은 찾아냈는지 등 사람들 사이에서는 관련된 여러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경성의 소보들은 또 많은 내용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고, 이는 적지 않은 사람의 밥줄이 되었다. 

* * *

집에서 철저하게 3일간의 휴식을 취하고 난 후, 고청운은 드디어 궁으로 들라는 황명을 받게 되었다. 

관습대로 칙서를 받들며 절을 올린 고청운은 황제가 하사해 준 탈것에 올라타 앉았다.

* * *

“고 애경(*爱卿: 군주가 신하를 칭하는 말로, 존중과 친애를 표한다), 고생했네.”

영평제(永平帝)는 고청운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고, 온화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짐이 보기에, 애경은 3년 전과 비교해 보면 백발이 다 생겼구나.”

고청운은 이 말을 듣고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절을 하면서 겸손하게 말했다. 

“폐하와 하 왕조를 위해 걱정을 할 수 있었던 건 소신의 영광이지, 전혀 수고로운 일이 아니었나이다.” 

그는 듣기 좋은 미사여구들을 더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물며 이번 출항은 원래 자신이 원해서 참여했던 일이 아닌가. 그는 이 여정이 헛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리 고생스러웠더라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고청운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 출항에 있어, 소신은 하명하신 내용을 삼가 받들어 다행히도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이번 여정에서 46개의 국가와 지역을 거치면서 각국의 지방 특색과 풍습에 대해 견문을 넓혔는데, 특히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인상 깊었습니다. 하나는 이전에 매우 강대했던 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도 강성하였지요. 

이 밖에도 소신은 이번 항해를 통해 하 왕조의 드높은 이름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 알리고 왔습니다. 우리 하 왕조는 눈부신 문명과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기에 다른 나라들의 국왕과 백성들이 우러러보았는데,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번 귀환 때 그들이 저희를 따라오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고청운의 원래 사상에 입각하자면, 그는 그런 작은 섬들이나 지역들이 호의를 보이며 선물을 바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황제는 이런 걸 좋아했기 때문에, 부하들이 옆에서 하도 그를 설득해댄 탓에 이렇게 일이 진행되고 말았다. 

결국 그는 이런 광경을 연출하는 것에 대해 머리를 끄덕여 동의했는데, 어쨌든 자신과 같은 배를 타고 이동할 것도 아니었고, 단지 이따금 그들을 찾아가 이야기만 나누면서 그들의 기분을 다독여 주는 것 외에는 결코 부담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함께 들어온 그들을 보고 이렇게까지 일일이 희색을 표할 줄이야…….

“오, 그럼 고 애경이 자세히 그 과정들에 대해 말을 해 보거라. 짐도 해외와 관련된 서적들을 읽어보았는데, 그 책들만으로는 내용이 충분히 상세하거나 사실적이지 못했다. 마침 이렇게 고 애경을 만나게 되었으니, 함께 관련된 대화를 나누기 안성맞춤일 듯하구나.”

영평제는 이쪽으로 흥미가 동한 듯 흥이 나서 대화를 이끌었다. 

황제가 흥미를 보이는 것을 본 고청운은 입을 열어 대화의 장단을 맞추었고, 항해의 전 과정을 최대한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후 그는 막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무심코 책상에 시선을 옮겨갔는데, 마침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상주문이 자신이 작성한, 천주에서 경성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작성한 바로 그 상주문이었다. 각양각색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상주문이기는 하나, 그 주요 맥락은 각국의 위세와 사회의 발전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서술한 양이 매우 많았지만 이해하기 쉬웠다.

어쨌든 그는 각국의 실상에 대해 묘사하고자 했던 관점에 대해서 상주문을 통해 모두 구현해 냈는데, 지금 황제와의 대화는 문답의 형식으로 관련 내용을 한 번 더 언급하는 취지였다. 

고청운은 대화에 재미와 구성을 모두 잘 녹여 냈는데, 필경 집에서 쉬던 사흘 내내 가족들에게 이미 수없이 출항 중 겪은 일들에 대해 말했었고, 게다가 계속해서 작성해 오던 일기가 있었으니, 당연히 세세한 부분까지 또렷이 잘 기억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역시나 고청운이 이야기를 하는 내내, 영평제는 아주 집중하여 경청했고 조금도 지루해 보이지 않았다. 

* * *

궁궐에서 나올 때, 고청운은 자신의 등이 땀으로 이미 흠뻑 젖어 있음을 발견했다. 어서방에는 얼음이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는 늦더위의 위력 때문에 흐른 땀이 아니었다. 바로 황제 앞에서의 긴장으로 인한 것이었다. 

고청운은 마차에 올라타서야 비로소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그는 이 몇 년이란 시간이 지난 끝에, 영평제가 마침내 막 등극하여 어좌에 굳은 얼굴로 앉아있던 새로운 황제로서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고, 이제는 지금 본 것처럼 신하들과 희로애락을 표하고 흥미진진하게 대화까지 가능해진 황제로 변모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보아하니 자신의 작은아들 고영진의 말이 맞았던 모양이었다. 고영진은 영평제가 조정을 점점 성공적으로 장악해 나갔다고 했는데, 정치적 수완도 뛰어나고 이미 자신의 위세도 갖추었다고 말해주었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청운은 여전히 황제 앞에서 계속 정신을 가다듬고 긴장해 있었고, 당최 도중에 긴장을 늦출 기회를 보질 못했다. 

고청운은 등까지 흐르고 있는 땀을 닦아내며 ‘황제 앞에서 대담한 사람들에게’ 감탄해 마지않았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아닌가! 이러한 것은 아마도 그가 평생 익힐 수 없는 기술로, 그는 그 흉내만 겨우 낼 수 있을 뿐일 것이었다. 필경 말 한마디라는 것이 늘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마련인데, 그에게 있어 이렇게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신경을 쓰고 곰곰이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일은 황제를 마주하고 있는 현장에서 말을 버벅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밖에 나가 있던 탓에, 윗사람의 눈치를 볼 일 없이 느긋하게 잘 지내다 말고 이렇게 갑자기 황제를 알현하니 더욱 긴장되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그는 선단 내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관리였기에 다른 어떠한 사람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었지만, 그와 반대로 다른 사람들은 그의 낯빛을 살펴서 일을 하고는 했었다. 그래서 남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일을 하다 보니, 고청운은 상대방의 말과 안색을 살펴보고 그 의중을 헤아리는 기술이 조금 퇴화한 것 같았다.

‘내가 방금 너무 말이 많지는 않았을까? 혹시 황제 폐하께서는 내가 귀찮지 않으셨을까? 내가 어서방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나?’

고청운은 이런 우울한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뜨거운 물을 한 잔 따라 마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다른 일을 생각하며 조금 전의 걱정을 떨쳐냈다. 

태상황(*太上皇: 황제의 아버지에 대한 칭호)이 살아 있고, 뭔가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고청운은 자신의 생명을 걱정할 만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가 지금 고민하는 것은 대체로 이번에 그들을 따라 온 외국의 사신들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그리고 그들이 가져온 선물에 대한 답례의 명단을 어찌 작성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답례 선물을 정함에 있어서 너무 단출한 물품을 선정하여 조정의 체면을 구겨지게 해서는 아니 되었고, 또 다른 나라들 입장에서 이 하 왕조가 이런저런 명목으로 과한 것을 요구할만한 만만한 상대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 될 일이었다. 

* * *

고청운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다 보니 곧 홍려사에 도착했다. 아마도 미리 소식을 들은 것인지, 고청운이 문에 들어서자 급한 용무를 보고 있는 몇몇을 제외한 관청의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인의 무사 귀환을 경하드립니다!”

모두의 축하에 고청운은 감동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매우 놀랍기도 했다. 

“정말 고맙네, 고마워.”

고청운은 다급히 양손을 공수하며 답례하고, 자신과 함께 출항했던 부하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나만 축하를 받을 수는 없지, 나 말고도 이번에 우리 홍려사에서 함께 출항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네.”

고청운은 이렇게 말하면서 배에서 함께 생활하며 꽤나 친숙해진 그 10여 명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넸다.

한편, 고청운이 바라보고 있지 않은 곳에 있던 어떤 관원들은 제멋대로 허리를 뻣뻣하게 세운 채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관리들을 쳐다보았는데, 실은 마음속이 부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관 소경도 그렇고 봉 소경도 그러했다. 

곧 다른 사람들을 물러가게 한 고청운은 두 사람과 사적으로 있어 보니,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다. 

“대인, 저희가 지금 대인의 승진을 경하드려야겠지요?”

관 소경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띠운 채 먼저 입을 열었다.

고청운이 부재해 있던 이 3년 동안, 그는 홍려사의 직권 태반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권력 구도가 분명 고청운의 강력한 추천이 뒷받침되어 가능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누구의 배경이 더 든든한지 굳이 따져 본다면 자신보다는 봉 소경이 한참 더 든든한 배경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되오.”

고청운은 집무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실내가 전혀 더러워 보이지 않고, 물건의 진열도 당초 그가 떠났을 때와 똑같은 것을 발견하고는 속으로 매우 기뻤다.

“본관은 이 홍려사를 매우 좋아한다오.”

“허나 관 대인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대인께서 다녀오신 이번 출항은 분명히 공을 세우고 돌아오신 대인의 업적입니다. 이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일이지요. 다른 것은 더 예로 들 필요도 없이, 단지 이번에 가지고 돌아오신 그 100만 냥의 실물 은과 그 수많은 화물들만 하더라도 사람들의 존경을 자아내기 충분합니다!”

봉 소경은 탄복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에게도 당초 출항 기회가 주어졌으나 집에서 이를 한사코 허락하지 않았고, 봉 소경 아버지가 그의 권력을 이용해 봉 소경의 이름을 출항 명단에서 빼내어 버렸던 것이다. 그는 전까지는 괜찮았지만, 이제 와서 고청운 등 일행이 하나같이 혁혁한 공을 세우고 귀환한 것을 보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그들이 공을 세운 것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 나가 외국의 문화를 접해 본 그 점을 부러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넓디넓은 이 세상에는 온갖 것이 다 있었는데, 이 며칠간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울 정도였다.

“이런 것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네.”

고청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청운은 이번에 경성으로 돌아와서 봉 소경을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는데, 그가 아직 홍려사에 남아 있는 것이 조금은 뜻밖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일반 사람들보다는 승진하기 조금 더 쉬운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아직도 홍려사에 남아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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