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70)화 (470/504)

470화. 가족

고청운이 다시 깨어났을 때는 차창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고청운이 차발을 젖히고 밖을 내다보니, 과연 마차가 이미 성 안에 진입해 있었고,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장영가(长宁街)까지 도달해 있었다. 

날이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는데도 창밖 곳곳에 등불이 켜져 있었다. 

북적이는 인파로 인해 깊어가는 가을 저녁은 더없이 뜨거웠다. 

“경성은 여전히 이렇게 시끌벅적하구나. 심지어는 예전보다 더 시끌벅적해진 것 같다.”

고청운은 바깥 풍경을 보니 대부분 웃는 얼굴의 사람들이 보였는데, 여유로워 보이는 그들의 발걸음에 감탄했다.

장영가는 10년 전부터 사흘에 하루씩 야간통행 금지를 면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 거리는 점점 더 번창해 갔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는데, 다들 밤에 짬을 내서 야시장을 구경하거나 친구들을 불러서 맛있는 음식을 즐겼다.

고청운은 인파 속에서 아이를 데리고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경조윤(*京兆尹: 수도를 지키고 다스리던 관직 중 우두머리)이 분명히 치안 안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고전각을 데리고 이곳으로 거리 구경을 나온 적이 있는데, 역시 이곳의 치안이 마음에 들었었다.

장영가에 다다른 이상, 이제 이곳으로부터 그의 집은 멀지 않았다.

이 생각에 미치자 그는 갑자기 흥분이 되어, 남아 있던 졸음 기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그는 먼저 손바닥만한 거울을 꺼내 자신을 살펴보았다. 음, 눈 밑의 검푸른 자국도 없어져 있었다. 거의 한 달 동안 천주에서 대기하며 지내는 동안,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편안하게 지냈다. 배에서는 잘 자기 위해 노력했기에, 막 뭍에 올랐을 때보다 볼도 약간 더 통통해지고 또 피부색도 하얘져 있었다.

그가 이를 드러내 보이며 한 번 웃어 보이니, 이는 여전히 새하얗고 견고했다. 피부야 해와 바람에 노출이 되어 출항 전보다는 다소 거칠어져 있었고, 눈가의 주름 역시 선명해져 있었다. 

‘이제 정말 젊어 보이지는 않는구나.’ 

그는 멍하니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한숨을 내쉬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 역시 보통의 사람인지라 늙고 죽는 것이 두려웠는데, 남들보다 일생을 한 번 더 살아냈지만 그래도 생사를 냉담하게 여기지는 못했다.

그래도 집안의 소년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만족스러웠다. 

큰아들 고영량은 복주에서 4년 동안 통판직을 수임하여 부지런히 일했다. 인사평가에 있어서도 매번 평가를 우수하게 받아, 자신이 돌아오기 한 달 전에 민성에 지주의 빈자리가 하나 생기자 이 자리를 얻어서 단번에 정6품 통판직에서 종5품 지주직으로 승진했다. 현재 인수인계가 막 끝나서 얼마 전에 막 정식 부임을 한 상태였다. 

작은아들 고영진은 여전히 한림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제 막 만 5년을 채웠고, 올해 4월 종7품인 한림원 검토(检讨)직에서 정7품 편수직으로 1년 앞당겨 승진했다. 고청운은 작은아들이 원한다면 간미와 자신이 아직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빨리 경성을 벗어나게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나중에 의견을 물어보리라 생각했다. 

고청운은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로 50세를 말함)의 나이가 이미 이 시대에서 노인을 뜻한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역시 시간이 빠르게 지나는 것 같았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고택에 가까워질수록 당장이라도 집으로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드디어 마차가 멈춰 서자 고삼원의 흥에 겨운 외침이 울려 퍼졌다.

“숙부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고청운은 마차에 앉아있다가 뜻밖에도 고향에 다다랐을 때 느꼈던 심정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고삼원이 젊은 문지기를 보니, 그는 이들의 도착을 보고 너무나 놀란 나머지 평소 배운 예절이니 법규도 다 잊은 채 후원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달리면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리께서 오셨다. 나리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갓 몸을 추스른 집사는 민망한 듯 고삼원을 힐끗 쳐다보고는 또 한 명의 멍해져 있는 문지기에게 눈짓을 하여 정신을 차리고 와서 정문을 열도록 했다. 

방충은 그제야 몸을 돌려 마차의 발을 걷어올리고 공손히 말했다.

“나리,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정신을 가다듬은 고청운도 그제야 허리를 굽혀 마차에서 나왔다. 그는 마차에서 내려 잠시 고택의 입구에 서서 방인소가 친필로 쓴 ‘고택(顾宅)’ 이라는 두 글자를 바라보고 잠시 멍해져 있었다.

이 순간에 다다라서야 그는 자신이 정말로 집에 돌아온 것을 체감했다. 정말이지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바다에서 목숨을 건져 돌아왔고, 머나먼 나라에서 친숙한 고향으로 돌아와 드디어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내 마음이 있는 곳이 나의 집이 되리니.’ 

고청운은 빙그레 웃고 나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꿋꿋한 발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섰다.

* * *

막 행랑을 돌아 들어섰을 때, 그는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발걸음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여러 명인 듯 걸음걸이가 뒤죽박죽이었다.

고청운은 정신을 한껏 끌어올려 들어보고는 무엇인가 짐작되는 바가 있어 즉시 발걸음을 더 재촉하여 빨리 뛰기 시작했고, 뒤에서 따르던 한 무리의 하인들도 놀라서 서로 쳐다보며 급히 따라 달렸다.

몇 번의 호흡을 하는 찰나에, 마침내 고청운은 발자국 소리의 주인을 볼 수 있었다. 

소진씨가 나이를 잊은 채 둘째 며느리인 노묘운과 간미의 부축을 받아가며 빠른 걸음으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고개를 빼서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초조하고 또 간절해 보였다. 

시선을 돌리자 간미 역시 같은 표정으로 머리 위에 달린 머리 장식을 마구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녀는 이를 눈치채고 있지 못한 듯했다. 이런 그녀들 주위로는 여종들이 한 바퀴 둘러져 그녀들을 에워싸고 있었고, 그녀들의 발걸음 또한 매우 분주했다.

이 여종들 뒤로 고대하가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는데, 희끗희끗한 머리채를 걷어 올리며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고영진은 조심스럽게 그를 부축하며 외치고 있었다.

“할아버지, 천천히 가세요! 조금만 더 천천히 가셔야 해요.”

그는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눈은 계속해서 대문 쪽을 자꾸 쳐다보고 있었다. 

고청운은 삽시간에 눈이 시큰시큰해졌지만, 발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저쪽 행랑에서도 이쪽의 인기척이 들렸는데, 사수회랑 양끝에서 서로 마주한 이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소진씨는 그를 보자마자 걸음을 멈추더니 손을 내밀어 소리쳤다.

”아들아! 내 아들아, 네가 드디어 돌아왔구나! 이 어미의 전자가…… 돌아 왔으니 어서 와서 어미에게 얼굴을 좀 보여다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는 벌써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설령 고청운은 지난 3년 동안 세상풍파에 단련되면서 생사여탈에 어느 정도 마음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막 마주한 노모의 익숙한 외침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양측은 마주하자, 자연히 서로를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노묘운도 손수건을 들어 눈물을 훔쳤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들 대가족은 정자에 앉아 한담을 나누던 중이었다. 뛰어노는 아이를 보고 산책도 하며 겸사겸사 소일거리를 하던 와중에 계집종 하나가 의기양양하게 뛰어 들어오더니 기쁜 소식을 알린 것이었다. 

시아버지가 드디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시어머니와 시할머니의 눈빛에 기쁨이 서렸고, 그녀도 잠시 멍해졌다. 곧이어 그녀의 부군이 자리에서 펄쩍 뛰며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지만, 다행히도 무엇이 생각났는지 멍하니 서 있던 시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그럼 우리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신 거죠?”

그는 말을 마치고 자신을 향해 눈짓했다.

부군의 말에 넋을 잃고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더니 이리저리 뛰기 시작했다.

지금 노묘운은 객지에서 이리저리 떠돌아 고생한 시아버지를 보고 있었는데, 그는 시할머니와 얼싸안고 통곡하고 있었다. 

노묘운의 눈물을 훔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고씨 집안으로 시집을 왔을 때, 그녀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고씨 가족들은 대가족이 하나같이 다 서로 간의 정이 깊고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부군 역시 그러했는데, 그 역시 자주 아들과 딸을 안고 흐뭇해하며 목말을 태워주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그녀의 본가에서 중요시하는 ‘손자는 안아주어도 아들은 안아주니 않는다.’라는 가풍과는 조금 달랐다. 그들 가문은 줄곧 아들들이 글공부를 하게 되는 나이가 되어도 보통의 경우 아버지를 마주하게 되면 고양이 앞에 쥐가 선 듯 했던 것이다. 그녀의 오라버니도 지금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 앞에서는 부군이나 시아버지와 같은 친밀한 분위기는 전혀 없이 엄숙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것을 두고 아마 가풍이 다르다고 하는 거겠지?’

노묘운은 시할머니가 울고 웃는 걸 보니 연세가 있는 어르신이 너무 흥분하여 건강을 해칠까 봐 걱정이 되어, 붉어진 눈시울로 코를 실룩거리고 있는 고영진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군, 시아버지께서 먼 곳으로부터 배를 타고 오시느라 고생하셨는데 먼저 집 안으로 모시고 들어와 앉게 해드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노묘운의 말에 고대하는 정신이 들었다. 그는 그제야 여윈 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어서 이리 오너라. 마누라, 이제 아들 좀 놓아주시오. 땅이 이리 차가운데 계속 무릎을 꿇고 있을 수는 없지 않소. 아들을 보아하니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먼저 푹 좀 쉬라고 놔주시오.”

고대하가 급히 말했다. 그는 아들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게 자신이 아니라는 생각에 속으로 질투심이 극에 달해 있었다.

비록 이전에도 이렇게 여러 해 떨어져 지낸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적어도 아들이 경성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 때였다. 무엇보다 경성은 안전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번처럼 아들이 망망대해 위를 떠돌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그 어느 때보다 걱정이 앞섰고, 하필이면 늙은 부인도 위로해야 해서 고대하는 머리를 싸매야 했다.

이제 와서 드디어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니, 고생이야 좀 한 것 같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무난해 보이는 것이 마침내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제 앞으로는 편안하게 잠에 들 수 있게 되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고대하는 눈물 자국을 들키지 않으려 소매로 문질러 눈물을 닦아냈다. 맏손자가 곁에 없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진작에 들켰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평소 모습을 어찌 관리한단 말인가?

고대하는 맏손자를 생각하다가 대뜸 물었다.

“육육이와 이보는?”

고영진과 노묘운은 어리둥절했다. 맞다, 아까 너무 급히 뛰어오느라 뜻밖에도 정원에서 놀던 아이를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여기까지 뛰어나왔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둘러 장소를 다시 옮겼다.

고청운은 소진씨의 손에 이끌려 걸어가면서도 간미를 잊지 않았다. 그가 그녀에게 위로의 미소를 보내자, 간미는 눈을 붉히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