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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469)화 (469/504)

469화. 세월

다행히 고청운은 천주에서 큰아들인 고영량을 만날 수 있었다. 고영량은 공무를 빌어 일부러 항구로 달려와 아버지를 만나자마자 무릎을 꿇고 그의 종아리를 껴안은 채 크게 울었다. 아들이 자신을 끌어안고 기뻐서 펑펑 우는 모습에 고청운의 가슴도 찡해졌다.

“그래, 그래. 이제 되었다, 그만 울거라. 내 무사히 돌아오지 않았느냐.”

고청운은 있는 힘을 주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비록 이 시대의 아랫사람이 오랫동안 부모님을 뵙지 못한 뒤에 다시 상봉하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관례가 있었음에도, 그는 아들이 너무 오래 무릎 꿇고 있는 것이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고영량은 말이 없었다. 고청운은 이미 30살이 된 그가 3년 전보다 한층 성숙해진 기질을 풍기고 있었기에 매우 흡족해하고 있었다. 고영량은 처음 만났을 때 보인 그 듬직한 모습이 무너진 채 벌게진 눈으로 흐느끼며 말했다.

“밤이나 낮이나 아버지께서 무사히 돌아오시기만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아버지의 얼굴을 뵙게 되니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북받쳐 올라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눈을 들어 고청운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고, 손으로는 고청운의 귀밑머리를 살며시 쓰다듬더니 또다시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아버지,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척해진 아버지의 몸과 풍파에 상한 그의 얼굴, 그리고 이렇게 자라난 귀밑머리는 아버지가 바다에 나가기 전에는 본 적이 없던 모습이었다. 

바다에 나가기 전, 아버지와 자신이 늘 함께 서 있을 때면, 사람들은 옆에서 아버지가 몸 관리를 잘해서 두 사람이 몇 살 차이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했었다. 

이것은 그와 동생의 자랑거리였으나, 지금은 고청운의 얼굴에서 세월의 무정함이 감지되고 있었다. 

이 3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버지의 새까만 머리카락은 하얗게 물들었고, 웃을 때면 눈에는 잔주름까지 보이게 했다……. 이 모든 것이 어찌 고영량의 가슴을 저미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 크게 통곡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다행히 난 품계가 있으니 그리 큰 고생은 하지 않았단다. 게다가 이번 출항으로 얻은 이득이 엄청나니 감내할 만한 일이었다.”

고청운이 아들을 위로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는데, 그는 항해하는 선단을 통틀어 제일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어 대우를 많이 받았던 것이었다. 육훤도 그만큼은 아니었다. 

육훤은 무슨 좋은 물건이나 음식이 있으면 그에게 제일 먼저 가져다주고는 했는데, 이런 그가 고생을 했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한 것은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말을 마친 고청운은 손수건을 꺼내 고영량의 눈물을 닦아주려다가 일부러 장난을 쳤다.

“이렇게 다 커서도 눈물을 흘리다니,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 없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놀림을 받았을 게야.”

고영량은 그저 고개만 저을 뿐, 순순히 고청운이 눈물을 닦아주는 것에 몸을 내맡기고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따지고 보면 이 두 부자의 이별한 시간은 정말 길었는데, 특히 바다로 나가는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자칫 생이별을 할 가능성도 있었으니 고청운은 속으로 큰아들이 이런 감정을 내보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도, 햇볕도 많이 쬐어서 그런 것이니, 돌아가서 검은깨를 많이 먹고 영양도 좀 보충하면 문제없다.”

고영량의 시선이 계속해서 자신의 얼굴, 특히 머리카락 쪽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본 고청운이 바삐 그를 위로했다. 

그는 자신이 현재 어떻게 변모했는지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했었다. 지난 3년 동안 그가 받은 중압감은 극심했는데, 선단의 최고 책임자로서, 제대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각 방면으로 신경을 써야 했던 것이다……. 그는 잘못된 결정으로 선단 전체의 안전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는데, 이런 시간이 길어지자 어느 정도 너무 억압된 자신을 조금 풀어 놓았지만 그래도 머리카락만은 어쩔 수 없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졌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고청운은 이렇게 생각을 하자 마음이 안정되었다. 다만 왠지는 모르겠으나 고영량과 육훤은 이렇게 머리가 세어버린 자신을 보더니 너무 고생을 해서 그렇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었다.

어휴, 아이들이 자신에게 너무 관심을 갖는 것도 고민스러운 일이라며, 고청운은 속으로 달콤한 고민을 했다. 

“자, 이 얘기는 그만하자. 의원도 내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고 진맥을 해주었으니, 전문가를 믿어보자꾸나.”

고청운은 얼른 말을 돌려 다른 사람들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

이 내용으로 수다를 떨면 한나절이 걸렸지만, 고영량은 집안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꼼꼼히 알려 주었다. 고청운은 집안 어른들의 건강이 아직 나쁘지 않다는 것과 간미가 몇 년 동안 몇 번인가의 작은 병치레를 거쳤지만 곧 완치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의 손자 세대의 근황으로는 10대 초반의 고전각이 학업을 잘 향상시키고 있었고, 황립 서원 내에서도 안정적인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떠나기 전에 이미 회임 중이던 노묘운과 영요는 이미 제각기 아들을 하나씩 더 낳았는데, 아명은 각각 이보(二寶), 삼보(三寶)로, 정식 이름은 그가 찾아오기를 기다려 짓기로 했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고청운은 이미 자신의 세 손자와 손녀 하나를 둔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경도 있었다. 그녀는 지난달에 딸을 낳아 현재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모두 두고 있었다. 

‘좋아, 나는 동시에 외할아버지로도 등극을 했구나.’

자세히 계산해 보니 고경의 큰아들과 이보, 삼보는 같은 해에 태어났다. 아직 세 살이 안 되었으니, 앞으로 세 꼬마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조용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 소식을 들은 후, 고청운은 마음이 꽤나 유쾌해졌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족들이 평안했으니 말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럼 삼보와 네 며느리는?”

고청운이 급히 물었다.

“그들은 복주에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천주에 내려온 것도 기회를 잡은 것이라 처자식들까지 같이 내려오지는 못했습니다.”

지방관들은 아무 이유 없이 자기 관할의 관내를 떠나서는 아니 되었는데, 그 역시 동료들의 배려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빨리 아버지를 만나 뵙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복주로 돌아가서 아이들을 만나 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고청운은 자못 실망했다.

“당연히 문제없지요. 아버지, 밤이 깊었는데 어서 좀 쉬세요. 밤을 지새우시면 아니 됩니다.”

친척들의 근황을 알려 주던 고영량이 아버지에게 급히 재촉했다.

고청운은 하는 수 없이 결국 큰아들의 시중을 받으며 스스로 목욕을 마쳤다.

이날 저녁, 고영량은 침상을 더 들여오라 하여, 두 사람은 한 방에서 잠을 잤다.

* * *

다음 날, 부자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야기의 화제는 당연 그간 3년 동안 일어났던 근황으로, 고청운은 이 덕에 현재의 조정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육훤이 잠시 찾아와 함께 담소를 나누었다. 

안타깝게도 고영량은 천주에서 3일밖에 머무르지 못했던지라, 기간이 다 되어 먼저 돌아가야 했다.

그가 떠나고 난 후, 고청운 등 일행은 계속해서 대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사람들의 방문을 받고 있었다. 그는 시간의 흐름이 너무 느리게 느껴졌고, 그와 동시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더욱 짙어졌다.

이처럼 절박한 심정에도 그들은 여전히 천주에서 보름이나 더 기다리고 나서야 황제의 성지를 받을 수 있었다. 성지에는 그들 전체를 크게 치하하고 상을 내린다는 말이 담겨 있어 고청운으로 하여금 너무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닌가 부끄러워지게 만들었지만, 그를 매우 기쁘게 만드는 소식도 함께 담겨 있었다. 바로 그들 관리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경성으로 올라올 수 있고, 이제 남은 일들은 내각에서 파견한 병부와 호부 사람들이 인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고청운은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어쨌든 그들이 세운 공로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거니와, 황제와 내각의 뜻은 그들이 당연히 따라야만 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 * *

선박들은 다시 북상을 거듭했고, 8월 말에 이르러서야 고청운 등 일행은 마침내 다시 경성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아마도 경성에서 근 30년을 살아왔기 때문인지, 혹은 바로 이곳에 자신의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인지, 다시 경성 땅을 밟았을 때 고청운은 평소와는 또 다른 친근감 이상의 감정을 느꼈고, 그 친근함에 뒤따라오는 격동을 잠시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도착한 일행들은 즉시 황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알현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잠시 해산했다. 그들은 필경 해외로 나간 지 이미 3년이나 흘렀기에 틀림없이 가장 먼저 가족들과 만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 방면에 있어 조정에서는 약간의 인간미를 선보였다. 

모두들 지체없이 해산했는데, 육훤이 제일 먼저 고청운에게 물었다. 

“스승님, 데리러 올 사람이 있으십니까?”

그는 이미 후부의 표식이 있는 마차가 와 있는 것을 보았다. 

“삼원이가 돌아와 봐야 알겠구나.”

고청운은 그의 눈이 맑게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육훤이 눈에 힘을 주어 경성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기에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날 듯이 빨리 돌아가고 싶으냐?”

육훤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곤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전에 천주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경성으로 다시 돌아오니 더는 못 기다리겠습니다.”

그는 방금까지도 그의 동료들이 조급해하는 모습을 은근히 비웃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의 마음 역시 그들만큼이나 절박했다.

고삼원은 곧 돌아와 상황을 보고해 주었다. 고청운은 그제야 집안의 집사인 방충이 시종들을 데리고 부두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은 지 오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도 어서 빨리 가보거라,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이 있다고 하는구나.”

고청운이 육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

* * *

한쪽에 있던 방충이 고청운을 발견하고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비록 진위는 알 수 없으나, 고청운은 언제나 침착하던 방충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고 그래도 좀 기쁜 마음이 들었다. 

“자네는 내가 오늘 올 것이라는 걸 어찌 알았는가?”

“나리의 서신을 받고 마님과 주인나리들께서 줄곧 날짜를 셈하셨지요. 아니나 다를까, 대기하고 있은 지 7일 만에 이렇게 나리를 뵙게 되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시면 마님과 가족분들께서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방충은 밝은 표정으로 차발을 사이에 두고 고청운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방충은 오늘 또 이렇게 허탕치고 나리 없이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또 고씨 가족들의 실망스러운 눈빛을 마주해야 해서 여간 부담이 아니었는데, 누가 이렇게 오늘 정말 나리를 만나 돌아갈 수 있게 될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고청운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마차의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를 듣던 그는 너무 흥분해 있던 탓인지 예상외로 약간 피곤해져서 손에 꽉 쥐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미 집에 거의 가까이 도달했기 때문인지 마음도 편안해졌기에, 그는 천천히 등받이 방석에 누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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