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화. 정찰
고청운은 며칠째 뒤에서 계속 무역 거래를 진행하는 상인들은 본체만체하면서, 일부 사람들만 데리고 주변을 둘러 다녔다. 그가 볼수록 아쉽게 여겼던 것은, 이 항구의 지리적 위치는 정말 너무나도 좋았기에 다른 무인도처럼 함부로 주권을 알리는 비석을 세울 수 있었다면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바다 밖으로 나와서 고청운의 마음속에는 일종의 절박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
‘이 세상에 좋은 곳도 적지 않지만, 이미 많은 다른 사람들이 이 좋은 거점들을 많이도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 조국의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과연 어느 정도를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될까?’
이런 점들을 고려하게 되자, 고청운은 다시 한번 자신이 보잘것없음을 느꼈다. 자신이 아무리 미래의 대세에 관해 똑똑히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이에 개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미 닥친 현실에서 다시 한 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저 현재의 상황에 맞추어 한 걸음씩 상황에 맞게 걸으며 더욱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다 늙어서 지금을 되돌아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채, 그는 항구를 또 온종일 돌아다녔는데, 도중에 또 몇몇 한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얻은 소득이 조금 있었다. 그들이 몸이 지쳐서 임시 거처로 돌아가려고 할 때는 새들도 다 둥지로 돌아갈 시간인 석양이 질 무렵이었다.
거처로 가는 도중에도 30세가 넘은 하 내관(*하 내시)은 여전히 흥분한 채였다. 그가 모처럼만에 수다를 떨었다.
“고 대인, 방금 그 댁의 주인 되는 사람이 보인 마음씨가 어찌나 감격스러웠는지, 울다가 웃다가 그랬습니다. 아! 지금 우리나라의 조정이 얼마나 잘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제 한창 태평성세를 누리고 있는데, 저들은 하필이면 아직도 이 땅에 남아 있으니 평소에 얼마나 업신여김을 당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쩐지 우리를 보면서 마치 가족을 만난 것처럼 아주 눈물이 그렁그렁하더군요.”
두 사람이 중간에서 걷고 있었고, 이 둘의 주변은 호위병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서였다. 비록 이 지역의 총독이 매우 친절하게 대하고 있어 나쁜 마음을 가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만일의 사태에는 대비해야 했다.
함께 지내는 나날들이 길어지자, 고청운과 하 내관은 배에서 서로 마주치는 건 어려웠지만, 서로에게 점점 익숙해져서 대화를 함에 있어서,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그런 격식을 차리지는 않게 되었다.
“고향을 등지고 살기란 쉽지 않은 법이지요.”
고청운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환경에 융화되어 산다는 것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그들이 이곳에 며칠 머무는 동안, 현지의 한인과 토착인들은 늘 그들을 향해 경외의 시선으로 항구 밖 거대한 규모의 선단이 자아내는 광경을 바라보고는 했는데, 만약에 그들이 완강히 거절하지 않았더라면 선단은 틀림없이 그들이 자발적으로 보내주는 많은 선물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럼 왜 우리랑 돌아가지 않겠다는 걸까요? 여기서 양인들에게 괴롭힘까지 당하면서 말입니다.”
하 내관은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을 뒤따라오는 상선이 그렇게나 많으니 돈만 조금 지불하면 그들의 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이 작은 도시에 자신들의 집과 가게가 있고, 성 밖에 토지도 보유하고 있는 등 그들의 재산이 모두 여기에 있어서 그럴 겁니다. 그리고 보아하니 그들의 생활이 나쁘지 않아 보이더군요. 그래도 중산층에는 속해 있어 보였습니다. 갑자기 단번에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우리랑 하 왕조로 돌아가는 일은 아마도 당분간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겁니다.”
길 양쪽에 늘어서 있는 상점을 되는대로 둘러본 고청운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을 발견했는데, 대부분 자신들과 함께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이곳으로 나온 지 수십 년이 되었습니다."
하 내관은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에 울분만을 드러냈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늘 아래 그 어느 곳이 있어, 내가 생활하는 하 왕조보다 더 번화하고 더 풍요로운 곳이 있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보다시피 오는 여정 내내 들렀던 나라와 부족들을 보더라도 그 어느 한 곳도 하 왕조에 비할 바가 못 되었던 것이다.
그는 여기까지 생각하다 말고 갑자기 앞쪽에 오물이 한 무더기 쌓여 있는 것을 보고는 해맑던 얼굴에 혐오감을 드러냈고, 급히 손수건을 꺼내어 입과 코를 막은 뒤 발돋움을 하여 총총히 그 앞을 피해 지나갔다.
‘이렇게 큰 거리 하나 청소할 줄 모르다니. 우리 하 왕조와 비교도 안 되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고 대인은 서양 세력이 강대국이고, 해상 군사력이 매우 강하다고만 하시니. 흥,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우리 수군에 의해 산산이 격파되었으면서.’
며칠 전에 그 서양인들이 자신들 선단을 보았을 때 그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던 눈빛을 생각하면, 그는 한바탕 의기양양해졌다.
“사실 우리가 그들을 굴복시킬 만큼 강했다면 이민을 오지 않아도 되었겠지요. 하지만 여기에서 이들에게 넓은 땅을 임대해주고, 현지의 한인들을 모아서 한데 거주하게 하며, 가옥은 옛날 지방의 대단위 문중들이 취했던 오보(*坞堡: 보루형,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토성형으로 튼튼하게 쌓은 구축물) 형식으로 잘 지어 살게 하고, 자신들의 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면, 남들도 함부로 업신여기지 못할 겁니다.”
고청운은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맞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겠군요!”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피곤함은 이미 말끔히 날아가 버렸다.
“한인들이 모이면 서로 도울 수 있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현지에서도 일정 언어 사용권을 형성해서 지낼 수 있게 될 겁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우리 왕조에서 원하는 무엇을 이곳에서 진행하더라도 더 수월해지겠지요.”
모두 함께 뭉치면 쉽게 현지와 융화되지 않아, 어떤 식으로도 도움이 될지 몰랐다.
고청운은 자기 나라가 이룩한 문화에 대해 매우 자신이 있었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문화를 지킬 때에는 그들만의 선진 기술 수준을 유지하도록 주의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는다면 본연의 그들만의 문화가 다른 문화에 도리어 전복되어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신들의 실력뿐이었다. 그들이 보유한 실력이 더 강하고 또 단단해져야 했는데, 만약 실력이 없으면 방금 생각했던 모든 것을 이루기 힘들 것이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고청운은 생각할수록 신이 나 발걸음을 재촉했다. 새로운 발상이 생각났으니, 금방이라도 잊어버릴까 바로 글로 써내려가야 했다.
하 내관은 다시 무슨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고청운의 표정이 이상해 보였다. 그는 고청운이 두 눈을 허공으로 향한 채 눈앞의 오물을 밟고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는, 바로 하고 싶은 말을 삼켜버렸다.
‘됐어, 말을 말자. 고 대인의 모습을 보아하니, 또 무슨 새로운 발상이 떠오르신 걸지도 몰라.’
어쨌든 그는 고 대인의 생각에 승복하는 편이었다. 이번 출항에서 그는 무료한 시간을 예상하고 이를 대비하여 특별히 서점을 방문해 화본들을 아주 많이 구입하여 배에 태웠는데, 그중에서도 고 대인의 작품에서 엿보이는 그의 하늘을 비상하는 상상력이 자신을 끝없이 탄복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도, 고청운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임시 거처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들은 각자 자신의 거처로 되돌아갔다.
* * *
고청운은 문을 들어서자마자 마중 나온 고삼원과 마주쳤다.
“숙부, 이 더러운 것을 밟고 오셨어요?”
고삼원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뒤따르던 두 명의 사내종들에게 일갈했다.
“너희들은 어떻게 나리를 모셨기에, 나리께서 이런 것을 밟게 하고 있었느냐?”
숙부가 평소 보이시던 모습이 있기에 고삼원은 조금 과격하게 이야기했다.
“괜찮다, 신경 쓰지 말거라.”
고청운은 손을 마구 흔들어 그를 제지하고는 장화를 차버리고 대뜸 분부했다.
“삼원아, 네가 먹 좀 갈아주겠느냐? 내가 뭘 좀 써야겠구나.”
고삼원은 그의 표정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고 황급히 그를 따라 서재에 들어가 붓과 벼루, 그리고 종이를 준비했다.
고청운은 방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반 주향(*약 15분) 후, 그는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확장시켜 전개해 보고, 여러 가지 영향과 가능성을 고려하여, 마침내 머릿속으로 책론 한 편의 구상을 완성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붓을 들어 먹을 묻히고 그 내용을 썼는데, 거의 일필지휘로 단번에 문장을 작성했다고 할 만했다.
문장을 작성하고 난 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바로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이런 느낌이 잘 살지가 않을 테지.’
현지의 기후는 습하고 더운 편이라, 6월도 채 안 돼 날씨가 벌써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땀을 뻘뻘 흘리고 있어 온몸에 땀 냄새가 풍겼기에 구질구질해진 양말을 얼른 벗어 던지고 준비된 뜨거운 물로 한 번 씻었다. 그러고는 정원 안에 있는 의자에 편안히 앉아서 머리를 풀고 코코넛 주스를 마시며 바닷바람을 쐬며 한가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삼원이 그를 도와 먹을 말린 종이를 잘 정돈하고 방에서 나와 쾌적해 보이는 고청운의 모습이 보이기에 바로 물었다.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숙부, 식사는 어디에 차려드릴까요?”
“소보는 어디 있느냐?”
고청운이 되물었다.
이번 출항 인력은 지휘, 항해, 외교, 무역, 군수 지원, 군사 호송 등 크게 6개 부문으로 나뉘어 조직했는데, 이 6개 부문을 또다시 세분화시켜 두었기에 분업이 매우 명확하게 잘 되어있어 각자 맡은 바 임무를 다할 수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고청운과 육훤은 지휘부의 일원으로, 자신의 권위를 강조하는 다른 관료들과 달리 다른 관료들에게 매일 보고를 요구하지 않았다. 별일이 없다면 3일에 한 번만 보고를 진행하게 했는데, 이에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육훤도 보통 저녁 식사를 그가 있는 곳으로 넘어와서 함께 했다.
“세자 나리께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말씀하시기로는 밖에서 다른 장수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다 하셨습니다.”
집사나 다름없는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고삼원은 고청운의 습성에 대해 잘 알고 있기도 했기에 자연히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었다.
“밖에서 식사를? 어디에서 한다고 하더냐?”
고청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항구에는 뱃사람도 많고 그만큼 사내들도 많아 집창촌이 도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내들은 배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배에서 내려올 일이 있으면 어김없이 여인을 찾아가고는 했다. 그는 육훤이 깨끗하게 지조를 지킬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이것은 육훤의 사생활적인 부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는 이미 어릴 적의 나약한 아이도 아니었으니, 자신이 그에게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었고 또 그에게 이런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안전 문제에 의거하여, 고청운은 바다로 나가기 앞서 모두에게 감염병을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흠, 아직 그에게는 다섯 손가락이 건재했다.
고삼원은 이내 깨달은 바가 있어 바로 부연 설명을 했다.
“숙부, 안심하세요. 세자 나리께서는 그런 곳에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이 듣게 된 유언비어를 떠올렸고, 속으로 다른 대인들에게 동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자기 집안의 이 여색을 멀리하는 숙부님 탓에, 그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도 무슨 사적인 일을 벌이려고 하면 슬그머니 숙부의 동정부터 살펴야 하니 정말이지 고생이 많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