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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464)화 (464/504)

464화. 출항 (2)

고청운이 본격적으로 집을 나섰다. 그가 아직 밝아오지 않은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마차에 오르려 하는데, 등 뒤에서 어린 손녀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 누군가가 아이의 우는 입을 막으려 작은 소리로 달래는 것이 들렸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다행스럽게도 고전각은 아직 자고 있었는데, 모두들 일부러 깨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도 아마 울며 보채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별을 할 때 혹여 불길할까 봐, 보통은 가능한 한 울음을 삼켰는데, 아이들은 이런 것을 참기 힘들어했다.

고청운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그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문 앞의 붉은 등롱 두 개가 불을 밝히고 있었고, 가족들은 서로를 부축한 채 똑바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 이 장면을, 그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었다. 

이별은 사람을 가장 마음 아프게 했다. 고청운은 손을 흔들며 눈물이 슬쩍 흘리고 허리를 굽혀 마차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고삼원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차부(車夫)에게 마차를 몰라고 분부했다.

* * *

마차 안에서 고삼원이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숙부, 선착장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잠깐 눈 좀 붙이시겠습니까?”

“아니다, 이따가 배에 올라타고 나서 자도 된다.”

고청운은 손가락으로 명치를 지압했는데, 이 부근의 옷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고 있는 간미가 생각나서 마음속 허전함이 더욱 짙어졌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고청운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고삼원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너도 이런 나이에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따라 바다로 나가게 되었구나.”

고청운은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능력이 출중했기에, 이번 출항에서 하인들을 많이 데리고 가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자신을 수행하는 사람이 4명 따라붙게 되었는데, 모두 젊고 힘이 세서 호위용으로 쓸 만했다.

또 한 명의 수행원은 고삼원으로, 그의 경우 누가 말려도 듣지 않고 기어코 자신을 따라오겠다고 했다.

“숙부, 더 말씀하실 필요 없으세요. 저는 제가 원하여 기꺼이 숙부를 따라가는 겁니다.”

고삼원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

“단지 이번은 바다로 따라 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한 번 유람을 간다고 생각하면 되지요. 우리 경이(*고경)는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었는걸요.”

그가 고경을 언급하자 고청운은 웃음이 나왔다. 지난달에 고경이 회임 사실을 알리자, 모두들 기뻐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회임 때문에 입덧을 시작해버렸는데, 무엇을 먹더라도 다 게워내려고 하며 아주 약간의 비린내도 맡지 못할 정도였다. 거기에 더해 아침잠이 너무 심해져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그녀와 방정심은 어제 일찍이 먼저 작별인사를 하러 왔었다.

사실 고청운은 그녀의 건강 상태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그를 따라 출항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걸 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가까운 바다 정도는 가능하겠으나, 먼 항해를 하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미신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여인이 승선하는 걸 불길하다고 여겼을 것이었다. 그는 비록 이번 황명으로 출발하는 선단의 명목상 최고 책임자로 있었지만, 이런 일로 더 풍파를 만들지 않고 그저 전통을 따르면서 괜한 질책을 받을 만한 문젯거리를 고경이 뒤집어쓰지 않도록 해야 했다. 

게다가 이번 출항은 여느 때와는 달리 위험성이 매우 높았다. 고청운은 아이들을 이런 위험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고영진이 자진해서 따르겠다고 했을 때도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

* * *

성문 앞에 도착했을 때, 고청운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방정심과 우연히 마주쳤다.

“어찌 여기에 와 있었는가?”

고청운이 놀라서 물었다.

“오늘은 출근하는 날이지 않은가.”

‘해야 할 말이 무엇이든지 어제 다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다시 살펴보니 그와 멀지 않은 곳에 하인 하나가 말 두 필을 끌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말 두 마리를 끌고 있는 걸 보니 그는 지금 말을 타고 막 달려온 것 같았다.

방정심이 귀밑머리가 축축하고 등이 아직 젖은 채로 씩 웃으며 흰 이를 드러내 보였다. 

“장인어른, 경이(*고경)가 전해 드리라고 한 구기자 술입니다. 저희가 어제 드리는 것을 까먹지 뭡니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술 항아리를 고삼원에게 건네주었다.

이 술은 오래된 처방에 따라 고경이 손수 담근 술이었는데, 담근 시간을 계산해 보니, 딱 마침 며칠 내로 땅속의 움에서 꺼내 마실 수 있는 때였다.

고청운은 마음이 흐뭇해졌지만, 여전히 화가 난 척하며 말했다.

“이게 무어라고 그리 소란을 피워! 소아가 소란을 피운다고 한들 자네까지 이를 따라 방임하다니, 오늘은 자네가 출근을 하는 날이 아닌가. 설령 무엇을 잊었다고 하더라도 하인을 보내오면 그만인 것을, 자네가 이리 직접 움직이다니. 또 이 술은 서두르지 말고 내가 돌아온 뒤에 줘도 되지 않았는가.”

“이건 좀 다릅니다.”

방정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태연자약하게, 또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이것은 경이의 마음이니, 반드시 지금 장인어른께 가져다드려야 하지요. 그리고 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 휴가를 제출했으니, 한림원에 조금 늦게 도착하는 것은 이제 문제가 없습니다. 전 그저 장인어른께 정식으로 작별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조심히 다녀오세요.”

고청운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원래는 그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고청운은 서둘러 방정심을 돌려보낸 뒤, 다시 부두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황제 역시 아침에 사람을 보내 자신들을 배웅할 것이었다.

* * *

부두에 도착하자 날이 이미 밝아져 있었는데, 해가 막 뜬 시간이라 부두에 머무는 배가 많지 않았다. 고청운이 일전에 세운 계획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그들보다 먼저 배를 출발시켜 움직이고 있었고, 지금 남은 이들은 이번 선단의 마지막 인원들이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를 발견한 다른 관리들이 잇달아 달려와 절을 하며 예를 표했다.

이어서 고청운 등 일부 관리들이 대기했는데, 다행히 반 시진도 안 되어 내각의 우승상이 한 무리의 관원들을 거느리고 황급히 도착했고, 그들의 고별을 장식하는 성지도 함께 도달했다. 마침내 그들이 배에 올랐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 * *

고청운은 자신이 묵을 선실로 돌아가면서 부하 직원들에게 쉬고 있으라 말을 전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점심 식사 때에 다시 말하도록 했는데, 그는 지금은 정말이지 너무나 피곤했다. 아마 정서적인 문제라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한 듯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고청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자신이 준비한 두툼한 계획서를 살펴보았다. 이 계획서에는 이번 출항 계획, 동선 등과 부하 직원의 신상 이력서도 함께 들어 있었다. 

고청운은 우선 제일 앞장에 위치한 서열 1위의 이름을 살펴보았는데, 이 사람은 황제의 신변에 꼭 붙어 다니던 내시이며, 성은 하(賀)씨로, 비록 기세가 대단하지만,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라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도중에 무슨 이견이 생기더라도 작은 소리로 속삭여 알려주고는 해서 모두가 잘 상의할 수 있었기에, 그의 사람됨에 꽤 만족해하고 있었다.

이번 출항에서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서로 발목잡기를 하는 양상으로 치닫는 것인데, 그래도 이번에 보아하니 황제와 내각은 인원 구성에 있어 성의를 좀 보인 것 같았다. 고청운이 이런 정치 싸움에 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는지, 이번 항해에 파견된 관리들을 대부분 말을 잘 듣는 관리들 위주로 선정을 해 주었던 것이다. 

그중 일부는 원래 홍려사와 공부 출신의 관리들로, 비록 품계가 낮다고는 하나, 지금 고청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합심이 가능한 인력 수급이었기에 고청운은 이들이 와서 마음이 놓였다. 그들의 가장 주요한 목적은 바로 이번 출사 임무를 무사히 수행하는 것이었다. 

* * *

선단은 곧이어 민성에 도착했고, 고청운은 천주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고영량을 만났다. 이번에 출항할 때 가져갈 물자를 복주부에서 지원했기에, 고영량은 여기서나마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고청운은 큰아들과 거의 2년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이렇게 만나게 되니 설레기 그지없었다. 특히 큰며느리 영요가 회임한 지 벌써 한 달이나 되었다는 소식에 더욱 놀랍고 또 기뻤다.

단 한 가지 나쁜 점은, 이들 일행이 출발하려 하자 큰아들의 아쉬운 표정이 또 한 번 그를 마음 아프게 했다는 것이었다.

* * *

준비가 다 갖춰진 가운데, 11월 5일, 흠천감(钦天监)에서 택해준 길일이 되자 마침내 계절풍을 맞으며 고청운 등 일행이 탄 배의 돛을 올렸다.

그들이 출발하기 전, 소문을 듣고 온 백성들이 온 부두를 가득 메웠고, 해당 지역의 관청에서는 온갖 악기를 연주하며 이들을 배웅해 주었다. 폭죽 소리가 연신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오며 온 부두가 시끌벅적해졌다.

떠나는 사람들은 갑판 위에 서서 아쉬운 듯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고청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갑판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일망무제(*一望無際: 눈에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게 멀고 넓어서 끝이 없음)의 바다 위에 200척의 배가 운행되고 있었는데, 이 장관은 가히 하늘과 태양을 가릴 듯 그 위세가 대단했다. 게다가 이들 선단 뒤에는 현지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출항을 기다리고 있던 상선들이 함께 뒤따르고 있었기에, 그 규모가 광대하여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들이 연출하는 장관은 웅장하기가 비할 바가 없었다. 

줄곧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던 고청운이라 할지라도 이런 대단한 광경을 마주하고 나자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졌고, 가슴이 웅장해지면서 가슴 저 밑에서부터 무엇인가가 끓어올랐다. 

“스승님, 이번에야말로 원하는 바를 이루어냈습니다!”

고청운 옆에 서 있던 육훤이 감격에 겨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 부하들이 얼마나 훈련을 많이 거쳤는데요. 이번에는 화포 시설을 갖춘 선박도 많이 대동하고 있으니, 누가 감히 우리를 멸시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출항에서는 식량 수송을 전문으로 하는 곡물 수송선과 채소를 전문적으로 실어 나르는 채소 수송선 외에도 화포를 장착한 포선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바다 위에서는 길흉을 예측할 수가 없었고, 해적도 맹위를 떨치며 성행하고 있었기에 무력 없이 떠났다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지도 몰랐던 것이었다. 고청운이 알기로는 그동안 육택이 관여해 도와줬기에 망정이지,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번 항해에 있어 병부에서는 이렇게 많은 포선을 기동시키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고청운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 부탁 좀 하마, 네가 우리를 좀 지켜다오.”

“당연하지요.”

육훤이 활짝 웃어보였다. 

“소보야, 나는 이번에 어떤 예감 같은 것이 들었단다. 우리가 지금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고청운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만약 중간에 큰 이변 없이 이번 항해에 관한 기록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역사가 될 것이었다. 물론 역사가 이들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서는 그들이 이번 항해에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테지만 말이다. 

남은 시간 동안 그들은 전 왕조의 기록에 남아 있던 항로를 따라 계속해서 내려갔는데, 중도에 수십 개 국가와 부족을 지나면서도 해적들은 그들의 소식을 듣고 모두 도망가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 일로 털끝만큼도 우쭐해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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