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63)화 (463/504)

463화. 출항 (1)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흘러, 이렇게 바쁜 와중에 또다시 어느덧 이듬해 3월이 찾아와 회시 시험을 치르는 기간이 도래했다.

고영동과 방서가 시험장 내 호실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었을 때, 고청운은 사장정의 초대를 받고 주루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훠궈(*火锅: 중국식 샤브샤브)를 먹고 있었다. 

“드디어 자네를 볼 수 있군. 자네 집이 지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탓에, 내가 몇 번이나 배첩을 보냈는데도 계속해서 나오질 못하고 있었지 않은가.”

사장정은 원망 섞인 말투와 반대로, 아주 열정적인 동작으로 양고기 육수를 한 그릇을 퍼주었다.

고청운은 두 손으로 그릇을 받아 들고는 눈썹을 한 번 찡그린 채 온화하게 말했다.

“일이 너무나도 복잡하고, 할 일도 너무 많아서 아예 밖으로 좀처럼 나가질 않았네.”

“그럼 이제 바쁜 건 거의 끝나 가는가?”

사장정이 고청운을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연달아 말했다.

“말랐군, 자네 살이 좀 빠졌네. 어서 고기 좀 많이 들게.”

“다행히 폐하와 내각의 지지가 있어서 지금은 필요한 게 무엇이든 정해진 대로 처리가 되고 있네. 아마도 올해 10월이면 경성을 떠나 천주에 주둔 중인 군대와 합류할 수 있을 것 같네.”

고청운은 한 번 빙긋이 웃어 보였다. 요즈음 그는 매우 큰 시련을 겪게 되면서 자신의 조직 관리 능력이 또 한 번 크게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만 명의 인원이 함께 출항을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간단한 일이 아니었는데, 다행히도 다른 보조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고, 또 사전에 구체적인 방안을 짜서 임무를 분담하고, 전문가를 배치한 데다가, 조직 위아래의 지지를 얻고 있었기에 성공적으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때에 따라서는 일부 부문에 대해 옥신각신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호부는 사용 가능한 은자의 많고 적음과 관계되어 있었기에, 그들의 허가를 쟁취해 내기 위해서는 투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듣자 하니 자네들이 이번에 출항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물자를 구비했다지?”

사장정은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네, 동원되는 사람이 많으니 씀씀이도 커지더군.”

고청운은 준비한 물자의 일부를 무역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결국에 이 이익은 반드시 여비를 벌충해 줄 것으로, 나중에 조정에서 이번 항해가 백성들의 재산을 축내 손해를 본다고 말하는 것을 염려해 다시는 바다로 나가려 하지 않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이것은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었는데, 만약 성공적으로 일이 마무리된다면 조정 대신이 직접 바다를 건넌다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덜어줄 터였다. 만약 그들이 첫 번째 성공을 거둘 수만 있다면, 두 번째 기회는 아마 그에게 돌아오지도 않을 것이었다.

사장정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계속 질문을 했는데, 이 소식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전해 들은 것이었다. 

“그간 사람들이 하도 질문을 해대는 통에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네. 다들 내게 대신 물어봐 달라고 하도 성화여서 물어보는데, 이번에 외교사절로 출사(*出使: 외교 사명을 받고 외국으로 가다)하는 선단에 상선을 따라 붙여 보낼 방법이 있는가?”

고청운은 그의 이 직접적인 질문이 전혀 뜻밖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는데, 자신이 황제의 명으로 출사를 나가게 되자, 그와 관계를 맺으려는 해상 무역 상인들이 부쩍 늘었던 것이다. 그 뒤에는 권력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에 대해 고청운은 그들의 자료를 조금 살펴본 뒤 동의했는데, 어차피 조정에서는 출항을 독려하고 있었고, 상단들은 동행만 가능하다면 따라오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들의 임무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따라오기만 하면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게다가 민간 선단의 경우 경험이 풍부해 그들이 가야할 항로에서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가능하네, 우리 항해 일정에 따라 줄 수 있다면 가능하지.”

고청운이 흔쾌히 동의했다.

“그럼 잘되었네. 지금은 귀족들이 생활하기가 좋지 않은 시절 아닌가. 모두들 바다로 나가 무역을 행하면 돈이 빨리 벌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위험 부담도 크게 따르지. 자칫 조심하지 않으면 크게 손해를 보고 밑천을 날리기도 한다지. 

특히 해적 문제도 마음에 걸리는데, 내가 듣기로는 해적이 있는 지역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네. 하지만 이번에 자네들 일행과 동행하게 되면 안전 문제는 보장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도달할 수 있는 지역도 그래, 더 멀리 떨어진 곳까지 진출이 가능하겠지.”

사장정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훈귀(*勳貴: 사업이나 나라를 위하여 두드러지게 세운 공로가 있는 귀족) 자제들이었다. 

사장정은 말을 시작하니 끊임이 없었다.

“내가 또 듣자 하니, 이것은 갈 수 있는 노선을 많이 확보할수록 장사가 더 잘된다고도 들었네.”

고청운이 아주 싱싱한 짙푸른 채소를 냄비에 넣고는 휘휘 휘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러하네.”

이번 출항엔 수사(*수군) 병력들을 훈련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는데, 하는 김에 중국과 서양을 왕래하는 길도 뚫어보고자 했다.

어찌 된 일인지, 서양 세력과의 전쟁이 끝난 후 이 1년 사이 하 왕조와 교역을 하는 서양 무역선이 2할이나 줄었다. 만약 이런 상황이 닥치지 않았더라면, 조정에서도 이번 항해 임무를 강행하여 서양을 둘러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목적이 달성된 사장정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사장정은 이제 느긋하게 고청운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옛일을 다시 꺼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실 난 잘 모르겠네, 자네는 경성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었지 않은가. 바다로 나가겠다는 열정이 있을 수 있다니, 나는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네. 어휴, 자은사의 혜해(慧海) 대사께서 곧 돌아오신다네. 

내가 그때 가서 자네를 위한 평안부(*平安符: 호신 부적의 일종)를 가져다주겠네. 자네가 다녀오는 길이 평안하기를 기원하고 싶어.”

“그만두게나, 내게 주는 평안부는 이미 충분히 많이 있다네.”

고청운은 쓴웃음을 지었는데, 집안의 여인들이 매달 절에 가서 그의 안부를 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도가(道家)적인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가 사람들에게 몸에 지니고 다니는 부적 같은 것을 부탁하여 이미 한 자루씩 준비해 두고 있었다.

* * *

머지않아 회시의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지만, 고영동과 방서는 모두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두 사람은 며칠 동안 지쳐서 쇠약한 모습으로 지내다가 회복했는데, 특히 고영동은 낙방 경험이 있었기에 몸을 잘 추스를 수 있었다.

방서는 시험이 끝난 후로도 계속 경성에 남아 지내기로 해서 자주 찾아와 밥을 먹고는 했다.

고영동은 모처럼 경성으로 온 것이니, 잠시 더 머물며 다른 거인들과 많은 교류를 하고자 했다. 

고청운은 매일 반 시진씩 시간을 내어 그들에게 수업을 해주었는데, 당초 고영량, 고영진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그들이 취약한 부분을 골라서 그 부분을 보완해 주었다.

* * *

10월 초가 되자, 모든 준비가 다 끝났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그는 또 남몰래 집안과 관련된 일들도 모두 잘 처리해 두었다.

고청운이 사람들을 인솔하여 경성으로부터 출발할 때, 아무리 다들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는 하나, 막상 떠나게 되니 온 집안은 울음바다가 되어 그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번 출항에 함께 하는 인원이 많았기 때문에, 고청운은 일찍이 가족들에게 부두까지 나와 자신을 배웅하지 말라 결정했다. 고영진이 재삼 배웅을 할 수 있게 해달라 부탁을 해도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이지 다시 한번 작별을 고하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그가 발걸음을 내디뎌 집을 나서려 할 때의 가족들의 표정은 여전히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고, 진한 아쉬움과 미련이 피어오르게 했다.

“제가 한 번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도 아니고, 2년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갈 겁니다.”

고청운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소진씨의 손을 잡고 다시 한번 위로했다.

“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주세요.”

소진씨는 초췌한 안색을 하고 벌겋게 부어오른 두 눈에서 눈물만 흘릴 뿐, 조금의 기력이라도 있으면 눈물을 쏟느라 하마터면 말도 나오지 않을 뻔했다. 그녀는 이미 며칠 전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흐느꼈다.

“그래, 그래. 내 그리하마…….”

고청운은 시선을 돌려 고대하와 방인소를 돌아보았는데, 그들은 확실히 사내들이라 그런지, 그래도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많이 제어하고 있었다. 

“이놈의 자식, 집에 이렇게나 많은 식구들이 다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너는 밖에서 반드시 더욱 조심하고, 또 건강을 살펴야 할 게다.”

방인소가 고청운의 어깨를 힘껏 두드렸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떤 것도 네 건강 문제와 맞바꿀 수는 없다.”

고대하가 말을 이었다.

고청운은 그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시 연 씨와 간미를 보았는데, 두 사람은 눈가에 눈물을 반짝이며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굳어진 고청운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마음속으로는 도대체 이렇게까지 하면서 이번 출항을 감행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다시 떠올랐다.

돌이켜 생각해보았으나, 나무가 이미 배가 되었기에 돌이킬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생각을 다시 가슴속 깊은 곳으로 숨겨놓고 드러내지 않았다.

“아버지, 다녀오시는 길 평안히 잘 다녀오세요.”

고영진은 재빠르게 눈을 몇 번 깜박거렸다. 그의 품에는 옥으로 조각한 듯한 어린아이가 안겨 있었다. 이때 고영진은 아이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면서 말했다.

“자, 우리 육육이, 할아버지께 잘 다녀오시라고, 또 빨리 돌아오라고 말씀드려라.”

어린아이는 풍성한 속눈썹을 깜박이며 아버지와 꼭 닮은 애교 섞인 눈을 하고 고청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옹알거리며 오동통한 작은 손을 흔들었다. 

아가는 다른 한 손으로 고청운의 손가락을 거꾸로 잡은 채 화사하게 활짝 웃어보였다.

이제 겨우 한 살 남짓한 어린 손녀를 마주한 고청운은 아이의 순진한 두 눈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위로하듯 소진씨의 손을 토닥이며, 그녀의 팔을 부축해주고 있는 고대하를 바라보고 나서야 걸어가 아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래, 할아버지가 곧 집에 다시 돌아오마.”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아쉬움으로 가득했는데, 아마 그가 돌아올 때쯤이면 눈앞의 어린 손녀가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또렷하게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이가 성장하고 있는 시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었다.

해야 할 말은 지난 1년 동안 한 무더기씩 이미 수없이 했었다. 

고청운은 마지막으로 간미를 바라보았다. 줄곧 조용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던 간미는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음에도 애써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고청운은 차마 그녀의 약해지는 표정을 더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을 개의치 않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아 그녀의 목에 고개를 묻고,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낮게 말했다.

“건강에 유의하시오.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그저 내가 돌아오기를 잘 기다려 주시오.”

간미는 가볍게 ‘네’ 하고 답하고는 다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말의 투레질 소리에 시간이 넉넉지 않다는 것을 안 고청운은 고통을 참으며 간미를 품에서 놓아주고, 다른 가족들과 일일이 포옹을 했다. 음, 물론 작은 며느리 노묘운만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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